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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람찬 생애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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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찬 생애 (롬 12: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세례를 받는 분들에게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신앙 안에 들어와 성장해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례식을 거행하는 뜻 깊은 자리에 있습니다. 세례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 받았고 거듭났다는, 구원함을 받았다는 표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에서 이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약속의 현장이 이 물 세례를 받는 자리입니다.

사람은 평생 두 번 태어난다고 합니다. 한번은 존재하기 위해서 태어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생명으로 태어나고 신체적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을 제1의 탄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자아의 탄생, 정신적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사람은 이 과정에서 비로소 참된 자기가 탄생되고 진실된 인간으로 다시 탄생되게 됩니다. 이것이 제2의 탄생이라 합니다. 그래서 루소는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두 번 태어나게 되는데 한번은 어머니로부터 생명으로 태어나고, 또 한번은 인간으로서 사회에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또 한 번의 탄생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출생입니다. 이것은 신앙적인 거듭남이고 주 안에서 새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제3의 탄생이라고 합니다.

오늘 교회는 성례식을 거행하는데 이 성례는 세례와 성찬을 말합니다. 이 성례의 시간이 제3의 탄생의 시작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을 거행함으로 우리 성도들이 구별된 하늘나라 백성임을 삶 속에서 보여 주어야합니다. 그래서 내 삶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룩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본문 12장에 앞서 1-11장까지는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 하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기 위해 값비싼 희생을 치루 결과가 우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 공군 조종사 한 사람을 양성하는 데 사관학교 4년을 마치고 정식 F-16 조종사 한 명이 양성되는 데는 무려 28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것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을 뽑는데 한 기수 당 100여명 정도가 뽑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또 28개월 간 훈련을 하는데 거기서도 반수 이상이 탈락을 한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20% 정도인 14-5명 정도가 F-16조종사가 되는데 그 한 사람을 훈련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15억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그만큼 힘든 게 조종사들입니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조종사 한 사람을 양성하는데도 그처럼 엄청난 돈과 희생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만한 자격이 있어서 여기 모여 예배를 드립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내가 뭔데, 도대체 나란 인간이 뭐길래, 하나님께서 외아들 독생자를 아무 조건 없이 주셨습니까? 그만한 자격이 우리에게 있나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무덤덤하나요? 탕자였던 어거스틴은 어느 날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눈물을 쏟으며 고백합니다. "내가 이 세상의 유일한 존재라 할찌라도 주님은 나를 위해 기꺼이 당신을 주셨을 것이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너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노라. 나는 내 생명보다 너를 더 사랑하노라. 십자가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 없이 너를 사랑하노라." 그리고 그 사랑을 아낌없이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도 쏟아 부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알았다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를 1-2절에 자세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한 본문을 보면 세례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할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2절은 두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2절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첫째는 하지말라 → “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둘째는 하라 → “ 마음의 변화”입니다.

1. 하지 말라 ―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살고 있지만, 그러나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도 속할 수도 없는 자들이라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루빨리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데려가시지 않습니까? 요17:18에 보면 예수님은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속하는 세상의 사람이 되게 하심이 아니라, 세상에 포로가 되어 세상의 노예가 된 자들을, 일깨워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 되도록 돕는 주님의 도구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했는지, 이 세대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이 세대’란 말은 헬라어로 ‘아이온’인데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속한 시대에서 그 세대의 문화와 풍습을 따라 사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본 받는다’는 말은 ‘함께 형성 된다’는 말로 ‘같은 모양으로 동화 된다’는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우리를 불러 주셨는데,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이 세상이 추구하는 일에 동화되어버린다면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이제 상상 방법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나라 가는 날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참 승리의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배짱을 가지고 멋지게 살다가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에 교회의 한 자매가 생애 처음 단기 미국연수를 떠나면서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니 설레임도 있고 두려움도 있겠죠?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13시간을 가면 미국 땅 LA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 도중에 나쁜 사람들에게 하이재킹을 당해서 불안과 초조 속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겨우 미국 땅에 도착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힘 있게 살다가, 멋있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 휩쌓여 마귀에게 하이재킹 당해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비참하게 만신창이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정말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성례에 동참한 여러분의 가장 큰 결단은 예배에 대한 삶의 자세입니다.

