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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울을 굴복시킨 것은? (삼상 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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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을 굴복시킨 것은? (삼상 24:1~7)



1. 사람의 특성을 도구로 설명한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종류의 도구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모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줄자형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만을 강요하는 망치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대패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쥐어짜는 바이스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갈아대는 그라인더 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내는 도끼형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주변의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 두시는 걸까요? 

생각해보신적이 있습니까?(질문) 

성경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시고, 거친 부분을 다듬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사울왕을 통하여 다윗을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작업은 계속 됩니다. 
삼상 24장의 내용은 앞선 23장에서 시작되어 26장까지 계속되는 다윗의 2차 도피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다윗에 대한 사울왕의 박해는 계속됩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고 다윗을 반드시 붙잡아 죽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웁니다. 
그래서 정규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은 군사를 3,000명씩이나 동원하여 다윗을 찾기 위하여 엔게디 동굴 근방을 수색합니다. 
그 지역은 석회암지역이기에 동굴들이 발달해 있습니다. 
그래서 목동들은 그 동굴들을 한낮에 따가운 볕을 피할 수 있는 양들의 휴식처로, 밤에 추위와 맹수를 피할 수 있는 양 우리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수색하던 중 사울왕이 ‘발을 가리려’ 한 동굴에 들어갑니다. 
‘발을 가린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용변을 본다.’라는 뜻입니다. 

2. 하필이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은신해 있는 동굴에 사울왕이 용변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사울왕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사울왕은 호위병 하나 없는 혼자입니다. 
용변을 보러 가는데 왜 호위병을 데리고 가겠어요? 
사울왕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이 사울을 죽일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밀어붙입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다윗은 물론이거니와 부하들에게 이제 모진 고생을 끝낼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윗과 부하들은 이 시간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겠습니까?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닙니까? 
만일 이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고생길을 가야할 텐데 그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사울왕을 죽여야 합니다.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합니다. 
다윗은 사울왕을 해치지 않고, 그의 겉옷 자락을 조금 베어 증거를 삼고 살려둡니다. 
그 내용이 4절에 나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 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러면 사울왕이 그렇게 처신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이 사울왕을 사랑했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존경했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근거를 우리는 5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5절의 말씀은 오늘 메시지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우리는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적대자인 사울왕을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만해도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인데 마음이 찔릴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보란 듯이 부하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인격을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은 ‘마음이 찔린다.’고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는 거지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사울왕의 옷자락을 베는 것조차 다윗에겐 죄송스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윗을 좋게 봐도 너무 좋게 봤어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사울왕의 옷자락을 벤 것이 다윗의 양심에 거리낌이 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호위병 하나 없는 사울왕의 옷자락을 베는 순간입니다. 
다윗의 뇌리엔 사울왕에게 쫓기던 수없는 나날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을 것입니다. 
불현듯 증오가 치밀었을 것이고, ‘죽여 버리자!’라는 살의를 느꼈을 것입니다. 

다윗은 순간적이지만 자기 마음에 그런 살의가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며 양심에 가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도 인간인지라 사울왕에 대한 미움이 없을 리가 없었겠지요. 
만일 다윗에게 그런 미움이 없었다면 그는 바보이거나, 인간이 아닌 천사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성경이 취급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울왕에 대한 증오와 살의는 다윗에겐 부정할 수 없는 실재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양심을 찔렀던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사울왕을 살려준 것은 그에 대한 미움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것 때문입니다. 

3. 그러면 무엇 때문에 다윗은 사울왕을 살려두었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사울왕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기 때문이라고 밝혀줍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기름부음’이란 말이 번복해서 나옵니다. 
6절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10절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자는 왕, 선지자, 제사장뿐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해치지 않은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이 사울왕을 해치 않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사울왕에게 손을 대는 것을 극구 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여 세웠으니까 내가 개입할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다윗의 이런 처신과 행동에서 귀한 교훈을 얻습니다. 
정리하면, 다윗은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행동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그 시각, 그 자리에서 미움, 증오, 살의를 느꼈지만 그 감정을 극복하고 믿음에 따라 처신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저를 따라 해보십시오. 
‘다윗이 축복받은 이유는 그가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믿음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다윗이 자기감정에 따라 행동했다면 사울왕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다윗은 믿음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감정에 매여 있기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숙된 교회이고, 여러분은 성숙된 교인이기 때문에 그런 예가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이런 말 자주 듣잖아요? 
‘기분 나빠 못 나가겠다.’ ‘상처 받았다.’ ‘재미없다.’ ‘언짢다.’ ‘섭섭하다.’ 
이것들은 다 감정과 관계된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감정 때문에 금보다 귀한 믿음을 내팽개치지 마십시오. 
기분 때문에 자기 구원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믿음으로 감정을 극복했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4. 다윗은 이런 처신으로 어떤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까? 

1) 일시적이지만 사울왕의 굴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17절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다윗은 가장 멋진 승리를 거둔 것이지요.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이어서 20절을 보십시오. 
20절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지금 사울왕은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자기 입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거지요. 
다윗은 믿음으로 감정을 극복했더니 사울왕의 굴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감정을 극복하여 적대자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되길 바랍니다. 

2) 또한 부하들로부터 자기의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9절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 대한 처신은 주위 사람들에게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구나,’ 
그 처신의 결과는 좋은 의미로 부메랑이 되어 다윗에게 돌아왔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기에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다윗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울왕을 암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면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상황이야 어찌됐건 백성들은 다윗을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차지한 왕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렇게 인식된다면 그의 쿠데타가 선례가 되어 권력에 눈이 어두운 자들의 반역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감정을 극복했더니 부하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감정을 극복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길 바랍니다. 

복음성가- 주 품에 품으소서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에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 보리라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 보리라 

감정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된 예가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톱 모델로 활동했던 제니퍼 스트릭랜드(35) 
그녀는 8세에 참가한 어린이 패션쇼를 시작으로, 17세부터는 이미 세계적인 패션모델로 유명해 졌으며, 22세에 모델 업계 상위 1%인 아르마니 톱 모델로 발탁됐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분명히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그러나 멋진 옷을 입고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당당하게 런 웨이를 걸었지만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그녀의 몸과 마음은 마약과 섹스, 술, 우울증으로 뒤범벅되고 있었습니다. 
마약, 섹스, 술....... 이러 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쾌락의 감정이 아닙니까? 
그러나 성공이 주는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열망은 하나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살이 쪄도, 얼굴에 뾰루지 하나만 나도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신을 발견하고 허무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의 지친 영혼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동양인 친구인 킴이 상처와 외로움 속에 몸부림치던 그녀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주었습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교회에서 기도하자 꽁꽁 얼어붙은 그녀의 몸을 누군가 뒤에서 따뜻하게 포옹해 주는 듯했습니다. 
마치 천사의 날개가 감싸주는 듯했습니다. 
그 불가항력적인 힘에 온 몸을 떨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도피처를 찾아 헤매던 그녀가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비로소 믿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세워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외모와 돈, 칭찬을 갈구하며 가면을 쓰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름답게 꾸민 얼굴과 육체는 감옥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 가면이 벗겨져 산산조각이 난 후 비로소 하나님은 나를 아름답게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인간은 그 진리를 발견할 때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다윗은 감정을 넘어 믿음으로 행동하고 처신했습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삼상24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도 섭섭함, 원망, 미움, 등 감정을 넘어 믿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처신하게 되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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