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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계획 (출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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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출애굽기 1장에서, 갈수록 번성해져가는 이스라엘 민족들에 대해서 바로가 인구 억제 정책을 펼쳤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는 중노동을 통한 출산 억제 정책이 실패하자, 산파에게 명령해서 “신생남아살해정책”이라는 무서운 계획을 시행시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했던 두 산파, 십브라와 부아가 왕의 명령에 불복함으로 인해서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제는 더 큰 계획을 세웁니다. 지난 번 ‘남아살해정책’은 산파들을 통해서 암암리에 죽이게 하는 정책이었지만, 이제는 공개적이고 보다 거국적 차원에서 남아 학살을 명령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남자 아기가 태어나거든 그를 강물에 던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본다면, 정말 기가 막히는 상황입니다. 산모가 그토록 새생명을 기다리면서 출산을 하는데, 남자 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에 따라서 그 가정의 희비가 결정됩니다. 여아가 태어났을 때에는 그래도 감사함과 기쁨이 있었겠지만, 남자 아기가 태어났을 때에는 출생의 기쁨은 온 데 간 데 없고 산모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이 정책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남자 아이들이 희생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중다하고 번성했던 것을 생각하면, 수많은 남아들이 강물에 던져져서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강물에 던져져 떠내려가는 아기들의 모습을 강가에서 지켜봐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갈갈이 찢겨지고, 강가에서는 애절한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번성을 막고 영원한 노예로 삼으려는 바로의 계획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시행되어졌습니다. 십브라와 부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인해서 바로의 계획이 무산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흥하는가 싶었는데, 어느 새 상황이 역전돼서 바로의 계획대로 무서운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절대 권력의 바로의 명을 거역하고 그 계획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 이 계획이 계속해서 시행되어져서, 이스라엘에 건장한 남자들은 다 사라져 버리고, 이스라엘에는 여자들만 가득하게 되는 날만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힘없는 여자들은 결코 애굽을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심지어는 애굽 남자들의 아이를 낳게 되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결국에는 없어져 버리는 일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희망을 찾을 수 없고,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과 같은 상황이 1장 22절과 2장 1절 사이에 생략된 채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 속에 있었던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선교지에서 젊음을 바쳐 열심히 사역을 하시던 한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이 갖고 있는 고민 가운데 하나는 체류 문제입니다. 장기체류를 할 수 있어야 마음 놓고 사역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선교사님들은 장기 체류 비자를 얻고,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수고를 하시게 됩니다. 이 선교사님 역시, 이슬람 국가에서 근근이 비자 연장을 하면서 체류를 해왔는데, 어느 날 현지 정부가 비자를 더 이상 연장해 줄 수 없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얘기하자면, 이제 그만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이 홀몸도 아니고, 젊은 아내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젊음을 바치고 모든 것을 걸고 사역에만 힘써 왔고, 이제 어느 정도 사역지가 든든하게 세워져서 뭔가 큰 일을 해볼 수 있는 때인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쫓겨나가게 됐습니다. 비자가 한 번만 더 연장되면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선교사님의 앞날이 걱정인 것이 아니라, 이제 현지 동역자들과도 헤어져야 하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셨던 많은 분들을 실망시키게 되는 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괴로웠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선교사님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셨겠습니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상황이 극적으로 해결되어졌으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하면 더 좋은 간증거리가 될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거라고 확신했었지만, 결국 그 선교사님의 가족은 그 선교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던 현지인들을 뒤로 하고, 그 동안 전 생애를 걸고 사역하던 그 사역지를 떠나올 때! 얼마나 많이 울었겠습니까? 그 때의 심정은 서러운 정도가 아니라, 선교사님의 인생 자체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정을 사랑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버린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님이 처한 상황,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 이면에 숨어 있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원망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뒤로 물러나고, 하나님께 대한 기대와 소망이 다 끊어져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굽왕 바로의 계획이 시행되고 있었을 때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바로의 계획이 시행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서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한 레위 족속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졌습니다. 한 레위인 가정에서 남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기는 그 시대의 상황에 맞춰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기는 잘 생긴 아기였습니다. 여기서 잘 생겼다는 말은 원어를 보면, 토브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졌습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할 때에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에 너무나도 잘 생긴 아기였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기였다는 뜻입니다. 