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 ‘권하노니’ 라는 말을 어떤 슬랭 영어에서는 ‘팔을 비틀어서라도’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기 게을러 하고 예배로부터 멀어져 있을 때에 팔을 붙들어서라도 다리를 묶어서라도 다리를 꺾어서라도 예배하는 자리에서 은혜받는 자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에 인생을 걸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세상이라는 웅덩이 속에서 나오지를 못하게 됩니다.

이 유혹의 세파를 이겨내려면 ‘팔을 비틀어서라도’ 예배에 자리에 있어야합니다. 이 만큼 하나님은 우리와의 만남, 우리와의 관계를 원하십니다. 왜요? 예배 안에 풍성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내 삶이 거룩한 삶으로 바뀌어 지겠기 때문입니다. 예배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예배에 은혜가 되어야 가정 살이에 은혜가 됩니다. 예배에 성공자가 되어야 사업에 성공자가 됩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녁예배와 수요예배도 참석하지 않고, 십일조도 하지 않으며, 헌신도 봉사도 하지 않는데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교회 직분을 맡고 있다고 해서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어버리면 밟히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는 포지션만 가지고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인다운 생동감이 우리 안에 살아나야 합니다. 믿는 사람다운 생명력이 있어서 사람들과 만나는 중에도 소망을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은 세상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만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던 삶을 이제는 중단하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분명히 요청합니다.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삶은 중단하십시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많은 기회가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현재가 여러분이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로 적극적으로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변화를 받는다’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질적인 변화, 즉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이 완전히 다른 존재로의 변화를 말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이 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으십니까? 제가 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볼 때, 변해지지 않는 모습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동시에 목회의 가장 커다란 좌절은 이 많은 예배와 성경공부, 그리고 이 많은 훈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정말 변할 수 없을까요? 변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변화를 받으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변화를 받는 방법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이란 정신적인 새롭게 함을 말합니다.

이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이 변화가 올수가 있습니다. 오늘 내가 나에 대해서 실망할 수밖에 없는 그 많은 삶의 조건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새로운 변화를 받아야 만이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열립니다. 이 지혜를 가진 자만이 최상의 삶!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가 무엇인지,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 시대를 향해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내 인생을 거기에다 맞추고 조금도 후회없이 초지일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세례를 베푸시고, 또 성찬을 통해 주님의 제자로 해야 할 일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고 성찬의 잔을 마실 때마다 굳게 다짐할 것이 있습니다. 짧은 생을 살면서 과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나를 사랑하사 자기를 십자가에 희생하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도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고전11: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안에 들어 있는 준엄한 명령이 있습니다 '너는 보통 값진 생명이 아니니라. 네가 평생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너 대신에 죽은 예수를 전하는 것이니라.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떡을 떼면서 나를 위하여 죽어 주신 주님을 바라보고, 잔을 바라보면서 나를 위하여 한 방울의 피도 물도 남김없이 다 쏟아 주신 주님을 생각하고, 그래서 내 이 짧은 생애에 내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게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나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어 주신 그 주님을 자랑할 것밖에 더 있겠느냐? 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그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 드리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이러한 각오와 결심이 있는 자라야 합당하게 성찬식에 참례하는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이어령 교수를 아시죠. 이대 명예교수이며 전 문화부 장관으로 한국 최고 지성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분입니다. 이년 전 9월 동경에서 있던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과거에 기독교에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던 분입니다. 그런데 따님이 시력을 잃어가고 외손자가 과잉행동장애를 겪는 극한 고난 속에서 자신의 그 대단했던 지식과 학문이 아무 것도 아님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이성과 과학은 초월하는 절대자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 겁니다.

그는 이제 ?지상의 언어?를 버리고 ?천상의 언어?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멋있게 표현해서 그렇지 간단히 말하면 영적인 눈이 떠졌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중생이죠. 그러고 나니까 하나님이 믿어지고 예수님이 믿어지게 된 겁니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고서,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서 왜 우는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제 그리스도와 더불어 보람찬 생애를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루하루가 내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담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에 내 삶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비록 세상의 유혹이 거세다 할지라도 이 패역한 세상에서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진리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인생이 된다면 여러분의 생애는 가장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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