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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배로운 믿음 (벧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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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로운 믿음 (벧후 1:1~11)


1.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최고의 보배(寶貝, precious things)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요즈음 값이 급등하고 있는 금?, 뭐니 뭐니 해도 다이아몬드가 아니겠습니까? 신부들이 결혼 예물로 가장 받고 싶은 보석이 ‘절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다이아몬드라고 합니다. 다이아몬드는 모든 광물 중에서 경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그에 견줄 만한 경도를 가진 물질은 아직 없기 때문에 거의 영구 불멸하는 보석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Diamond)는 ‘정복할 수 없다’는 뜻의 헬라어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다이아몬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레소토에서 발견되어 “레소토의 약속”(Lesotho Promise)이라는 별칭이 붙은 다이아몬드로 120억 달러에 팔린 603 캐럿 다이아몬드 원석이라고 합니다. 이 다이아몬드는 21세기에 발견된 원석 중 최고 크기이며, 색조 등 품질면에선 세계 최고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이 다이아몬드 원석은 다듬어진 후 200억 원 가량에 다시 거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공개한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는 45캐럿의 호프 다이아몬드(Hope Diamond)인데, 그 추정가가 약 2천억 원이나 되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보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호프 다이아몬드를 소유한 사람은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이 보석이 ‘저주의 보석’이라고 불립니다. 이 보석의 원래 소유자인 페르시아 왕은 반란군에게 처형당했고. 이 보석이 다시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넘겨졌으나 그는 단 한 번 목에 걸어본 후 천연두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 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앙트네와트의 소유가 되었으나 두 사람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결국 이 보석은 영국 최고의 재벌인 헨리 필립 호프에게 넘어가 ‘호프 다이아몬드’(Hope Diamond)라는 새 이름을 얻었지만 호프가(家)도 곧 파산, 몰락하여 가족 모두가 비극적인 운명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희망’이라는 뜻의 ‘호프’ 다이아몬드는 그것을 소유하고 했던 사람들에게 희망보다는 오히려 ‘저주’를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불행이 너무나도 줄줄이 이어지자 1958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상 해리 윈스턴이 구입하여 이것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영구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재물과 보화를 좇는 ‘불나방 인생’의 종착역은 재앙과 죽음뿐인 것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보배’(寶貝, precious things)란 ‘아주 귀하고 소중하며 꼭 필요한 사람이나 물건’을 말합니다. ‘보배’(寶貝)의 한자 寶는 보배 ‘보’이고 배는 조개 ‘패’ 貝를 사용합니다. 조개 패(貝)를 사용하는 이유는 과거 금속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때 금속 대신 조개를 돈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보배로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이유로 돈이나 재물을 의미하는 글자에 반드시 조개 패(貝)가 들어갑니다. 따라서 무역(貿易), 매매(賣買), 저축(貯蓄), 배상(賠償) 등 경제 관련 용어에도 대부분 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뇌물(賂物)에도 돈이 빠질 수 없어서 조개 패(貝)가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뇌물에 대해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 16:19)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잠 29:4)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금이나 재물, 그 어떤 보석도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진정한 보배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 고린도 후서4:18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아니하는 것으로 인생을 영원히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 말씀에서 “믿음”을 가리켜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보배”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만이 인간이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죽음의 재앙과 저주를 받지 아니하고 구원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배로운 믿음”이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을 준다고 해도, 세계 최고가의 ‘호프 다이아몬드’를 준다 해도 이 믿음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권력과 높은 지위와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때로는 건강을 잃거나 재물을 잃어도, 이 “보배로운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성도가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권력이나 지위나 인기가 없어도, 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 믿는 성도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또한 믿는 성도들에게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시기” 때문에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큰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럽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낙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믿음을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하고 그 약속을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보배로운 믿음”으로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성취되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이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보배로운 믿음”은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음으로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마16:15-19)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와 같은 신앙고백, 즉 믿음은 베드로 자신이 공부하거나 갈고 닦아서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참으로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 즉 값없이 주시는 은사, 선물입니다. 그래서 “(살후 3: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죄사함을 받게 되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보배로운 믿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희생되어 피 흘리심으로서만 죄사함을 받게 되기 때문에 그 믿음을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합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죽음이고 그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죄의 삯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히 9: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구원을 위해 인류의 죄 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애굽 전역에 장자 죽음의 재앙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 전역을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무론하고 처음 난 자는 다 죽이는 재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사람에게는 죽음의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냥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어린양의 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재앙을 막아 주었습니다. 금은, 보석으로 문지방을 쓰고 문패를 달았거나 어마어마한 철대문을 걸어 잠궜다 해도 어린양의 피가 보이지 아니하면 사망의 재앙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보배로운 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입니다. 이를 베드로는 계속해서 

