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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대하 1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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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대하 13:1~22)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國歌)는 '애국가(愛國歌)'입니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국가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제목부터가 '나라 사랑의 노래'라고 되어 있는 경우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애국가'의 가사 중에서 제게 특히 감동스러운 부분은 바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인데, 저는 초등학교 조회시간 때부터 이 구절의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이라고 바꾸어서 불렀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제게 제일 처음에 가르쳐 주셨던 분이 부모님이었는지 아니면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튼 기독신자는 우리나라를 보우해 주시는 신이 애매모호한 범신론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참 유일신 '하나님'신 것을 알아야 한다고 분명해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오직 하나님께서 '보우(保佑)' 즉 '지키고 도와주심'으로써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만세'에 이르기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애국가'는 해방 직후에 한때 북한에서도 같이 불리고 있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국가로 쓰이게 되자 북한에서는 제목만 같고 가사와 곡조는 전혀 다른 그들만의 새로운 '애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국제대회의 수상식 등에서 연주되고 있는 북한의 공식 국가인데, 실제로 북한의 국내행사에서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나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국가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분단 이후에 남북한 사이에서 정말 달라진 것은 단지 '애국가'라는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우해 주신 나라'와 '어버이 수령님과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우상화 시킨 나라'의 차이점입니다. 
그간 우리 대한민국은 경제순위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자유민주국가로 초고속 성장을 해 온 반면에 북한은 'GNP 추정'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가운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 상태에 허덕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공산독재국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60여 년의 역사를 가졌고 똑같은 한민족과 한반도를 반씩 나누어 가진 두 나라치고는 너무나도 큰 차이점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솔로몬 사후에 '남조 유다'와 '북조 이스라엘'로 나뉜 후에도 바로 그와 같은 차이점이 나타났었습니다.
본문 1절부터 3절에 보면, 남조 유다의 두 번째 왕 아비야와 북조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사십 만", 이스라엘은 "팔십 만"의 병력으로 대진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피차 국운을 건 총력전이었는데, 실제로는 병력의 숫자나 지휘 능력을 두고 비교해 볼 때 남조 유다가 절대적인 열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유다 왕 아비야는 오히려 이스라엘 군 앞에서 큰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바로 12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아무리 북조 이스라엘이 군사력은 강할지라도 하나님만 분명히 남조 유다의 편이 되어 주시면 그 전쟁은 틀림없이 자기네들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곧 '6.25전쟁' 59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오늘 주일에 왜 하나님께서는 저 무신론의 공산독재자가 다스리는 북한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보우'해 주셨으며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인지 그 이유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정통 신앙'을 지키고 있는 나라와 함께 해 주십니다. 

4절부터 8절 상반절까지의 말씀에 "4아비야가 에브라임 산 중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가로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아 다 들으라 5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윗과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6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그 주를 배반하고 7난봉과 비류가 모여 좇으므로 스스로 강하게 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나 그 때에 르호보암이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능히 막지 못하였었느니라 8a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알 도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유다 왕 아비야는 산꼭대기에 서서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과 그 군사들에게 큰 소리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무근의 선전전이 아니라 오로지 진실에 근거한 자신감 있는 선포였습니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비교해 볼 때, 그 첫 걸음에서부터 전혀 상대가 될 수 없는 현격한 격차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유다는 어디까지나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이은 나라이고 이스라엘은 그 정통 왕조에 대하여 반역한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라는 점이었습니다.

