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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 (막 1: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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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 (막 1:14~20)


어느 성당에 신부에게 한 자매가 찾아와서 고해성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부가 물었습니다. “자매님은 어떤 죄로 인해서 왔습니까?” 자매님은 “예! 남들이 그러는데 제가 교만하다고 그럽니다.” “어떻게 교만한데요?”하고 물었더니 “제가 너무 예쁘잖아요. 제가 예쁘니까 저보다 못생긴 사람들을 너무 멸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해성사를 하러 왔습니다.” 신부가 창문 틈으로 밖의 이 자매님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 마디 결론을 내려주었습니다. “자매님! 착각은 병이지 죄가 아닙니다.”

우리도 종종 착각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경험은 하고 있지만 가보진 못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종종 혼동하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지 우리가 이 시간 함께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서른 살이 되셨을 때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사십일 동안 금식하시고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그 이후 요한이 헤롯왕에게 체포되어서 죽임을 당했을 때 예수님이 본격적인 복음 전도활동을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에도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했다고 나옵니다. 어떤 복음을 증거했을까요? 오늘 본문 14절, 15절 말씀을 읽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때가 무르익었다. 종말의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신학교에 배울 때,already not yet.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들을 내어쫒을 때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지 않는 영역은 마귀가 통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지배하고 다스리던 곳에서 마귀를 내쫓을 때 거기는 하나님의 영역으로 복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귀신을 섬기고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고 우리 마음속에 복음이 전해질 때 우리 마음속에 귀신들이 떠나갔습니다. 먼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같이 있는 가정공동체, 가족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교회에 임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분명 여기에 능력으로 임해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오늘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할 때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그렇다. 내가 유대인의 왕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만약 내 나라 이 나라에 속했더라면 내가 천국천사들을 불러다가 너희들을 멸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질서와 다른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한 나라가 성립되려면 왕이 있어야 합니다. 다스리는 자. 대통령이던지 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있어야 합니다. 백성이 없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왕은 누구입니까? 우리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럼 우리 영토는 어디입니까? 그 영토는 이 세상에 속해있지 않습니다. 그곳은 바로 눈에 볼 수 없는 나라요, 능력의 나라요, 그리고 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지만 그곳은 영적인 나라요 그 나라는 영원한 천국에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혹은 성경에는 하늘나라라고 말합니다. 혹은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 나라는 이미 복음이 있는 곳에 그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가 앞당겨지기 위해서는 복음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나라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성경에도 잔치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왕이 잔치를 잘 준비해 놓고 초대장을 보내 사람들을 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왕은 진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나라를 준비해 놓고, 잔칫상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은 초청의 심부름꾼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을 그 하나님 나라로 많이 초대해서 그 하나님 나라가 정말 많은 손님들로 인해서 행복하고 즐겁고 그런 잔치가 되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질서와 다른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수님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나에게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10리를 가라.” 5리가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10리까지 덤으로 더 가주라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을 정치적으로 압박할 때 로마 군병들은 유대인들을 아무나 불러서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너, 이 짐 지고 나하고 5리를 가자.” 그리고 억지로 끌고 갑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오히려 자발적으로 10리를 가라는 것입니다. “누가 너의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라.” 우리 상식하고는 맞지 않습니다. “너를 미워하는 자가 있거든 복수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용서하고 축복하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여러분!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는 다른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섬김을 받고자 하면 먼저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라. 높아지고자 하느냐? 낮아지는 자가 되어라.” 

여러분! 세상의 논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먼저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을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모델 하우스 같은 곳입니다. 여기 한화 아파트가 들어오기 전에 모델하우스가 있었습니다. 그 모델하우스에 가면 이 아파트가 들어서면 앞으로 이렇게 집이 생기고, 25평짜리는 이렇고, 40평짜리는 구조가 이렇고 알 수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의 교회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의 이 땅의 모델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깊이 생각할 때 교회는 이러해야 하는 구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의 논리가 교회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동참할 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공의의 나라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이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이 오신 목적,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초청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나라에 참여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메타노이아’라는 말인데,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부산으로 가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는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했던 사람이 이제 그 모든 관심과 생각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모든 가치관을 던져 버리고 새로운 하늘의 질서를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조금 잘못했다고 눈물 좀 흘리고 후회하는 것도 회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구주로, 내 마음의 왕좌에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 뜻을 위해서, 나의 쾌락을 위해서, 나의 욕심을 위해서,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럴 때 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외모만 바꾼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 내면의 그 영혼이 복음으로 인해서 변화되어지고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을 때 우린 진정 예수님의 제자, 혹은 성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동리에 이발사들이 모여서 이발사협회를 만들고 좋은 일을 하나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더럽고 게으른 사람을 데려다가 새 사람을 만들어주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옷을 가장 엉망으로 하고 고주망태가 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를 데려다가 목욕을 깨끗하게 씻겨주고, 머리를 단정하게 해주고 무스를 발라주었습니다. 양복을 새로 맞춰주고 넥타이를 매주고, 구두를 좋은 것으로 신겨주었습니다. 이제 이 사람에게 좋은 옷을 입혔으니 깨끗하게 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직장까지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그 사람은 출근을 안 했습니다. 연락이 왔습니다. 가보니 또 옷을 버려놓고 고주망태가 되어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 사람이 외모만 바뀐다고 내면이 바뀌는 것이 아니구나.’ 속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복음은 우리의 영혼이 바뀌는 것이고, 우리의 속사람이 바뀌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삶의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얼마나 많이 부딪히셨습니까?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병을 고쳐 주면 그럴 때는 좋아하지만,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미운털처럼 미워했습니다. 