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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일을 보리라! (요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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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 1 :1~13
제목 : 큰 일을 보리라!  


요 1장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우리가운데 함께 하시고, 예수님이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심을 증거하는 세례요한이 예수님 머리위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을 따라가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오게 됩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따라가고 다시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안드레가 시몬베드로 그의 형을 전도함같이, ‘와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보고 말하기를 ‘모세가, 선지자가 우리에게 일러준 메시야를 우리가 만났다 곧 나사렛 예수 요셉의 아들이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뭐 선한 것이 나겠는가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였고 정치의 도시였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는 곳이었지만 갈릴리 나사렛 천민들이 살고 여러민족이 엉기어 사는 천한 곳인데 거기서 무엇이 나겠느냐’하였지만 예수님이 나다나엘이 나아 오는 것을 보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속에 간사함이 없다’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깜짝 놀랐습니다. ‘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무화과나무밑에서 너를 보았는니라.’ 
   
아마 나나나엘은 자신이 빌립의 인도로 예수님께 나아온 줄 알았으나 예수님은 이미 나다나엘을 알고 있었고 그를 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사건,사건을 통하여 우리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의 말씀이 넘칩니다. 우리가 때로는 전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교회에 나옵니다. 내가 필요해서, 친구의 도움으로, 또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나오기도 하지만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말하기 전에 나다나엘이 무화가 나무에 있을 때에 예수님이 먼저 보았던 것처럼 주님의 우리를 먼저 보시고 먼저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나다나엘이 놀라서 ‘선생님이시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는 곧 자기의 마음을 다 살피시는 그리스도인의 전지하심을 인하여 그의 거룩한 말씀앞에 굴복하고 맙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가 무화과나무밑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는 것을 그렇게 놀라느냐 앞으로 네가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큰 일을 보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눌 때에 늘 하나님안에서, 주님과의 만남속에서 더 큰 일을 보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큰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크다고 하는 말에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서부터 좀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오늘의 삶이 더 발전하고 잘 되기를 기대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를 가지면 두개를 가지고 싶어하고 또 얻으면 더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욕망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바람이 아니어도 사랑하는 성도들도 주님을 섬기고 믿음의 생활을 하되 온전한 믿음의 생활로 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보다 더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요 제목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늘 그리스도안에서 늘 발전하고 전진하고 성숙해감으로 말미암아 큰 일들을 보는 기쁨과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믿는 재미도 있고 살아가는 맛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할지라도 늘 그 자리에 머물고 늘 그것이라면 권태스럽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거기가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져 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새로움을 경험하고 성숙함을 맛보고 전진하는 복된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더 큰 무엇을 보리라하였는가, 51절 말씀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더 큰 것을 보리라 더 큰 일을 보리라’ 
   
   첫째, 열린 하늘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온갖 힘을 쓰고 노력을 기울이고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최선입니다. 그러나 모든 놀라운 열정과 지식, 능력, 힘, 맘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하늘을 닫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닫으니 3년 6개월 비가 내리지 아니함으로 이스라엘은 기근속에 헤메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고 똑똑하고 건강해도 하나님이 하늘을 닫으면, 구원의 손길이 붙드시는 은총이 그를 떠나면, 아무런 큰 지식도 건강도 우리의 모든 것이 쓸모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열린다고 하는 말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모든 피조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궁극적 말씀입니다. 나다나엘이 주님앞에 나올 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큰 것 보리라 하늘이 열리는 것을 네가 보게 되리라’ 
   
여러분 여기에 무엇을 보러 나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광야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무엇을 보러왔느냐 화려한 옷을 입으러 온 사람을 보러왔느냐 왕궁에 가보라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기에 많으니라 너희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를 보러 나왔느냐’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에 무엇을 기대하며 나왔습니까? 목사의 말을 듣기 위해서입니까? 사람의 소리를 들으러 왔습니까?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문이 열리는 비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 28장 10절에서 22절에 이 사건을 경험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이라고 하는 사람, 그는 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배고픈 약점을 이용했습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사람이 그렇게 얍삽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받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찌 한꺼번에 두아들의 생명을 잃겠느냐 너는 외가로 도망가라 야곱이 도망을 갑니다. 