  아기의 부모들은 단지 자신의 아기가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아기를 바라보면서 그 아기를 숨기고 키우기로 결단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에서 이와 같은 행위는 바로의 명령보다도 하나님을 더 의뢰한, 목숨을 건 믿음의 행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자 아기를 숨겨서 키웠다가 들키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지만, 아기의 부모 역시 십브라와 부아와 같이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석 달 동안을 아기를 숨겼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더 이상은 아기를 숨길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인간의 힘과 방법으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기의 부모는 그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그들은 갈대로 만든 상자를 준비합니다. 이 ‘상자’라는 말도 원어성경을 보면,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방주와 같은 단어가 사용됐습니다. 노아가 역청을 바르고 방주를 만들어서 그 방주에 탔던 그의 가족 식구들이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아기의 부모들도 갈대로 만든 이 방주에 태운 아기가 구원 받게 되기를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갈대 상자에 아기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상자를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강물에 던져서 떠내려 보낸 것이 아니라, 갈대 수풀에 두고 누군가에 의해 구출되기를 바라면서 누이 미리암이 지켜보고 서 있었고, 공교롭게도 아기는 바로의 딸에게 발견되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딸이 울고 있는 아기를 보면서 히브리 사람의 아기라는 것을 알고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을 때에, 미리암이 재치있게 다가가서 유모를 소개하면서 아기의 친어머니를 데리고 옵니다. 그래서, 그 아기는 죽지 않고, 친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왕궁에서 주는 양육비까지 받아가면서 잘 키우다가 젖을 뗀 후에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갔고, 모세라는 이름으로 이름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계획을 시행하셨는데, 그 계획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애굽의 온갖 학문들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기에 합당하게 준비되어지고 있었고, 그가 준비되었을 때에 이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심지어는 바로와 같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고 망하게 하려는 계획이 시행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이 또한 우리 삶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절대로 포기되지 않고, 우리를 향해서 언제나 신실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어느 순간에만 과거분사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한 때는 진행되었었지만, 내가 힘들어하는 그 순간에는 잠시 멈춰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고,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시되, 신실하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시키십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바로의 계획이 시행되어지고 있어서 소망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때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그 특별하신 신실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계획을 시행시키시고 이루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갖고 힘을 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선교사님의 이야기도, 그렇게 선교지에서 쫓겨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분에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시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 나온 후에 유학의 기회가 주어져서 유학을 하고 와서 선교 후진을 양성하는 교수님이 되게 하셨고, 목회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고백하기를, 자신의 삶을 돌아보건대, 체류 비자가 연장되지 못했고, 선교지에서 쫓겨나게 됐을 때는 캄캄하고 답답하고 버려진 것 같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도리어 자신을 건져내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이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또한,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두고 온 선교지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시행시키셔서 현지인 동역자를 통해서 그 선교지가 더 아름답게 변화되었고, 하나님 나라는 중단 없이 계속해서 확장되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그 선교사님뿐만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도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펼쳐 나가고 계십니다.