유다가 정통 왕조를 잇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소금 언약"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이 '소금 언약'이란 말은 '결코 변할 수 없는 확고부동의 언약'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통일되어 있던 이스라엘 나라를 오직 "다윗과 그 자손"으로 이어지는 정통 왕조에 주셨으며 그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결코 바뀌거나 변할 수 없는 소금과도 같은 언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다윗의 "손으로 다스리는" 유다는 바로 "여호와의 나라",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라'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바로 이 정통 왕조를 반역하여 일어나서 나라를 쪼개고 북조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한마디로 유다는 합법적인 나라였고 이스라엘은 불법적으로 세워진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나라 백성이 그저 남북으로만 나뉘어졌으니 그 성격도 어차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로 크나큰 오산이요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대한민국과 북한 역시 그 건국 때부터 그런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8.15 해방 이후에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각각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부터 이미 세계의 패권을 두고 대립하고 있던 두 강대국이 우리나라를 분할 통치하게 된 자체가 이미 비극의 시작이었지만, 그래도 남북한이 합법적으로 단일국가로 시작할 기회는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신탁통치를 포기하고 우리나라의 문제를 유엔에 넘기자 유엔에서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의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유엔의 선거감시단의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남한만 총선거를 실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남북한을 나눈 것이 결코 아니라 북한 쪽에서 유엔의 감독 하의 공정한 총선거를 거부한 것이 바로 한민족을 둘로 나눈 원인이 된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대한민국은 비록 군사독재 시대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되어서 오늘에 이르렀으며, 그 결과 기독교가 이렇게 급속도로 부흥한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로 출발한 북한은 김일성 우상화와 김정일 세습으로 이어지는 공산독재국가가 되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전 국제사회로부터 지탄받는 테러국이며 가장 우호적이었던 중국으로부터도 눈총을 받는 문제의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특히 인권과 종교 탄압에 있어서는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최악의 국가인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모든 '종교 활동'이 '반체제 운동'과 똑같이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처럼 남북한은 정부수립의 정통성에서부터 크게 달랐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정통 기독교 신앙'을 자유롭게 믿고 전파할 수 있는 나라가, 북한은 참된 기독신자들은 투옥과 순교를 당하는 가운데 지하교회로 숨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어느 쪽과 함께 해 주실지는 너무나도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이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된 것, 그래서 우리가 이처럼 참된 기독교 신앙을 지키게 된 것, 또한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지금까지도 보우해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반드시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는 '참된 제사장'들이 섬기고 있는 나라와 함께 해 주십니다. 

8절 하반절 이하 10절까지에 기록하기를 "8b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도다 9너희가 아론 자손 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10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이 수종을 들어"라고 했습니다. 

유다 왕 아비야는 남북 간의 또 하나의 중대한 차이를 이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큰 무리요"라고 그가 인정하고 있는 대로 북조 이스라엘이 숫적으로 큰 병력을 보유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대군을 무력하게 할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북조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섬기는 '우상 제사장'들을 세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북조의 여로보암 왕은 자기의 백성들이 남조 유다의 '여호와 신앙'에 끌려가지 못하도록 금송아지 우상종교를 만들고서는 거기에 필요한 '어용 종교인'들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북조 이스라엘은 "아론 자손 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 즉 '진짜 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자들을 다 축출하고 그 대신에 레위인 아닌 사람 중에서 마음대로 제사장을 뽑았습니다.
바로 본문에서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 즉 그 금송아지를 섬기는 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북조 이스라엘 제사장들에게는 우선 바른 신앙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장들 자신부터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제사장직에 대한 사명감이나 성별 의식(意識)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제사장이란 세상의 사업을 팔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매가 가능한 '한 자리'였을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색이 당신의 제사장이라는 자들이 그토록 배교하고 타락해 있는 나라와 함께 해 주실 리가 만무하지 않았겠습니까?

반면에 유다는 바로 이 점에 있어서도 북조 이스라엘과 확실히 구별되는 영적 우위에 있었습니다.
유다는 오직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을 "아론의 자손들" 중에서 세웠으며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그 제사장들을 수종들도록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바로 믿는 확실한 신앙'이 있어야 했고 또 '아론의 자손'이라는 자격에 부합되는 자만이 남조 유다에서는 제사장으로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남조 유다로서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했다"는 증거 중에 하나였습니다. 

지금 북한에서도 소위 국가에서 인정해 준다는 기독교가 있기는 있습니다.
바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약칭 '조그련')이라는 단체로서 1946년에 강량욱 목사의 주도하에 창립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순전히 공산당의 어용기관일 뿐이라는 것은 그 내부 조직의 부서 명칭이 '전도부' 대신에 '선전부' 따위로 되어 있는 것이라든지 '헌금' 대신에 '맹비'로 운영되고 있는 것 등만 보아서도 정말 눈 뜬 사람이라면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조그련' 산하의 교회라는 것이 전 북한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이 두 곳밖에 없는데, 전자는 북한에도 교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선전용'으로 지은 것이고 후자는 김일성의 어머니가 다녔던 교회라고 해서 그녀의 '기념관'을 겸해서 지은 것입니다.

