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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람들 (엡 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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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람들 (엡 4:11~16) 


우리 교회는 “성숙한 제자로 살아가는 교회”라고 표어를 내어걸고 있습니다.   연초에는 많은 성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공중기도에 그 표어를 기도제목으로 삼아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성숙한 제자가 되겠습니다.’고 기도했는데, 이제는 시들해진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때로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닮기 원합니다,  예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작은 예수로 살겠습니다. 주님의 남은 사역을 저의 육체에 채우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성숙한 기도요, 위대한 신앙고백이며, 결단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도 심히 부끄럽다는 생각뿐입니다.  

행크 아론(Henry Louis Aaron)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1934년 2월 5일에 나서 1954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였는데, 1958년부터 수차례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하였으며,  1955-1975년까지 메이저리그의 올스타전에 출전하였고 1982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혁혁한 공을 인정받아 명예로운 자리에 올리는 것을 헌액이라고 합니다.   그는 홈런타자로 생애 통산 755개의 홈런을 기록한 홈런왕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를 기념하는 실버슬러거상이 제정되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훌륭한 타자에게 그 상을 주고 있습니다.  

행크 아론이 뉴욕의 양키즈 스타디움에서 홈런을 칠 때마다 한 소년이 “행크 아론,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아론은 한동안 그 아이의 소리를 무시하였지만, 다시 홈런을 쳤을 때에 그 소년이 “행크 아론,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행크 아론은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소년을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 아이야, 사실 너는 진짜 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너는 단지 내가 갖고 있는 능력과 돈과 인기를 갖기 원할 뿐이야.  정말 네가 나처럼 되고 싶으면 너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온 몸이 땀에 젖도록 뛰어야 하고, 손바닥에 피가 고이도록 공을 쳐야 하는데, 너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지?”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행크 아론의 말대로 날마다의 훈련으로, 우리를 쳐서 복종하는 말씀의 훈련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작은 예수로 살아야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숙한 제자로 살아가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정의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교회의 여러 직분을 주신 것은 각자 맡은 바에 충성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엡1:27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구주 예수님을 ‘그’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몸은 사명을 다하고,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고전12:27에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생각해보시면 위로 머리가 있고, 가슴과 배가 있고, 팔과 다리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는 지체가 어디 있을 것입니까?    모든 지체가 다 필요하고 소중한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머리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머리가 없는 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골1:18에서도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했습니다.  

몸이란 하나의 몸을 말하고, 연합과 일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이 지어주신 우리의 몸은 정말 오묘하고 과학적이고, 세상의 어떤 기계에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이 머리가 따로 놀고, 팔과 다리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관성을 이루고 통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 머리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픈 것이지, 머리만 따로 아프고 다른 기관은 건강하게 활동할 수 없습니다.  팔과 다리가 아픈데, 머리나 가슴이 말하기를 내가 팔이 아니고, 다리가 아닌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란 하나의 몸입니다.  

고전12:12에서 “몸이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몸의 많은 지체를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목사님 한 분이 건강치 못하여 목회를 접어야 했고, 지금 중환자실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늘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건강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셨는데, 아무리 종합병원에 입원하여 검사하고 여러 병원을 다녀도 이렇다한 병명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한 병원에서 그 분의 침과 가래를 가지고 세균 배양검사를 한 결과 그의 폐에서 곰팡이 균이 자라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찬송가를 4절까지 부르지 못하였습니다.  숨이 차서, 1층에서 2층을 올라가는데도 중간에 쉬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목회를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지금 기관지를 수술하고, 폐를 절단하고 회복되지 않아 소생할 가망이 없다고 합니다.  함께 만나고 교회를 염려하던 가까운 친구 목사님이신데, 몸이 말이 아닙니다. 폐 하나가 그의 몸을 쓰러지게 합니다. 

우리 몸은 유기적인 연결을 통하여 통일을 이루고, 하나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고, 서로가 협력하는 지체로, 하나의 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나이고, 너는 너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함께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다, 서로가 사랑할 사람이요, 섬겨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한 새신자의 아픔은 목사장로의 아픔이요, 온 교우의 아픔입니다.  한 사람이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그를 일으켜 세워주어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고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합니다. 