그는 광야에서 돌을 주워 베개로 삼고 하늘을 지붕삼고 동서남북을 벽으로 삼아 찬이슬을 맞으며 광야에 내어 쫒김을 당하고 도망가는 신세로 누워자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서 남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복받고 행복하고 돈벌고 지위얻고 잘살려는 야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늘의 문을 열어 보게 했습니다. 그때 하늘을 보니 하늘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하늘로부터 땅에 닿았는데 주의 사자가 그 위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거기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아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네게 복을 주리라 그리하여 정령 네가 다시 돌아올 것이요 네가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늘이 열렸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요즘 모두들 답답해합니다. 힘으로도 아니되겠고 능력으로도 지혜로도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도 해결의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가 그러하고 나라가 그러하고 그래서 모두가 몸부림을 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궁극적 대답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축복과 놀라운 은총은 하늘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하늘이 열려야 삽니다. 나다나엘에게 ‘내게로 오라 그러면 큰 일을 보고 하늘이 열리게 되리라’하셨스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안에서 열리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늘이 열렸다 할지라도 땅을 내려다보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밑엣 것을 찾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 그러므로 너희는 얼굴을 들어 여호와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새 힘을 주시리라’ 여러분 이시간 머리를 들어 여호와를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하늘과 땅에 닿는 사닥다리에 주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벌떡 일어납니다. 깜짝 놀라서 두려워 떱니다. ‘나는 쫒기는 자요 도망가는 쓸모없는 불쌍한 사람인줄 알았더니 내가 누운 메마른 땅 여기가 하나님의 성전이구나 하늘의 문이로구나’ 놀라운 깨달음이 그에게 주어집니다. 하늘의 문이 열릴 때에 메마른 광야가 하나님의 전이 됩니다. 답답하고 쫓기는 신세가 하늘의 문을 향하여 서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일터와 조건들을 원망하고 만족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남의 환경을 부러워하고 열악한 환경과 메마른 땅에 자기만이 있다고 원망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거하시는 장소,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이 탄식하며 쫒기는 그 곳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될 수 있고 하늘의 문이 될 수 있는 놀라운 지혜와 발견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시련과 역경이 꼭 아름다운 결과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시련 역경 그리고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기회를 줍니다.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아니면 태만하기 쉽고 좌절하기 쉽고 그 자리에 앉아 안이한 생각속에 잠들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하마’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입니까? 나다나엘에게 용기가 되고 새 힘이 솟아났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드리며 뭘 기대하고 나오십니까? 마음에 위로나 받으러 나오십니까? 그 이상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그의 살아계심과 상주심을 믿어야 할지나 예배를 드리면서 기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 그가 내게 상을 주실 것이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치 닭우는 소리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상기했던 베드로처럼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내 신앙의 간증과 내게 주신 은혜로 내가 이 말씀을 듣는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각자에게 주시는 음성들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을 듣고자 그 은혜를 받고자 긴장된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주님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가 되게 하십시다.

   
두 번째는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주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 주의 사자들은 하나님이 부리는 영적인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따라 오너라 벙어리가 말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고 장님이 눈을 뜨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리라, 더 큰 것을 보리라’ 오늘도 살아계시는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고 새로운 일을 창조하시는 자이십니다. 놀라운 능력의  창조의 역사가 우리 각자속에 경험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경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들이 모여서 교회에서 무엇을 하는가, 교회라고 하는 특수집단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이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시고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과 주시는 놀라운 감동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의 사자들이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사람들이 일하지만 그들를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일하는 것을 보십시오. ‘네가 이 모든 것을 보리라’ 구원의 경험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얼마 나 고상하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우리가 주님을 닮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내가 보리라 우리가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를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보다 확실한 지식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기쁨의 샘이 없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은 환상으로만 그쳐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을 만나고 이 구원의 경험해가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경험은 무엇입니까? 죄의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할 때에 우리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사죄의 은총을 바라며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허물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라’ 할렐루야!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래전에 한 청년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생각하기에도 참으로 끔직스럽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정말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까?’ ‘성경에 어떻게 써 있는가’ ‘회개하면 용서받는다고 합니다’ ‘회개했나?’ ‘예’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죽어도 나를 용서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꾸중을 했습니다. ‘건방진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이 너를 용서했다는데 네가 무슨 권리로 네 죄를 스스로 용서하기도 하고 용서못하기도 하느냐 네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흰눈같이 씻어주고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옮길 것이요 내가 네 죄를 기억도 하지 아니하리라 너를 만드신 하나님이 네게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뭐가 되느냐 하나님이 실언을 하셨느냐 하나님이 능력이 없느냐 그를 믿어야 하느니라’. ‘예 목사님 알겠습니다 그러면 용서해 주신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 죄를 용서하셨느니라’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말씀이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말은 죄의 삯인 사망에서 우리를 살렸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썩을 것을 영원히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나님의 증오의 대상이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더러운 육체가 주님안에서 씻음을 받아 우리의 모든 죄와 질고를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살아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나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저희를 해방하였느니라’
    
그리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고 주가 내안에 내가 주안에 거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자신에게서부터, 원수에게서 사탄 죄의 능력에게서부터, 죽음의 불안에서 해방되어진 하늘의 평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가 큰 것을 보리라 구원을 경험하리라.’
  
 여러분 매일매일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완성은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빈곤가운데서 우리를 일으키시고 죄악가운데서 우리를 깨끗케 씻으시고 무서운 병마가운데 우리를 치료하시고 건지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다나엘아 내게 오라 네가 큰 것을 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안에 큰 것을 보았던 은혜를 하나님앞에 감사함으로 간증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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