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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해야 할 일을 언제 하는 것이 가장 좋은까? (수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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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야 할 일을 언제 하는 것이 가장 좋은까? (수 5:1~9)


우리 부모의 관심을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이 명문대학에 좀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많은 관심입니다. 그 이유는 명문 대학에 들어가면 그래도 그 자녀 앞길에 여러가지 가능성이 많이 열려지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아들들이, 자녀들이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던 그 어머니들이 모여서 어떤 “자녀들이 명문대학에 들어가는가?” 토의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옛날에는 자녀만 혼자 똑똑하면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모든 것이 좋았지만, 이 엄마들의 생생한 토론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자녀의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학원을 다섯, 여섯 개 정도 뛰어도 전혀 지치지 않는, 그래서 자녀들의 체력이 튼튼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좀 재미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재력이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 연세 많으신 어른들 교육 아직 안 끝났습니다. 예, 우리 손자 손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재산을 지금 쓰기 위해서 굉장히 계획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대에 돈을 벌어서 이 자녀들에게 정말 필요할 때 투자하기 위한 돈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산이 있지 않으면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낼 수 있도록 투자를 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엄마의 정보력과 분석력입니다. 어느 학원에 어느 선생님이 유명한가, 어떤 길을 걸어가면 이 대학에 이 자녀를 입학시킬 수 있는지, 엄마의 뛰어난 정보력, 정보력만 가지고 안되고 그것을 분석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적기 적소에 결단을 해야 되는 엄마의 놀라운 실력들이 뒷받침 되어야 됩니다. 

또 하나 아이러니 하게 되는 조건은 아빠의 무관심입니다. 예, 아빠가 관심 갖기 시작하면 그 자녀는 명문 대학에 백발 백중 못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참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세대이지요. 옛날에는 아이 하나만 머리가 좋으면 좋았지만 요즘은 이미 그 세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한 사람이 어떤 중요한 일을 할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런 일을 뒷받침 해주는 또 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블링크의 저자이면서 또한 세계적 경영 사상가인 말콤 그래드웰이라고 하는 사람이,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성공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분석하고 관찰하고 연구해 보았는데 그 일에 일만 시간 이상 투자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일만 시간 이상을 투자한다고 할 때 그것은 그 개인이 투자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부모의 지원과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 유산 등 철저히 주변의 도움과 함께 만들어지는 그 일만 시간입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이 사람의 이야기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있는 자는 더하여 질 것이요” 하는 다다익선 이지요, 많을수록 좋다는 그 이론이 적용되어지고, 그 다음에 한 사람의 성공은 그 개인의 영웅적인 어떤 그런 삶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환경이 함께 여건이 마련되어서 분위기가 될 때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개인이나 공동체나 무엇이 잘 준비된 상태가 되어졌을 때에 그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게 됩니다.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오히려 더 큰 아픔과 좌절감을 주면서 자기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축복이라고 그럴 때는 반드시 시기와 때와 분위기도 그 축복의 개념 속에 반드시 들어가 있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예수님께서 언제 오셨는가 할 때에도, “때가 차매” 라는 신학적인 단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때나 이렇게 오신 것이 아니라 신학으로 연구해보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시기와 환경과 조건이 다 하나님께서 예배해 두셔서 그 때에 보내 주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또 “관영 했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돌아다녔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죄가 관영 할 때까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가기 이 상황을 통해서 볼 때, 한 가지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한 가지의 어떤 독특한 것만 가지고는 되어지지 않고 그 이면 속에 그 일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조건과 상황이 형성이 되고 맞을 때에 그 성공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 강을 건너서 길갈에 첫 유숙 지를 정하게 됩니다. 지난 주일 말씀 드린 것처럼 이곳은 가나안 땅의 중간쯤 되면서 또 첫 관문이 되는 여리고 성이 앞에 버티고 있고 그 여리고 성을 정복하지 않고는, 무너뜨리지 않고는 이 가나안 땅에 결단코 들어 갈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는, 성공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당시에 가나안 문화는 철기문화입니다. 요즘은 우리가 철이나 이런 거 다 쓰지만 그 당시는 돌멩이나 청동, 이런 것을 썼기 때문에 무기를 만들어도 다 휘어지고 뭐 별볼일 없었지만 이 가나안 땅은 철기 문화가 있어서 무서웠습니다. 전차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있으면 전쟁을 치를 때에도 완전히 주변 사람을 싹 쓸어가는 정말 무서운 전차가 이 철기문화 속에 이들이 그런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고학에 의해서 발굴되는 여리고성의 성벽을 보면, 외벽과 내벽으로 되어져서 그 위에 차가 지나갈 정도로 너무 견고한 철옹성 같아서 도무지 이스라엘 능력으로는 이 여리고 성을 극복할 힘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무슨 특공대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 곳을 일만 시간 이상 투자해서 성공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그렇게 되어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은 꼭 지나가야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고민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 예, 꼭 해야 되는 일인데, 내게 아무런 능력이 없고 그 일을 극복할 만한 아무것도 나는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작은 하나의 가능성마저도 간직하고 그것을 극대화 시켜야 할 형편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정말 이해하지 못하실 명령을 내립니다. 

