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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행 1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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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행 18:5~11)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18:5-11)

저는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확신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요셉과 다윗의 경우를 통해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사도바울을 통해 한 번 더 살펴보고 싶습니다. 

인생을 사노라면 어느 시기에 부모와 형제, 친구, 이웃들이 한 사람씩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자식들은 결혼하여 집을 떠납니다. 나이가 들면 은퇴하고 경제력도, 건강도 약해집니다. 이런 상실들을 겪을 때 인생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결국 혼자입니다. 이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상실감을 감당하기 힘들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부모도 건강도 젊음도 사라지고 결국에는 혼자 인생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이런 우리 인생에 마지막까지 함께 가시는 분은 주님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건강도 떠난 후에 하나님을 찾으면 늦습니다. 그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그날부터 그분의 임재를 믿고, 깨닫고, 날마다 주님과 더불어 거니는 훈련을 해서 어떤 상실이 발생해도 끝까지 외롭지 않게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길 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인정하기 전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믿든 안 믿든, 태양이 하늘에 떠 있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는 것이 사실이듯이,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임재도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의 죄를 다 사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도 하나의 사실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듣지 못했거나 들어도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영원히 사랑하시고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없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깨닫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알지 못했던 것을 알고, 믿지 못했던 것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주 동안 구원의 확신과 임재의 확신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오는 축복에 대해 조금 더 말씀 드리면서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면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첫째로, 영적인 안정감이 생깁니다. 구원과 진리를 찾아 더 이상 여기저기 헤매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습니다. 내 안에 영원한 중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 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무슨 말입니까? 앞으로 적그리스도나 거짓선지자들이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진리가 여기 있다!” “여기로 오라, 저리로 가보다” 하겠지만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되시는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옆집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냥 옆집으로 바로 가면 됩니다. 또 하나는 전 세계를 한 바퀴 돌아서 가는 것입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몇 년 만에 옆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진리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임재는 멀리서 힘들게 찾는 것이 아닙니다. 

성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 진리를 찾고자 사방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이런 저런 철학을 공부하고 결국 ‘마니교’라는 이단 종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하나님은 늘 내 옆에 계셨다!” 진리는 쉬운 것입니다. 진리를 어렵게 설명하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계시를 받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마세요. 진리는 어느 한 사람에게 특별히 주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을 언제나 사실이었고 그 사람을 그저 믿으면 진리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전 세계를 돌아서 옆집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쉽게 몇 발자국 가면 거기가 바로 옆집입니다.

