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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름부음 받은 감람나무 (슥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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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부음 받은 감람나무 (슥 4:1~10)


성령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환상을 통해 말씀하신다. 환상을 보다가 천사에 의해 깨어난 스가랴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천사는 깨어난 스가랴에게 “무엇을 보느냐?”라고 물었고 스가랴는 “일곱 등잔이 있는 등대와 두 감람나무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스가랴가 본 환상은 모두 8가지인데, 그 중에 5번째로 본 이 환상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던 스가랴는 천사에게 물었다.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결국 환상을 알기 위해 질문을 던진 스가랴와 천사의 화답 속에는 감람나무가 사람이며 그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기름부음 받은 감람나무라는 것이다. 슥4:10을 보면 일곱 등잔이 있는 순금 등대는 여호와를 상징하는 환상이고, 슥4:14을 보면 그 일곱 등잔이 있는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는 성전 건축에 쓰임 받는 두 사람을 말한다. 즉, 그 두 사람은 스가랴 3장에 나오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이고 스가랴 4장에 나오는 스룹바벨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의 살피심과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으며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로서 세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역은 거룩하다. 눈에 보이는 성전 건축을 하든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건축을 하든지 또는 선교, 교육, 봉사, 친교, 예배, 전도 등 어떤 일을 하든지 영적인 사역이다. 그러기에 귀하고 세상적인 것이 아니기에 기름부음 받은 일꾼으로 서야 한다. 사실 사역이 소중하다 보니 일의 어려움도 있고 사단의 방해도 있다. 이미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성전 재건을 시작한 이래 방해가 있었고 그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중단될 처지에 있게 되었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역의 중단 앞에 마음이 상한 자도 있고 아예 냉소적이고 패배적인 사람도 나타났다. 그러나 스라갸는 하나님이 기름 부어주시는 두 사람을 본다. 감람나무로 세워서 주 앞에 세워주시는 환상을 본다. 그래서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을 통해 하실 일을 예언하신다. 용기를 북독워주신다. 기름부음 받은 감람나무로서 스룹바벨을 향한 예언은 사역자로 세우기 위한 격려이다.
  

1. 주의 사역은 주의 성령으로 된다고 예언한다. (슥4:6)

스룹바벨에게 전하여 주도록 하신 말씀은 슥4:6의 말씀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렇다. 사람들이 세상 일을 할 때 자기 힘으로 하고 자신의 재능과 방법으로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은 나의 힘이 아니다. 아니 나의 능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일은 주의 영으로만 된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기도회 모임도, 교회학교 가르침도, 찬양대도, 관계 전도도, CM 모임도 주의 영으로만 된다. 우리의 모이는 자리에 회복과 부흥이 도래하는 것도 오직 주의 영으로만 된다. 이 사실을 모르면 힘들고 고생한다. 나의 이성적인 판단도 중요하다. 나의 재능과 수단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성령으로 이끌리고 성령으로 조정되면 형통한다. 쉽다. 

  
2. 주의 사역을 가로막는 방해물을 염려치 말라고 예언한다. (슥4:7)

슥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라고 하였다.

큰 산은 무엇인가? 사역을 멈추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걸어가야 할 앞길을 가로막는 큰 산 앞에서 얼마나 고민이 되며 염려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 큰 산이 평지가 된다. 스룹바벨 앞에서는 있으나 마나의 산이다. 스룹바벨이 누구이기에 스룹바벨 앞에 산이 변하여 평지가 되는가? 스룹바벨의 권위와 권세는 누가 주신 것인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일곱 눈을 가지신 하나님이 곁에 감람나무로 스룹바벨을 두시고 기름을 부은 자로 세워두셨기에 산은 옮겨간다. 산은 아무 힘도 쓸 수 없다. 산이 평지가 된다는 것은 지도의 변화다. 산이 콩가루가 되어 겨처럼 날아가 버리는 지형의 변화다. 

그러므로 산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으시는 기름 부으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감람나무로 심는 역사는 구약 시대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제한되었다. 그러나 신약의 시대, 주님이 부활하시고 주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이 시대에는 누구든지 기름 부으심이 약속되어 있다. 산을 걱정하고 산 때문에 염려, 근심하지 말고 기름 부으심을 받아 순금 등대로 비유된 여호와의 곁에서 세움 받은 감람나무가 되려고 하자.

이 시대에도 우리가 예언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제사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영적 스룹바벨과 영적 여호수아가 될 수 있다. 기름 부으심을 갈망하고 그 기름 부으심이 내 머리에 부어져 어깨로, 허리로, 옷 단으로 흘러내리는 은혜를 사모하자. 구원을 받은 우리가 이 시대에 쓰임을 받으려면 기름 부으심이 중요하다. 성령의 구별, 성령의 지배를 받는 기름 부으심에 전심으로 나아오자.