그것은 전투에 임할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에게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서 할례를 받으라고 그렇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례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남자의 성기의 표피를 잘라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마취제도 없고 항생제도 없고 기온도 높아서 곪기 쉽고 고통과 상처가 아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 성경을 보면 지금 이 상황이, 그 여리고나 가나안 사람들이 기가 죽어서, 요단강이 마르고 건너왔다는 것에 기가 죽어서 사기가 지금 팍 떨어져있을 때, 이때 공격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 시기를 늦추어서 이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리도록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전쟁을 앞두고 군인들에게 이 할례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이거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야곱 의 열두 명의 아들이 세겜의 그 정예 부대의 군사들과 싸워서 그들을 점멸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동생 디나를 정말 너희들 식구로 삼고 싶으면 너희들 다 할례 받아라” 그래서 세겜에 있는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았어요. 그때 공격해 들어가서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의 잘 훈련된 병사를 싹 다 죽인 이유는, 그 근거는 뭐냐 하면, 할례가 그만큼 전투력을 상실하게 하고 고통과 아픔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그런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받으라는 얘기는 지금의 우리 상황에 적용해 보면, 지금 내가 당장 나가서 돈을 구걸이라도 해서 밥을 사와야 되는데, 쌀을 사와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너 새벽기도 나와라, 철야기도 해라, 필요한 교회 교육을 다 받아라, 봉사를 전적으로 해라, 돈은 없다” 이 말하고 똑 같은 거예요. 

그리고 한끼만 먹으면 다 끝나는데 이걸 가지고 오히려 “남을 줘라” 여러분 이거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예, 저는 안될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어리석은 분입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지혜의 근원이라고 그랬는데 이 지혜로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 들을 왜 명령하실까요? 
이것이 교육의 readiness 준비성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 평소에 ‘기도해라 뭐해라’ 안 듣습니다. 여러분 입시철 돼 보십시오. 입시철! 
새벽기도 나오라고 해도 그 안 나오던 엄마들이 입시철이 되면 열심히 새벽기도 나옵니다. 입시철이 끝나고 나면 싹 그분들이 사라집니다. 요즘 수시가 돼가지고 수시로 여러분들 잘 나오셔서 다행이지만, 하하하 하하하 예-----

그게 왜냐하면 문제를 정확하게 앞 두고 그 문제 앞에 이렇게 제시하면 그것을 깨닫고 듣게 돼있습니다. 준비성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 덧셈 뺄셈을 배운 학생이 곱셈 나눗셈을 배우기가 쉽지 갑자기 곱셈 나눗셈을 한다는 것은 교육의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이 여리고라는 적들이 언제 쳐들어와서 점령할지도 모르는 바로 이곳에 전투력을 상실하는 이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에게 여리고보다도 더 급한 문제가 있고 적들이 쳐들어와서 지금 전투력을 상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다 죽인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급하게 하나님께서 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말 하나님 백성에게 그 복을 주시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무엇인가 있다고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여리고 앞에서, 정말 저 여리고를 무너뜨려야 내 인생이 달라지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해서 붙들고 기도했더니 엉뚱한 응답이 오는 거예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지혜로운 그 하나님은, 꼭 나에게 필요한 것, 유익한 것을 위해서 명령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음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함께 들으면서 여러분의 인생의 여리고 앞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지혜의 근원되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하시더라도 그 뜻이 무엇인가를 오늘 한번 다시 살펴보시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주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여리고를 이겨나가며 반드시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예----

첫 번째는 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관심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해서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이 최대의 관심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복이 있는 하나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고 또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 백성으로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복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궁극적인 것은 똑 같지만 관심의 초점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에 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순위라고 이 급한 마당에 하나님께서 꼭 강조를 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녀로서 그 관계를 유지할 때 이 여리고 성을 이길 수 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복된 백성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일깨워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운선순위가 안되면 자유인이 되어도 그 자유를 가지고 죄를 지어 죄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고, 내게 주시는 그 축복에 조건들은 저주의 조건으로 바뀌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선순위가 없는 인생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왜 중요할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고 축복을 받는 모든 조건과 상황과 가능성이 하나님 안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말콤 그래드웰의 이론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정말 수많은 자원과 그리고 수많은 전략과 모든 것이 동원이 되어야 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럴 능력이 없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은 불평과 원망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저도 여러가지 공동체나 또 제가 상담을 하면서 불평과 원망을 하는 사람, 물론 거룩한 불평과 창조적인 원망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불평과 원망을 하는 사람은, 일은 안되게는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일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 속에 가족을 원망하고 내 환경을 원망하는 사람이 그 앞 길이 절대 안 풀립니다. 여러분 한번 보세요. 여러분 스스로도 한번 보세요. 내가 누구를 원망하고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이냐? 뭐 내가 이 모양이냐?’ 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 안 풀립니다, 여러분! 
왜요, 원리가 그래요. 불평과 원망하고 또 마음에 여러가지 한을 맺고 있는 사람은 그 인생이 절대 잘 안 풀립니다. 자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 밖에 없어요. 