더구나 그런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한다고 하는 목사들이란 그저 '공산주의 전도자'요 '김일성과 김정일 숭배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이는 교인들도 사실상 '단체로 동원된'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봉수교회의 찬양대원 중에 하나가 "이 정도의 노래는 (처음 불러도) 한번만 척 보면 다 부를 수 있어요."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것이라든지, 헌금 시간에 다들 헌금주머니에 빈주먹만 넣었다 빼는 시늉을 하는 것이라든지, 예배가 끝나면 모든 교인들이 한 차를 타고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 등, 소위 '남북한의 기독교 교류'를 한답시고 봉수교회에 다녀온 것을 자랑하는 남한의 목사들 스스로가 목도했던 사실만 보아도 명백한 것입니다.
정말이지 김일성이 만들어 놓은 북한의 기독교라는 것은 북조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순전히 자기 정권 유지를 위해 만들었던 금송아지 종교의 어용 제사장 제도와 비교해 볼 때에 그 목적은 너무나도 똑같고 그 방법은 오히려 훨씬 더 발달(?)되어 있다고 해도 조금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면에 우리 대한민국은 죽음까지도 불사하면서 그 공산주의의 침략에 맞섰던 수많은 순교자 목사님들의 피로 물들여진 나라입니다.
실로 '여호와만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는 참된 신앙과 '그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한' 진실한 행위를 지켰던 '진짜 제사장'들이 6.25라는 엄청난 국난을 통과하는 중에도 끝내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래에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목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무신론 독재자에게 아부하면서 그의 하수인 노릇하는 '꼭두각시 제사장'들이 있는 나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신앙의 진리를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고 그 받은 직분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세로 섬기는 참된 목사들이 계속 일어나게 됨으로써 이 조국이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축복을 계속 누리는 나라가 수 있도록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말씀 중심의 교회'들이 세워져 있는 나라와 함께 해 주십니다. 

11절과 12절에 "11조석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 등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 12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 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치 못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건국의 정통성과 제사장의 자질에 있어서의 극단적인 차이를 거치면서 쪼개어지기 시작한 남북의 영적 균열은 이제 여기에 와서는 완전히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남조 유다는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는" 나라로 남은 반면에 북조 이스라엘은 "그를 배반한"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조 유다는 그 무엇보다도 공적 예배생활을 그 명하신 율법 그대로 순종하여 따르고 있었습니다.
조석의 번제, 분향, 진설병을 차리는 것, 금등대의 등불을 켜는 것 등, '성전 중심의 예배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을 계속 지켰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이 전쟁에 나올 때에도 "그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 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었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민수기 10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 즉 전쟁터에 나갈 때 제사장들이 은나팔을 불도록 하라는 규례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비정통 왕조를 따르고 거짓 제사장들을 세웠던 북조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그처럼 말씀에 따른 예배생활을 떠난 지는 이미 오래였으며, 따라서 전쟁출정 같은 기타 생활에서 말씀에 순종할 마음이나 자세는 더욱이 보이려야 보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런 결정적인 차이점을 두고 볼 때, 유다 왕 아비야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머리가 되신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이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남조 유다를 북조 이스라엘이 맞서 싸운다는 것은 바로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직접 대항해서 "싸우려는" 자멸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 그의 눈에는 너무나도 분명했던 것입니다. 

