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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안에 있는 사랑 (롬 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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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안에 있는 사랑 (롬 5:8~11)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맛보는 최고의 기쁨은 사랑의 기쁨입니다.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합니다. 그보다 더 큰 행복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할 때 찾아옵니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쁘고 만족스럽습니다.  사랑은 인간 최고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외모를 가꾸는 것도, 재능을 갈고 닦는 것도, 능력을 과시하는 것도 사랑받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사랑을 잃어버리게 될까봐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합니다. 가정에서는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싶어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싶어합니다.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하고, 교회에서는 목회자와 지체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삶의 다른 부분에 문제가 없어도 사랑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해결되어도 사랑의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을 기대한 사람에게 외면을 당하거나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왠일인지 나에 대하여 험담을 하고 다닙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헛소문을 냅니다. 그 사람을 만나 대화로 풀어보려고 시도하나 외면당하고 거부당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를 사랑해 주어도 내가 사랑을 기대한 사람중에 한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때문에 기쁨이 다 사라지게 됩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을 생각하며 행복해하기 보다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 한사람을 의식하게 되고 불행하게 여겨집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 한사람을 생각하며 괴로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배워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는 지혜를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 배워야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의 교과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사랑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우리가 성경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사랑의 지혜가 충만해집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사랑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1. 예수안의 사랑은 장점을 찾아내는 능력입니다.(8)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내 맘에 드는 사람에게만 잘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좋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좋아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수없이 사랑하라고 반복하여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사랑의 대상에 제한이 없습니다. 부부간에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 자식간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사랑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의미의 사랑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까?

성경적인 의미에서 사랑은 그 사람의 좋은 면을 먼저 보고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마다 모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람을 가리켜 나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그와 내가 현재 관계가 나쁘거나, 관계가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가 나빠지면 나쁜 이미지가 형성되고 나쁜 면을 먼저 생각하며 나쁜 점으로 그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좋은 관계속에서는 그 사람도 얼마든지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면을 생각하고 좋은 점을 먼저 생각하며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쁜 관계속에 있던 사람이 어느날 오해가 풀리고 화해를 하므로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면 모든 것이 좋게 보이기 시작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능동적으로 상대방의 좋은 면을 먼저 바라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가지 나쁜 면을 소유한 사람이라도 좋은 면을 통해서 그 사람을 바라보려고 하고, 좋은 점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며, 그 사람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면을 중심으로 말한다면 관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랑은 좋은 면을 찾아내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좋은 방향을 집중하여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 때 인생이 크게 달라집니다. 만일 학생이 선생님의 좋은 면을 찾아내고 좋은 면을 먼저 바라보며 나쁜 면을 좋은 면에 묻히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공부가 재미있어질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학생의 좋은 면을 발견하고 좋은 면을 중심으로 평가하기 시작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교회의 좋은 면을 찾기 시작하고 목회자와 교인들의 좋은 점을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배가 즐겁게 바뀝니다. 설교가 재미있어집니다. 교회가 멀다고 여겨지던 사람이 교회가 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교회를 자랑하는 빈도가 크게 증가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을 활기차게 하며 인생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하셨다고 말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슴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가 사랑스러운 점이 많아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슴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잘못하고 죄를 범했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때문에 우리를 미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더러운 죄를 당신의 피로 덮어 보이지 않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잘못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기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허물이 없는 의인이기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죄와 허물을 보배로운 피를 흘려 다 가리워주시고 의롭게 바라보시는 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랑스러운 점이 하나도 없어서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조그만 잘못도 크게 바라보고 그 허물을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작은 잘못에 집중하다보니 그의 모든 장점과 좋은 면이 다 묻혀버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허물이 많은 사람들도 귀하게 쓰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모두 허물이 있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얼마나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까? 예수님을 형편없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랑하셔서 위대하게 쓰셨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도마 모두 실수하고 약점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하시고 위대한 사도로 세우시고 큰 능력을 주셨습니다. 

