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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은혜의 하나님 (벧전 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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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은혜의 하나님 (벧전 5:10~14)


오래전 워싱턴 D.C.의 어느 신문에 한 여인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레티 그랜트라는 이 여인은 전신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었습니다. 자살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린 딸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좌절하며 살던 그녀는 자신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발가락 한 개를 가지고, 전화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전화국의 교환수로 취직시켜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16년간을 교환수로 일했습니다. 딸을 대학에 보내고, 그녀는 은퇴를 했습니다. 은퇴석상에서 그녀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나의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 이렇게 마지막 고백을 했습니다. 남들이 볼 때, 원망할 수밖에 없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여인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이 말은 은혜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간증입니다. 

미국의 뉴욕재활병원과 한국의 실로암 안과 병원의 벽에는 어느 환자의 기도문 붙어 있습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겸손함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더니,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 소원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삶이었지만 미처 표현 못 한 기도까지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간증입니까!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면 이런 간증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커서 우리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다만, 깨달은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기쁨이 더해집니다. 깨달은 만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 이라고 간증을 하면서 ‘이 은혜에 굳게 서라.’고 말합니다. 은혜라고 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은혜는 언제나 율법의 반대말이고, 공로의 반대말 입니다. 우리의 의로, 우리의 선함으로, 우리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그런 생활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이고, 사랑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주시는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율법적인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만난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은혜의 하나님으로,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 고백하는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인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들을 부르사』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불러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주신 것처럼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잘 난 것도 없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쓸모도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다음 본문에 보면,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을 뿐 아니라,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악 가운데서 우리를 불러주셨고, 현재는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시고, 미래에는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신 영원한 영광의 세계에 우리도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함께 천국을 상속받을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영광을 우리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고난은 예수님이 들어가신 그 영광의 세계에 우리도 들어가기 위해서 받아야 하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잠시뿐이고 그 영광은 너무나도 크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잠시 고난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잠깐 고난받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우리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난은 모두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찾아 온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렇게 허락하실 때에는 계획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알고, 고난이 오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그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엎드려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또 터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참으로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이 왔을 때 태도를 바르게 가지기만 한다면 그 고난은 큰 축복이 됩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됩니다. 

1. 고난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줍니다. 

베드로전서 4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의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정욕대로 남은 여생을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이 오면 하나님 앞에 정신을 차리고 엎드려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다보면 큰 은혜를 받게 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면, 죄 가운데 살던 사람들도 회개하고, 죄를 떠나서 거룩하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자꾸만 시험 들게 하고,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욕심입니다. 이 욕심 때문에 시험 들고,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욕심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환난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지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 순간이 순교의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전도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에게 세상의 욕심은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거룩하게 충성하며 삽니다. 다윗 왕이 거룩하게 살 수 있게 된 것도 큰 고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깨어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다 보니, 은혜를 받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2.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해줍니다.

사람은 남보다 잘되면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 남보다 출세를 먼저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아 보이려고 교만해집니다. 심지어는 남보다 은혜를 많이 받으신 분도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서 살 때 항상 조심해야 되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해지기만 하면, 받은 은혜를 다 쏟아버리게 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받은 계시가 너무 많아 자만할까봐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9절을 보면,『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 사람이 자신이 있고 큰소리치고, 잘난 척할 때는 그 사람이 굉장히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 난 것 같고, 잘 한 것 같고 능력이 있는 것 같아도 이런 사람들이 쉽게 넘어집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 더 강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아는 사람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버리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사도 바울이 은혜를 많이 받았어도 교만해지면 끝이기에,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기를 ‘네가 자만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시를 주었다 네가 약할 때 강하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겸손을 위해서 고난을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C.S. 루이스라는 유명한 신학자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왜 인간에게 고난이 있어야 합니까?”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루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타락한 인간이 고난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교만하겠는가?” 이런 말을 하면서 인간은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관이 있다. “고통은 귀머거리와 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는 확성기와 같다.” 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타락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고난마저 없다고 하면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더 죄를 범하고 더 교만하게 될까요? 하나님을 생각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고난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나옵니다.

3.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만들어줍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 수 있게 해주십니다. 평안할 때는 믿음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평안할 때는 현상유지도 힘듭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게 되고, 목숨을 걸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다가 보면 성령의 불을 받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큰 은혜를 받아서 믿음이 자라게 되고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온전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삽니다. 따라서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고난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면서 사는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에는 너무 가난하고 고생을 많이 하니까 죽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너무 괴롭고, 답답했고, 왜 하나님이 나를 점점 더 어렵게 하실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마 하나님께 원망은 못하고,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저는 하루에 적어도 세 번 이상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보니깐 항상 그 기도하는 생활이 나도 모르게 거룩한 삶을 흉내라도 내게 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많이 당하게 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더 큰 은혜를 받아, 믿음이 더 쑥쑥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당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 그 고생을 안 했더라면 얼마나 죄를 많이 범했을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난이 내 평생에 축복을 받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기도하다 은혜 받으니, 평생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면서 살고 싶은 그런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 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보다, 이 세상에서 잘 살기만을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런 사람은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천국만큼 잘 살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죄를 범하며 잘 살기보다는 빨리 천국으로 가는 게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불러 가시지 않고 오늘도 살게 하신 줄 아십니까? 

첫째로는 회개하게 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거룩해지고 나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세상사는 일에만 정신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회개하라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상 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 목숨을 연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가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천국에 가서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칭찬받아, 면류관을 써야 합니다. 사도들도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고난을 받게 되면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가 다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받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때 받은 고난은 잠시뿐이지만 천국 가서 받은 영광은 크고 영원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 아는 사람들은 어떤 고난이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원망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 고난을 통해 받을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며 감사하면서 더욱 충성하게 될 것입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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