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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 (사 63:1, 마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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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 (사 63:1, 마 18:1~4)
 
 
지난 주간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잠시나마 우리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쾌거였습니다. 돔 야구장 하나 없는 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들과 야구장이 즐비한 나라를 이기고 결승까지 올라가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은 참 잘 한 것입니다. 단 입이 얄미운 이치로에게 맞아서 진 게 조금 분하기도 합니다. 다른 선수에게 맞았더라면 차라리 조금은 나을 뻔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입니다. 미국 대표선수는 100프로가 메이저리그 선수입니다. 우리나라가 준결승에서 이긴 베네주엘라도 거의 대부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고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구단이 30개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외에 마이너리그는 240개입니다. 고등학교 야구단은 수 만개에 이릅니다. 우리나라는 고교 야구팀이 55개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메이저’란 ‘최상의’, ‘큰 쪽’, ‘주요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에는 ‘천국에서 큰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헬라어 원어는 ‘호 메이존’입니다. 최상급으로 가장 큰 자를 의미합니다. 이 말이 ‘메이저’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를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사람이란 뜻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한다면 천국에서 작은 자도 있습니까? 천국에서 가장 큰 자라고 한 것으로 봐서 작은 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에 등급이 있다면 무엇으로 구분할까요? 오늘 성경은 겸손함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겸손하고 천국 간 사람은 큰 자이고, 겸손하지 못하고 천국 간 사람은 작은 자입니다. 겸손하고, 낮추고, 작고, 어린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설 천국’입니다. 가난한 자, 작은 자, 낮은 자, 낮추는 자, 어린이가 득실거리는 역설의 나라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은 이 세상의 나라와 전혀 다른 곳입니다. 복이 있다고 하는 자,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한 결 같이 이 세상의 나라에서는 아닌 사람들입니다. 
  
학자들은 18세기를 민중의 재발견 시대라고 합니다. 19세기를 여성의 재발견 시대라고 합니다. 20세기를 어린이의 재발견 시대라고 합니다. 21세기를 문화의 재발견 시대라고 합니다. ‘20세기 최대의 발견은 어린이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000년 전 이미 어린이의 가치를 발견하셨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안으시고 축복하신 이 어린이가 후일에 안디옥의 감독이 된 익나티우스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의 기준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릅니다. 밀로의 비너스상은 1820년 에게해의 밀로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비너스상으로 볼 때 키가 168cm이고, 몸무게가 60kg입니다. 배도 약간 나오고 통통합니다. 요즘은 키가 168cm에 몸무게가 60kg이면 야단이 날 것입니다. 아마 48kg 쯤 되어야 날씬하다, 예쁘다고 할 것입니다. 여성들의 체형이 ‘미스 아메리카’ 때문에 버렸답니다. 당시의 기준과 지금의 기준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까만 피부에 두툼한 입술에 곱슬머리가 미인의 기준입니다. 우리 눈에는 전혀 아니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런 사람들이 미인입니다. 미의 기준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다른 대륙에 온 흑인들은 자신들의 피부가 완전히 버려졌다고 합니다. 
  
어린이는 세상기준으로 보면 유치하고 힘이 없고 어리고, 모르는 것이 많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큰 자이며 주인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나라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자가 큰 자라고 하십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나라의 역설입니다. 
  
세상에서는 크게 될 인물이라고 하면 어른스럽고, 유치원생이 영어나 수학이나 물리를 척척 풀어내는 아이들을 말합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학생이 트로트를 부르는데 마치 어른처럼 제스처를 쓰고 바이브레이션도 꼭 어른 같으면 ‘저 아이 크게 될 아이다’라고 합니다. 아이가 어른 같으면 ‘크게 될 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전혀 아닙니다. 어른도 아이 같아야 크게 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어린이 그 자체는 어리고, 순진하고, 겸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런 자가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가 어떤 자인지 살펴보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자가 큰 자입니다. 