자,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 여리고를 점령하려면 그들에게 불평과 원망 가지고는 안되거든요, 그런데 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조건과 능력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나님께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그 힘과 능력을 공급 받지 않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코 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하나님이셨습니까? 
애굽 땅 노예 되었던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능력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자기 스스로 먹을 것, 마실 것, 구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을 것, 마실 것, 공급해 주셨습니다. 어디로 가야 될지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왔습니다. 

아말렉과 같은 정예 군사가 찾아와서 우리의 갈 길을 막을 때 우리는 이길 힘이 없었지만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힘을 주셔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홍해 같은 내가 건너 올 수 없는 바로 그 땅, 기적과 때로는 이적으로 그 마른 땅을 건너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요단 강도 건너게 하셨습니다. 

내부에 다툼과 분열이 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심판해 주시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그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잘라서 없어질 것은 없어지게 하면서 있어야 될 것은 보존 되게 하면서 그 공동체가 믿음의 공동체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면 모든 가능성이 하나님께 있었지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환경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더 열악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수 많은 가능성을 자기가 부여 받아서 저 여리고 성을 점령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 그래서 내가 너에게 공급해 수는 그 힘으로 그 에너지로 그 지혜로 저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 인생이,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내 나라가, 내 민족이 잘 되고 못 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과 지혜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승리를 위한 모든 조건은 전적인 타락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진정 내 인생에 성공과 행복과 승리의 조건은 하나님께 다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 인생이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예, 그것을 가능케 하시는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내 직장이, 내 사업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 믿는 것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순위로 세우는 것은 다릅니다. 예, 여러분 꼭 분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전 제가 우리교회를 섬겨 나갈 때에 최종 책임자로서 굉장히 중압감을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이렇게 올라와서 본당에서 울면서 기도합니다. 그 부담감 때문에! 왜요,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제 성격이 괜찮습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예! 

제가 지금까지 외동이지만 다니는 곳곳마다 제가 성품이 참 좋다고 칭찬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와서 성질이 더럽다고 얘기를 들어서, 이거 참 누가 그랬는가! 하하하 하하하! 예, 제가 우리교회에 왔더니 우리 장로님들이 제가 있던 교회, 그 교회에 있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서 ‘목사님 참 10년을 있었지만 그렇게 좋은 성품 처음 봤다’고,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너무너무 좋아하시던 그분들께서, 예, 갑자기 제가 참 성질이 더럽다고 이렇게 얘기 할 땐 제가 참 당황스럽지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그리고 제가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내가 적어도 꼭 해야 되겠다 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별로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뭐 대충해도 될 것 같다 그러면 대충하지만, ‘이것은 내가 꼭 해야 되겠다, 별로 실패해 본적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겠지요. 독한 데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을 할 때도 웬만한 여자는 다 데리고 산다고 생각했어요. 가정 불화가 있는 집을 보면, 아 저 능력 없는 남자, 저는 “치마만 둘러라 누구든지 나는, 뺑덕 어미도 괜찮다” 생각하고 했어요. 그래서 저를 좋아하고 또 저를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서 살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 인생을 내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제 인생이 무너져있더라고요. 

내가 인생을 쌓아오면서 내가 잘못한 것 없는데,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애쓴 것 밖에는 없는데 어느 날, 내가 나를 지탱하기 어려워서 내 스스로 내 몸을 던져서 죽음으로 나를 던져버리고 싶은 그 상황 속에 내가 와 있더라는 거예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좋아하는 그 아내 하나 만족시켜주고 행복하게 해 줄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뭐예요, 우울증에 걸려가지고 인생을 사느냐 죽느냐,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는 제가 가장 큰 원인이 되어 있더라는 거예요. 

오,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여러분 우리 여기 계신 형제님들 아내 정말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 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하시겠지만, 그것은 여러분이 집에 가서 물어봐야 정확한 답이 나옵니다. 예! 

정말 그 아내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면 가정 꾸리지 못할 남자들 많습니다. 정말 그 자녀가 부모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자녀로부터 버림받을 부모도 많습니다. 
참 잘할 것 같고 돈만 벌어오면 될 것 같고,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이 가정이라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제 딸이 열한 살입니다. 제겐 참 귀한 딸입니다. 

이 딸을 지금 제가 손녀 보듯이 보면서 이렇게 기르니까, 좀 제가 생각하면서 기르잖아요. 그러면 제가 야단 치려고 딱 하면 제 딸이 제게 먼저 이럽니다. “아빠 나는 마음이 약하니까 나에게 부드럽게 말씀해주세요, 친절하게 설명해 주세요, 일단 그러면 아빠 말씀은 다 들을게요.” 여러분 이 말을 잘 해석하셔야 됩니다. 

“아빠 지금 나를 대하고 있는 방법이 실패하고 있어!“ 이 뜻이에요. “내가 아빠기 때문에 지금 들어주고 순종하는 척 하는 거지 아빠가 지금 나에게 대하는 방법이나 지금 이야기 하는 것, 내가 긍정 못해, 내가 아빠니까 지금 들어 주는 거야! 내가 힘만 생기면 내가 자주독립 선언하는 날이 올 거야!” 여러분 이게 들어있는 거예요.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 자녀들 어릴 때 말 잘 듣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말 안 듣는다고 하지만, 옛날부터 안 들었어요. 힘이 생겨서 이제는 반항한다는 것밖에 없어요. 내가 낳은 내 자녀도 만족시킬 수 없고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없어요 여러분! 

