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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전 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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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전 4:8~12)


하나의 힘과 하나의 힘을 합하면 둘의 힘이 됩니다. 그러나 협동의 원리는 이러한 과학적 수의 개념을 초월합니다. 예컨대 한 사람의 두뇌보다 두 사람의 두뇌를 합치면 필요한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세네카(Seneca)는 말하기를 "우리는 개체로서 적합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전체에 알맞게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낫다고 하는 지혜의 교훈입니다. 

Ⅰ. 한 사람은 고독한 이기주의 입니다. 

본문 4장 7-8절에 『 내가 또 돌이켜 해 아래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 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 』라고 했습니다. 
개인화는 필요합니다. 개개인이 각자의 분야에서 발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야 개인의 역량이 극대화되어서 전체에 이바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개인주의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가 되기 때문에 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이 말씀은 아들이나 형제가 없는 고독한 자가 느끼는 인생의 허무함을 언급한 것입니다. 고독한 자가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일하며 그가 얻은 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고독한 자가 부를 축적하면서도 그 심령에 낙을 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참 기쁨을 누리는 길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기쁨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 이기주의는 결국 자기 자신을 삶의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본문 4장 8절에 『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 외에 돌 볼 사람을 가지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는 친척이나 친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협박하고 공갈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고는 끝이 없이 하루해가 부족할 정도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수고하고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자식을 양육하는데 말할 수 없는 수고가 따릅니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무한정 대접만 받으며 대접하는 것을 모르고 자랍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왕자병, 공주병에 걸립니다. 

아이들 뒷바라지에 부모들이 허리가 휘도록 수고하지만 자식의 눈에는 부모가 자식을 위한 시종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본문은 또 말하기를 『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한다 』고 했습니다. 그는 탐욕 때문에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오직 부에 부를 더하는 것으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참으로 헛된 것을 갈망하고 있는 자가 분명합니다. 에머슨은 말하기를 "세속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는 자도, 정신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는 자도 모두 평안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께 봉사를 위하여 사는 자만이 정히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탐욕은 끝이 없고 그의 개인주의적 이기심은 인색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본문은 또 말하기를 『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는고 』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목적의식도 없습니다. 그냥 그의 삶 자체가 목적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허무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사업을 위해 수고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는 고상한 공격 목표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수고하느냐고 자신에게 묻고 있는 사람입니다. 

2) 이기주의는 항상 자기 자신의 삶에 불만투성입니다. 
본문 4장 8절에 『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심령이 즐겁지 못하고 피곤하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이기주의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의 이기주의자들에게는 영혼의 깊은 교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배를 위하는 자에게는 영적인 기쁨이나 영적인 행복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했습니다(빌 3:18). 
빌립보서 3장 19절에 『 저희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본문은 한 사람 자기만의 홀로의 삶, 즉 이기주의적 삶이 얼마나 허무한 유희적 삶인가를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학교 가는 아이에게 미국 부모는 "정직하라"고 말해주고 일본 부모는 "배려하라"고 말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는 "지지 말라"고 다그친다고 합니다.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홉스는 "무엇보다 자기보존(Self- preservation)이야 말로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근본권리에 속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생(human life)을 "하나의 경주(race)"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경주에서 오직 최고가 되려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이나 목표를 생각할 수 없다."고 잘라서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탈취해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에 공격적 개인주의(aggressive individualism)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가렛 하딘(Garrett Hadin)이나 일리노 오스트럼(Elinur Ostrom)같은 학자들도 "공유의 비극"이란 표현을 했습니다. 
데이비드 흄은 그의 '인간 본성론'에서 "내 손가락의 상처보다 전 세계의 파멸을 더 선호하는 것은 이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악의에 찬 말을 했습니다. 
언제쯤 영업용 택시가 자가용 승용차처럼 청결해지고 또 언제 자가용 승용차가 영업용 택시처럼 그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자유로워질까 생각해 봅니다. 


Ⅱ. 두 사람은 한 사람보다 더 이상적입니다. 

1) 두 사람은 사랑의 이상체입니다. 
마태복음 19장 5-6절에 『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2) 두 사람은 합심(合心)의 이상체입니다. 
아모스 3장 3절에 『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라고 했습니다. 

3) 두 사람은 안전안정의 이상체입니다. 
본문 4장 10절에 『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나그네 생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곤란 가운데서도 진정한 친구가 있는 자는 행복합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살려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4) 두 사람은 상호 작용의 이상체입니다. 
본문 4장 11절에 『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도울 수 있습니다. 따뜻한 온정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썬다싱(1889-1929)은 전도 여행 중 히말라야 산을 경유하게 되었습니다. 폭설이 내리는 일기 속에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썬다싱은 동사 상태에 있는 그 사람을 등에 업고 힘을 다해 산을 넘었습니다. 눈보라치는 추운 산길을 다 통과할 때 썬다싱의 몸에서 땀이 나고 그로 인해 등에 업힌 사람은 살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에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여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들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15장 1절에 『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화합과 단결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세계 도처에 한국 사람들이 흩어져서 모두들 잘 살고는 있지만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상부상조하는 일은 다른 민족에게 뒤떨어집니다. 

5) 두 사람은 증인의 이상체입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에 『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라고 했습니다. 

6) 두 사람은 기도의 이상체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 『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7) 두 사람은 좋은 상을 얻는 이상체입니다. 
본문 4장 9절에 『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고 했습니다. 

두 사람의 협력이 유익함을 얻는다는 말은 곧 상급입니다. 결혼의 유익성입니다(창 2:18-24). 그리고 전도의 목적으로 그의 제자들을 둘씩 둘씩 파송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협력은 가나안 정복의 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합심하여 하나가 되었을 때 사멸의 위기에 처한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낼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합심하여 함께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이때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린 일이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협력이 바울의 선교사역에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8) 두 사람은 교회 설립의 기본 수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9) 두 사람은 승리의 이상체입니다. 
본문 4장 12절에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홀로 있을 때 패하지만 결속된 힘은 패하지 아니하고 승리한다는 말입니다. 기드온은 부하 부라를 데리고 미디안 적진에 깊숙이 들어가 보리떡에 관한 꿈 이야기를 듣고 힘을 얻어 미디안 대군을 쳐서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삿 7:11). 
모세도 독불장군은 아니었습니다. 아론과 훌이 도와주었을 때 아말렉 군대를 능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한다고 하는 말은 단결된 힘의 온전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우애하고 주 안에서 용서하고 겸손과 온유로 하며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라고 했습니다(엡 4:2). 
에베소서 4장 3절에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고 했습니다. 


Ⅲ.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 한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ㄴ다. 
로마서 6장 3-8절에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그리스도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4). 
빌립보서 4장 13절에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 했습니다. 예수 떠난 인생은 생명이 없는 죽은 몸입니다.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됩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우리는 사는 법이 없다고 한 노래 가사는 체험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인생들이 사는 방법을 알고 잔꾀를 부리지만 똑똑하고 잘났다고 하는 현대인들의 사는 방법이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생들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살인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인생들이 자신의 건강과 장수와 노후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 지구촌을 떠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는 못 사는 인생입니다. 그 어딘가에 의존해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을 때 다시 화목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예수는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일을 성취시켰습니다. 그 약속 성취는 처음보다 더 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립시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할 때만이 우리는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 때 고독하지 아니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벌레처럼 살지 아니합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고"라는 삶의 허무를 토하지도 아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 때 넘어져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모든 것에 만족하도록 하십니다. 대적들과 싸워 승리하게 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나는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신앙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낮이나 그 어디에서나 능력이신 예수님과 둘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요한복음 13장 1절에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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