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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듭난 사람들 (요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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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 3 : 1~15
제목 : 거듭난 사람들

    중학교 1학년때 유엔군에 갔던 사촌형님이 휴가를 오면서 밴드가 늘어진 스위스 시계를 선물로 주었는데 처음 보는 시계였습니다. 어른이 차는 거라 넉넉해서 손목에 차지 못하고 팔목쯤 찼지만 처음 시계를 받은 기쁨은 대단했습니다. 학교에 가지고 가면 친구들이 둘러서서 구경하며 그 시계줄을 자꾸 댕겨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고장이 나서 헐렁헐렁한 것을 차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자랑한 것까지는 좋은데 저녁이 되니 걱정이 되는 것이 이것을 어디에 놔두고 자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가져갈 것 같아서 자다가도 일어나서 보고, 학교체육시간에는 다 벗고 나가기 때문에 책가방에 넣어야 할지 선생님께 맡기고 가야할지 더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귀한 것도 시간이 지나니 어떨 때는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서 한참 찾느라고 야단인 적도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참 많고 그것을 가지게 될 때는 우리의 기쁨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얼마를 지나고 보면 소중한 것도 잊어버리고 귀한 것도 잊어버리고 그 의미를 상실한채 때로는 어디다 두었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놀라운 축복과 위대한 감동도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큰 사랑과 은총을 받고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았을 때 우리의 마음이 기쁘고 온 우주와 세계가,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창조하신 것 같았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새로운 임직에 임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이 특별히 나를 위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큰 사랑을 깨닫고 그 앞에 위대한 우리의 모든 삶을 헌신하며 우리에게 주신 직분의 고귀함을 늘 소중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그 소중함과 귀함이 우리에게 큰 가치나 감동으로 느끼지 못하게 되어진다고 하면 하나님앞에 나오는 것마저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요한복음의 가장 중심되는 귀중한 말씀으로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요,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 거듭난다고 하는 얘기는 특별한 종교인들의 경험으로만 이야기하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독교가 말하고 있는 정신을 본받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보다 더 성숙한 인격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껍질핥기입니다. 롬 8장 9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거니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요, 그는 다만 기독교의 종교인입니다. 
    6.25가 난 이후에 많은 고아가 생겨났습니다. 이름과 생일을 물어보면 잘 모릅니다. 또 이름과 성은 알아도 생일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고아원 원장님은 고아원에 들어온 날을 생일로 합니다. 고아원 원장의 아버지의 성이 그들의 성이 됩니다. 오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므로 그들은 구원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 거듭났는지 거듭남의 기쁨과 축복이 무엇인지 때로는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믿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다신한번 마음에 새기는 감격과 감동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듭남, 그것은 위로 나는 일이고 새로 나는 일입니다. 거듭남은 그리스도인의 필수 사건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앞에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특별히 오순절계통에서나 하는 이야기고 우리장로교는 말씀중심으로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며 말씀을 따라 살면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지성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지 마십시오.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나지 않는 사람은 다만 종교인일 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 하는 무거운 율법적 교훈이 됩니다. 거기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나오는 자는 그리스도안에서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이 귀한 비밀을, 당대에 위대한 정치의 지도그룹이었던 70명의 유대인중에 한사람인 유식한 니고데모도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랍비여, 당신은 하늘로부터 온 자입니다. 하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을 행할 수 없습니다’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늙었다고 다시 부모의 배에 들어갔다가 나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내가 양심대로 살고 내가 선하고 의롭게 행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로 우리가 언제 거듭났는지 모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섬겨 위로부터 난 자는 거듭난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거듭남입니다. 이것은 바로 육체적 탄생이 부모로부터 오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하였습니다. 오늘도 교회안의 많은 엘리트들은 이 말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숙한 인격이 되어지고 많은 사람을 사랑하여 보람되고 아름다운 일을 할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나야 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일을 하기전 가장 선결되야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전 5장 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보다 더 깨닫고 구하여 어떤 결과에 이르고 더 발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새로 창조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것은 새로운 실제적 경험입니다.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몸과 영혼, 우리의 삶이 그 말씀안에서 새로 태어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경험의 종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머리로 이해하여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믿지 않고 깨달음은 기독교의 철학이 되기 쉽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어질 때에 생명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양분이 되고 힘과 용기가 됩니다. 거듭남이 곧 새로운 탄생, 창조를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고민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답게 사는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진 삶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다움으로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와 주님과의 대화속에서 밝혀 놓으신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일러주신 기독교의 위대한 복음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똑똑한 자이던지 어리석은 자이던지 죄인이든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든지,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과 성령의 인치심을 통하여 거듭나게 되어집니다. 
    여러분의 윤리적 척도와 인격의 성숙함을 가지고 측정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어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2000년전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가 내 죄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그가 부활하심과 그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총때문에 이 자리에 모여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드려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배가 율법이 되어집니다. 좋은 일 많이 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천국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은 그들의 삶의 가치와 역사관과 우주관이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확대되어지고 그것을 더 얻기 위하여 예수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안에 있는 가치때문에 우리의 주어진 삶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와 그 수고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질 때 의미와 보람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안에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찬송하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세례란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구별하심입니다. 그 구별하심을 가르켜 ‘거룩하다’하며, 우리가 죄가 없어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성찬을 위하여 흰 보를 씌워 가리워버리듯 우리의 연약과 부족을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로 덮어 우리를 의롭다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게하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셨으니 우리가 어찌 죄를 범하리요, 이 큰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은혜를 잊으리요, 이것이 성도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안의 중생을 경험하게 하시니 우리가 떡을 받을 때에 나를 위하여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을 생각하고, 잔을 받을 때에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피흘림의 언약의 약속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내가 올 때까지 이 일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오늘 이 성찬을 행하면서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 사람 나의 양식과 삶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제 내 몸 가운데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이니라’ 이런 확신과 감동과 또한 놀라운 영육간의 유익한 경건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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