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서 잠깐 쉬어라 (막 6:30~34)

  • 잡초 잡초
  • 493
  • 0

첨부 1


가서 잠깐 쉬어라 (막 6:30~34)


어느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의 방문을 노크하면서 말씀하십니다. 
“얘야! 일어나야지, 교회 갈 시간이잖아.”
아무 반응이 없는 방문을 다시 노크하다가 할 수 없어 방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자고 있는 아들의 귀에 대고 외칩니다.  
“교회에 늦겠다.”
그랬더니 아들이 피곤한 얼굴을 들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 제가 교회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교인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서이고요. 
또 하나는 저 역시 교인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교회에 가야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지. 
하나는 올 해 네 나이가 50이다. 
남이 싫어한다고 안가고, 남이 좋아한다고 가는 그런 나이가 아니잖아. 
그리고 누가 뭐래도 교회에 가야 하는 것은 네가 그 교회 담임목사이기 때문이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분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세요?
‘무슨 저런 목사가 다 있어.’ 
그렇지요? 
혹시 이런 교인은 몰라도 이런 목사가 있겠어요?

그러나 이 우스운 이야기는 우리 내면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가끔 우리는 정말 삶의 현장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래야 어떻게 되든 말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은 때가 있지 않으세요?  
너무 지쳐 있다는 증거이지요. 
그 때는 쉬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 속의 제자들은 몹시 지쳐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 전도여행을 보내십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모든 것이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순종하여 나갔습니다.

마가복음6:12,13입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그리고 마가복음6:30전도여행에서 돌아온 후의 장면입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전도현장보고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이렇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전도보고를 하는 중에도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하여 조금도 쉴 겨를이 없습니다. 
식사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이 때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이 말씀 속에 있는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육신의 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일한 육신을 가지고 사셨기 때문에 우리를 진정으로 아십니다.  
히브리서4:15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주님은 우리와 같이 육체를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를 동정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사전에 ‘동정同情’이라는 말의 뜻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남의 불행이나 슬픔 따위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여 가슴아파하고, 위로함”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를 영어에서는 ‘com-passion’ 이라고 씁니다. 
‘함께 아파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하게 세상을 사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아보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아픔이 무엇이며 연약함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지를 아십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실수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이 좋은 사람은 절대로 지치지 않고, 
시험이 와도 절대로 시험에 들지 않고, 
유혹이 다가와도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일해도 지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항상 넘치는 힘과 지혜로 가득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도하면 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만사형통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문제가 생기면 속으로 재빠르게 판단하지요. 
‘저 사람 그 동안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구만.’
‘혹시 남모르게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 아냐?’ 
그래서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하고, 어려워도 어렵다고 말하기가 머뭇거려집니다. 

군의 지휘관을 양성하는 사관학교에서 항상 일등만 한 사람은 좋은 지휘관이 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거나 남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내 곁에서 며칠 휴가를 보냈습니다. 
병문안을 오신 분들 가운데는 다리에 사고를 입으셨던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치료의 흔적을 보여주시면서 아내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실제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때로 너무 피곤하서 배의 뒤쪽에서 곤히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바람이 불고 풍랑이 몰아치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때로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은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아파보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실로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배고파보면 남의 배고픔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십니다. 
제자들의 피로를 아십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아픔을 아십니다.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
쉼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문화가 바탕이 된 서구에는 안식년, 휴가제도가 철저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것은 지켜야하는 규정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때부터 쉼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일먼저 만드신 것이 밤과 낮입니다.  
창세기1:2-5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이며 신비입니다. 
이 창조의 섭리 속에 신비로운 하나님의 사랑의 경륜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시작부터 명확하게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구분하셨습니다. 
빛이 있는 동안에는 일하고, 어두운 시간에는 쉬게 하셨습니다. 