진리를 찾아 사방에 돌아다니면 이단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집니까! 흥미로운 사실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이단에서 나오면 또 다른 이단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 마음속에 계심을 믿고 ‘이제부터 내 안에 계신 주님과 함께 즐겁게 살아야겠다!’ 이렇게 결단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여러분이 신앙을 고백했을 때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이미 임하셨습니다.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사는 사람은 중심에 안정감이 있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사람이 만든 것에서 소망을 찾으려고 방황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나 혼자 살 때는 내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았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과 함께 사니 중심이 잡히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아름답게 변하자 사람들 앞에서 칭찬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수6:27). 40여 년을 지도자로 따랐던 모세가 죽은 후 옆에서 돕기만 해왔던 여호수아가 그 뒤를 잇는다는 것은 사실 그에게 겁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믿음으로 임재의 확신을 갖고 살았더니 그와 함께 계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워 존경받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만들어주셨다”(4:14)고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똑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크게 보이고 지도자로서 존경받고 사람들이 따르게 됩니다. 임재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교인이셨다가 미국으로 가신 젊은 여자 집사님이 계십니다. 부부가 날마다 주님과 함께 삽니다. 그 집사님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지만 미국 여자들이 모여 성경 공부하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1년 쯤 같이 하고나니 미국사람들이 이분에게 성경공부를 인도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어가 부족해서 안 된다고 거절했는데 영어는 문제가 안 되니 인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착실하게 주님과 함께 사는 그분의 삶을 주위 사람들이 본 것입니다. 그분은 주저하다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그 일을 맡으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성경공부를 인도한지 벌써 수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훈련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정, 동네, 교회, 직장, 학교에서 여러분을 존경의 대상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말에 권위가 생깁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혼자일 때는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했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알고 동행하다보니 주의 뜻대로 생각하고 주의 말씀대로 말하고 싶어집니다. 말에 무게가 실리고 권위가 생깁니다. “그 분의 말씀은 확실해”, “ 믿을 수 있어”, “조금도 헛된 것이 없어.” 이런 신뢰를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함께 하면 말의 권위가 서고 존경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모든 일에 지혜롭게 처신합니다. 사람들이 말이나 결정이나 행동을 안 해서가 아니라 지혜롭게 못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사무엘상 18장 14절을 보면 다윗이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니 지혜가 생겼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모든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특별한 경우만이 아니라 날마다, 무슨 일에나 말에나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다윗이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한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다섯째로, 지도자가 됩니다. 보십시오. 불안, 염려, 근심, 초조 대신에 안정감과 중심이 잡힌 사람, 주님과 동행하므로 존경의 대상이 되고 말에 권위가 실리고 매사에 지혜롭게 행하는 이 사람이 지도자가 안 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옛적에 그 무리를 거느렸고”(대상9:20). 거느렸다는 것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officer over them)는 영어번역이 더 맞습니다. 주님과 함께 거닐 때 다른 사람들을 돕고 은혜와 덕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섯째로,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하여 알려집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골1:27). 예수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동행을 믿고 사는 사람 때문에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알려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에게 영광스러운 희망이 있다는 것이 알려집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언행심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분과 동행하면 그분의 풍성한 영광이 우리를 통하여 보여질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임재 때문에 또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파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고린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예수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스스로 메시아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그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을 믿으면 영원한 부활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핍박했습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나는 할 말을 다 했으니 앞일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피가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여러분이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이 믿지 않으니 나는 이제 이방인들에게 전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9절에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전부 반대하니까 바울에게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에 대한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절대자요 무한하신 분입니다. 그분과 하나가 되면 여러분은 절대적이고 무한한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무한대 +1은 무한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우리 삶 속에도 있음을 압니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니 내가 두려울 것이 없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해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시편23:4).

수술을 하신 어느 집사님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께서 기도해주신 후에 수술실로 들어가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두렵지 않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수술실로 함께 들어가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은 제일 겁나는 일입니다. 여러분 일생에, 자기를 눕혀 놓고 칼을 몇 개씩 들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달려든 적이 있습니까? 아무리 남편이 있고 가족이 있어도 수술실에는 혼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두려운 순간에 자신에게 선포하세요. “두려워하지 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 이 한마디가 말로 표현 못할 하나님의 평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술 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주님과 함께 가세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 수술 후에 1/3배 더 빨리 회복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니 잠잠하지 말고 말 하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고 성취되는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믿고 두려움을 박차고 시도해서 되는 일은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하는 일들이 세계 역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믿음으로 된 것들입니다. 의심, 걱정, 염려, 두려움 때문에 시도하지 않고 이루어진 일들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했으면 설령 안 되었더라도 일단 시도를 해보고 안 되었기 때문에 후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가 보다’,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여시나 보다’ 이렇게 믿으면 되잖아요.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도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10절)라고 힘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외로웠습니다. 유대인들은 반대를 하고 철학자들은 논쟁을 하자고 합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면 듣고 믿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0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이 사람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으니 담대하게 전하면 믿는 사람이 생깁니다. 

사도바울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회당 옆에 사는 유스도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유스도가 예수를 믿었고 회당장 그리스보와 가족도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왜?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믿고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면서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하면 누군가 구원받는 사람이 생깁니다. 복음을 들었다고 다 믿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믿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인생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전도폭발훈련을 받은 분들이 약 천3백 명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도훈련을 받으면서 경험했습니다. 훈련 받고 밖에 나가 복음을 전하면 70% 이상이 예수를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전했다”고 했습니다. 분명하게 전하면 사람들이 예수를 믿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러 나갈 때 기도하고, 또 기도 부탁을 하고 나갑니다. 성령님이 동행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예수를 믿습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살아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두려움이 없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고, 안정감이 있고, 존경의 대상이 되고, 말에 권위가 있고, 지혜롭고, 지도력이 있어서 여러분 때문에 누군가가 구원받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히 믿고 사십시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L. E. 던킨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남들은 나의 선택한 길과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남들은 나를 조롱하고 
같은 길을 가자고 강요를 해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지라도
또 내가 이 길에 미혹이 있듯이 보여도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선택한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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