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음의 능력 (고후 5:17~19)

  • 잡초 잡초
  • 437
  • 0

첨부 1


복음의 능력 (고후 5:17~19)


놋그릇을 사용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주물 공장을 경영하는 어느 교회 장로님이 교회에 왔다가 목사님의 사택 마루 밑에 있는 못 쓰는 놋요강을 보고 목사님의 양해를 구하고 그것을 가져갔습니다. 며칠 뒤 그 장로님은 좋은 놋그릇 한 벌을 목사님께 선물했습니다. 목사님이 기뻐하며 고마워하자 장로님은 “목사님 이것은 본래 목사님의 것인데 그렇게 고마워하실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하자 장로님이 말하기를 “며칠 전 사택마루 밑에 버려진 못 쓰는 요강을 제게 주셨잖습니까? 그걸 가지고 우리 공장에서 새로 만든 것이 이 그릇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본래 목사님의 것이지요.”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의 얼굴표정이 일그러지면서 “그 더러운 요강으로 만든 것을 어떻게 밥그릇으로 사용합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장로님이 말하기를 “목사님! 아닙니다. 그 요강을 뜨거운 불에 녹여서 만든 전혀 다른 새로운 제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설명하고자 드린 예화입니다. 본문 17절에“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능력이 어떠한 것임을 밝힌 말씀입니다. 복음은 새롭게 변화 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지옥의 멸망에서 벗어나 영원한 하늘나라의 생명을 얻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에 대하여 아름다운 시로 표현된 것이 구역성경 시편 23편 1절~6절까지입니다.“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며 지키시는 사람이 겪게 되는 넘치는 은총 즉 복음이 주는 축복을 말한 것입니다.

一. 복음의 능력은 어떠한 것입니까?
복음은 새롭게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무능한 사람이 유능한 사람으로, 우둔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쓸모없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될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에 나타나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복음의 능력을 말씀드리면?

1. 복음은 국가와 민족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죽은 후 천국에서 누릴 영생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마음으로 위안을 받는 정신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 삶의 실제적인문제까지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마가복음 9:23에“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신 생명의 복음이 있는 곳에는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어느 종교학자가, 육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사해서 대조해 보았습니다. 예수를 잘 믿고 섬기는 사람들은 3,4대에 가서 큰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후손 가운데 정신병자나 장애인이 많이 나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를 볼 때 전 세계 170여 개국 가운데 선진국이 30여 개국입니다. 그 선진국 가운데 96%가 기독교 국가라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덴마크는 1864년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그 결과 기름진 남부의 실레비스히와 홀스타인 두 주를 빼앗기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시련 앞에서 국민전체는 좌절에 빠져 있었습니다. 덴마크는 이제 지도상에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희망의 나팔을 불고 나온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룬트비 목사와 달가스 대령이었습니다. 

그룬트비 목사는“하나님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자연을 사랑하자.”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농민학교를 세워 성경을 기초로 한 정신적인 힘을 불어 넣었습니다. 이 운동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용기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 한사람은 패전하고 돌아온 달가스 대령이었습니다. 그는 국민들 앞에“밖에서 잃은 국토 안에서 찾자.”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 광활한 늪지대요 버려진 동토인 유틀란트 반도를 개간하여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세찬 바람과 찬이슬과 서리 때문에 보통 나무들은 견디지 못했습니다. 달가스 대령은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적응력이 강한 나무를 새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집념어린 연구로 알프스 산의 잣나무를 접붙여 동토에서도 살아남는 우수한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그 나무들을 북부 해변에 심자 울창한 숲을 이루어 차가운 비바람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땅에 들어가서 늪지대의 물을 퍼내고 온갖 어려움과 싸우면서 개척해 나갔습니다. 덴마크는 그 후 10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낙농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원을 개발하여 공업국으로도 번영하게 되어 오늘날 세계에서 국민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꿈을 가지고 고난을 극복하므로 오늘날의 찬란한 역사를 이룬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덴마크의 개발 영향이 우리나라에까지 그 영향을 끼쳤습니다. 덴마크 국비로 덴마크에 가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유태영 박사로 인해 우리나라에 끼친 새마을운동입니다. 

