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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원 비유가 주는 영적 교훈 (마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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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비유가 주는 영적 교훈 (마 20:1~16)
 

오늘 상고할 말씀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포도원 비유입니다. 포도원은 교회를 상징하고,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품꾼들은 구원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품삯으로 준 한 데나리온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주신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그 이후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제 삼시, 제 육시, 제 구시, 제 열한시, 저물 때는 복음의 초창기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때까지의 역사적인 시간대를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당시부터 종말의 때까지 쉼 없이 사람들을 구원의 자리로 초청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뜻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동일한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한편, 저는 이 시간에 이 비유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럴 경우에, 이른 아침은 인생의 시작인 유소년기를 가리키고, 제 삼시 곧 아침 9시는 청년기를, 제 육시 곧 정오는 장년기를, 그리고 제 구시 곧 오후 3시는 장년기를 지나서 노년기로 접어든 시기를, 그리고 제 열한 시 곧 오후 5시는 인생의 황혼기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고 살아온 사람들은 아침 일찍이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과 같습니다. 

그 외에도 사람에 따라서 청년기에, 혹은 장년기에 혹은 초로기에, 혹은 황혼기에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 부르심을 받았든지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구원을 주십니다. 어려서부터 믿은 사람도 구원을 받고, 인생의 황혼녘에 믿은 사람도 구원을 받습니다. 이 두 사람이 받은 구원은 완전히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포도원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첫 번째로, 이 비유는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보여줍니다.

주인은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들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장터에 나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를 하루로 치므로 이른 아침은 아침 6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터는 요즘으로 말하면 인력시장이 서는 곳입니다. 주인은 이른 아침에 장터에 나가 사람들을 모아서 하루 한 데나리온 씩을 주기로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래도 일꾼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주인이 아침 9시에 장터에 나가보니 놀고 섰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에게 상당한 대가를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주인은 정오와 오후 3시에도 장터에 나가 놀고 섰는 일꾼들을 모아서 상당한 대가를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으므로 상당한 대가란 한 데나리온이 아니라 그들이 일한 시간에 합당한 대가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인은 제 십일시 곧 오후 5시에도 장터에 나가 보았더니 그 때까지 놀고 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섰소?”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들도 포도원에 들어가시오” 주인은 이들에게 상당하게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한 시간밖에 일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를 주든지 그것은 주인의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포도원 주인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부르시되 연령에 상관없이 부르십니다. 이른 아침과 같은 유소년기에 부름 받은 사람들도 있고, 아침 9시에 해당하는 청소년기에 부름 받은 사람들도 있고, 또는 청년기나 장년기에 또는 인생의 황혼기에 부름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되 연령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일원으로 불러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세상에서는 직장에 취직을 하려고 해도 연령 제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는 연령제한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남녀, 빈부, 귀천의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포도원에 들어가 일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에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합니다.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장터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예수 믿기 이전의 우리들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살지라도, 큰 사업을 경영하고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영적으로 볼 때에는 일을 시켜주는 사람이 없어서 장터에서 놀고 섰는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일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에 열심내지 못하는 신자들을 보면, 대체로 할 일이 많아 예배드릴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들려주신 어느 부자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6)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

이 부자는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넓은 토지를 가진 기업농을 하는 사람입니다.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서 그 해 풍성한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이 부자는 곡식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지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곡간의 설계를 구상하고 앞으로 누릴 행복한 생활을 계획했습니다. 

이 부자는 지금까지도 바쁘게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사업에 바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부자의 영혼을 불러가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업 계획도, 곡간에 차고 넘치도록 거둔 소출도 그와는 상관이 없게 되었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 부자가 세상에서 했던 일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부자를 보시고 “어리석은 자”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부자가 어리석은 자인 까닭은 일을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참 부지런한 사업가였습니다. 부지런한 것은 훌륭한 덕목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부지런한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나태하고 게으른 신자는 늦기 전에 회개하고 열심을 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헛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다가 명분과 아울러 장자의 축복마저 야곱에게 빼앗겼던 에서와 같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실이 얼마나 파격적인 하나님의 은혜인지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들이 한 데나리온의 삯을 받은 것은 하루가 저문 시각이었습니다. 주인은 해질녘에야 일꾼들에게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만일 중도에서 포도원을 떠난 품꾼이 있다면 그는 한 데나리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이 세상을 하직하는 그 순간까지 변함없이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 3:14)고 하신 말씀이 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신앙인이 되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 비유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장터에서 놀고 섰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고용될 소망을 잃고 낙심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품꾼들이므로 만일 그 날 일을 얻지 못한다면 양식을 사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비로운 주인을 만나서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습니다. 고용된 일꾼은 삯을 바라고 일합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가지고 일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구원을 바라고 믿음생활을 합니다. 

성경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장래에 받을 궁극적인 구원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구원은 현재적인 차원과 미래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그 믿음을 변함없이 지켜나간다면 그의 구원도 변동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중도에서 주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가버린다면 그 사람은 믿음에서 파선한 자가 되어 더 이상 영원한 구원, 궁극적인 구원과 상관이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첫째 뜻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처럼 소망 없이 살지 아니하고 구원의 소망을 갖고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포도원 품꾼이 받은 한 데나리온은 한 가족이 겨우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적은 돈에 불과하지만, 성도들이 받을 구원은 그 속에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천국의 삶, 영생을 소망하면서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도들이 가진 소망은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줄 수도 없는 영광스럽고 영원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과 핍박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둘째 뜻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많은 사업과 큰일을 했으나 그것들은 하나님의 일과는 상관이 없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위대하다는 인정을 받는 사업이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무익한 일인 경우가 있습니다. 