결혼전에는 아내의 모든 면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럽게 여겨져서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단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맘에 들지 않고 못마땅하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다투게 됩니다.  결혼을 하고나서 아내가 달라진 것입니까? 결혼을 한 후 아내나 남편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결혼전이나 결혼후에나 아내와 남편은 본래 그 사람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느낌이 달라진 것입니까?  결혼전에는 장점을 먼저보고 장점에 약점을 비추어보니까 매력이 만점인 훌륭한 여자와 훌륭한 남자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결혼후에 오래 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약점을 먼저 보게되고 약점으로 장점을 바라보니 매력없는 시시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넘치면 좋은 면이 더 크게 보입니다. 그 사람에 대하여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할 때 좋은 면을 이야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의 허물과 약점까지도 다 알고 있어도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작게 여기고 별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사랑이 식으면 허물과 약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약점과 허물만을 생각하고 크게 바라봅니다. 그리고 허물과 약점만을 가지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완벽한 교회가 아닙니다. 성장하고 있지만 부족함을 많이 안고 있습니다. 어떤 교인이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면 교회의 좋은 부분만을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만나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먼저 좋은 점만을 이야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교인중에 교회에 대한 사랑이 식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리 교회의 좋은 점을 알고 있지만 못마땅한 부분을 먼저 바라보고 거의 그런 점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교회의 문제, 교인의 허물 등을 말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다 사용할 것입니다.  똑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말할 것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좋은 면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정말 허물이 많고 약점 투성이의 인간인줄 아시지만 죄와 허물을 먼저 찾지 않으시고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을 찾아내시고 좋은 점을 통해 우리를 평가하시려고 하시며 사랑스럽게 바라보셨습니다.  우리도 가정안에서, 교회안에서, 사회안에서 먼저 좋은 점, 칭찬한만한 아름다운 점을 찾아내고 좋은 면에 의해 전체를 바라보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안에 깊이 들어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깊이 빠져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안에서 사랑이 충만하게 되어 세상에 사랑을 널리 확산시키시기 바랍니다.   

  
2. 예수안의 사랑은 화해하는 능력입니다.(10)
  
사랑이란 다툼가운데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랑하며 낭만적인 감정에 빠질 수는 있으나 낭만적 감정이 사랑을 구성하는 충분한 요소는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세상에 좋은 것을 보면 먼저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좋은 것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행복한 감정에 젖게 됩니다. 특히 이전에 매마른 인생을 살던 사람일수록 낭만적인 사랑이 빠지면 더 황홀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얼굴이 곰보라도 보조개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하다가도 서로 다투기도 합니다. 사랑을 하면 싸우지 않아야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면서 왜 싸울까요?  사랑하면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고 싶어합니다. 서로 오랜 시간 함께 있기 때문에 싸울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주 만나기 때문에 싸울 일이 그만큼 많습니다. 일년에 한 두 번 잠간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이라면 싸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일평생 따로따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성격이 각기 다릅니다. 취향도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붙어 있으면서 어떻게 부딪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충돌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다가 싸웁니다. 우리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어떤 순간에는 심하게 다투고 이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나와 잘 맞지 않는구나! 하며 갈라서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수십 년 금슬이 좋았던 어떤 부부에게 물었답니다. "혹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남편은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 한번도 없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살인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은 있습니다만, 이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다툼이 적으나 결혼하여 함께 살다보면 부부간에 종종 싸우게 됩니다. 말의 실수로 싸우게 됩니다. 서로 다른 점을 조화하지 못해서 싸우게 됩니다. 서로 집안 이야기까지 하며 다투면 문제는 아주 복잡해집니다. 문제는 다툴 때 보이는 반응입니다. 사랑에는 다툼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싸우며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툼을 통해 다음 단계의 사랑을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됩니다.  다툼의 과정은 조율의 과정입니다. 수십 면 동안 다른 생각과 다른 습관으로 살았기 때문에 조정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낭만적인 기분이 아니라 화해의 능력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관계에 있던 우리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 화해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 미움을 받고 쫓겨날 우리들을 화해시켜  하나님의 상속자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로 살며 저주아래 놓여 멸망당할 우리를 축복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결혼의 상대로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누군가와 사귀는 가운데 싸울 수 있습니다. 사귐이 깊어질수록 다툴 가능성은 높습니다. 그 때 다툼을 극복할만한 화해의 능력이 확인된다면 그 사람과 결혼하여 잘 살 수 있습니다. 참 사랑이란 한 때의 낭만적인 기분이 아니라 화해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화해의 능력임을 알고 다툰 후에 화해할 줄 아는 사람이 믿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교회생활을 잘 하며 다른 사람들과 더 깊은 사랑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다툼속에서 더 깊어집니다. 문제는 우리가 다툰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화해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화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늘 같은 문제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싸운 문제가 평생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화해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싸움을 통해서 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만드시 많이 화해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싸운 숫자만큼 화해하면 충분합니다. 
  
행복한 가정일수록 잘 싸웁니다. 서로 친밀하기 때문에 싸울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불행한 가정이 적게 싸울지도 모릅니다. 서로 대화하지 않고 서로 상대하지 않으면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화해의 능력을 기르지 못한 것이 문제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잘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좋은 면을 먼저 보고 좋은 점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한 때의 낭만적인 기분이 아니라 다툼을 극복하고 화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모두 더 성숙한 사랑을 하며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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