신방 갔다 온 우리 목사님들 말씀 들어보면 가정 가정마다 뭐 전부다 열심히 사는데 가정이 지지고 볶고 엉망이라는 거예요, 왜요? 능력이 우리들 속에 원래 없습니다. 

저는 이민 교회를 하면서 60명 되는 교회가 한 200명 넘어섰고요, 또 예산도 16만 불 하던 예산이 갑자기 그 예산이 (이거 옛날 얘깁니다) 32만 불로 2~3년 사이에 확 뛰고 교회가 막 부흥할 때 저는 제가 굉장히 잘할 줄 알았어요. 

시카고지역에 떠오르는 별이다 그랬는데 어느 날 저는 포기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200명 넘는 교회도 제대로 추스를 수 없는 나, 그것이 원래 저더라고요 여러분! 
겸손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지금 우리 在籍 수가 만 명 정도됩니다. 오천 명이 넘지요, 아이들까지 7~8천명 되지요, 로테이션으로 예배 참석하는 분들 다 합치면 만 명이 되는 이 교회에 갖가지 사람 그 영혼을 책임지는데, 내 자녀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 가정하나 꾸리지 못하고, 아주 작은 교회 하나 섬기지 못한 제가 이 만 명 되는 교회, 이 교회를 운영할 수 있다고 여러분 생각하십니까? 

제 의지가, 제 노력이, 제 지혜가, 여러분 정말 제 양심적으로 두렵습니다. 두렵습니다!
저는 그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처음 부임해서 제가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것이 중보기도였습니다. 중보기도! 하나님 앞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아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끔 자, 그런 우리가 만 명 되는 교회에 자기 생각이 관철되어야 돼요, 자기 생각이 맞아야 돼요, 그래서 이것을 꼭 결정 짓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모습 바라보면 겁이 나요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서 어떤 생각 가지고 사는가? 걱정 될 때가 있어요. 제가 그런 두려움이 있는데, 이 일에 만 시간 이상 투자한 저도 이런 두려움이 있는데, 여러분 안타까운 일 아니겠어요? 저도 두려워서 기도하는데, 저도 실수 하는 거 많지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 실수를 또한 유익하게 만들어서 저도 성장하고 교회도 성장하게 하는 그 은혜와 지혜가 그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내 자신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내 인생, 정말 행복하게 이끌만한 능력이 나에게 있는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내 아내와 남편, 저 사람에게 행복을 줄 능력이 나에게 있는가? 내가 내 손으로 낳고 가르치고 있는 저 자녀, 내가 정말 저 자녀에게, 진실로 그 자녀가 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만한 능력이 있는 영향력이 있는 그런 존재가 되는가? 여러분 우리에겐 없어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 생애에 여리고를 앞두고 그 여리고가 무너지고 집이 팔려져야 되고 뭐 건강해야 되고 자녀가 잘 되어야 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시는 그 하나님과 내가 잇대어서 그 하나님의 가능성을 내가 받아서 그 일을 할 때만이 거기에서 그 일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하지 마십시오, 잘 살고 있다고 너무 교만하지 마십시오. 
왜요, 그것을 살다 보면 확인하게 됩니다. “아, 내가 헛 살았구나!” 단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중간에 깨닫게 하셔서 지금 이 바쁜 시간에 여기 와서 함께 예배 드리고 있는 것이지 그거 아니었으면 지금 내가 사는 인생이 잘 살고 나는 내 능력이 대단한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는 의미가 뭡니까? 

주님과의 우선순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서 살아갈 때,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신다는 그 의미가 이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내게는 성공 DNA가 없습니다. 실패와 부패시키는 능력은 내게 있습니다. 전적인 타락을 인하여서 정말 성공에 대한 DNA는 주님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위해서 주님께 구하십시오. 여러분 가족을 위해서 하나님께 이 가족을 잘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지혜를 요청하십시오. 사업을 위해서 이 나라를 위해서 주님 앞에 기도하며 주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주님과의 관계가 최 우선순위입니다. 예, 집 팔리는 것보다 운선순위 입니다. 예, 요즘 집 팔아 달라고 기도하는 분 많은데, 예, 자녀 취직보다도 그게 우선순위입니다. 왜요, 우리에게 원래 그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거 일이 막히고 우리 인생이 여리고처럼 이렇게 막혀 있어야, 아 그렇구나! 듣지, 이 상황이 안되면 말씀이 말씀으로 안 들립니다. 목사들이 무슨 나쁜 얘기하겠냐, 다 좋은 얘기하지, 그러고 지나가 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꼭 매달리고, 하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기고, 내 가정을 맡기고 내 사업 터를 맡기고 하나님의 교회를 기도하며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이 중요한 여리고성을 앞두고 왜 할례를 받게 하셨을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 됨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이 이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할례를 요구하신 것은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는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새로 태어난 백성들은 이 할례라는 것이 하나님 자녀 됨의 표시인데 이 표시가 이 백성들 속에는 싸인 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백성들에게 이 사람들이 정말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지,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 정체감을 심어주고 그 표시가 날만한 일들을 꼭 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를 가던 무엇을 하던 “내가 하나님 자녀이지” 이것을 기억나게 하는 일이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9절부터 12절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명령인데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내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싸인” 표지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 내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 되었구나! 내가 하나님의 자녀 구나!” 이것을 느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이 없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어려운 일, 고통스러운 일, 힘든 일 나타나면 절망합니다. 좌절합니다. 그것이 두 번 세 번 반복 되면, 그 때 뭐가 나옵니까? 내 팔자야! 

