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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 매핑(14) : 제자 디모데 (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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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 매핑(14) : 제자 디모데 (행 16:1~5)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하면 바울 사도를 손꼽는 일에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바울 사도를 직접 만나 당신은 어떻게 짧은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느냐고 질문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내가 한 일의 거의 대부분은 나의 제자 디모데가 내 곁에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빌2:19-20에서 디모데를 빌립보로 보내기로 하면서 “너희 사정을 디모데보다 더 잘 진실하게 살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서 빌2:2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디모데가 내게 그리고 나의 복음 사역에 그렇게 동참하였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이보다 더 의미 있는 발언이 가능하겠습니까? 바울은 그의 마지막 유언 같은 두 차례에 걸친 편지를 디모데에게 남깁니다. 그것이 바로 디모데 전후서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신약 성경의 적지 않은 부분이 바로 바울의 서신서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의 편지 중에 6개가 바울이 혼자 쓴 것이 아니라 디모데와 함께 공동으로 쓴 편지임을 아십니까? 고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 그리고 빌레몬서등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 지난 주일에 이어 가정을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됨에 있어 두 가지 유형을 생각합니다. 하나는 바울 형으로서 예수님을 모르는 상황 속에 살다오다 어느 날 갑자기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영향권에서 자라오며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또 다른 사례를 말할 때 대표적으로 디모데 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가장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자녀들이 디모데 같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입니다.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루스드라 지방에서 걷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을 치유하는 등의 기적을 행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그 때 거기서 바울이 처음 디모데를 만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이 여행의 목적을 1차 전도여행을 했던 곳을 다시 방문하며 복음을 받아드린 이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함에 두었습니다. 

행15:36입니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그래서 이번에는 수리아 안디옥에서 육로로 루스드라에 도착합니다.(지도 참조) 그리고 본문이 시작됩니다. 

행16:1-2을 다시 읽겠습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자, 여기 디모데에 대한 두 가지 표현을 주목하십시오. 

1절에는 제자 디모데라 했고 2절에는 칭찬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이런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도 디모데처럼 칭찬받는 주의 제자로 자라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칭찬받는 제자 디모데로 자라가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홈 스쿨링의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디모데가 좋은 제자로 성숙해간 첫째 배경은 그의 가정, 홈이었습니다. 물론 디모데의 경우 그의 어머니의 신앙의 영향이 깊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경은 디모데의 어머니의 경우 ‘믿는 유대 여자요’라고 강조한 것을 지나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제 바울 사도가 딤후1:5에서 디모데에게 직접 보낸 편지에서 기록하는 바를 주목해 보십시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의 신앙의 유산은 그의 외조모 때부터 시작되고 있었고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은 이 대목을 ‘성실한 믿음’(sincere faith)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실한 믿음의 어머니, 외조모가 디모데를 있게 한 배경이었던 것입니다.

사실상 홈은 우리가 인생으로 태어나 첫째로 경험하는 학교이며 어머니와 아버지는 인생의 첫 번째 교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위 학교 교육은 대체로 만 5세가 되어야 시작되지만 심리학자들은 그때 이미 교육의 80는 이루어진 상태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인생의 영향은 바로 우리 부모에게서 유래하고 있다면 이런 부모의 가르침이야 말로 오늘의 내 인생의 기초이었음을 확인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 날 우리 시대의 부모들이 교육의 책임을 학교나 교회, 사회에게만 전가하고 가정에서의 일차적 교육의 책임을 기피하는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가정에서의 교육에 책임을 다하려는 홈 스쿨링을 지원하기로 결의하고 적지 않은 분들이 이제 홈 스쿨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 교육을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대안을 찾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미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시대 성서적인 교육의 대안으로 홈 스쿨링에 참여하는 운동에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부모님들이 조금만 헌신하면 적은 비용으로 가족들이 헤어져 사는 비교육적이요 비 성경적인 기러기 교육의 대안으로 이 홈 스쿨링이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로 이런 홈 스쿨링의 산물이었습니다. (홈스쿨링 학생의 간증)

2. 멘토링 교육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 제자 디모데의 삶과 신앙을 만든 요인은 멘토링이었습니다. 이 멘토링은 디모데가 바울같은 스승을 만남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세 가지 만남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와의 만남, 또 하나는 배우자와의 만남,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첨부한다면 좋은 스승과의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이 좋은 스승, 좋은 배우자를 만나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바울과의 만남은 얼마나 중요한 만남이었는지요? 

