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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 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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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 6:19~24)


마태복음 강해 설교 중 그 동안 주기도 강해에 설교에 이어서 산상보훈 강해 설교를 계속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물질관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돈과 물질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부자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에 대해서 두 가지로 잘못된 생각을 갖기가 쉽습니다. 하나는 물질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의존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을 혐오하고 죄악시 하는 경향인데, 이러한 물질관은 다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우리에게 배금주의 사상을 경계할 것을 가르칩니다. 돈과 물질이 인생의 가치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배금주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배격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물질 경시주의도 경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물질은 악한 것이다. 혹은 더러운 것이다 하면서 물질 죄악론을 주장해서도 안 됩니다. 초대 교회 시절 영지주의라는 이단들이 그러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물질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우리의 선교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에 대한 이 두 가지 잘못된 견해를 다 배격하면서, 올바른 성경적 물질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19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물이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모든 것 곧 재물을 뜻합니다. 왜 주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십니까?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좀과 동록이 무엇입니까? 좀은 의복을 망치는 균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복도 좀이 먹으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잃습니다. 동록은 금붙이를 부식시켜 가치를 손상시키고 산화를 일으켜 변질시킵니다. 

그러니까 보물을 땅에 쌓아 두면 좀과 동록이 해한다는 말씀은, 곧 땅에 쌓아 둔 재물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재물은 질병이나 화재 또는 사업의 실패 등으로 좀과 동록처럼 슬그머니 혹은 갑자기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땅에 쌓아 둔 보물은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도둑질 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저희 가정도 몇 차례 도둑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광주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에 한 번, 광동 교회에서 한 번,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한 번, 모두 세 차례 도둑을 맞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두 번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을 때 한 동안 얼마나 마음이 쓰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때 제가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도둑질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도 도둑을 맞아 보아야 한다. 그래야 도둑맞은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테니까...” 

땅에 쌓아 둔 재물은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한다는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전한 곳에 투자를 했어도 불황이 겹쳐 인플레가 계속되면 돈 가치가 떨어지고, 가만히 않아서 돈은 좀에게 먹히는 것처럼 되고, 안심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큰 돈을 굴린다고 맡겨놨다가 떼이는 일도 허다합니다. 죽도록 모아서 은행에 넣어놨다가 찾아 나오는 순간에 날치기를 당하는 사건도 가끔 일어납니다. 

잘 알려진 실화입니다. 1923년 세계에서 제일 성공한 재벌가들이 미국 시카고의 에지워터 비치 호텔에 모여서 회합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당시의 대부호들로서, 세계 최대의 강철 회사 사장 촬스 샵, 세계 최대의 전기회사 사장, 사무엘 인설, 세계 최대의 가스 회사 사장, 하워드 홉슨, 밀 회사 사장 리차드 휘프니, 내무 장관 엘버트 폴, 맥주회사 사장, 제스 리브모어, 세계 최대의 전매회사 사장, 이반 크레브거, 국제은행장 제온 프레이저 이상 아홉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5년 후 어떤 사람이 그 부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조사해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강철회사 사장 찰스 샵은 파산하고 5년 동안 남의 빚을 지고 살다가 죽었고, 전기회사 사장 사무엘 인설은 재산을 모두 상실하고 국외로 도망을 가서 객사를 하였고, 가스회사 사장 하워드 홉슨은 정신병자가 되었고, 밀 회사 사장 아더커튼은 파산하였고, 증권회사 사장 리차드 휘프니는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후에 죽었고, 내무장관 엘버트 폴은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사면된 후 무직으로 있다가 죽었고, 맥주회사 사장 제스 리브모어는 자살을 하였고, 전매회사 사장 이반 크레브거는 불의의 객사 죽음을 하였고, 국제은행장 레온 프레이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주님은 이렇듯 땅에 쌓아 둔 재물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한다는 우리의 상식에 호소하면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보물을 땅에 쌓아 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너희를 위하여’란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보물을 땅에 쌓아 둔다는 것은 자기의 욕심만을 위하여 지나치게 움켜쥐고 있는 행위를 말합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을 너무 움켜쥐고 있다가 돈과 함께 패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 5:13에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나중에는 생명까지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움켜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땅에 쌓는다는 또 하나의 의미는 잘못된 목적을 위해서 돈을 낭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돈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지 않고 자신을 위한다고 잘못 쓰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우리 중에 이런 분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움켜쥐고 내어놓지 않는 사람, 또 잘못된 목적을 위해서 계속 돈을 쓰는 사람, 이 모두가 보물을 땅에 쌓는 일이며 따라서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20절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늘나라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습니다. 안전하다고 하는 은행도 강도들에게 털릴 때가 많고, 은행도 부도를 내고 마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하늘 은행만은 우리의 보물을 영구히 보전해 줍니다. 어떤 도둑도 구멍을 뚫지 못하고, 마귀까지도 결코 침입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환난이나 재앙들과도 전혀 무관하게 그 가치가 보전됩니다. 아울러 큰 이자가 붙어서 되돌아옵니다. 증가하고 증식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하늘에서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 분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십시오.