“나는 내 인생이 왜 지지리도 이렇게 못사냐? 일이 풀리는 게 없냐?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냐? 참 인생을 살 의미가 없구나!” 좌절과 절망이 오면서 어두움에 무거운 채로 인생을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 기쁨을 잃어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명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연명하게 됩니다. 

또 우리가, 이상하게 내가 보니까, 환경이 조금 좋아서, 여러가지 조건이 좋아서 내가 참 돈도 많이 벌고 지식도 있고 위치도 괜찮아요. 그러다 보면 뭐가 생기는가 하면 “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되네” 내 고집이 생겨나고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되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생각하게 될 때 뭐가 찾아오느냐 하면, 교만으로 이어지고 교만은 불순종, 불순종은 죄와 타락으로 이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일반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의식의 흐름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가 하나님처럼 내가 모든 것 축복받았다고 교만해도 별로 욕할 생각 없습니다. 왜요, 저도 그런 환경 되면 그리 갑니다. 또 저도 절망과 어려움이 오면 “내 인생이 왜 이 모양 일까” 좌절하고 절망하고, 저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것을 돌이키게 하고 새로운 해석을 하게 해주는 게 뭐냐 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입니다.   

여러분 내가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하는 그 의미는 뭡니까? 
하나님께서는 나의 구세주 되시고 나의 주님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아들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비참하게 못박아 죽이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단 말이에요, 그러면 오늘 나로 하여금 근심하며 걱정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본심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믿는 거예요. 

하나님은 선하시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보시는 시선도 선하시고 나를 행위와 나의 모습을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안에 있는 긍휼과 자비로 나를 보신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실패가 되고, 죄를 짓고, 어려움 당해도 “내 팔자” 이럴 필요 없이 여기에 하나님 뜻이 있구나! 내가 깨달아야 될 일이 뭘까? 하나님도 힘들어하시고 괴로워하시면서 자기 아들까지도 주시는 그 사랑 가지고 있으시면서도 나에게 이 어려움을 주신 이유가 뭘까? 

뭔가 뜻이 있을 거야!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 어려움 중에 고난의 의미를 찾고 고난을 이겨나갈 힘을 그 속에서 얻는데, 이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 자녀 됨의 정체성입니다. 또 내가 좀 남에게 남다른 돈이 있다, 지식이 있다, 경험이 있다, 여러분 남보다 우리 사람은 열 가지 못해도, 한 가지만 잘해도 교만한 것이 사람입니다 여러분! 

제가 Th.D. 를 받았습니다. Th.D.! Th.D. 는 원래 신학박사 theological doctor라 그러거든요, 원래는 디민이즘, D.Min.은 doctor of ministry입니다. 근데 D.Min.을 보통 요즘, 우리가 말하길 디미는 거라고 얘기합니다. 그 다음에 이번에 받은 Th.D. 는 Total head damage라고 얘기합니다. Ph.D는 permanent head damage라고 얘기합니다. 학위 가지고 계시는 분 죄송합니다. 이건 뭘 말하는가 하면 하나만 알지 다른 것은 모르는 거예요. 하나를 아는데 전부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 잘 되는데, 돈 하나 잘했는데, 지식 하나 있는데 명예 하나 있는데 그것 때문에 내 인생에 모든 것을 내가 잘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만한 거예요.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자녀지!” 이렇게 될 때는 “왜 내게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 이 은혜가 나에게 있지!” 그 때 이 사람은 뭘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뭘까를 생각하게 돼요.  

그냥 단순이 이것 가지고 누리고 내 마음대로 내가 편안하게 하고 내가 내 생각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특별한 은혜를 주신 이 하나님의 뜻이 뭘까? 내가 인생을 마치기 전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내 삶의 사명이 뭘까?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이 축복을 받은 내가 남다르게 하나님 앞에 살아드릴 삶의 그 사명,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그 사명이 뭘까? 32 :15

사명의 삶을 살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돈 부둥켜 않고 막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지식 가지고 자랑하고 교만하고 사람들 무시하는데 쓰지 않습니다. 권세 가지고 사람 박해하는데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더 잘 섬길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하는데 그게 뭐냐,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백성을 위한 정체성을 어디에 두었느냐? 남자의 성기에 두었지요. 
여러분 생리현상을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화장실 가서 몇 번씩이나 그거 확인해야 됩니다. 
그때마다 뭐 볼까요? “내가 하나님의 참 자녀지, 이 흔적 보니까 하나님 자녀네!” 잊어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고 또 하나 거기에 하나님의 자녀 됨의 표징을 세워놓은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범죄입니다 여러분! 성에 대한 범죄는, 여러분 중에도 혹시 이중생활하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면 잘 들으십시오. 다른 죄는 밖에 있지만 성에 대한 범죄는 내 몸 안에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서운 죄입니다. 네------
그런데 이 성에 대한 죄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젊은 친구들이 가나안 땅 들어가면 이방 여인들이 얼마나 예쁩니까? 여러분! 왜 처음보기 때문에! 새로 보기 때문에! 늘 보던 사람은 예뻐도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제 우리 형제님들 볼 때 그 자매님 부인 되는 분이 너무 예뻐, 그런데 본인만 예쁜 줄 몰라, 제가 보니까요. 왜요, 늘 보거든! 그런데 새로운 거 보면 달라집니다. 그래서 치매가 심하면 부부관계가 굉장히 좋아집니다. 왜요, 내 아내인줄 모리기 때문에! 하하하 하하하 
다음 날 나갈 때 내 명함을 주면서 급한 일 있으면 제게 연락 주십시오. 하하하 하하! 

