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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습관의 삶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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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습관의 삶 (빌 4:4~7)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를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가는 일입니다. 이 만남이 축복입니다. 사람은 좋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만남은 삶의 과정에 기적을 낳습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이웃과 스승을 만나고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예수를 만나는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우선 길을 잃습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삶의 주체도 잃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복이고 은혜이고 섭리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 그 의미를 알게 되고 감추어진 진정한 복을 알게 되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 역전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모토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37세 때 캐비닛을 만드는 공장을 다녔습니다. 그는 가난하였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장래성 없는 삶에 비관적하면서 직업에 불만을 가지고 원망과 불평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런던 거리를 배회하는데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심코 그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말이 무심코 이지 사실은 그 배후에 성령님의 인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존 하야트 목사가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거듭나는 도리”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설교를 듣는 순간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순간적으로 “나도 거듭나야 해”한다는 강렬한 서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성령이 그의 마음 안에 임하셨습니다. 그러자 내면이 순간적으로 완전히 일신되고 성령체험을 하게 되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에 변화가 주어졌고 일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생활이 바뀌고 일터가 새로워지고 일에 행복함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내 망치소리는 비로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소리는 이제 춤을 춘다, 내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았고 마음속에서는 생수가 솟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우리 주님이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비로소 내 삶이 풍요로워졌다.” 이 에드워드 모토라는 사람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변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를 썼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 일세.”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은 예수 안에 들어와 살 때 주어집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 안에 깊숙이 들어가 살아갈 때 발견하게 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나를 발견하고 나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나의 삶의 뜻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때 거기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모를 때 인생이 불행하다는 마음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행복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가장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살아가게 되면 이 의미를 알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은 주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은혜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위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를 알게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은 그 은혜를 알고 비로소 고백하기를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무서운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고 부르시고 사도 삼으심이 생각할수록 너무 황송하고 그 은혜가 놀라와 고백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나는 모든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 들어오게 되면 이런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게 되고 보고 알게 됩니다. 사실을 알고 깨닫고 보면 내가 얼마나 신비한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변화 받음의 삶”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의 나는 타락된 본성이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때는 주체가 나 위주입니다. 그래서 나는 탐욕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이기적입니다. 그리고 타락된 취미와 타락된 습관과 타락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이 기성품 인간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를 만나고 변화를 받게 되면 그 후 내 인생은 본성의 변화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비로소 너를 생각하게 되고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변화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보내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히 추구해야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안에서 굳게 서라”(1)고 당부합니다. 이 표현은 병사가 전쟁 중에 초소를 굳게 지키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핍박도 고민도 수고도 따라옵니다. 그 수고는 예수 때문에 주어지는 것들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한 마음을 품으라”(2)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자주장사 루디아가 중심이 되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성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빌립보교회는 여권이 강한 교회였습니다. 이 강한 여권은 마침내 서로 주도권 다툼이 일어났고 분란도 일어났습니다. 

교회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서로 잘하려는 경쟁이 있고 본의 아니게 선의의 다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것 까지도 지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것 까지도 극복하고 한마음을 가지고 일하라고 충고합니다. 이렇게 경쟁하는 것 보다 서로 조화를 이루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 사역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고 당부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옥중에서 이 편지를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쓰면서 환란에서도 기뻐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정한 기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환경이나 여건 그리고 조건이나 넉넉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 오는 것이고 조건과 환경을 초월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오늘 어려움이 있고 핍박도 있지만 예수 안에서 그것조차도 극복하고 기뻐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5)고 했습니다. 비록 오늘 환경과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있고 핍박이 있지만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네 자신에게 두려움이나 요동함 그리고 내면의 떨림으로 신앙을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을 극복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먼저 너 자신의 내면이 흔들리지 말고 스스로 두려워하지 말고 영적으로 인내하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불신자들 또는 핍박자들까지 포용하라는 것입니다. 핍박한다고 적대감을 갖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지금 로마 옥중에서 밖에 있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 위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옥중에 있다는 말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밖에 있는 성도들이 걱정되고 불안해하며 신앙을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에 직면한 성도들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주안에서 굳게 서라, 모든 일에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너희 구할 것을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주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속에 강하게 임재 할 때 가능합니다. 그 말은 내가 예수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나의 삶에 아주 좋은 변화의 삶이 주어집니다. 그 변화의 삶은 내게 좋은 습관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살면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기쁨의 습관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강조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도저히 불가능할 때에도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울고 싶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몸과 마음이 아플 때 기뻐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예수 안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이 기쁨은 거듭난 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거룩한 습관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삶은 습관으로 일시적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실 때, 내 마음이 예수님의 은혜로 변화될 때 그때 내 삶에 이 좋은 습관이 생기는 것입니다. 삶은 그냥 웃게 하지 않습니다. 자꾸 울게 합니다. 짜증나게 합니다. 불평하게 합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변화 받는 다는 것은 나의 내면이 고침 받는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내 내면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천국은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을 고치고 내 마음에 주님이 와 계시면 거기가 천국입니다. 거기서 변화가 주어집니다. 그때 우리도 사도바울의 마음을 가지고 일하고 살아가게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 마음입니다. 

