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생수의 강 (요 7:37~39)

  • 잡초 잡초
  • 398
  • 0

첨부 1


생수의 강 (요 7:37~39)


오늘 말씀은 초막절에 예수님이 하신 설교내용입니다. 초막절은 추수를 하고나서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7일 동안 천막을 치고 생활을 합니다. 과거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한 것을 기억하여 기념하는 것입니다.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7일 동안 매일 실로암 못으로 가서 물을 길어옵니다. 제사장이 앞장서면 사람들이 뒤따라옵니다. 사12:3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찬송을 부르며 ‘수문’을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옵니다. 성전으로 가서 성전 제단에 그 물을 붓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주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의식입니다. 
7일 절기가 끝나는 날, 명절 끝 날에 모든 회중이 모여서 제물을 드리며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하신 설교입니다. 누구에게 설교하십니까? 

1. 우리 곁에 있는 목마른 사람들. 

우리가 먹고사는 것은 그래도 풍성합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목마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는 게 허무합니다. 무의미하고 우울합니다. 열등의식, 좌절감에 매여서 살아갑니다. 미움과 분노에 쌓여 삽니다. 
*500만이 넘는 추모객들을 보면서 사람들 속에 슬픔이 많구나. 아픔이 많구나. 외롭구나. 그런데 말할 사람이 없구나. 위로해 줄 사람도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UN이 발표한 세계 178나라의 행복지수입니다. 독일 81위, 일본 95위, 영국 108위, 캐나다 111위, 프랑스 129위, 미국 150위, 한국은 102위입니다. 1위는 바투아누라고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섬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 풍부한 나라일수록 행복지수는 낮습니다.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네 나라를 비교해 보았더니 한국이 가장 낮다고 합니다. 아이들일수록 더 행복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육신의 목마름보다 마음의 목마름이 심하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왜 목마른지 무엇에 목마른지는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경제가 조금 더 나아지면, 사는 형편이 조금 더 좋아지면 행복해지겠지... 발버둥 치면서 살아갑니다. 경제회복, 경제성장에 온 힘을 쏟지만 돈으로는 인생의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는 겁니다. 
갈증을 해결하려고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신기루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 같습니다. 기를 쓰고 달려가 봤는데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많은 영국 병사들이 사막에서 죽었답니다. 병사들이 사막을 걸어가다가 목이 너무 말랐습니다. 신기루가 눈에 보였습니다. 저 사막 끝에 강물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그 자리에서 업어져 죽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병사들의 목에 모래가 가득가득 차 있었답니다. 너무 목마르니 모래를 물인줄 알고 마셔버린 겁니다. 그리고는 모래에 목이 가득차서 죽은 겁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 <노인과 바다>등으로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62세에 권총으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부와 명예, 쾌락... 여러 번 결혼과 이혼을 하면서 행복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유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내 영혼은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처럼 공허하다.” 
렘2:13절 말씀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 이니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공허한 삶이 그렇습니다. 
사람은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것만으로는 결코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육체적인 배고픔도 해결해야 합니다. 먹어야 삽니다. 동일하게 영혼의 목마름도 채워주어야 삽니다. 
어떻게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2. 목마른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예수님 

37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은 목마른 사람들을 초청하십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초청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은 목마른 사람들을 초청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짐 진 사람을 거부합니다. 오갈 곳 없어서 기댈 사람이 없어서 자살하고 맙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환영합니다. ‘문제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오라. 힘든 사람도 누구든지 오라. 인생의 갈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오라.’ 
사55:1-2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네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허물 많은 사람도 오라. 죄 있는 사람도 오라. 사람에게 거부당하는 사람들도 오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와서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십니다. 공짜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공짜라는 말은 싸구려라는 뜻이 아닙니다. 너무 싼 것은 공짜로 줍니다. 그러나 너무 비싼 것도 공짜로 줍니다. 너무 귀해서 값을 메길 수 없는 것은 공자로 줍니다. 사랑은 공짜입니다. 생명은 공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공짜입니다. 너무 귀해서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찬송가 528장입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앞에 오라> 주님은 오늘도 당신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을까요? 38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입니다. 
*구원초청- 

3. 목마른 자에게 주시는 생수의 강. 

예수님은 초청에 응한 사람에게 특별한 축복을 주십니다.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옛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광야에서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를 마셨습니다. 시78:15-16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광야의 반석은 그냥 바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고전10:3-4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반석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십니다. 

사람들의 배에서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요? 욕망의 혼탁한 물, 분노의 독한 물, 야망의 더러운 물, 절망과 허무와 외로움의 썩은 물, 갈등과 시기의 추한 물, 각종 쓴 물들이 속에서 흘러나옵니다. 
그것이 인간관계를 깨지게 합니다. 삶이 망가지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씻어줄 새로운 강이 흘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십니다. 

‘그 배에서’라는 말은 육신의 배가 아닙니다. 사람의 가장 내면적인 자리를 말합니다.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영혼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사랑의 강물이 흐르면 미움이 씻겨 나갑니다. 슬픔은 씻겨나가고 기쁨이 솟아납니다. 염려는 흘러가 버리고 소망이 차오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되고, 인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참을 힘이 생겨납니다. 더러운 것들이 씻겨나가고 거룩한 마음으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생수의 강은 무엇입니까? 39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받게 될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 속에서 생수의 강으로 흘러오십니다. 성령님의 생명의 역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겔47:1,12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세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웅덩이와 강의 차이를 아시지요. 웅덩이는 물이 고이는 곳입니다. 웅덩이는 물을 쌓아두기만 하고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전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비전을 위해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웅덩이처럼 자기를 위해 쌓아 놓으려고 합니다. 
강은 물을 쌓아두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물을 흘려보냅니다. 그래서 때로는 물이 마르기도 합니다. 그 강에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면 물고기들이 다시 모여들고 살아납니다. 

웅덩이는 물을 쌓기만 하다가 결국은 물이 썩습니다. 물고기들도 죽고 맙니다. 그러나 강은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을 살려냅니다. 물고기가 살고 나무가 살아납니다. 꽃이 피고 향기가 나고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사람은 결코 커다란 웅덩이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은 물을 흘려보내는 강 같은 사람입니다. 
생수의 강은 흘러가야 한다. 성전이 나를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살아나고 살려야 한다!!!!! 

생수의 강이 언제 흐릅니까? 39절 괄호 안에 있는 말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강물처럼 사람들에게 흘러오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님은 생수의 강으로 흘러오십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은 생수의 강으로 흘러오고 계십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영원토록 흘러올 생수의 강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계22:1-2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맺는 말 
성자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영혼이 육체의 생명인 것처럼 성령은 영혼의 생명이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면 죽는 것처럼, 성령이 영혼을 떠나면 멸망하게 된다.” 
초대교회의 지도자 터툴리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는 언제나 물속에 있어야만 살 수 있다. 성령은 물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 
갈수록 영혼의 목마름, 마음의 목마름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사막이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생수의 강이 흘러와야 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에게 성령님의 생수의 강이 흘러와서 회복되고 치유되고 자유케 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