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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하나님 (시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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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 (시 18:1~6)
  

대전에 있는 어느 장로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현직 중학교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면담요청을 했답니다. 
그래서 무슨 문제인가 고민을 하면서 면담하는데, 전도를 하더랍니다. 

“야, 내가 교회의 장로야” 그러니까 
‘장로님인 줄 알고 전도합니다.’ 그러더랍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기독교 장로라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전도합니다.’
알고 보니 이 학생은 신천지에 빠져있었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혀서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좋다 그러면 네가 왜 신천지를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써 봐라’
그랬더니 이 아이가 쉬지 않고 쓰더랍니다. 

그리고 한 장 더 달라고 하더니 내리 4장을 쓰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읽어보니까 신천지 교리에 대해서, 기존 기독교의 문제에 대하여, 
신천지가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자기의 비전과 사명을 적었습니다. 

그 아이가 중학교2학년생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충격을 받은 이 장로님은 교회 중등부 교사인데,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 가서 중등부 아이들에게 똑같이 했답니다. 
종이 한 장씩을 나눠주면서, 여기에다 ‘왜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지,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써봐라’ 했더니 
한 장 이상을 채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한 줄, 두 줄 그리고 더 이상 쓰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장로님은 너무나 충격을 받고 
이 학생들을 어떻게 양육하면 좋겠느냐는 고민을 이야기하더랍니다. 

우리 교회의 아이들은 어떨까요? 혹시 크게 다르지 않지는 않을까요?
어른들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왜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경험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교회에서 하고 있는 확신반, 성장반 같은 양육과 훈련과정은 
이런 면에서 여러분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정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정말 신앙의 놀라운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우리교회 30년 이상 다닌 어느 권사님은 이 과정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30년 동안의 신앙생활보다도 5주 확신반과 15주 성장반이 
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노라고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과정이 어떤 직분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성숙의 기회를 삼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왜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얘기 다 아시죠?
어떤 할머니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많이 드시고, 배우지 못한 분이라 세례문답이 걱정되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문답을 위해 준비를 해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외우지도 못했습니다. 
하는 수없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확실하게 가르쳐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가? 하는 질문에
‘내 죄 때문입니다.’라고만 대답하면 되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여러 번에 걸쳐서 반복교육을 시켰습니다. 
할머니는 걱정 말라고 그것만은 내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문답시간이 되었습니다. 
역시나 목사님이 질문하는 모든 질문에 대해서 할머니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결국 목사님도 포기하고 ‘이것만 대답하면 됩니다.’ 하면서 하는 질문이
‘할머니, 예수님이 누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우리 며느리 죄 때문이죠.”
이 얘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얘기입니다. 

요즘에야 이렇게 이해를 못해서 이렇게 대답하는 분이야 없겠지만,
정말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지 잘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불행하고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오늘도 분명히 살아계시며, 역사하고 계시다고 간증을 하는데,
그런 간증들이 늘 남의 이야기이지,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이 많이 나오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 찾아보았어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나의 하나님: 70번 내 하나님: 61번
우리 하나님: 186번, 우리의 하나님: 7번
너희의 하나님: 109번, 너의 하나님: 12번, 네 하나님: 260번
‘네 하나님’은 신명기에만 190번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나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라는 말은 자기 고백적인 말입니다. 
네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 남이 권면하고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어쨌든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우선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 속에서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심한 환난 속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18:4-5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이것은 바로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의 공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윗은 결코 아무런 문제도 없는 온실과 같은 평안함 속에 살지 않았습니다.
골리앗 장군과의 전투를 비롯해서 다윗은 수많은 전쟁 속에 있었습니다. 
또한 자기편이 되어 주어야 할 사울 왕이 끊임없이 자기를 죽이려 합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 떨고 있는 다윗의 모습은 혹시 여러분의 모습은 아닌가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뭔가 쫓기듯 불안하게 삽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게으른 것이 문제라면, 내 마음의 태도만 바꾸면 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몸부림을 친다고 해도 
나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이 내게 영향을 미쳐서 나를 괴롭게 합니다. 
세상에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부르는 찬송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찬송이죠. (384장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실제로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결국은 모든 일이 하나님 안에서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정 중에는 여러 가지 시련과 환난을 많이 당하게도 됩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굉장한 고난이 오기도 합니다. 

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기독교 신앙이 여러분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책을 읽어보니까, 이렇게 불러야 하지 않느냐고 권면을 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능히 극복하리라.

다윗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한 일은 무엇입니까? 
시18: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죽음의 위기에서 그를 건져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때 다윗은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객관적인 타자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의 삶 속에 찾아오셔서 내 삶 속에 간섭하시고, 
인도하시고 책임져주시는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18:1-2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이 고백이 다윗의 고백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창조주 하나님이요, 전능한 하나님이요,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의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조직신학적으로 신론, 기독론, 성령론을 
유창하게 강의를 할 수 있는 지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님이 여러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다윗은 자기를 만나주신 자기의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나를 환난에서 건지시고, 나를 구원해 주신 나의 하나님,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방패, 나의 바위, 나의 산성이시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십니까?
다윗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마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만 부르겠습니까? 
어느 시어머니처럼 우리 며느리의 하나님이라고 하겠습니까?
그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데, 
이를 발견하면서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답니다. 나를 굳세게 해 주신답니다.
나를 도와주신답니다.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신답니다. 할렐루야!
너라는 말에 자신의 이름을 불러가며 다시 읽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언제 자기의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환난의 때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 올 때입니다. 
삶의 문제가 있을 때, 내가 어떤 곤경에 처했을 때 
그 때가 바로 나의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저는 평소에도 늘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과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더 깊이 만날 때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입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생겼을 때, 목회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나의 힘으로는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때 하나님은 저에게 더 깊이, 더 강하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저에게 격려가 되어 주십니다. 
“완중아, 네가 많이 힘드는구나. 내가 네 맘을 안다. 내가 네 상처를 안다. 
너, 너무나 억울하니? 네 가슴이 새까맣게 타버렸구나. 
사람들이 너의 진심을 몰라주는구나. 그래서 네가 울고 있구나. 
완중아,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니? 

내가 너를 도와줄게. 나만 의지해라. 나만 바라 보거라. 넌 잘할 수 있어.”
때때로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고픈 배를 움켜잡고 엎드릴 때
그 때 하나님은 더 가까이 제게 다가와 주십니다. 
밤1시 혹은 2시 온 세상이 잠들어 있는 깊은 밤중에 
하나님은 조용히 저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흐느껴 웁니다. 
그 울음은 이제 더 이상, 억울해서 우는 게 아닙니다. 
고마워서 우는 눈물입니다. 감사해서 흐르는 눈물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다시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하나님 엎드려 기도할 때, 부르짖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주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므로 나의 하나님임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창28: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노숙자 야곱이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는 고백입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광야에서 꿈속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다니엘은 자신의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나의 하나님’을 부릅니다.
‘주여’를 세 번 부른 다니엘은 드디어 그 주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면서 불러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언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날 수 있습니까? 
치열한 영적전쟁의 현장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므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전도현장이기도 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시며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주시고,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그 치열한 상황 속에서 나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막15: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면서, 버림받은 것 같은 그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것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남들의 간증만 듣고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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