2. 복음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의 능력에 대해 마가복음 4장 31절~32절에 밝히시기를“(복음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특징 중 한 가지가 씨앗가운데 가장 작은 겨자씨처럼 시작은 심히 미약하지만 나중에 미칠 영향력이 지대할 것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20세기 초, 일본에서 갓 안수 받은 나가노 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의 일본은 기독교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는 어느 곳에 가서 교회를 개척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일본 지도를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동서남북 100킬로미터 이내에 단 한명의 교인도 없는 곳을 찾고 보니 북쪽 가나사와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이 젊은 목사는 곧 그 지역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 단 한 명의 교인도 오지 않았습니다. 개척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이지만 목회에 대한 회의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곳에 보내 신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 있을 것으로 믿고 끝까지 그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려 5년 동안 아내와 아이만을 두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5년이 지난 어느 수요일 저녁에 천막을 젖히고 첫 번째 교인이 들어왔습니다.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함께 하는데 이 청년이 “욱” 하더니 밥상에 피를 토했습니다. 그는 폐병환자였습니다. 이 청년은 일본의 유명한 정치인의 사생아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출신이 그랬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괴로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복음을 접하게 되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도중에 결핵 환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고 다니던 교회에서도 결핵이라는 이유로 교회 출석을 거절당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생각한 이 청년은 좌절한 나머지 자살을 결심하고 시행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북쪽 가나사와 지방에서 목회하는 나가노 목사를 한 번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이 나가노 목사를 찾아 갔던 것입니다. 그 날 저녁밥을 먹다가 피를 쏟은 것이었습니다. 나가노 목사는 피를 닦아 내고 다시 밥을 차려왔습니다. 그 순간에 이 청년은 다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주님은 살아계셨습니다. 그 후 주님의 은혜로 청년의 폐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 청년이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일본이 자랑하는 사랑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입니다. 그는 고베와 도쿄에서 수많은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을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빈민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변비였다고 합니다. 항문에 변이 차돌처럼 굳어 있어서 배변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는 장갑을 끼고 손으로 변을 파내기도하고, 그래도 되지 않으면 더러운 빈민의 항문에 자신의 입으로, 차돌같이 굳어 있는 변을 침으로 녹여서 빨아내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일본 기자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에게 물었습니다.“당신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그는 대답하기를“저는 배운 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이신 나가노 목사님은 제가 각혈한 핏덩이를 닦아 주셨습니다. 그 분이 하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나중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의 빈민들을 위해 똑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장개석 총통의 부인인 송미령 여사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고, 그분을 모셔서 개인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한 이후 중국 땅에 살았던 일본인이 200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 중에 단 한 사람도 테러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천황의 항복 성명과 동시에 장개석 총통이 포고령 제 1호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철수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는 중형에 처한다는 것이 종전 이후 포고령 1호였습니다. 그 배후에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에 의한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개석은 말하기를“그간 일본이 자행한 일은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일본을 미워 할 수만은 없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한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 같은 고마운 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훗날 빙점의 저저인 미우라 아야꼬는 말하기를“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도 위대하지만 그 한 사람을 배출한 나가노 목사는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복음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마가복음 4장 31절~32절)는 말씀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보잘 것 없는 겨자씨와 같은 무명목사 한사람에 의해 폐병환자 가가와 도요히코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고베와 도쿄의 어두운 구석이 밝아지고, 패전 후 중국에 머물렀던 수많은 일본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복음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어떠한 어려움이 당한다 할지라도 결코 그것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4장 8절~9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쌓인다 할지라도, 어떠한 답답한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모진 핍박을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며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2007년 7월 31일자 일간지에“거지에서 병원장까지…남자 헬렌 켈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2007년 7월 31일에“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 올해 수상자로 김선태(66·실로암 안과병원장) 목사가 선정된 것입니다. 2007년 8월 1일 수상 소식을 접한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상금이 5만 달러(약 4500만 원)라고 합니다. 모두 시각장애인 의료시설인 실로암 아이센터 건립에 쓸 생각입니다. 헬렌 켈러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앞 못 보는 이들이 어둠을 헤쳐가게 도와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김선태 목사는 자신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에게 아름다운 별칭이 따라 다니는데“남자 헬렌 켈러”라는 것입니다. 절망에 절망을 헤쳐 온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숨 쉬는 드라마”로서 헬렌 켈러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때였다고 합니다.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김선태 목사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뚝섬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불발탄 폭탄이 터졌습니다. 함께 놀던 8명 가운데 7명이 즉사했고, 김 목사만 살아남았으나 눈에 파편을 맞아 양쪽 시력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이가 열 살 때였습니다. 얼마 후 폭격에 부모님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구박을 견디지 못해 결국 친척집을 나와서 거지가 되어 이집 저집 다니며 구걸로 목숨을 이어갔습니다. 엄동설한에 밖에서 잠을 자다가 동상에 걸려 한쪽 다리가 썩었다고 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니 상한 음식을 주어먹고 식중독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옻나무를 가득 쌓아둔 남의 집 창고에서 잠을 자다가 온몸에 옻이 올라 죽을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때 어느 할머니가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간호를 해주었습니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고, 성직자의 삶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병이 다 낫고 난후 할머니가 말하기를“나는 돈은 없지만 일평생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대신 너는 커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다오.”라며 권고했습니다. 김 목사는 그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고아원에서 살면서도 그는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점자로 공부하며, 하루 5시간씩 잠을 자며, 밥 먹는 시간까지 아끼며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박사 학위 3개를 따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습니다. 헬렌 켈러의 박사 학위가 3개라는 것을 알고는 나도 헬렌 켈러처럼 가난하고 앞 못 보는 이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박사 학위가 있어야 자신에게 현실적인 힘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16 군사혁명 이후 그에게는 대학갈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군사 정부가 새로 만든 문교부 정책이 장벽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국가고시를 봐야 했는데, 당시에는 앞 못 보는 사람은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문교부를 찾아가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문교부를 무려 32번이나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그는 배우고자 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자는 결심을 하고 무작정 문교부 장학과를 찾아가 자기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달라고 고함을 치며 막대기를 휘둘렀습니다. 