그러면 보물을 하늘에 쌓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헌금과 구제하는 일입니다.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인하여 얻은 재물과 보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에 선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선교와 전도 곧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드리는 헌금, 구제로 쓰는 물질, 선한 일에 쓰는 물질 등입니다. 

사도 바울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방법에 대해서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쓰여 진 재물 즉 헌금, 구제, 선한 사업에 쓰여 진 것들은 모두가 하늘에 쌓이는 보물들이 되는 것입니다. 

반 다이크라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이 부자가 꿈에 천국에 갔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집으로 안내하는 천사에게 “도대체 이 집이 누구 집이요?”라고 물었습니다. 안내하던 천사가 “그 집은 당신이 거느리고 있었던 당신의 정원사 집이오.”라고 했습니다. 반 다이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천국에서 이런 집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라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에는 실수가 없습니다. 천국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그가 보낸 재료로 이 집을 지었습니다.” 반대로 부자가 꿈에서 보았던 그의 집은 무척이나 낡고 허술한 집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과 관련하여 이 이야기에서 취할 것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항상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은,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동안 머물다 갈 체류자요 나그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같고 나그네 인생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 또한 분명합니다. 그리고 죽음 저 너머까지 재물을 가지고 갈 수도 없음이 분명합니다. 욥 1:21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고 했고, 딤전 6:7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가 죽을 때 두 손을 관 밖으로 내놓도록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가 비록 한 대 대제국을 건설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이었지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쳐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 속담에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는 격언이 있다고 합니다.

보물을 땅에 쌓을 때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는 위험도 있지만, 땅에 보물을 쌓을 때에 또한 커다란 영적 위험이 있습니다. 그 위험이 무엇일까요?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소매치기들의 수법 중에 한 가지는 시장이나 버스 안 같은 데서 먼저 돈을 잃어버렸다고 법석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 돈은 괜찮은가 하고 모두들 돈을 간직한 곳을 만져 보게 되고, 그것을 눈 여겨 보았다가 소매치기 한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텐데 누구나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1억을 투자한 사업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 거기에 가 있게 됩니다. 바늘이 자석에 이끌리듯,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듯이 인간의 마음은 보물이 있는 곳에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십자가 전쟁 때 있었던 비화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귀족이 금을 가득 채운 상자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 자기의 금 상자를 일부러 적진에 몰래 보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자기의 금 상자를 다시 찾기 위하여 용감하게 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은 그 마음도 땅에 있기 마련입니다. 물질의 세속성 물질의 힘은 굉장합니다. 마침내는 물질이 그 사람을 지배해 버립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니라”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성경은 결코 돈이나 물질 그 자체를 정죄한 것이 아니라, 돈에 지배를 당하고 돈을 사랑하기까지 하는 물질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그들의 인생이 실패하는 비극을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대한 탐욕으로 시작된 하와의 역사는 그대로 탐욕에 가득 찬 인간의 역사였습니다. 외투 한 벌과 금덩이에 눈이 어두워진 아간의 비극을 생각해보십시오. 솔로몬의 탐욕은 말할 수 없는 영광의 시대를 구사하던 솔로몬 왕국을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불의한 뇌물을 받았던 게하시는 문둥병에 걸리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을 극복하지 못한 부자 청년은 영생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등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대한 탐심을 극복하지 못하여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기고 창자가 터져 나오는 자살로 생을 마쳤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 하다가 부부가 하루 동안에 함께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모두가 땅에 보물을 쌓아 두려고 했고, 그래서 그 마음이 땅에 있었던 사람들의 비극적인 종말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 두는 사람은 그 마음도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나라에 있다면 당연히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을 것입니다. 