최근 들어서 부부관계 급 작하게 좋아진 분은 치매 검사를 한번 받아 보시면 어떨까요? 
예, 새롭거든 날마다! 새로운 환경 속에 들어가면 정말 마음에 유혹이 일어나고, 성적인 욕구가 일어날 때, 범죄할 때, 딱 볼 때마다 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지! 내가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아야지, 그 유혹에서 돌이킬 수 있는 힘이 바로 이 하나님의 정체감에서 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교만 아니면 절망,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그렇지 이 땅에 내가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보냄을 받은 존재지, 사명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 자녀 됨의 정체성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있어야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돌이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절망감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그에게 정말 축복이 되고 그 자식뿐 아니라 이웃과 역사 속에 축복으로 나누어질 수 가 있습니다. 아멘—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골로새서 2장 11절, 12절 보면 이 말씀이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구약의 할례는 바로 신약에서는 세례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요청하신 게 뭘까요? 우리가 세례 받은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거예요. 세례 받았다는 것은 뭘까요?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 이십니다. 내 죄를 다 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입니다. 내가 내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주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는 순종하며 삽니다.” 이것을 세례 받을 때 여러분이 서약 다 하셨지요. 

예, 이 의식이 얼마큼 중요한지요, 우리가 세례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는 거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구세주로 믿기 때문에 우리에게 세례를 주고 이 세례는 우리에게 표시가 되면서, 내가 세례 교인인데, 세례교인인데 하는 게 뭡니까? 

내가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주님이 주인이시고 내 죄가 아무리 크고 놀라워도 주님께서 내 죄를 사해주셨다는 그 자유에 대한 마음의 확신과 선언과 용기가 내가 세례 교인이라는 그 확신 속에 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렵고 힘들면, “내가 세례 교인인데” 이거 잊어버립니다. 내가 좀 잘 되고 괜찮으면 “내가 세례 교인인데 주님이 주인이시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 바로 하고 하나님 앞에 복되게 살기 위해서 죄 안 짓고 살기 위해서 우리가 뭡니까? 

내가 세례 교인이라는 것을 자주 인식을 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우리가 들어와야 합니다. 즐겨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한 이유가 뭡니까? “내가 죽을 존재인데” 이것을 늘 의식하며 바라보게 될 때, 내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 다르다는 거예요. 

내가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사람이 오늘을 선택하는 삶하고 내가 죽을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그 삶의 방향과 목적이 지금 다릅니다. 선택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세례를 드릴 때 정말 평생 잊지 않는 기억으로 남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의 세레모니를 합니다. 여러분을 초청하지요, 초청한 이유가 와서 축복해 달라, 그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분이 세례 받는 것 보면서 “그렇지 내가 세례 받을 때 저 예수님께서 나의 구세주 되시지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지” 그걸 내가 깨달으면서 오늘 내 삶 속에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돌아가시고 내가 오늘 이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 은혜라는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내 모습은 없는가? 점검하라는 거예요. 

내가 혹시 교만해서 내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내가 잃어버리고 내가 잘하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사는 이것이 나도 모르게 죄짓는 것이 있는가? 이거 살펴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정말 영적인 사람은 세례 예배 때에 다 나옵니다. 

제가 중직자 가끔 말씀 드립니다만, 중직자는 저는 저의 파트너로 생각합니다. 처음 교회 나오는 분을 잘 섬기고 그 다음에 하나님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특별한 직분을 세워서 교회 일을 감당하도록 충성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중요한 일에 예배 때에 나와야 지요. 안 나와, 안 보여! 엄밀한 의미에서 교인 아닙니다. 그렇지요. 인정하지요? 예, 양심적인 분이 한 분밖에 없어요. 정말이에요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인식할 수 있고,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내가 스스로 찾아 다니지 않으면, 이 세상의 문화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주님이 구세주 되심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문화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어요. 