“(벧전2:4-8)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에게는 싫어버린 바 된 돌’이라고 한 이유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썩어지고 없어지고 불에 살라질 것들, 그리고 영원히 가지고 못갈 재물이나 보석을 보배로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 받아드리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보배로운 돌이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 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싫다고 버린 돌을 보배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들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그들이 지혜로운 자들이며 복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18-25)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보배는 세상에서 버림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보배는 세상에서 미련하다고 하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어린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만이 인간을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만이 사람들에게는 지옥형벌이 임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힘입어서만 사망 권세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4.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천국은 영원한 낙원이고, 지옥은 영원히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믿으면 죄 사함을 받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으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으로 지옥행이라는 집행절차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이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요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살후1:7-9)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인간을 영원히 행복하게 하는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경에 묘사된 대로 체험한 것을 간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길에 온 몸이 불타면서 온갖 견딜 수 없는 악취와 비명소리에 몸부림치지만 살인적인 악취와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를 피할 수 없고 물 한 방울 얻을 길이 없습니다.(눅16:19-31, 신32:22, 시11:6, 유7) 지옥의 한 생물이 지옥에 떨어진 사람을 면도칼 같은 발톱으로 껍질을 벗기고 살을 인정사정없이 찢어 빨래줄 같은 줄에 널어놓지만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같은 고통과 형벌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지옥에는 그야말로 피(생명)도 눈물(긍휼)도 없는 곳입니다.(신29:23,슥9: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에서 가장 심한 고통은 그곳에서 벗어날 길, 희망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지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죄 사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 회개하고 예수 믿을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믿지 아니한 사람들이 형벌받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죄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히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잠간이지만 천국과 지옥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낙원의 천국과 영원한 형벌의 지옥의 갈림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믿음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의 선악을 가리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지옥에는 사랑도 우정도 없습니다. 지옥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인정과 사정이 전혀 없습니다. 지옥에는 서로 이를 갉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옥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눅16:19-31)

온갖 사치향락을 일삼으며 호화스럽게 살던 어느 부자가 예수 믿으라는 전도를 멸시하다 졸지에 죽음을 당해 어마어마한 장례식을 치르고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 집에서 먹다버린 부스러기를 주어먹던 거지 나사로는 병약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죽자 연고자가 없어 가마니에 쌓여 공동묘지에 버려졌으나 예수 믿은 까닭에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진 부자는 엄청난 고통 중에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집에서 음식부스러기를 주어먹던 형편없는 거지였습니다. 그 부자는 생살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악취를 견디다 못해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달라고 호소합니다. 일생동안 한 번도 기도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하는 사람을 멸시하고 우습게 여기던 사람이 지금 지옥에 떨어져서야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 주여, 저 나사로의 손가락에 물 한 방울만 찍어서 떨어뜨려 주세요.” 한 바가지도 아니고 한 숟가락도 아닌 한 방울만…. 그러나 한 방울의 물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 부자는 한 가지 더 간청합니다. 아직 세상에 살아있는 자기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제발 예수 믿게 해서 자기처럼 지옥에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세상에 교회가 있고 목사, 전도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복음을 들으면 된다며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이미 지옥에 떨어진 사람에게는 그 어떤 회개나 기도도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고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때를 놓쳐버린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대하고 있는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하면 영원한 형벌밖에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지옥의 형벌 중 하나는 지옥에서 천국의 모습을 볼 수는 있으나 천국에 사는 사람은 전혀 지옥의 비참한 고통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간 부자는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를 보았지만, 천국의 나사로는 지옥에 간 부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인 폴 틸리케는 “지옥은 천국을 보면서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 곳”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른바 몸과 마음, 영혼에 걸친 3차원으로 고통을 당하는 기막힌 광경입니다.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은 법에 정해진 형기(刑期)를 마치면 석방되지만 지옥에서는 당할 만큼 형벌을 받았을지라도 죄 사함이 없는 곳이 때문에 결코 석방되지 아니하고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되는 곳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때를 놓쳐버린 사람에게 있어서 지옥은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밀러는 “지옥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완전히 두절된 곳이다.”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가운데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지옥은 무슨 지옥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결코 그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 죄와 상관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영광 가운데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히9: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밖에는 죄 사함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보배로운 피입니다. 그 피를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성도입니다. 


