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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거운 짐 (롬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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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 (롬 9:1~3)
  

오늘은 감리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회심 271주년 기념일입니다. 
웨슬리는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믿음 안에서 자랐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 수산나는 자녀의 신앙교육에 있어서 모범적인 분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주기도문을 암송하게 하였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신앙상담을 할 정도의 열정을 가졌습니다.
웨슬리는 이러한 어머니의 영향 아래서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 다닐 때에는 HOLY CLUB이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모임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미국 조지아 주에 가서 선교활동을 할 정도의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738년 5월 24일 그 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이 모이는 저녁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기를 보면,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8시 45분경 앞에서 누군가 마르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던 중 특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는 말씀을 듣는데
그의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분명히 예수님을 구주로 확신하게 되었고,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을 변화시킨 이 놀라운 회심 체험을 귀하게 여겨서 
우리는 매년 이 날을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이런 체험이 있기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웨슬리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확신이 없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역에 기쁨이 없고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웨슬리가 영적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는 위대한 전도자가 된 것처럼
우리도 이런 체험이 있다면 열심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해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로 바뀌게 된 데에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이 수제자 베드로가 된 데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의 체험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존 웨슬리 회심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영적 체험이 있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데 인색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며느리가 들어야 할 말씀인데 ……’
‘이 말씀은 우리 시어머니가 들어야 할 말씀인데 ……’
그래서 말씀을 듣고 은혜는 받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실천은 안 합니다. 
교회생활은 하지만 삶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부임을 해서 보니 교인들 중에서 도둑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랍니다. 
강가의 마을이었는데, 누군가 산에서 나무를 해서 뗏목을 만들어 보냅니다.
그런데 중간에서 그것을 몰래 도둑질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주일날 말씀을 통해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 후에 교인들은 모두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에 보니 여전히 뗏목을 훔치는 일을 계속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십계명에 나오는 말씀으로 만 들은 겁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는 ‘위에서 내려오는 뗏목을 훔치지 말라’고 설교했습니다. 
이제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듣게 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교인들은 그 목사님을 나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자기에게 적용할까요?
혹시 자기가 듣기 좋아하는 설교만 들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마음에 위안이 되고, 용기를 주는 말씀에는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하고, 경고하는 설교에 대해서는 설교자를 비난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은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면 바울이 이렇게 하고 싶은 참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말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배경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영성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와의 깊은 영적 교제’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쉽게 내 뱉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의 깊은 영적 교제 속에서 확신하게 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전하고 싶은 참말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인데, 이것은 양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1. 세상 어떤 피조물이라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8장)
2. 골육의 친척을 위한 소원 때문에 생기는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9장)

이것은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영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이것을 점검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1.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제가 얼마나 깊은가? 
깊은 교제가 있을수록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가까이하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사귀었어도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교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코드가 맞는다는 말은 바로 마음이 통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깊어지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2: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말에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정이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니까,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사정은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이 알지만,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면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깊은 영적 교제 있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부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마음이 부어지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 가사는 이렇습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2.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바울이 받은 주님의 마음은 먼저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서8장에서 외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8장 31절 이하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물며 아들을 내주신 이가 뭐가 아까워서 주시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 나를 믿어라. 의지하라’ 
바울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비록 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고, 가난 가운데 놓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확신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부어 주시면 이 확신 가운데 서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말기 바랍니다. 

3. 나는 믿지 않는 가족의 구원을 위한 소원이 있는가?

바울이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 속에서 깨닫게 된 그리스도의 마음은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흥분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심과 고통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근심과 고통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의 멸망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내 사랑하는 가족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은 근심이요 고통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런 마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부어지면 이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작용하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이 불쌍히 여겨지고, 안타까워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근심과 고통이 있습니까? 

바울은 얼마나 간절하게 소원하였는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렇게까지 말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이 마음이 있습니까? 
이 마음이 없으면 가족 전도라는 것이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더구나 별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으면 그 간절함은 더 줄어듭니다. 
나름대로 직장도 그만 하면 괜찮고, 돈도 잘 벌고, 건강하기도 하고 이것가지고 됐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게 살면 천국 갈 수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그렇게 살다가 지옥에 가도 괜찮다는 것입니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은 가족의 구원에 앞서서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렇게 살다가 지옥 갈 줄 뻔히 알면서도 내 버려둔다면 그것도 사랑입니까?
혹시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랬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분이 그렇게 인생을 마감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허탈감과 함께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그분과 가까운 친척이라 그의 고통을 알았고, 더구나 자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면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이는 자살방조죄에 해당됩니다. 
내가 직접 죽이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양심적인 면에서 엄청난 죄입니다.
결국 내가 그를 죽도록 내버려둔 것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겔3:17-21입니다. 
17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절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절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절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절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이 말씀은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 너무나 막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하라는 말씀을 부담으로만 듣지 마시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기준으로 삼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구원받은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확신에 차 있는가?
나는 믿지 않는 가족을 향한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가? 

주님께서 마음을 부어주셔야 이 모든 것에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부음받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부어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그 마음으로 믿지 않는 가족을 안타깝게 여기며
우선 그들의 구원을 간절히 소원하며, 이를 위해 기도하기 바랍니다.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도 최선의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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