요즘은 요, 왜 드라마에 대한 기도를 했는지 압니까? 막장 드라마라는 게 있어요. 막장 드라마! 딸을 며느리 삼고요, 삼각관계는 보통이에요. 시아버지가 며느리하고 같이 살고 하는 이런 부분이 드라마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는 그 상황 속에 자기가 주인이지, 자기 쾌락이 주인이고, 자기 욕심이 주인이지, 정말 예수님이 주인 되고 내 인생의 구세주 되심에 대한 감사가 있고 겸손함이---- 
어디서 우리가 그런 것을 자극 받을 수 있고 은혜 받을 수 있나요?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갈수록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그 세대 속에서, 우리가 정말 믿음의 생활 하려면 성찬 예식과 세례 예식을 보면서 축복도 하지만 나를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분 결혼식 참석하면서 주례사 들으면서 뭘 생각하십니까? ‘오늘 결혼 잘한다.’ 여러분 그게 아니에요, 주례사를 통해서 내 가정은 저 행복을 위한 원리를 얼마만큼 벗어나고 있는가? 아, 내가 이 행복한 가정 만들기 위해서, 부부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자기 삶에 적용하고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그것이 복된데, 빨리 돈 주고 갈 생각해요. 
돈 주고 가는 그 사람 가정 보세요. 정말 행복이 있는 가정 같으세요. 예 안 봐도 뻔합니다. 왜요, 제가 상담을 하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인생의 하수도에서 제가 늘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들, 힘든 문제들 가지고 있는 것 보면 사람들 삶이 대체로 비슷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자녀 됨의 정체성을 회복하십시오. 여기에서 교만하지 않고 죄짓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일어설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예, 제가 섬겼던 무학교회에 거기 최집사라는 분께서 계십니다. 그 어머니 되시는 권사님이 참 온유하고 귀한 권사님이십니다. 그런데 남편께서 일직 돌아가셔서 이 권사님이 남의 집 일을 해주고 이 자녀들을 공부시켰어요. 큰 아드님도 참 좋으시고 작은 아드님도 좋은데 특별히 작은 아드님은 좀 이렇게 반항기가 좀 있어요. 저하고 연배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등록할 때마다 등록금 때문에 고생하고, 자기 어머니가 일해주고 밥 가지고 와서 자기들 먹일 때 자존심이 상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하나님 정말 하나님 살아 계세요? 교회도 나오고 신앙생활 잘했어요. 예, 하나님 살아계세요? 하나님 계시면 말씀해 보세요? 하면서 연필이 요렇게 학생들 돌리지 않습니까, 볼펜을 이렇게 탁 세워서 하나님 있어? 있으면 얘기 해봐?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있으면 얘기 해봐, 그러면서 또 빙빙 돌리면서 또 교회는 나오면서-----
그러니까 반항과 이 불만이, 삶에 대한 어려움으로 꽉 차있어요. 

이분이 이제 군대를 간 거에요. 보급 병을 했는데, 군대 가서도 계속 그랬다고 그래요. 
그런데 보급 창고가 무너지는데 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는 그 무너진 기둥 옆에 서있게 되어서 하나도 안 다친 거예요. 부대에서도 막 축하도 하고 그래서, 오 하나님이 살려 주신 모양이다. 이렇게 잠시 생각하다 그 다음부터 또 잊어버린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자기 부대가 산정호수 옆에 작전을 나가서 자기가 보급품을 싣고 갔는데, 담요 같은 거 내려놓고 보급품 내려놓았는데 이 운전으로 간다고 하면서 뒤로 빠꾸 하면서 자기 배위로 이 트럭이 지나가 버린 거예요. 이게 다 지나가서 거의 다 끊어질 직경밖에 되지 않습니까? 그냥 개구리가 차에 치어서 숨을 할딱할딱 몰아 쉬는 것 같이 되었을 때 자기 마음속에 오히려 기쁨이 왔다고 그래요. 평안히! 
하나님 살아계셨군요. 하나님! 예, 저는 이제 죽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신 거 확인 했으면 됐습니다. 그런데 군목이 와서 임종 예배를 드립니다. 군의관도 보고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런데 중대장이 오더니 “아 이 살려야 되는데 어떻게 하지!” 뭐 그러면서, 아 그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겠지요. 그러면서 무전을 치는데 미군 헬기가 뜬 거예요. 미군 헬기 안 뜹니다 여러분! 장군만 타고 다니는데! 
그리고 수도 통합병원에 저기 갔는데, 전문의 들이 다 퇴근 하는데, 그 날 밤은 전문의들이 회의가 있어서 거기에 다 모여 있다가 헬기가 오니까 어떤 환자인지 보다가 전문의 여섯 명이 달라붙어서 수술을 한 거에요.  안 되어서 성모병원에, 여의도 성모병원이라고 제가 들었어요. 성모병원에 전문의가 와서 또 치료를 하고, 그 기록이 지금 병원에 다 있다고 그래요. 자기에 대한 기록이---

눈을 딱 떴더니 옆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 중환자 실에서, 군대 중환자실은 거의 다 죽습니다. 죽어가고 있고 여기저기 숨을 거둬가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데 밤에 깨어서 적막한 가운데 다시 하나님 이름을 불렀다고 그래요. “하나님, 맞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십니다” 그 어머니가 와서 기도하고, 그 때 무학교회에서 정말 뜨겁게 권사님들 철야하고 기도 많이 했다고 그래요. 
하나님께서 그 마음도 회복하고 몸도 회복되도록 치료하는데 소변은 자기 힘으로 못 볼 거다 그랬는데 지금 소변 마음대로 보고, 그래서 결혼을 했는데, 이 자매가 참 예쁜 자매이고 깔끔한 자매에요. 샤워 안 하면 남편 잠자리 못 들어 오게 만듭니다. 그래 매일 샤워해야 됩니다. 샤워할 때 거울 앞에 비치는 것이 수술 자국입니다. 온 몸에----