여기 “스룹바벨에게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의 외침이 들려온다. 기름 부으심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은총이라고 외칠 수 밖에 없다. 스가랴의 예언은 스룹바벨에게 힘이 넘치게 한다. 영적 사역자에게 주는 보약과도 같은 힘이다. 우리도 염려할 것 없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우리는 이제부터 담대하게 일어서 외치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질병의 산아, 가정 불화의 산아, 원수의 공격의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되리라.”

  
3. 거룩한 사역은 완성된다고 예언한다. (숙4:8)

슥4: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역사적으로 스룹바벨의 성전은 기초를 놓았다. 에스라 3:8~13을 보면 그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기쁨과 감사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스룹바벨의 사역은 역사적인 것이고 사실적인 건축 사역이었다. 그것이 사마리아 사람들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되고 성전 건축은 중단되었다. 아닥사스다 왕의 건축 중단 조서는 효력을 발휘했고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공사는 바사 왕 다리오 2년까지 계속되었다. (에스라4:24) 

그러나 스가랴의 예언은 장차 건축이 완성되고 이루어진 그림을 보여준다. 시작을 한 스룹바벨이 그 일을 마치리라. 스룹바벨의 사명이다. 스룹바벨의 손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다른 사람이 이루어놓은 건축이 아니고 스룹바벨의 책임이다. 지금 중단되어 보기에 황폐하지만 사역은 완성된다고 예언한다.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곁에 두시고 기름을 부으시기에 건축이 다 마쳐진다. 

기름 부으심을 받은 다윗을 보라. 삼하23:1을 보면 다윗이 마지막 남기는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 목동의 시절에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 받은 것을 잊지 않았다.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다윗은 여호와의 영이 자신을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기름 부음을 받았기에 높이 세워진 자가 되었고 노래를 잘하는 자가 되었고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다고 하였다. 기름 부음이 없이 다윗은 그냥 목동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스룹바벨도 기름 부음 받은 자다. 아니 감람나무이기에 세 가지 예언이 천사를 통해 스가랴에게 들려진 것이다. 그 세 가지 예언 속에는 환경을 뛰어넘는 약속의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되게 하는 진리, 새롭게 꿈꾸는 비전, 다시 세워지는 성전, 방관하던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가 들어 있다. 

기름 부으심이 있었던 요한 웨슬리 목사도 1738년 5월 24일에 중생을 경험했으나 의심과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자유함과 성령과 하나되는 삶을 원했다. 그는 1738년 여름, 3개월 간 모라비안 교도들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 격려와 신앙적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10월 9일, 미국의 영적 거성인 조나단 에드워드가 쓴 「노스햄프턴 대부흥 운동사」를 읽으며 더 큰 능력, 더 큰 은혜를 사모하였다. 

그리고 1739년 1월 1일 패터레인에서 신정 집회를 갖는데 이날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기름 부으심을 받는다. 60여명의 사람들이 의자에서 나가 떨어져 뒹굴어 주를 부르다 얼마 후 평정을 찾고 하나님의 주 되심을 찬양하였다. 그때 웨슬리는 위로부터의 능력을 덧입고 야외 설교와 전도가 시작되었고 그의 신앙 운동은 영국을 구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18세기에 하나님이 보호하고 지켜준 감람나무였다. 스룹바벨이 포로기 이후의 성전 회복의 감람나무였던 것처럼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주신 사람이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웨슬리 회심 기념 주일 예배를 드린다. 우리도 쓰임 받기 위해 기름 부음 받은 감람나무가 되자. 감람나무는 용도가 다양하다. 열매는 요리에, 기름은 등잔용으로, 약으로 상처난 곳에 사용하였다. 

감람나무는 힘의 상징, 축복의 상징, 번영의 상징이었다. 내가 기름 부음을 통해서 깨끗하고 정결한 감람나무로서 쓰임 받자. 성령의 기름 부으심,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은 우리가 교회의 거룩한 사역자로 서는데 피해서는 안되는 과정이다. 기름 부으심은 이 시대에 세우심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의 진정한 준비 과정이다. 내게 성령을 부으시고 감람나무가 되게 하소서. 이 패역한 21세기에 우리가 더욱 순금 등대이시고 일곱 눈을 가지신 하나님 곁에 세워진 감람나무가 되게 하소서. 오, 주님 감람나무로 써 주소서. 기름 부으심이 나를 믿는 자답게 한다. 성도답게 하고 일꾼답게 하고 사명자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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