  물밑작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일이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비유해서 이를 때 쓰는 말인데, 하나님의 계획은 이 물밑작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깊은 강을 두고 거기에 다리를 건설한다고 할 때에, 튼튼한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물밑작업부터 들어갑니다. 강바닥 깊은 곳에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야 견실한 다리를 건축할 수 있기 때문에, 물밑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하지만, 물 위에서 볼 때에는 기초가 얼마나 튼튼하게 놓여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고, 그래서 답답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밑작업이 신속히 진행되고 있는데도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빨리 다리가 지어져야 되겠는데, 왜 이렇게 공사가 더디냐?”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공사가 더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의 눈에는 물 밑에서의 기초 작업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럴 뿐이지, 물밑작업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밑작업을 알지 못하고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계획은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단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치 하나님의 계획이 없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고, 나를 버린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 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물밑작업이 너무 오랫동안 이뤄지고 있어서 낙심하고 포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되기까지는 8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80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튼튼한 기초작업을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나도 더디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그때에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 튼튼한 다리를 건설하시기 위해서,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더욱 치밀하고 세밀한 기초공사를 계속해서 해나가고 계심을 믿고, 그 믿음 가운데서 기대하며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비록 우리 눈에 안 보인다 할지라도, 비록 더디다 할지라도, 분명히 지금도 이뤄져 가고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에게 신실하게 시행되고 있음을 믿는 믿음이 먼저,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이와 함께 우리가 또한 붙들어야 할 진리는 우리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훨씬 나음을 우리는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이 갈대 상자에 아기를 담아서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었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바라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좋은 계획이 있고, 그들이 갖고 있는 계획이 하나님의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들 손으로 아기를 키워보려고, 동굴에 숨긴다거나 여자로 위장해서 살아가게 하는 것과 같은 온갖 인간적인 방법들을 동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인간적인 방법을 써봐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일, 즉, 품삯을 받으면서 친어머니의 손에서 다시 길러지고 왕실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세계 최강대국의 왕자로 살아가는 것과 같은 놀라운 결과는 결코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우리의 계획을 수정하고, 우리의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에 편승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가족 계획은 반드시 딸을 낳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찬이가 태어났습니다. 약간 실망이 되기는 했지만, 기회는 또 남아 있기 때문에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둘째는 꼭 딸이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병훈이가 태어났습니다. 병훈이를 키우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아기를 키우는 집에 들어가 보면, 아기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달콤한 아기 냄새가 나는데, 어느 날 병훈이 냄새를 맡아봤습니다. 그런데, 아기 냄새가 아니라, 총각 냄새가 났습니다. 시큼털털한 홀아비 냄새 비슷한 냄새가 나는 걸 맡으면서,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냄새 나는 아들들하고 살게 됐을까" 좀 서글펐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계획이 제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낙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저희 가정에 아들만 주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음을 제가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주신 두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고, 어떤 계획을 지금도 이루어가고 계신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하나님의 뜻하심이 계심을 저는 신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 알아차린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부요케 하시려는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딸을 주셨다면 그냥 화목한 가정이 되었겠지만, 두 아들을 통해서 우리 가정을 삼부자 가정으로 만들어 주셔서 우리 가정을 부유층으로 만드셔서 들어 쓰시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병찬이가 커서 호텔 사장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늙어서 시골에서 한 번 올라오게 되면 호텔 방 하나 내달라고 해서 거기에서 지내다 갈 수도 있고,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들어오시면 오갈 데 없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런 분들에게 제가 장병찬 사장에게 전화해서 객실 하나 쯤은 쉽게 제공해 드리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호텔 사장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르기는 해도 호텔 사장보다도 더 좋은 계획이 있으실 것으로 믿기 때문에, 이것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 좋음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계획을 갖고 계시되, 그 계획은 불완전하거나 실패함 없이 하나님의 지혜로 계획하시고 이루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의 모든 계획들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 아래 우리의 인생이 진행되어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통해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진리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적과 기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하나님은 그 전능하심으로 얼마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면서 그들을 구원해 내실 수 있었습니다. 굳이, 모세가 아니더라도, 바로왕에게 직접적으로 나타나셔서 내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면서 재앙을 내리시거나, 애굽이 완전히 멸망당하게 하거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충분히 구원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은 그렇게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쉽고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 방법을 선호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전능하심으로 알아서 모든 일을 다 해주실 수 있으시지만, 하나님은 홀로 행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먼저, 모세의 부모들을 통해서 이루어져 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기가 건짐을 받은 것도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시기보다 바로의 딸을 통해서 이뤄지게 하셨습니다. 미리암을 사용하셔서 모세가 친어머니 품에서 양육 받게 하신 것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구원 계획도 어떻게 펼쳐졌습니까? 하나님의 권능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의 구원도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님이 나게 하심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은 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까? 일하시는 방식을 바꾸십시오. 기적을 보여주신다면 더 빠르고 효과적일텐데, 왜 느리고 미약한 사람을 통해서만 자꾸 일하려고 하십니까?”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임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쓰시는 좋은 도구가 되도록 우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어떤 신비로운 일, 놀라운 표적과 기사, 어떤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모세였던 것과 같이,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계획, 모세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계획, 모세입니다. 물에서 건짐 받았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는 자가 되었던 것처럼, 죄에서 건짐을 받은 우리 역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해 내는 모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인 우리들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지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지금도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쉬임 없이 진행되어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원하기는, 신실한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계획인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나가도록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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