멈추어 서서 하나님 맞습니다. 이 자국이 뭡니까? 내가 하나님을 의심하고 믿지 않던, 그러나 그 하나님은 그래도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나를 사랑했던 그 자국이라는 것, 그것을 이렇게 돌려다 보면서, 온 몸이 뭐 기운 바늘 자국 흉터투성이지요.
“하나님 나를 사랑해 주셨네요, 나를 포기치 않으셨네요, 날마다 욕하고 원망하는 나를 배척하지 않고 받아 주셨네요. 다시 삶의 기회를 주셨네요.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죄를 지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절망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낙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왜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그 의식이 있기 때문에 -----

여러분 우리가 여리고 무너지는 것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이 먼저 원하시는 것은 네가 정말 나의 자녀로 나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가? 그것 먼저 점검해 보라는 거예요. 

자 시간이 많이 갔지만 세 번째 말씀을 드릴게요.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이유가 뭐냐? 주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온전한 순종을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여리고에 그 병사들이, 이스라엘 병사들이 할례 받고 다 누워서 끙끙거리고 앓는데 오면 다 죽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누워있다는 것은 뭐냐 하면, 나는 옛 사람은 죽었습니다 하는 거예요. 원망과 불평을 하던 나의 옛 사람은 죽고, 능력 있는 나라고 생각했던 교만은 나에게서 죽고 옛 사람은 죽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그 자녀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조건은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복종하는 그 삶을 주님은 여기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간이라는 딱 한 사람, 2백만 명 되는 큰 사람들 중에 한 사람 딱 범죄했는데 하나님이 왜 아이성에서 패배시키고 그 걸음을 중단시켰어요.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을 원합니다. 
여러분, 내 일이, 이 일이 왜 안 될까? 여러분 가정이 내가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내 자신 속에 순종하지 못한, 이것은 순종하는데, 요것은 순종하지 못한, 돈은 순종이 안돼, 시간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러분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을 원합니다. 

왜요, 내가 내 육신대로 살고, 내 육신이 원하는 것, 내가 보이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면, 내 인생 속에는 육체의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6절 말씀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맹세하셨다고 그랬어요)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뭘 말합니까? 

주님께서 뭐라고 그랬어요.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 맹세하셔서 “내가 절대 너 이 땅에 안 보낸다.” 이 나온 사람들이 다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뺑뺑이 돌리신 거예요.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말씀은 순종하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 나는 허용치 않아!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전투를 앞두고 적들 앞에 할례를 받고 다 죽었다는 것은 내 옛 사람은 죽었습니다 주님! 불평과 원망하는 나는 죽고 하나님 약속을 믿고 믿음 안에서 감사하면서 하나님 의지하고 나가는 믿음의 자녀로 나는 거듭났습니다. 
세상의 원리, 돈의 원리 그리고 내가 내 육신의 원리를 따르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겠습니다. 그 말씀 안에서 순종하겠습니다. 

자, 로마서 8장 13절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갈라디아서 5장16절에서 17절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대적 될 때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자녀답게 살려고 하는 그것을 못하게 만드는 것은 뭐냐? 우리 육체의 소욕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면 뭡니까?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 삶이 더 풍요롭고, 아름답고, 복되고, 위대한 일, 아름다운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주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원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죽는다는 의미에요, “주님 내가 죽었습니다. 여리고성 앞에서 나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살려주시고 이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는 주님의 백성답게 승리할 수 있도록 내 삶을 인도해 주십시오” 그 고백이 이 속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의지 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있는 죄가 뭔지 압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내가 보기에 옳다고 생각한대로 결정하고 싶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함께 다 따라 오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 즉 내가 하나님 되고 싶은 것이 우리가 끊어낼 수 없는 우리 속에 죄악의 근원입니다. 

한번 보세요, 특별히 저는 그 시험 앞에 얼마나 많이 제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이 교회를 이끌어 간다” 그 시험 앞에 얼마나 서야 되는지 몰라요 여러분! 철저하게 철저하게 하나님 나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주님의 응답을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 살겠습니다. 정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 늘 그런 면에서 그것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실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제가 하나님 뜻에 복종하겠습니다. 바로 그 의지와 결단을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 앞에 있는 여러분들, 기도해도 하나님 엉뚱한 대답하실 거예요. 여리고성 내가 무너뜨려줄게 그 약속 보다는 더 중요하고 더 급한 것, 주님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어서 오늘 내 삶을 먼저 고치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 믿음의 주님에 자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에게는 내 인생을 아름답게 가정도, 직장도, 사회도, 교회도 잘 이끌어 갈 능력이, 그 성공의 DNA가 내 속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 알겠습니다. 주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내 인생의 여리고 앞에서 주님과 우선순위를 두고 기도하며 말씀으로 하나되며 순종하며 믿음의 걸음 걷는 우리 성도들 되게 하셔서 천국의 백성들이 누릴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그 축복의 풍요로움을 누린 것처럼 주님 자녀 됨의 축복을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김형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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