5. 그렇다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성도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성도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본문 5-11절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닮아 가는 성도가 되라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제이 피 모건(John Pierpont Morgan)은 미국과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자 독보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모건은 “신용이 없는 사람과는 그가 비록 예수님 나라에서 발행한 채권을 내놓아도 거래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즉 성품, 사람의 내면적인 가치가 성공의 열쇠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달리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무뚝뚝하고 융통성이 없어 보이는 ‘철물점 주인’같은 사람들이나 그런 지도자들보다, 멋진 옷을 빼입고 세련된 말투에 친절한 웃음을 짓는 ‘보석상’ 같은 사람들이 점점 더 활개치고 있지만, 진정한 성공을 거두는 것은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보이나 진실하고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이라는 것이고, 또 이런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라야 건강한 사회라는 것입니다.

 트렌디(최신 유행)한 복장에 세련된 매너, 게다가 감동적이고 현란한 말솜씨를 가졌으나 신뢰성이 없는 사람이 각광을 받는 사회라면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언어 구사 능력은 없을지라도 자신의 말에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심지가 견고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여론보다 진실과 진리 편에 서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가 건강한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 악이 성행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 편에서 사는 자가 궁극적으로 성공하고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옛날 미국의 어떤 믿음의 부부가 아들과 함께 서커스 구경을 갔습니다. 아주 어려운 시절인지라 큰 맘 먹지 않고는 갈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줄을 서서 표를 사려하는데 마침 줄 앞에 8명의 자녀를 데리고 와서 줄을 선 어느 흑인 가정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가정도 모처럼 온가족이 서커스 구경을 왔는지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 당당히 서 있었고 자식들은 서커스 구경에 흥분해 있었습니다. 이제 순서가 되어 앞에 있는 그 가정의 남편이 표를 사려는데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돈이 모자란 것입니다. 남편은 입장권이 그렇게 비싼 줄 생각을 못한 것입니다. 그때 뒤에 서있던 믿음의 부부 남편이 눈치를 채고는 얼른 호주머니에서 20달러짜리를 꺼내 그 당황해 하는 아버지 앞에 가서 땅에서 줍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돈이 여기 떨어져 있군요. 선생님 돈을 이렇게 흘리시면 어쩝니까?” 하면서 그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때 앞에 선 흑인 아빠는 눈치를 챘습니다. 그러면서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하면서 손을 잡고는 아이들과 함께 표를 사가지고 그 서커스 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그 뒤에 섰던 믿음의 부부는 서커스 구경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서커스를 본 것 보다는 더 기뻤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이웃을 향해 베푸는 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고 그 서커스를 보고 싶으나 한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는 믿음을 볼 수 있고 형제우애와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세상 사람과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신의 삶에 주님으로 모셨으면 주님의 마음과 성품을 가지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신명기 26:16-19을 보겠습니다.

(신26:16-19)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사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께서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여호와의 성민”,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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