니므롯은 사람들을 규합해서 대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거대한 바벨탑을 쌓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고 했습니다. 그 목표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위대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인간 교만의 극치에 불과했습니다. 탑이 높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환호했으나, 하나님의 진노를 더할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그들의 도모가 완전 실패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두라 평지에 높이가 30미터가 되고 너비가 3미터나 되는 거대한 신상을 금으로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 금신상은 느부갓네살 자신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를 신격화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서 천하 백성들이 신봉하게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을 하나의 종교로써 묶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그 같은 느부갓네살 왕의 시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서운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보시고 가장 위대한 일을 한다고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일을 가장 열심히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큰 자 곧 대접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누가 큰 자인가?’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의 기준과 세상 기준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일평생 주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크고 위대한 일을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이 세상일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영원히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 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고 복음을 전하면서 살게 된 것은 우리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처럼 감히 천국의 백성이 될 것은 생각도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불러 자기의 포도원인 교회의 일원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함없이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비유는 우리에게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한 방법을 말해 줍니다.

이 비유에 보면, 품꾼들이 해질녘에 품삯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 지시하기를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겨우 한 시간 일했을 뿐인데,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이에 먼저 온 자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더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았을 뿐입니다. 아마 이른 아침에 맨 먼저 포도원에 들어왔던 사람들의 불만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그들이 주인을 원망하기를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에 주인이 대답하기를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고 했습니다. 

사실이지, 주인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른 아침에 들어온 품꾼들에게는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온 품꾼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주인의 호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주인이 늦게 들어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절반이나 삼분지 일만 지불했다면, 그 날 밤을 굶주린 채 지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적게 일한 사람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씩을 지불함으로써 가족들의 양식을 마련할 수 있게 배려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아침에 들어온 사람이나 정오에 들어온 사람이나 오후 늦게 들어온 사람이나 다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이 주인의 은혜로운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듯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예수님을 믿었든지 동일한 구원을 주신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하심에 의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4장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4-8)

포도원 주인은 해가 지기 직전까지 일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이 포도원은 얼마든지 많은 일꾼이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은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없이 크고 넓어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천국이 협소해서 정해진 수의 사람들만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단들은 십사만 사천 명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하심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래도 멸망당하는 자들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도 사람들이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는 것을 빗대어서 “그러면 구태여 일찍 예수 믿을 필요가 없겠군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의 일원이 되어 주님을 섬기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구원의 소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루라도 빠를수록 좋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오후 늦은 시간에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침부터 그 늦은 시각까지 빈둥빈둥 장터에서 놀고 서 있었습니다. 하릴없이 노는 것이 편한 것일까요? 더구나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마당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허송하는 것이 마음 편할 리가 있을까요? 어쩌면 오늘도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 심정이 얼마나 착찹하겠습니까? 

그러나 아침 일찍부터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일만 하면 주인이 점심도 주고 저녁이 되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줄 것입니다. 그것으로 양식을 사 가지고 돌아갈 수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집니다. 늦게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은 그 만큼 세월을 허송한 것입니다. 일찍 믿은 사람과 동일한 구원을 받았으나, 이 세상 장터에서 하릴없이 방황하면서 보낸 세월은 낭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고 일찍부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보람된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은 인생의 낭비가 없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감으로 매일의 삶이 기쁘고 소망찬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복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일찍부터 예수를 믿은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포도원에 일찍 들어온 자기에게 늦게 온 사람과 똑같은 품삯을 준다고 불평한 일꾼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구원의 도리가 무엇인지, 또 하나님 나라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올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불평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당연한 보수를 받고 일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은 수고에 대한 당연한 대가일 뿐입니다. 그러니 주인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늦은 시각에 포도원에 들어온 일꾼들은 포도원에 들여 보내준 그 자체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포도원 주인이 그 시간에 장터에 나와서 그들을 불러주지 않았더라면 영락없이 빈손으로 돌아갔을 텐데, 주인의 호의로 일하게 되었으니 그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더구나 별로 일한 것도 없는데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게 되었으니 주인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일할 때 의무감에 사로잡혀서 부득이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불러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지 기쁨으로 충성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감사가 없이 의무감에만 사로잡혀서 행하면 무거운 짐이 되고 말지만, 반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기쁨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자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을 불러서 결산을 했듯이, 우리 인생도 주님 앞에서 결산을 볼 날이 옵니다. 항상 젊은이로 있다면 좋겠지만, 세월은 덧없이 흘러 어느새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됩니다. 아침이 되면 저녁도 오듯이 인생에도 유아시절이 있으면 황혼의 시기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언제 들어와서 얼마나 일을 하였든지 상관없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았듯이,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구원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각 사람을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의 지체로 불러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십시다. 또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게 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십시다. 아무쪼록 주 예수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타성에 젖는 일이 없이 언제나 마음을 새롭게 해서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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