북한은 소위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최고의 유일한 진리로 믿고 있는 나라이며 이미 모든 인민들을 '김일성 우상화의 광신도'들로 만들어 놓은 지 오래된, 실질적으로 완벽한 정교일치(政敎一致)의 국가입니다. 
그 결과 북한은 어른들이 일과를 마친 후 피곤한 저녁에도 김일성의 교시를 머릿속 깊이 박히도록 학습해야 하고, 아이들조차 섬뜩한 표현의 반미구호를 앵무새처럼 줄줄 외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극소수의 지하교회를 제외하고는 북한 땅 그 어디에도 '성경 말씀'이 자유롭게 선포되는 곳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는 지극히 대조적으로, 이 대한민국에서는 도시의 거리마다, 시골의 골짜기마다 세워져 있는 수많은 교회들에서 매주일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마다 강단에서는, 성경책을 펴놓고 순전히 공산주의와 독재자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설교랍시고 하고 있는 북한과는 달리, 오직 신구약 66권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말씀을 들은 이 나라의 기독신자들 역시 다른 그 어떤 나라의 기독신자들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믿고 충성을 다하는 '신실하고도 열렬한 신앙인'들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믿기로는 현재 기독교가 있는 각 나라의 기독신자들의 신앙생활을 구체적인 예배출석, 헌금생활, 전도와 선교활동 등으로 비교해 본다면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전 종목들에 걸쳐서 단연 1위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정말이지 현재 이 대한민국만큼 '말씀중심, 교회중심'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머리로 모시는' 철두철미한 기독교인들을 둔 나라가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함께 계셔 주시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다.'고 비난하는 교회들이야말로 사실상 하나님께서 이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존속시켜 주신 진짜 이유이며, 오늘도 새벽마다 이 조국의 안보와 북한의 동포들을 위하여 '성령의 불'을 밝히면서 '눈물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성도들이야말로 진정 이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있는 애국의 파수꾼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 십인'이 있는 나라를 결코 망하지 않게 하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그렇게 이 조국을 지켜 왔듯이 오늘도 '조석으로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는 교회'와 '우리 하나님의 계명을 배반치 않고 끝까지 순종하는 신자'가 됨으로써, 그 누구도 이 조국을 감히 넘보지도 못하도록 우리 대한민국을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 주시는 나라'로 지켜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그처럼 영적으로 크게 차이가 났던 남조 유다와 북조 이스라엘의 전쟁은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는 13절 이하 22절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북조 이스라엘은 병력의 우세뿐 아니라 그 전술 역시 훌륭했습니다.
그들은 "유다의 뒤를 둘러 복병하는" 양동작전을 펼쳤고, 그 결과 유다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앞뒤로 포위된 진퇴양난에 빠졌던 것이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미 유다는 끝장난 상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유다 사람들은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부니라"고 했는데,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압도적 전세에 있던 북조 이스라엘을 오히려 유다 앞에서 대패하게 만드셨습니다.
그 기적적인 역전승을 두고 18절 말씀은 "유다 자손이 이기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을 의지하였음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남조 유다와 북조 이스라엘은 원래 한 나라요 한 민족이었습니다.
그 둘이 남북으로 나누어진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리 크게 달라서 남조 유다는 "점점 강성하는" 나라가 되고 반대로 북조 이스라엘은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결국 망하게 된 것이겠습니까?
바로 유다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나라'였던 반면에 북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다에 속한 백성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신실한 신앙인이었고 유다 왕 아비야는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왕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비야 왕의 개인적의 신앙생활에는 기복이 있었으며, 유다에 속한 백성들의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에 남조 유다는 어디까지나 정통 신앙의 맥을 지키고 있었으며 참된 제사장들이 세워져 있었고 율법에 따른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던 반면에 북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불신앙 위에 세워진 나라였으며, 바로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오직 남조 유다와 '함께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지금 이 지구상에서 가장 도발적이고도 폭력적인 북한과 아직도 대립 상태에 있습니다.
북한 공산군의 침략으로 시작되었던 '6.25 전쟁'은 '휴전(休戰)'으로 잠시 중단되고 있을 뿐이지 완전히 '정전(停戰)'이 된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바로 이 대한민국 안에서 소위 '친북좌파'임을 스스로 자랑하는 세력까지 나타나서 이적행위를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 국제적 깡패요 2천만 인민의 학대자인 김정일을 가리켜서는 '합리적인 정치가'라고 추켜세우면서도 국민의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을 두고서는 '독재자'라고 욕을 하면서 국민들에게는 '들고 일어나라'고 선동을 하고, 북한의 원자폭탄은 '자위용'이라고 인정해 주면서도 우리나라의 평화적 핵 개발권에 대해서는 '전쟁 발발의 위험 가중'이라고 반대를 하고, 금강산 관광객을 사살하고 개성공단의 직원을 인질로 잡고 있는 북한을 향하여서는 단 한 마디 항의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우리나라의 현정부를 향해서 '남북합의를 이행하라'고 질타하는 것 - 이것이 이적행위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처럼 안팎으로 위태롭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이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북한의 적화통일의 야욕의 먹잇감이 되지 않고 존속해 올 수 있었겠습니까?
정치가들이 훌륭해서? - 절대로 아닙니다.
그 정답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살아 계시며, 이 대한민국에는 그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기독교가 있으며, 그래서 그 공의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조국 대한민국과 함께 해 주셨기 때문'일 뿐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움, 우리 대한민국의 우위는 이 나라 안에 '공산독재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미국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지하는' 참된 기독신자와 교회가 많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에 있음을 깨닫고, 바로 이 '정통 신앙'을 지키고 '신실한 제사장'들을 따르고 '말씀중심의 교회'들을 세움으로써 이 대한민국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 시대의 선민의 나라로 지켜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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