마태복음 18:3에는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과 같이”라는 말씀은 어린 아이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합니다. 겸손합니다. 작은 것에 만족합니다. 작은 것에도 기뻐합니다. 순진무구합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며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역설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미엘이란 분은 “어린 아이들 틈에서만, 우리는 이 지상에서 천국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의 생활은 고스란히 하늘에 속한다.”고 하였습니다. 순수함은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식구들과 좀 다르게 생겼으면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좋지 못한 말인데도 많이 했습니다. 또 걸핏하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두고 간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말을 다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빠는 가장 힘이 세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줄로 압니다. 이것이 어린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어린이는 신령한 젖을 사모합니다. 베드로전서 2:2에는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아기들은 젖지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젖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순전합니다. 흠과 티가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순진하기 때문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탕 하나에 따라가고, 아빠 친구라는 말 한 마디에 함께 갑니다. 저항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모든 면에서 약하기에 이런 자가 큰 자라고 하십니다. 
  
요즘은 VIP(아주 중요한 사람)보다 VIB(아주 중요한 아기) 시대라고 합니다. ‘Very Important Baby’ 시대입니다. 대형 백화점에서는 VIB를 겨냥하여 초고가 상품 판매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아기전용 생수는 오스트리아의 남 알프스산맥에서 채취한 1.5리더 한 병의 가격이 8,000원입니다. 아기에게 주는 한 달 물 값만 24만8000원입니다. 그 외에도 유기농 단 호박에 닭 가슴살에 친환경 청경채를 합치면 하루 식비만 수만 원씩이나 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아기들을 적게 낳으니까 많이 투자합니다. 그리고 아기들은 나쁜 공기나 먹거리에 오염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기들은 조그마한 것에도 상처를 받고 탈이 나기도 합니다. 이런 약한 아기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큰 자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4:20에는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어린이들은 악에서 법니다.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는 말은 어린아이같이 악하지 않게 살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1:15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입성하시는 장면을 보고 불평했습니다. 성경은 “호산나 다윗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라고 합니다. 왜 어린이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노래하였습니까? 어린이는 정치적 꾀가 없으므로 호산나 찬송이 가능했습니다. 찬양한 것은 순수한 감정을 의미합니다. 꾸밈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아이들과 정치인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이들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유심히 들어보면 말이 됩니다. 정치인들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유심히 들어보면 말이 안 됩니다. 교육전문가 데일 스펜더는 “어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기술을 아이들이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 속에는 어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기적을 베푸실 때 보세요. 어떤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도시락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 자리에 5,000명이 모였습니다. 어른들과 아이들 남자와 여자 모두 합하면 15,000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자신이 먹을 것을 가지고 온 사람이 이 어린이 한 사람이었겠습니까? 어른들은 아무도 먹을 것이 없었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어른들 가운데는 먹을 것을 가지고 온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다 숨겨 두었고, 이 어린아이만 순수하니까 그것을 안드레에게 드려 예수님께 가지고 온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12살 때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셨다가 다들 돌아왔지만 예수님은 성전에 남아 학자들과 대화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 일로 부모님을 애타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앞을 계산하지 못하는 순진성 때문입니다. 순수함이 지나쳐 걱정을 끼친 것입니다. 
  
타고르는 “모든 아이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품고 탄생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린이의 정서적 영적 건강, 경이감과 열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런 것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며 큰 자입니다. 세상 가장 위대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어느 대도시에서 러시아워 시간에 대형 트럭이 지하로 입구 끼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운전사는 트럭이 지하도를 빠져 나갈 줄 알았지만 걸리고 말았습니다. 경찰이출동하고, 구경꾼들이 몰려왔습니다. 기술자들이 트럭을 빼낼 궁리를 하고 있는데 어느 한 소년이 운전사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저씨 트럭을 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요.” “얘야, 됐다. 어른들이 알아서 할꺼다. 저리 비켜라” 이 소년은 자리를 물러가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타이어에 바람만 빼면 되는데.” 어린아이들은 특유의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입니다. 

둘째,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입니다. 