그 다음 22, 23절에 보면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눈은 온 몸에 큰 영향을 줍니다. 본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경험 중에 가장 중요한 경험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눈을 ‘아인’이라고 합니다. 이 ‘아인’이라고 하는 말은 ‘샘’이요 ‘원천’이라고 하는 뜻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본다고 하는 것이 우리 생각과 우리의 모든 경험, 또는 지혜의 샘이요 지혜의 원천이 된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얼마나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일생을 결정하는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눈은 몸의 등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이 밝아야 합니다. 눈이 어두우면 그 생활 전부가 얼마나 어둡겠습니까? 눈이 밝아야 밝히 보고 밝게 깨닫고 밝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이 밝지 못한 나쁜 눈이 있습니다. 수정체가 맑지 못한 눈은 불투명하게 흐릿하게 안개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왜 눈이 흐려졌습니까? 백내장이나 녹내장처럼 무엇인가 씌우고 가리어져서 사물을 밝히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안 또는 심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눈이 나쁜 눈이란 편견과 정욕, 물질의 영향을 받는 눈을 말합니다. 우리가 땅에 보물을 쌓아 두면 우리의 감성과 지성과 의지가 지배를 받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관계까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자는 그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롯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며 그 많은 기적을 보았고, 그 많은 귀한 말씀을 다 들었지만, 어찌하여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겼습니까?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 많은 말씀을 듣고도, 그 많은 이적을 보고도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오직 그의 눈에는 돈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팔면 은 30이 될 것이라고, 예수를 은 30짜리 인물로 보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토록 영안이 어두웠습니다. 이처럼 돈에 눈먼 사람은 보이는 것도 없고, 깨닫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탐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 재물을 이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심지어 제직이라고 하면서도 온전한 십일조 생활 하나 실천하지 못하고 이 땅에다 보물을 쌓는 사람, 이 사람의 영적인 어두움이 얼마나 심한지 아시겠습니까? 왕하 17:24-41에 보면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끌어다가 이주시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어 몇 사람을 죽이시게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을 보내어 여호와를 섬기는 법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섬겼는데,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무지한 일이고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고 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재물은 맘몬 신입니다. 

현대의 가장 강력한 우상이 바로 이 맘몬 신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과 물질 앞에 신앙과 양심과 정조를 팔고 있습니까? 맘몬이란 신뢰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맘몬 신 곧 맘몬 종교의 신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돈벌기에 바빠서 예수 믿지 못하는 사람들,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들, 그들은 무종교인이 아니라 맘몬 종교에 속하며 맘몬 신 곧 돈 신을 믿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보물을 이 땅에 쌓아 두는 신자 역시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웨슬레는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헌금과 정비례합니다. 다시 말해 마음과 재물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믿음이 좋아 보여도 헌금 생활이 바로 되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인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內村鑑三은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은 살 수 없으며, 장식품은 살 수 있으나 아름다움은 살 수 없으며, 약은 살 수 있으나 건강은 살 수 없으며, 책은 살 수 있으나 두뇌는 살 수 없으며,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입맛은 살 수 없으며, 유홍은 살 수 있으나 행복은 살 수 없으며, 십자가는 살 수 있으나 구세주는 불가능하며, 교회는 지을 수 있으나 하늘나라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서 14년 동안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본문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다음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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