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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전이 있는 사람 (행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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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이 있는 사람 (행 4:1~12)


혹자는 말하기를 사람들의 삶의 유형을 보면 세 종류의 레벨이 있다고 했다.
1)Survival level - 생존을 위해 사는 사람.
2)Success level - 성공을 위해 사는 사람, 재물 지위 명예 쾌락을 삶의 목적과 가치로 삼는 사람.
3)Significant level -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 목적을 따라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 나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살피며 사는 사람. 비전의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생존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직장을 버렸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들을 선택하여 부르신 것이다.
막 1:17,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나 그들은 의미 있는 삶보다는 성공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제자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다툼이 벌어졌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까지 동원하였다.
마 20:21,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육신적 성공을 위한 삶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럴 때마다 책망하시고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셨다. 
막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의 성공 경쟁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심지어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저녁 유월절 만찬을 먹는 시간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결국 성공하려는 제자들의 기대는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말았다. 그들은 선생을 부인했고, 배신까지 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이전에 생업이었던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실의와 낙심 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며 다시 배를 타고 그물을 잡았으나 고기를 잡지 못했다. 밤이 맟도록 수고했으나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 오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소리치셨다.

요 21:6,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 목소리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인 줄 알고 그들은 정신을 차렸다. 다시 찾아오신 목적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전하시기 위함이었다.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삶이 아니라, 의미를 위한 삶을 살아라!’ 그것은 바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이다.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의미 있는 삶’- ‘비전 성취를 위하여’ 제자들에게 권능을 부여하신 사건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는 중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180도 완전히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1.인생의 목표와 목적이 분명해짐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의 목표요 목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받기 전에 베드로의 목적은 세상적 성공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공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예수님이 붙잡히시고, 못 박히시자 베드로의 희망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주님을 부인했고, 도망쳤다. 그러나 그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의지적 고백이 아니라 은혜로 되어진 고백이었다. 신앙고백이 분명한 사람은 부인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다.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인생이 흔들거리고 오락가락하는 신자들을 보면 신앙고백이 분명치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다.

1) 삶이 공허하다.
전 1:2-3,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

2) 피곤하고 만족함이 없다.
전 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3) 무의미하다
전 1: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후 자신의 육신적 자랑거리를 배설물처럼 여기고 다 버렸다고 했다. 그의 삶은 단순해졌다. 
빌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2.열정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도들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2-3장에 걸쳐 두 차례 베드로의 설교가 소개되고 있는데 그 설교를 들은 청중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2장에서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3장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후 성전에서 설교할 때 5천 명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4:4). 

우리가 그의 설교하는 모습을 연상할 때 열정을 느낄 수가 있다. 그는 청중들의 불신앙과 죄악을 가차 없이 책망하였다. 듣는 사람들이 통회하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베드로는 기질상 열정적인 사람이기에 더욱 상승 효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18세기 미국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였던 조나단 에드워드는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가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떨었다고 했다. 
기질과 성격을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의 목표요 목적인 사람들은 뜨겁지 않을 수가 없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교회 지도자들 앞에서 설교할 때 이렇게 증거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오늘 본문에도 역시 공회원들 앞에서 베드로의 설교는 열정적이었다(8-12절). 성령 충만함으로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가차 없이 책망하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다. 베드로를 심문하려다가 그의 유창하고 열정적인 설교에 감탄하였다.

행 4:13-14,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나는 기질적으로 열정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뜨거운 열정이 제 속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개척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그것은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경적 교회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그 일을 위해 부름 받았고, 그 일을 할 때 피곤하지 않으며, 에너지가 느껴진다. 교회를 갱신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평생의 사명이자 사역이다. 그 사명을 붙잡고 있는 한 나는 평범한 노인으로 생을 마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3.인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래 참지 못한다. 그러나 목표가 분명한 사람, 사명이 있는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토마스 에디슨, ‘불가능한 일이란 약간 시간이 더 걸리는 일일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에게 당장 장애물이 나타났다. 그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체포되어 구금당했다. 그러나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공회원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당당하게 증거하였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장애물이나 위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1977년, 세계에서 에베레스트산을 여덟 번째로 등반에 성공한 등반대장 김영도 장로의 간증. 
정상 정복을 코 앞에 두고 산소통 조절장치가 고장나서 호흡에 곤란이 일어났다. 강행하자니 위험하고 포기하자니 아깝고.. 그 순간 시편 121:3의 말씀이 생각나서 강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눈 속에서 뭔가가 걸리더니 파보니까 NASA에서 사용한 산소통 12개가 고스란히 묻혀 있었다. 대원들은 그 산소통으로 공급을 받고 등반에 성공했다고 한다. 

기독교 사상가인 노만 빈센트 필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실패자처럼 생각하면 실패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활기차고 성공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면 역동적인 창조력이 생긴다. 크게 기도하라 기도하면서 일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신다. 크게 행동하라 아무리 큰 계획도 하나님께 믿음의 손을 내밀면 하나님께서 달성하신다. 

잠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나는 오늘 본문에 등장한 베드로와 사도들을 현대적 표현으로 비전의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비전을 품었다. 그들은 사명을 깨달았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일에 기쁨으로 헌신하였다. 나는 제자들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가능성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들이 비전을 품는 사람이 되는데 그들이 한 것은 별로 없다. 갈릴리 호숫가의 평범한 어부로 돌아가버린 제자들, 그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따라나섰다가 실패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써바이벌 인생’ 살기 위해서 먹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의에 빠지 제자들을 찾아 오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셨고, 비전을 보여주셨고, 성령의 충만함과 권능을 부여 하셨다. 제자들이 한 것은 단지 들었고, 순종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갈릴리 어촌의 어부들과 세리,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을 세우셔서 예루살렘을 흔들어 놓았고, 유대와 사마리아를 흔들어 놓으셨다. 그리고 유럽과 온 세계를 흔들어 놓으셨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고후 11장). 그러나 결코 뒤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분명한 비전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살기 위해 먹는 밑바닥 인생이 되길 원치 않으신다. 그런 모습으로 살게 하기 위해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내신 것 아니다. 만약 그렇게 알고 있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예수 안에 있으면서도 불행한 것이다.
예수님 덕보자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면 언젠가는 제풀에 꺾여 도중하차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속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다 더 의미 있는 삶, 더 위대한 삶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정말 멋있게 쓰시기를 원하신다.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자신을 내어드려 순종해야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름답고 멋있게 사용하실 것이다. 

살기 위해 먹는 인생이 아니라, 육신적 성공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비전을 품은 위대한 인생이 되기를 축원한다. 비전의 사람은 더 열심히 기도한다. 더 열심히 한 마음이 되고, 더 열심히 모험하고 계획하고, 희생하고 기대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이곳에 세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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