시간만 그렇게 구분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아침에 해가 뜨면 우리 몸에서 ‘코티솔Cotisol’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호르몬으로 콩팥 위에 있는 부신에서 만들어지는 데, 우리 몸이 위험에 처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보충해줍니다. 코티솔은 싸우거나 즉각적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근육을 긴장시키고, 상황판단과 신속한 행동을 하기 위하여 정신을 더 또렷하게 하며 감각기관을 한층 예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코티솔’은 점차 줄어들고, 대신에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잠잘 준비를 하게 해 줍니다. 멜라토닌의 분비로 잠을 잠으로 쉬게 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잠이 들면 그 때 성장 호르몬이 분비가 되어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127:2하반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잠을 자는 동안에 쉼을 얻게 하시면서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연장 선상에서 안식일을 만드셨습니다. 
쉬는 것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여기서 예수님은 쉼의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1)삶의 현장을 떠나야 합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야합니다.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32)
진정한 휴식을 위하여 우선 우리의 일상의 자리를 떠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일단 떠나는 것이 쉼에는 좋습니다. 
일이 산더미처럼 싸여있는 현장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슨 행동의 자유를 얻고자 함이 아닙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에서 잠간이라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새벽 미명에 한 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저녁이면 습관을 좇아 겟세마네라는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 홀로 광야에서 조용히 하나님을 대면하며 40일을 보냈습니다. 사역이 힘들다고 느끼실 때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신비한 영적인 체험도 하셨습니다. 중요한 일들을 하신 다음 제자들을 떠나 홀로 조용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
일상적인 삶의 자리를 떠나서, 일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조용히 지난 시간 속의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2)잠간 쉬어야 합니다.  
짧은 시간 효과적인 쉼을 위하여 따로 한적한 곳에 가라 하신 주님이십니다. 
사실 우리의 쉼은 마냥 시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가끔은 할 일은 많고, 시간에 쫓기다보면 마음이 조급해 질 때가 있습니다. 
창조적인 생각이 잘 나지 않고, 
피곤할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간 잠을 자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뇌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잠을 자는 것입니다.  잠깐이지만 정신이 맑아지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제자들의 휴식이 오래 계속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6:34입니다.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저의 금년 휴가계획은 처음에는 브라질 선교사대회에 편승하려고 했습니다. 
7월 20일 주간, 브라질에서 남미의 선교사님들을 위한 대회에 가게 되어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가는 남미대회에 갔다가 멕시코에 들려서 우리교회가 장학금을 지원하여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공부하는 에리카와 바이올라의 집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취소되면서 휴가 계획을 제주도로 바꾸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한라산을 등정하기로 계획을 한 것입니다. 
8시간의 등정이 힘들지만 15년 만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계획을 바꾸어 저와 아내를 수원으로 옮기셨습니다. 
그것도 아내의 사고로 치료를 받으면서 말입니다. 
입원해서 있는 동안 늘 충혈 되어 있던 아내의 눈이 아주 맑아졌습니다. 
피로가 회복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잠간 쉬는 동안에도 복음으로 구원의 길을 여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수요예배를 아내와 함께 병원에서 조용히 드리겠다고 병원원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함께 예배할 간호사나 입원환자가 있으시면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절대로 강제적인 방법으로 동원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예배순서 지를 만들었습니다. 

예배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날 저녁 함께 예배한 아홉 명 중에 처음으로 예배에 참석한 두 분이 계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 두 분이 예배 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함께 영접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분들에게 안수하며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간증을 듣던 한 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의 휴가 지를 수원으로 옮기신 것은 그 두 사람의 영혼구원을 위한 주님의 계획이었군요.”

어디든지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쉼은 마냥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잠간 쉬어야 하기에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계획을 하셔야합니다.    

3)주님과 함께 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대단히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시고 함께 가셨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쉼은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정신없이 놉니다. 
이것저것 더 좋은 장난감을 가지려고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가끔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그리고 두리번거립니다. 
엄마가 자기 시선 안에 있는 동안에는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그대로 놉니다. 
그러다가 엄마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고 자기 시선 안 어디에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그 때는 장난감이고 무엇이고 다 필요 없습니다. 
다 내버리고 엄마를 찾습니다. 그래도 없으면 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삶! 그것은 어떤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모처럼 일터를 떠나 쉰다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며 즐기게 되면, 
후유증이 아주 오래갑니다. 
그 일 때문에 더 피곤해지고 어려워 질 수도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진리 안에서, 성령님과 동행하는 쉼이 되어야 진정한 휴가가 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11:28-30에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진정한 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다 내게로 오라.”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는 쉼을 즐겨야합니다. 
주님은 함께 멍에를 메고 주님의 마음을 배우라 하십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는 법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강퍅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보다, 주님보다 내가 앞서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더 가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마담과 하와의 그 교만한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 하였습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죄를 버리고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것이 ‘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배우십시오.  
거기에 진정한 쉼이 있습니다. 

오늘 나를 향하여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이 여름에 잠간 쉬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쉼을 얻기를 바랍니다. 
새 힘을 얻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차게 달려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