마침 그때 신문기자들이 그 자리에 와 있었습니다. 앞을 못 보는 그가 기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결국 기자들이 장관실로 데려갔고, 문교부 장관은 그에게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특전을 주었습니다. 그는 시험을 그 거쳐 숭실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숭실대를 졸업한 후 장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전공했고, 미국 매코믹 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훗날 명예 철학 박사 학위와 명예 신학 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헬렌 켈러 이후 처음으로 세 개의 박사 학위를 가진 시각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공부를 다 마친 그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점자 성경과 점자 찬송가를 소개했습니다. 또 앞 못 보는 젊은이 10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1986년에는 재계의 지원을 받아 서울 등촌동에 실로암안과병원을 설립했고, 지금까지 이 병원에서 개안수술을 받은 사람이 2만 7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또 실명 위기에 처한 35만 명에게 무료 안과 진료를 실시했습니다. 최근에는 46인승 리무진 버스에 안과 시설을 갖추고 돈이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김선태 목사가 가슴에 간직한 성경구절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의 말씀인“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안타까운 소경이 불행의 늪을 헤치고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 힘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5장 10절“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 즉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二. 복음에 대해 우리들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 18절~19절에“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우리와 화목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 놓으신 화목의 복음을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화목의 직책, 화목의 말씀이란,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불신자들이 돌아와 하나님과 화목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영혼구원을 위해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증거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맡기신 직책입니다. 복음 증거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복음증거의 거룩한 직책을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실히 감당했습니다. 이들은 복음증거의 직책을 감당하기 위해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렸습니다. 이 거룩한 생명의 복음은 유럽을 통해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복음의 파도는 마침내 동쪽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초대한국교회 역시 핍박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성도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처럼 복음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하나님과 화목하여 구원받은 사람보다는 하나님과 원수된 불신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화목의 직책을 감당해야 합니다. 입을 다물면 안 됩니다. 만일 복음의 입을 다문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입니다. 구약성경 에스겔 3장 17절~19절에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입을 다물고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 영혼이 죽는다면 그 피 값을 입을 다문 그 신자에게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밝히기를“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실 화 즉 저주가 두려워 부득불 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복음 증거는 지옥 갈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복음은 암흑에 처한 국가와 사회를 밝혀 복지국가가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불행의 늪에 빠진 사람을 성공과 행복의 자리로 인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도의 사명 즉 화목의 직책을 주셨습니다. 내 자신이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면 아니 됩니다. 누군가가 나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애쓴 것처럼 이 복음을 또 누구에겐가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우리들의 의무이며, 사명이며, 직책입니다. 이 사명 잘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