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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큰 나라 사람 (신 4:5~8, 마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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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나라 사람 (신 4:5~8, 마 6:10)


예일대학교의 교수인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이란 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전에 그분이 우리나라의 어느 일간지와 인터뷰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세계 10대 경제국 진입을 꿈꿨던 한국이 지난해에는 세계 15위로 추락하였습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1983년에는 23위였고, 2003년에는 11위였습니다. 

케네디교수는 “한국은 탁월하게 성공적인 중견국으로 앞으로도 경제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약 20년 후에는 프랑스를 앞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는 독일과 프랑스는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과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대 강국이 한국을 포위하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이 이룩한 성공은 경이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의회 정치는 형편없는지 모르지만 경제나 외교는 인상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세계적 석학이 볼 때도 우리나라는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경이로운 발전을 하였고 여러 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64년 전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자말자 신탁통치 반대 등 국제적인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이념 시대에 미국과 구소련 열강의 이념대결 장이 되었고, 한국전쟁이라는 이념의 대리전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불과 50년 만에 세계 경제대국으로 향하는 중견국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경이로운 발전과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제대국인 일본을 우습게 보는 도도함이 있고, 북한에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나라입니다. 외국인들이 볼 때는 모든 면에서 한국은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속에서도 중국의 속국이 아닌 점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독창적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강인한 나라입니다. 외국의 문물이 들어와도 우리의 것을 지켜내는 내공을 가진 나라입니다. 독창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어 세계 모든 말을 우리 글로 다 표현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보니 인도네시아에서 어느 소수민족의 언어를 한국어로 표기한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바우바우시에 소수민족의 언어인 찌아찌아어의 표기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글도 세계어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국회를 보면 걱정이 많습니다.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을 걱정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노사의 극한 대립이 이어집니다. 가진 자원이 없고, 경쟁력이 약해집니다. 물류비용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이 듭니다. 어느 하나 될 게 없는데 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한국을 작은 거인국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분명히 작은 거인입니다. 다윗은 작지만 큰 골리앗보다 거인이었습니다. 골리앗은 크지만 작은 다윗보다 소인이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없으면 커도 작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작아도 큽니다.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노래 가운데 “My God is so big. So strong and so mighty, there's nothing my God cannot do”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크신 주께 영광 돌리세”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찬송가에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라는 찬송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크신 분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세요. 주변에 강대국들이 쉴 새 없이 힘을 과시합니다. 애급, 바벨론, 앗수르, 불레셋 등 이스라엘에게는 항상 버거운 대상입니다. 그런데 주변의 강국들이 다 망해도 이스라엘은 오뚝이처럼 번성했습니다. 작지만 큰 나라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큰 나라가 아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큰 나라이기를 바랍니다. 위대하고 무시할 수 없는 나라 되기를 바랍니다. 해방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나라를 보우하시는 하나님을 말씀으로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큰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이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신명기 4:7에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가까이 계시고 우리나라로 하여금 큰 나라가 되게 하십니다. 
  
복음성가 가사에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며,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며,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라고 합니다. 저는 이 찬양을 할 때마다 너무 좋습니다.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기에 기도할 마음이 생깁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싶으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왜 하나님이 멀어 보입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입니까? 나와 아무 관계없이 생각되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신다고 생각합니까?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오십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의 관계선상에서 물체의 크기가 커 보이게 만드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어떻게든 그 물체 가까이 다가가거나 그 물체를 나에게 가까이 가져와야 합니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멀리 있으면 내 손바닥보다 작아 보입니다. 작은 손바닥으로 세상을 다 가릴 수 있습니다. 손이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아빌라의 테레사는 “내가 나에게 가까이 있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시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떠나신 적이 없는데 내가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멀어 보입니다. 시편 139:8에는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라고 합니다. 시편이 기자는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자고 깬 다음에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내가 알지 못하였거늘 여호와께서 여기도 계시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로랜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란 책에서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시종 주님과 쉬지 않고 얘기를 나눕니다. 진짜 그 분이 내 옆에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꼭 큰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후라이팬의 작은 계란 하나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는다. 그 일도 다 끝나 더 할 일이 없으면 나는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한다”라고 함으로 늘 가까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언제나 느낄 것입니다. 
  
야고보서 4:8에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 합니까? 기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법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높고 높은 보좌에만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까이 계시는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멀리 계시지 않고 곁에서 응답하시는 아버지에게 얘기하듯 기도하셨습니다. 
  
마이클 몰리노스는 ‘영성 깊은 그리스도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중에 내버려두실 때만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때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고난을 당해야 더 열심히 기도하지 않습니까? 고난은 기도하게 하고, 기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합니다. 
  