교회는 여러 직분들을 세우셨습니다.  11-12절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어떤 조직이나 기관이 아니고 프로그램이나 일이 아니라,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곧 교회입니다.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는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사역한 사람들이요, 목사와 교사는 지역교회에 국한된 직분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장로, 집사도 있습니다.  교회는 여러 직분들이 있지만, 서로 받은 은사가 다르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개성도 다르지만, 다양한 직분들이 모여 서로 협력하고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직분의 다양성을 말하면서 직분의 통일성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을 세우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과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이 말은 준비시킨다는 말이요, 회복시킨다는 뜻입니다.  의학에서는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찢어진 그물을 수리할 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성도를 준비시킨다는 말입니다.  새번역에서는 “성도들을 준비시켜서”라고 했습니다.  준비시키고 훈련하여 언제 어디서도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훈련도 안 하고 무슨 일을 맡기면,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의 몫이지, 그 봉사가 소수의 교역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참여하는 봉사가 되어야 합니다.    봉사하라고 하면 몇 사람만 나오고, 나머지는 다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경꾼이 많은 교회는 아무리 많은 성도들이 모인다고 하여도 교회다운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교회는 준비된 일꾼이 많은 교회, 봉사자들이 많은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사역자를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성숙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하데 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는 말은 성숙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몸은 분명히 성인인데, 정신적으로 보면 아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성인아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성인아이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에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자라가야 되는데, 부모가 알코올 중독, 폭력, 무관심, 부모의 이혼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라, 나는 누구도 믿을 수 없노라, 나는 나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고립되어 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성인아이가 됩니다.   몸은 자라서 성인이 되었으나, 내면에는 사랑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잠재하고 있어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고, 억눌린 감정을 조절할 수 없이 쉽게 화를 내기도 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교회도 몸은 성인인데, 정서적으로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오래 다녀서 직분도 받았는데, 아직 미흡합니다.  여기저기서 좌충우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를 알아주기 않는다고 토라집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린 아이 시절을 벗어나야 하고, 버려야 합니다.  고전13:11에 보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면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교회는 숨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는 아론과 같은 사람, 바나바와 같은 사람, 안드레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일인자에게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함께 일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어우르면서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야겠습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을 별개의 것으로 알지 말고, 믿는 것은 곧 내가 아는 것이며, 또 아는 것은 나의 믿음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과 지식의 대상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점진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진일보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생각, 깨달음, 우리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데, 아직도 미흡하기만 합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데이브 스톤’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쉬벌리 감리교회의 학생회는 이웃에 있는 쉬벌리 침례교회와 모든 면에서 치열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습니다.   한 마을에 있는 두 교회의 학생회는 라이벌관계로 불편하였습니다.  두 교회 학생들이 모여서 운동하는 소프트볼 경기에서는 경쟁의식이 더욱 치열하였습니다.  

쉬벌리 감리교회의 학생들은 스톤 목사님이 지도하는 여름 성경학교에도 매우 열심히 참가하였습니다.  첫째 주 성경공부는 요한복음 13장에 나타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봉사와 희생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스톤 목사님은 학생들을 몇 그룹으로 나눠 실천에 옮기게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앞으로 두 시간에 걸쳐 이 도시에 나타난 예수님처럼 행동해 주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곳에 오셨다면 어떤 일을 하실까? 그분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도울 것인가를 잘 생각해 보고, 그대로 실천해 주기 바랍니다." 라고 권면하고 마을로 보냈습니다.  두 시간 뒤 학생들은 자신들이 실천에 옮긴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스톤 목사의 집에 모였습니다.  

한 그룹은 두 시간 동안 어떤 노인의 집을 청소해주었습니다.  다른 그룹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교회에 나오는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배달했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성도 중에서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을 찾아가 위문 카드를 전달했습니다.  또 다른 그룹은 양로원에 가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주었습니다.  8월 중순에 크리스마스 기분을 선물한 것입니다.  어떤 한 노인은 그것이 자기 생전에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섯 번째 그룹이 일어나 자신들이 한 일을 발표하자 모두가 ‘우’하고 야유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라이벌 관계에 있는 쉬벌리 침례교회를 찾아가 혹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침례교회 목사님은 정원 손질이 필요한 어떤 할머니의 집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두 시간에 걸쳐 잔디를 깎고, 마당을 쓸고, 울타리를 손질했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 쯤 그 집 할머니가 학생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학생들이 없으면 난 살아갈 수 없을 꺼야. 쉬벌리 침례교회 학생들은 이렇게 언제나 많은 도움을 주거든."   이 말을 듣던 감리교회의 스톤 목사님이 놀라서 끼어들었습니다.     "쉬벌리 침례교회라고?  그래서 너희들은 그 할머니들에게 너희들이 쉬벌리 감리교회에서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드렸느냐?"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말했습니다.    "아뇨. 그럴 필요를 못 느꼈어요. 예수님에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찰스 콜슨이라는 분의 글에 나온 감동 깊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교회 학생들이 하였다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까?  예수님에게는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셨다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장성한 인격, 그리스도의 장성한 생각, 그리스도의 장성한 행동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주님은 오른 손이 하는 선행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6:3-4 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어떤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충성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한 길 가는 순례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지를 돌아오는 순례자들입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한 길 가는 순례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15-16절을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은 나의 안에, 나는 주님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하여, 범사에 그분, 주님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머리이신 주님의 명령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어디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주님이 명령하시면 다 내어놓겠습니다.  예수님에게 연결되어 있고, 결합되어 있어 연합하고 일치하고 통일되어, 하나 되어 있어야 주님의 은총은 곧 나의 은총이 되고, 주님의 인격은 나의 인격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긴밀한 협력과 연합, 하나 됨이 중요합니다. 뿔뿔이 흩어진 것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을 모신 가운데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생각을 모으고 함께 기도하는 그런 끈끈한 공동체, 하나 된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어떤 교회는 조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있고, 전통이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고, 헌법이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고, 위원회가 이끌어 가는 교회, 목사가 이끌어 가는 교회, 장로가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지만 건강한 교회는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교회가 세워진 목적을 잊으면 공동체는 방황할 수밖에 없고 비본질적인 것이 교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릭 워렌목사는 "21세기의 교회의 중심 주제는 성장이 아니라 건강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교회성장 보다는 교회의 건강을 강조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교회, 칭찬받을 교회, 모범적인 교회는 나무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힘을 합쳐 만들어야 하고, 세워가야 합니다.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완성된 교회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공사중이라는 말과 같이 세워지는 교회, 자라나는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연합을 이루고, 주님을 배우고, 닮아가며, 주님에게 연결되어 있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성숙한 제자로서 살아가시고, 주님의 몸을 세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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