오늘은 자연 치료가 각광을 받고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만병통치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그 뿌리만 치료하면 만병은 낫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만병의 뿌리가 곧 마음입니다. 마음만 치료하면 만병이 다 낫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암은 이제 화학치료로는 이미 한계가 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자연 치료가 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 자연치료가 마음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면 암은 더 이상 발전을 안 합니다. 그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이 치료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기쁨의 습관은 마음이 변화를 받아 치료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안에 들어와 변화를 받고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되면 이 기쁨의 습관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삶이 거룩한 습관인 것입니다. 


말씀을 따르는 습관 

성경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이고 살리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그런 능력의 말씀일지라도 내가 거듭나고 변화 받지 못하면 그 말씀도 수면제와 같이 손에 들기만 해도 잠이 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생명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내가 변화되지 않고 내 마음에 잡초가 우거져 있으면 말씀을 들기만 해도 곧 잠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하실 때 이 말씀은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말씀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손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잠이 오는 사람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엄청난 힘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목숨을 걸고 이 성경말씀을 읽는 분들도 있고 이 성경을 숨어서 읽다가 발각되어 핍박받고 처형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러시아의 문인 도스토예프스키는 한때 무신론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학대하고 농민들을 학대하다가 그 농민들의 손에 무참히 학살당했습니다. 그 후 도스토예프스키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공부에 취미를 잃고 낙제하여 청년 때 사회주의 사상에 몰두하여 비밀 결사조직에 가담했다가 러시아 황실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대에서 그는 “나는 이제 죽는구나, 이렇게 죽을 것을 험하게 살았구나,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인데”라고 후회하는 동안 처형 3분전에 황제의 특사들이 말 타고 사형장에 나타남으로 죽음의 자리에서 감형 받아 유배지 시베리아로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잠시 간이역에서 쉬는 동안 어느 부인으로부터 받은 작은 성경책을 읽는 동안 그 성경책이 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는 그 성경책을 소중히 품고 읽다가 어느 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4년간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죽음의 집의 기록,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그때 쓰여 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증오를 품고 늘 우울하고 불행한 삶을 살던 이 청년이 어느 날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만나게 되고 그의 인생이 역전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인생 역전의 삶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생활에는 이런 기적이 따릅니다. 죠지 뮬러라는 고아의 아버지는 고아 3천명을 먹여 살렸고 평생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분은 원래 봉사도 훌륭하지만 더 훌륭한 것은 말씀을 사모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고아들이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자선가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고 기도실로 들어가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를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기도가 끝날 쯤에는 어김없이 양식을 싣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죤 칼빈은 26세에 성경말씀을 다 풀어서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썼습니다. 스펄전은 26살 때 영국의 대 부흥사로 활동했습니다. 리빙스턴은 23살 때 아프리카로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모두 이 말씀의 힘에 의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칭찬하는 습관 

내가 주 안에서 변화를 받으면 내 내면이 변화되고 생각과 내 언어를 바꾸어 놓습니다. 그래서 내 언어 속에 희망과 칭찬과 덕담과 평화와 치유의 언어가 나타나게 됩니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변화를 받으면 먼저 내 안에 평화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면 내 삶의 내용과 표정과 언어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희망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희망의 언어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뒤틀린 관계를 정상화 하고 칭찬하게 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화의 삶은 희망을 말하고 칭찬하게 하는 습관을 가지게 합니다. 뒤틀린 관계를 푸는 방법은 칭찬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의 문제, 고부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교우간의 갈등 등 모든 문제들이 순간에 풀어질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변화 받는 일입니다. 내가 변화를 받게 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습관 

예수님은 때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아주 좋은 습관입니다. 살아가다가 답답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막막할 때, 암담할 때 산으로 가는 발걸음도 아름답습니다. 문제가 없을 지라도 습관으로 산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모습입니다. 예수님도 자주 기도하기 위해서 산으로 가셨습니다. 좋은 습관은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옵니다. 성령으로 내 마음이 새롭게 변화 받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거기서 좋은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그때 만들어지는 좋은 습관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나쁜 버릇이 고쳐지고, 자기를 조절할 줄 알게 되고, 창조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화평을 누리는 사람이 되고, 문제를 해답으로 바꾸는 사람이 되고, 영적인 설득력이 생기고, 반대의견도 너그럽게 수용하게 되고, 믿음의 동반자가 생기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하게 되고, 주위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고,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고, 낙관주의자가 되고, 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이것 뿐이겠습니까. 그때 주어지는 가장 큰 은혜는 아마도 7절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주 안에서의 삶은 우리에게 이 같은 복된 삶이 주어집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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