싫어했습니다. 그들과 다른 사고, 그들과 다른 질서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거룩한 유대의 지도자들은 세리들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창기들과 말도 하지 않습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방인들과 함께 한 집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자신들은 너무나 청결하고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세리들과 창기들과 식사를 함께 합니다. 대화를 함께 합니다.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죄인의 친구라 불리웠습니다. 여러분! 그 예수님의 생각과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를 이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우리의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각들과 결정들을 보면 성경의 원리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늘의 질서가 아닙니다. 나를 미워하면 같이 미워하고, 복수하면 같이 복수하는 세상의 질서이며 세상의 논리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돈 많은 사람이 최고이고, 힘 있는 사람이 최고이고, 서로 권력을 잡으려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 합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하면 낮아져야 합니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행동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힘을 잡아야 합니다. 이왕이면 힘이 있는 부서, 권력 있는 부서에 들어가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를 한 번 기분 나쁘게 하면 평생 미워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세상의 논리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돈 때문에 걱정합니다. 여러분! 돈을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인간적인 생각에 너무 빠져 있습니다. 인간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헌금이 많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습니다. 헌금이 많이 안 들어오면 걱정이 앞섭니다. 세상의 논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많으면 기뻐합니다. 돈이 없으면 죽을상입니다. 못살겠다면 자살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6장에서 뭐라고 합니까?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다 세상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다. 오직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가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일에 너희가 매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 걱정 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 채워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나 자신을 드릴 때 하나님이 나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따로국밥이 너무 많습니다. 믿음 따로, 생활 따로. 교회 안에서는 아멘 아멘 하지만 교회 밖에만 나가면 걱정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해서, 믿음 따로 염려 따로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왔다면 이제 우리는 그 나라에 이미 참여하는 성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갈 일꾼들로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오셔서 처음 부른 사람들이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성경 본문 16절~17절을 읽어봅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일 먼저 갈릴리 어부들을 찾아가십니다. 그들은 그 시대로 보면 그렇게 많이 배우거나 재물이 있다던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당시 어부라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이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오늘 우리들을 부르셨듯이 제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기서 제자들을 부르는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을 하고 있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그냥 잠자고 있는 사람이나 노는 사람을 부르는 일이 없습니다. 열심히 그들이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그래서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또 19절에 가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을 주님은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제자 엘리사를 부를 때도 그가 소를 붙들어 밭을 갈고 있을 때 그 엘리사를 불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게으른 사람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의 일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는데 오늘 정말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있는가? 여러분은 얼마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오늘 제자들은 고기 잡은 어부였는데 그들을 불러서 이제는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낚지 않고, 전도하지 않으면, 전도에 관심이 없으면 정말 내가 주님의 제자인가 한 번 돌아보셔야 합니다. 주님의 일에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또 부르신 원리가 있습니다. 즉시 순종하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18절 말씀을 읽어 봅니다.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그들은 지체가 없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부로 뼈가 굵은 사람들인데 갑자기 예수님이 “나를 따라 오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자 그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제자란 즉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석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어부들 중에서 제자를 뽑은 이유는 그들이 매우 단순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어부란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이 없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습니다. 그저 고기 있는 곳에 그물을 던지고 고기 잡히는 대로 가져가서 팔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잡한 것이 없습니다. 생각도 아주 단순합니다. 이 단순한 사람이 순종을 잘 하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의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계산이 많습니다. 머리가 복잡합니다. 여러분들이 좀 단순한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그것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다음까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이게 나에게 손해가 될까 이익이 될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하자!” 그러면 전도하면 되는데, ‘아이고 전도하고 오면 시간 없고 피곤하고 안 되겠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전도하라고 하면 ‘전도하면 하나님이 건강주시겠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전도하자고 헌금하자고 하면 ‘전도를 위해 헌금하면 하나님이 채워 주실 거야.’ 내가 마음껏 헌금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걱정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단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단순한 사람들을 불러 쓰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떤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곤 자기 의로운 것을 자랑하려고 질문을 합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질문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에 뭐라고 하느냐? 십계명에 있지 않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안식일을 잘 지켜라.” “아! 제가 그것들 다 지켰습니다.” 아주 의기양양하게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가지를 아셨습니다. 그가 제물이 많은 부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네 제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그러자 이 사람이 제물이 많은 고로 고민하며 돌아갔습니다. 그가 돌아왔다는 말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는 즉시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다른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어떤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불렀습니다. 이 사람은 “아이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우리 부모님이 연로하신데 지금 돌아가시면 장례식 마치고 따라가겠습니다. 그 사람은 영원히 못 따라왔습니다. 제자란 주님의 부름에 곧 결단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 포기할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그들이 고기잡이 하던 그 아까운 그물을 다 던져버리고 주님을 따른 것입니다. 20절 말씀에 또 보면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심하게는 같이 고기 잡던 부모님을 그냥 두고 품꾼들도 그냥 버려두고, 배도 버려두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예수 믿으면 부모도 없고 다 버리고. 그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 아버님이 건강하셔서 이렇게 같이 고기를 잡는 상황에 있으니 아버님께 또 품꾼들에게 그 배를 맡겨두고 떠났다는 이야기지, 부모를 버리고 떠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기독교만큼 부모를 공경하는 종교가 또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제자 요한에게 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요한아
! 네 어머니니라.” 그 즉시 요한이 자기 어머니로 마리아를 모셨습니다.

