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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의 두 방문객 (요 1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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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두 방문객 (요 12:12~19)

 
오늘 성경말씀을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서 선교하시다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게 됩니다. 온 나라 안에 소문이 가득하게 퍼졌습니다. “갈릴리 선지자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온다.” 그러니까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래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면서 “호산나!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유대인의 메시야관입니다. 그것은 메시야가 이 나라의 왕까지 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오늘 13절에 보세요.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었더라.” “당신이 왕이 되셔서 저 꼴도 보기 싫은 로마 사람들을 다 물리쳐버리고 우리 역사에 앗시리아, 페르시아, 바벨로니아, 로마로 연결되는 끝없는 역사적 수난을 이제 종지부를 찍고 우리를 식민지에서 해방하고 다윗, 솔로몬 시대의 찬란했던 아브라함 택한 백성의 영광을 회복하소서.”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줄 알았는데 로마를 물리치기는커녕 로마 병정들에게 잡혀서 두드려 맞고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니 “이게 뭐야?” 그래서 제자들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도망가고 “틀렸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우리가 역사를 한번 살펴봅시다. BC 330년에 정치적 야망을 가진 20대 야심찬 정치인이 세계무대에 등장합니다. 알렉산더입니다. 그의 목표는 인간이 존재하는 지구상의 모든 땅을 정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고 알렉산더와 칭기즈칸 두 인물이 가장 넓은 땅을 점령했다는 것을 역사에서 배웠습니다. 알렉산더는 자기가 차지한 땅을 전부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로 70군데나 만들었습니다. 예루살렘도 하루아침에 다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라비아 사막 원정 때 그는 열병이 들어서 죽었다고 역사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나이 33세입니다. 

그로부터 300년이 지났습니다. 알렉산더가 군졸들을 끌고 의기양양하게 올라가던 그 길을 지금 나사렛 예수가 가고 계신 겁니다. 두 사람을 비교하면 알렉산더는 세계에서 가장 값진 갑옷을 입고 번쩍거리며 예수는 갈릴리 시골 서민의 낡은 옷을 걸쳤고, 가장 우수한 준마를 탄 알렉산더에 비해 예수는 새끼 나귀를 탔다고 했습니다. 수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알렉산더가 간 그 길을 예수님은 지금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는 대왕의 이름을 걸고 나타났는데 예수는 종의 모습을 나타났습니다. 그는 정복하러 왔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그는 정복자로 성공했으나 예수는 골고다에서 실패자로 죽었습니다. 

알렉산더는 남의 피를 무수하게 흘렸습니다. 예수는 자기 피를 흘리고 쓰러졌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33세에 죽었습니다. 결과는 어떤가? 한 사람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침략자로 남의 피를 흘리게 했던 사람이 되고 말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에 평화와 사랑의 종으로 자신의 피를 흘려줌으로 말미암아 알렉산더가 점령했던 모든 땅을 사랑과 복음으로 점령하는 결과가 지금 나오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들도 모양은 다르지만 다 예루살렘 그 길을 오르는 사람들인데 내가 알렉산더의 길에 관심이 있는가, 예수의 길에 관심이 있는가? 문제는 알렉산더의 길이 매우 화려해 보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 길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생산되는 값싼 천에 몸을 두르고 아이들의 호산나를 받으면서 지금 나귀 새끼를 타고 보잘것없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갈릴리 예수의 길에는 볼품도 없고 얻을 영광도 없습니다. 오히려 희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은 매력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섬기려 하고 도리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렇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희생의 길을 따르라.”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길입니다. 

지금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이합니다. 주님이 받으셨던 그 고난을 내가 지금 감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고난주간이 있는 겁니다. 내 마음에 자유와 해방을 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피는 보호하고 내 피를 흘리기 위해서, 이것이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우리가 되새겨야 할 거룩한 진리의 길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고, 교회들마저 이기주의가 되어서, 절대로 희생을 거부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땅에 주기 위해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에 내 순교자적인 피 한 방울마저도 드릴 수만 있다면 다 드려야 합니다. 알렉산더가 아라비아 원정을 떠나서 온 세상을 정복하려 하다가 모래밭에 쓰러져 열병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복음을 들고 아라비아 원정을 떠났다가 모래밭에 열병으로 죽는 한이 있어도 복음을 들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땅 끝까지 찾아가는 열정이 식지 아니할 때 하나님의 인간 구원 역사는 완성됩니다. 이 사명을 오늘날 교회들이 잊어버릴 때 교회는 이기주의가 되고 상업주의 원리 문화로 떨어집니다. 여러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세상의 역사는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가시던 그 골고다의 길, 고난의 길을 바라보면서 일평생 하나님께 쓰임 받는 교회와 교인이 되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시여! 오늘도 주님은 “알렉산더의 길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십자가 골고다의 길은 험악하고 어렵지만 인류 구원의 길이 여기 있음을 진리로 가르쳤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것을 우리에게 전달하셨습니다. 오늘날 과거보다도 더 많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습을 닮는 사역자들과 교회가 필요한 이때에 우리 모두가 그 길을 갈 수 있는 마음의 결심을 이 고난주간에 각자 할 수 있는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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