시편 73:28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큰 나라가 됩니다. 우리나라가 기도 강국이 되어 큰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신명기 4:8에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규례와 법도가 무엇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 참 지혜요 지식입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 1:7)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라고 하십니다.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제일 긴 장이며 주제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주제인 장이 제일 긴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시편 119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법, 계명, 증거, 법도, 말씀, 규례, 율례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공의로운 나라, 공의롭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시행되는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공의”란 이방의 법규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간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의 법 외에 세상의 어떤 법도 공의로운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법 앞에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고 하지만 법은 차별이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흑인과 백인 사이에 법적으로 차등을 두었습니다. 백인은 한 사람이 한 표이지만 흑인은 세 사람이 한 표였습니다. 법이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카스트라는 신분제도가 있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와서 살지 못합니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자국민과 외국인의 공원 입장료나 호텔객실료가 다릅니다. 북한에서도 우리들에게는 돈을 더 많이 받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우리가 돈이 많으니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합디다. 굉장히 공정한 것 같지만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지난 주간 신문에는 아프리카 수단의 어느 여기자가 레스토랑에 바지를 입고 들어갔다고 하여 체포되어 형법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기사가 났습니다. 이 여기자는 형이 확정되면 태형 40대까지 맞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 태형 40대를 맞고 나면 엉덩이가 부어 바지를 못 입겠지요. 우리나라 여성들처럼 아주 짧은 바지를 입었으면 아마 사형을 시킬지 모릅니다. 남자들은 마음대로 입고 살지만 여자들은 제한하는 것은 불의한 것입니다. 공의로운 나라가 큰 나라라면 불의한 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운전면허소지자 중 38.2%가 여성운전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하는데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여성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운전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남성운전자”라고 했습니다. 여성운전자의 상당수가 남성운전자들로부터 폭언과 모욕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여자가 아침부터 차를 몰고 나와 앞에서 알짱거리냐?”는 얘기는 흔히 듣습니다. 거기에다가 “재수 없게”가 붙을 때가 많습니다. 여성운전자 입장에서는 그럴 때는 정말 재수 없습니다. 이런 남자들은 대개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입니다. 집에 가서는 큰소리도 못 치는 공처가가 밖에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이해하세요. 
  
갈라디아서 3:28에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는 모두가 하나라고 합니다.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공의 그 자체입니다. 
  
누구라고 하면 다 알만한 법관을 얼마 전에 만나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 분은 이전부터 제가 개인적으로도 알고 지내던 분인데 저의 책과 방송을 많이 접하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 분이 ‘법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했습니다. 법관이 한 말이니까 맞을 겁니다. 같은 법을 가지고도 소위 고무줄 판결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정상을 참작해야 하고, 해석하는 재판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법은 아무리 공정하게 한다고 해도 공의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합니다. 공의롭습니다. 
  
사이토 다카시의 ‘코멘트력’이란 책에 보면 “부시를 죽이면 범죄자이지만 후세인을 죽이면 영웅이다. 미국인을 죽이면 테러지만 이라크인을 죽이면 정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세상에서는 정의라는 말도 주관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힘이 정의일 때가 많습니다. 공의롭지 못한 나라는 아무리 커도 큰 나라가 못됩니다. 
  
미국은 건국 이후에 공립학교에서 공부하기 전에 기도하였습니다. 의회가 개회될 때 기도하고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기도하고, 공의가 살아있을 때는 큰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작은 나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공립학교의 공중기도가 1964년 이후에 사라졌습니다. 기도가 사라지니 의롭지 못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속적인 힘을 과시하게 됩니다. 공의롭지 못한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초대국회가 1948년 5월 31일에 개원했습니다. 당시에 이승만 국회의장은 의원 가운데 감리교 목사님이셨던 이윤영의원으로 하여금 개회기도를 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대국회는 기도로 시작한 국회였습니다. 기도하는 국회는 큰 나라로 발돋움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립학교법에 의하여 종교행위나 기도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앙교육을 위한 건학이념과 관계없이 획일적 교육을 강요합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떠난 작은 나라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공의로운 나라가 되어야 큰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큰 나라가 되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의로운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큰 나라가 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의 기초가 되고, 국가의 뿌리가 되면 우리나라는 틀림없이 큰 나라가 됩니다. 

결론 

얼마 전에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백미러를 보면서 “목사님이세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혹시 텔레비전을 통하여 저를 본 줄로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냄새가 나내요”라는 것입니다. 저한테 목사 냄새가 난답니다. 무엇에 가까이 있으면 그것의 냄새가 납니다. 불고기 굽는데 가까이 있으면 옷에서 불고기 냄새가 납니다. 옛날에는 그게 귀티가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쓰레기 가까이 있으면 쓰레기 냄새가 납니다. 하나님 가까이 있으면 하나님 냄새가 납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이 우리 삶에 우러납니다. 우리 모습에 표현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아봅니다. 
  
지위자 정명훈씨가 어느 텔레비전에서 인터뷰하는 걸 잠시 봤습니다. 그는 세계적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해서는 100명의 주자들이 다 세계적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대로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앉아서 소리를 내는 척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모든 단원이 다 제대로 음악을 해야 세계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나라가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 국회의원, 공무원, 노동자와 사용자, 교사와 학생 그리고 모든 국민이 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사고와 행공과 삶이 필요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공의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나라가 큰 나라가 됩니다.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국민이 하나님을 믿어 우리나라를 큰 나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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