오늘 주님의 부름을 받을 때 야고보와 요한은 모든 것을 다 버려두었습니다. 포기했습니다. 여러분! 더 좋은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은 그보다 못한 것을 쉽게 던져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복권을 살리는 없고, 또 살 필요도 없지만, 만약 어쩌다 복권을 샀는데 40억짜리에 당첨했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제 당첨금을 타고 가느라 바쁩니다. 가는데 누가 와서 옆에서 실수로 내 차를 박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뒤 범퍼가 찌그러지고 나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최소 10만원, 20만원은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겠습니까? 안합니다. “아이고! 실수하셨군요, 괜찮아요. 안 다쳤으면 다행이죠. 그냥 가세요." "아이고, 범퍼는?” “아이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가세요.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지금 40억을 받으러 가는 사람이 그까짓 범퍼 찌그러진 거, 20만원 때문에 걱정하겠습니까? 거기에 목을 매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그보다 못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그까짓 거 고기 잡는 것이 문제입니까? 거기엔 관심이 없습니다. 버려두고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교회 나와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그런 것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알코올 중독에, 도박 중독에 빠져 지냅니다. 하지만 더 센 놈을 마나 중독되면 끊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가를 가야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만날 도박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사람이 장가를 가더니 딱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아내를 만나니 그 전에 좋아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아내와 사랑하게 되면 그까짓 도박 다 버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께 중독되면 그까짓 도박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버릴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가치를 발견하면 그보다 못한 것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서 왕국에서 생활할 때 왕의 진미와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룻이라는 며느리를 보십시오.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따라갑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요, 어머니의 나라가 나의 나라입니다.” “아니야! 너는 젊으니 재혼하고 잘 살아야해.” “아니예요. 어머니를 따라갈게요.” 그는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호와만이 진정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보화를 알게 되니 더 이상 이방 모압 땅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따라가서 거기서 결국 재혼하게 되고 다윗왕의 할머니가 됩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더 놀라운 가치를 만났을 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디메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소경이요 거지였습니다. 볼 수 없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뭐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들리겠습니까? 더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시끄럽다고 발로 채이지만 그는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이 그 바디메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자기 외투를 던져버리고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외투는 유대인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낮에는 그 외투로 겉옷으로 사용하고, 밤에는 이불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로마 군병들이 오죽했으면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졌을까요? 그만큼 옷이 귀하고 옷값이 비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다 던져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포기할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떤 아들이 예수를 믿고 나니까 너무 좋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부모님이 예수를 안 믿는 이유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안 드리더라. 그럼 내가 어디 제사 밥이나 얻어먹겠냐?” 그것이 안 돼서 예수를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제사 밥을 먹겠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래서 아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루는 어디 밖에 나갔다 왔더니 부모님이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제 간식을 드실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국수를 삶아가지고 아주 맛있게 비벼서 상에 딱 준비해 놓고 깰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주무시다가 일어났습니다. “아니 이게 뭐냐?” “어머니 좋아하시는 국수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아니 이놈아! 잠자는 사람이 어떻게 이걸 먹느냐? 이런 걸 왜 가져왔냐?” 그랬더니 아들이 얼른 이야기 합니다. “어머니! 그렇죠. 주무실 때는 국수가 아무리 맛있어도 드실 수가 없죠?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제사 밥을 드시겠어요. 다 거짓말 이예요. 살아계실 때 맛있는 것 많이 해 드릴 테니 잘 드시고 예수 믿고 천당 가셔야 해요.” 그때서야 부모가 깨달았습니다. 귀신이 와서 뭘 먹겠습니다. 다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증거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하셔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나라를 위해 사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겠습니까? 세상 나라를 위해 살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쌓겠습니까? 세상 나라의 상급을 위해 쌓겠습니까? 세상 나라에 많이 쌓아놔도 그것은 한 순간에 다 떠내려갑니다. 비 한번 오면 홍수가 나서 다 휩쓸려가듯이 세상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고, 주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나라는 사단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세상의 질서가 있고, 세상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나라를 위해 일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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