바울은 이미 제1차 전도여행을 통해 디모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제2차 전도여행 때 다시 루스드라에서 그를 만나 그를 그때부터 제자로 삼고 전도여행에 동반자로 삼습니다. 아마 그때 까지 경과된 한 이년의 기간동안 그의 가능성과 신뢰성을 성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2절의 말씀처럼 그가 그의 삶의 마당에서 ‘칭찬 받는 자’임을 확인하고 그를 제자로 영입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디모데에게 바울은 바로 멘토였고 디모데는 바울의 멘토링의 수혜자가 된 것입니다.

멘토라는 단어의 유래를 아시지요? 멘토(Mento)는 본래 그리스 신화 오딧세이에 나오는 이름입니다. 주전 1200년경 고대 그리스 이타이까 왕국의 왕 오딧세이가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며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왕자)을 자기가 가장 믿을만한 친구에게 맡기고 떠나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멘토였습니다. 

오딧세이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약 10년간 멘토는 왕자의 친구로 스승으로 그리고 상담자와 부모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후로 멘토라는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를 통칭하는 단어가 됩니다. 따라서 멘토링(Mentoring)이란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의 인생을 세워주는 일련의 과정을 뜻하는 말이 된 것입니다. 학교나 교회는 이런 멘토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부모들은 부모로서의 약점이나 한계를 넘어서서 우리의 자녀들이 좋은 영향을 받기 위해서도 자녀들의 멘토링 교육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멘토를 만나도록 기도하십시오.

3. 쉐마-성경 교육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의 어머니가 혹은 바울이 디모데의 멘토로서 그를 양육할 때 무슨 교과 과정으로 영향을 끼쳤을까요? 그 정답은 성경 교육이었다고 확신합니다. 바울이 딤후3:14이하의 말씀에서 말한 바를 확인하십시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라” 디모데는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을까요? 

딤후3:15을 읽겠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절까지 읽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기서 모든 성경은 무엇을 뜻할까요? 사실 바울이 이 말을 기록할 때 아직 신약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로 구약이었고 이 구약의 교훈을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쉐마’라고 불렀습니다.

만일 우리가 유대인들에게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지체없이 신6:4-7을 말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오늘 날 내가 네게 명하는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 

이 달의 추천도서로 올린 “부모여 자녀를 제자 삼으라”는 책에서 저자인 현 용수 목사님은 이 말씀을 ‘수직적인 지상명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수평적 명령인 이웃들에게 전도하는 명령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그 만큼 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수직적인 제자훈련 곧 쉐마 교육에 무관심했다고 지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제자 디모데를 데리고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할례를 받게 한 것도 한편으로는 그가 앞으로 유대인들에게 전도할 때 장애요인이 되지 않게 위해서 였지만, 또 한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율법을 중시한다는 간증을 낳기 위해서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현 용수 목사님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수직적 선민 교육은 대부분 구약 성경의 쉐마와 관련이 있다. 유대인은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혈통적 자녀에게 율법(말씀)을 전수시켜 그들을 말씀 맡은 자로 키워 영적인 말씀의 제자로 삼는 선민 교육을 가장 잘 실천한 민족이다. 이것이 그들의 생존의 비밀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의 중심 주제가 구원을 위한 복음이라면 구약의 중심 주제는 선민 교육, 쉐마 곧 기독교 교육이라고 말할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신약의 중심 주제인 복음이 구원의 열쇠라면 구약의 중심 주제인 쉐마는 자녀 교육의 열쇠라고 말할수 있다.” 바로 이런 쉐마 교육을 등한히 한 것이 오늘 날 많은 기독교 가정이 자녀들을 믿음으로 세우지 못한 원인이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쉐마-성경 교육이 우리들의 가정에서 시급히 회복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의 영향력있는 부흥 전도자 M.B. 윌리암스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큰 신앙 대회를 앞두고 <가정과 성경>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기에 앞서서 찬송 인도자였던 찰스 틸만(Charles Tillman)에게 주제가 작곡을 부탁하자 그러면 “목사님이 작사를 해 주시지요”라는 요청을 거꾸로 받게 됩니다. “제가요?” 하고 눈을 감은 순간 그 앞에는 어린 시절 자기를 무릎위에 올려놓고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하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는 바로 성경책 뒷장에다가 떠오르는 시상을 글로 쓰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나의 사랑하는 책’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4)그때 일을 지나고 나의 눈에 환하오 어머니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 합니다. (후렴)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교우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성경으로 교육한 부모들에게 감사하면서 우리도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기를 결심하는 오늘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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