마태복음 18:4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합니다. ‘자기를 낮추다’는 말은 헬라어로 ‘타페이노오’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의미의 겸손이 아니라 멸시, 천대, 굴욕 등을 당하면서까지 겸손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시민의 자격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하면서 수모, 멸시, 천대를 받는 것을 기뻐하는 상태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 죽었습니다’ 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찬송을 잘 하지만 정말 멸시 천대 십자가를 그렇게 쉽게 받고 질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면 큰 자입니다. 큰 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나라의 논리를 보세요. 자기를 과시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높이는 자가 높아지고, 세상 권세를 차지하는 자가 힘이 있습니다. 요즘은 자기 피알시대입니다. 자기 관리 시대입니다. 남이 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큰 자가 크고, 작은 자는 계속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높이려고 애를 쓰고, 자기를 알리려고 돈을 쓰고, 자기가 잘 되려고 기를 쓰고 삽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4:11에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같이 역설입니다. 
  
이스라엘 혼란기의 사사 중 기드온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기드온은 아들들이 70명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많은 아내들에게서 아들들이 많으면 문제가 복잡합니다. 큰 아들 아비멜렉은 자신의 형제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막내 동생 요담은 간신히 몸을 피하여 살아남았습니다. 요담은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고 외치면서 나무왕의 비유를 말합니다. 

나무들이 왕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먼저 감람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감람나무는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영화롭게 해야 하기 때문에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합니다. 다시 무화과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버리고 어떻게 왕이 되겠느냐고 하며 거절합니다. 다시 포도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버리고 어떻게 왕이 되겠느냐며 거절합니다. 할 수 없이 가시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가시나무는 “모두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불로 사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담의 결론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것이 잘 한 일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진 자가 왕이 되면 나라도 망합니다. 낮추는 자가 높아지며 낮추는 자를 높여야 나라가 바로 되는 법입니다. 
  
낮아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는커녕 세상 나라도 차지하지 못합니다. 낮추는 자에게 기회는 주어집니다. 모세는 높아진 궁중의 왕자일 때가 아니라 낮아진 목자일 때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두 가지 기적을 맛봅니다. 갈릴리에 익숙한 어부가 밤새 한 마리 고기도 못 잡은 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내려 두 배 가득 채운 것도 기적입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완전히 낮아진 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낮아진 날에 만나주십니다. 바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님을 잔해하며 지식과 재물이 부요한 사울일 때가 아니라 완전히 바닥에 떨어진 바울이 때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된다!고 고백하는 순간, 완전히 낮아짐을 경험하는 순간,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합니다. 가장 작은 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가장 낮아진 자를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낙하점(ground zero)을 경험한 자를 하나님은 드러내십니다. 영점(零點)의 가치를 아는 자를 높이십니다. 모세가 신을 벗은 호렙산, 베드로가 한 마리 물고기도 잡지 못한 갈릴리, 사울이 완전히 엎드려진 다메섹도상이 그들의 개인적 낙하점입니다. 특히 모세의 영점은 신발을 벗게 하시고, 지팡이를 던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만 붙잡고 가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만 한번 믿어봐.”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주님을 닮은 자입니다. 겸손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자는 영광에서도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의 자격입니다. 
  
‘겸손’(humility), ‘겸손한’(humble)의 헬라어 어원은 ‘휴머스(humus)’입니다.  이 말은 부식토라는 흙입니다. ‘휴먼’(human)이라는 말의 어원도 같은 말입니다. ‘휴먼’이란 자신을 아래로 낮추는 흙의 물성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야 사람다움이 드러납니다. 사람은 낮추어야 하나님의 나라 사람답습니다. 바닷물이 대조(한사리) 직전에 가장 많이 빠집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높이시기 전에 가장 낮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사람을 한 글자로 하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존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자신감과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죄인입니다’라는 자신을 낮추는 진솔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다리 길이가 어느 정도면 적당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 링컨은 “땅에 닿을 만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키가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큰 사람을 선호합니다. 롱다리를 좋아합니다. 큰 사람이 위에 닿습니다. 큰 사람이 보기에 좋습니다. 큰 사람이 지배합니다. 큰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작은 자, 어린아이, 자기 낮추는 자가 주인입니다. 이런 자가 큰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과는 반대입니다. 가장 작은 자, 가장 낮추는 자가 됩시다. 세상에서 낮은 자, 작은 자를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큰 자로 만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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