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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 (딤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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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  (딤후 2:1~7) 
 

미국의 심리학 교수 '로져 고올드' 박사는 사람이 유아에서 성인으로 발달하는 과정을 일곱 단계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⑴10-17세: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도망의 시기로 보았고, ⑵18-22세: 여러 가지 삶의 가능성을 찾는 탐색의 시기로 보았고, ⑶23-28세: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투쟁의 시기로 보았고, ⑷29-34세: 인생의 깊이를 생각하는 회의의 시기로 보았고, ⑸35-43세: 초초와 위기를 느끼는 불안의 시기로 보았고, ⑹44-50세: 과거를 돌아보는 반성의 시기로 보았고, ⑺51세 이상은 '나를 알고 가정을 알고 세상을 아는 성숙의 시기'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단계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고독'이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고독이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빠집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한 여가수의 자살을 보면서 슬퍼했습니다. 그는 '외롭다'고 낙서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런데 '로져 고올드' 박사님은 '이 고독을 얼마나 건설적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를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고독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고독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패배의식에 빠지게 합니다. 또 고독은 삶의 의욕을 상실케 하고 사람을 절망감으로 추락시킵니다. 그러면 고독이 무엇인가? 
  
고독을 사전적으로 정의해 보자면 '외로움, 동료가 없음'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독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군중과 권력에 싸여있는 대통령일지라도 고독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역대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백악관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무서운 고독을 느꼈다'고 술회했습니다. 이와는 정 반대로 이집트에 사다트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반년 간 독방에 갇혀 생활하던 그때가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위대했던 기간'이라고 회고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감옥 안에서 조국에 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다고 해서 반듯이 고독하지 않은 것은 아니요, 그렇다고 홀로 있다고 해서 꼭 고독한 것만은 아닙니다. 고독은 결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랍니다. 
  
종교심리학자인 '융'은 '고독은 나의 주변에 사람이 없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나눌 동반자가 없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중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은 고독한 사람입니다.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함께 꿈을 나누며 희망을 이루어나갈 동료나 동반자가 없다면 그 또한 고독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와 더불어 믿음과 꿈과 사랑을 나누어 가지는 참다운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겠는가? 누구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도 참 귀합니다. 부모의 사랑! 친구의 우정! 핑크빛 남녀의 사랑!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 못됩니다. 상대적인 사랑입니다.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다가 조건이 안 맞으면, 상대가 바꿔지면 그 사랑은 무섭게 변해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가장 귀한 사랑은 예수의 사랑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히13: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사랑을 알았던 다윗은 시18:1절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고 외쳤습니다. 
  
감활란 박사는 예수의 사랑을 알고 나서부터는 매일 밤 그의 품속에 포근히 잘 수 있었다고 고백했고, 무디는 예수 사랑을 알고부터 능력이 생겼다고 했고, 맥아더 장군은 예수의 사랑을 알고부터 용기가 생겨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고, 백만 거부 록펠러는 예수의 사랑을 알고부터 돈 버는 것이 쉬어졌다고 고백합니다. 조지 뮬러는 예수 사랑을 알고부터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고 좋아했습니다. 다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무엇을 걱정하겠느냐며 다 맡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도 깨달읍시다. 이 사랑만 알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저지르기만 하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삶이 맹물에서 포도주로 변화하는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될까요? 한마디로 극성스럽게 주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듯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남다른 극성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모든 극성스러운 사람들이 주님을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목은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 택함 받은 사람, 성도, 구원받은 사람, 그러나 한 가지 더 꼽는다면 그것은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강한 사람이 됩니다(1). 

  ▶'은혜 속에서 강하고' 이 말씀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⑴주님의 은혜가 나를 강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강하게 한다는 것은 내가 노력하고 힘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능동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수동적인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내가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엡6:10절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예수 안에서 주님이 나를 강하게 해 주실 때, 우리 모두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⑵영적으로 강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를 보면 육체적으로는 병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에게는 고질병인 안질과 심장병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고백은 그의 강함을 보여줍니다. 롬8: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얼마나 강한 자의 고백입니까? 

또 고후6:9-10절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쇠는 쇠가 강하게 합니다. 사람은 변화된 사람을 만나 변하게 됩니다. 
  
바울은 내적으로, 영적으로 강한 자였습니다. 예수 안에 거한 바울이 강한 자가 된 것처럼 우리 모두 이 강함을 붙드십시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의 정병입니다. 약한 군대는 전쟁에 나가서 싸울 수가 없습니다. 이 강함을 붙잡아야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강하게 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안에 거해야 하며 은혜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신31:7-8을 보면 모세가 자기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면서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성공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결정적 원인은 그의 통치능력이나 통솔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떠나지 아니하신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수14:10-12절을 보면 갈렙의 용맹이 드러납니다. 갈렙이 누굽니까? 여호수아를 잘 도와 가나안 정복에 큰공을 세웠던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믿음을 가졌던 유다지파의 지도자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이 끝난 후에 지파 별로 땅을 분배하게 됩니다. 그때 갈렙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우리나라 나이에 의하면 이미 인생 종착역에 다다른 노인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지파가 갖기를 꺼려하는 헤브론 산지를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합니다. 갈렙이 달라고 요청했던 산지는 이스라엘 점령군의 공격을 피해 도망친 가난안 원주민 아낙자손이 모여 있었고, 씨 뿌리고 양을 치기에는 아주 나쁜 땅이었습니다. 
  
갈렙은 원수가 득실거리는 땅, 가파르고 메마른 땅, 그 땅을 달라는 것입니다(수14:11-12).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얼마나 강한 자의 소리입니까? 사실 갈렙은 그동안 가나안 정복에 큰 몫을 해왔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장 좋은 땅을 자신의 몫으로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그의 나이가 85세였기에 전쟁을 통해 산지를 점령하기에는 무척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헤브론 땅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근거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신앙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원수들을 다 몰아내고 아무리 나쁜 조건이라도 좋은 조건으로, 기름진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이런 신앙을 가지십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만 하면 어떠한 어려운 조건과 환경에서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면 강한 능력이 임합니다. 이 능력은 육체를 강하게 하고 정신을 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더 강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바로 우리의 영혼을 날마다 강하게, 새롭게 해 주십니다.  영혼이 강하다는 말은 영혼이 '잘 됨같이'로 통합니다. 

 
2. 충성된 사람이 됩니다(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예수 안에 십자가의 군병으로 뽑힌 자녀들은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성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을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말합니다. 세상일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더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에게나 또한 아무렇게나 일감을 맡길 수 없습니다. 충성된 사람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는 몇 가지 충성의 원리가 있습니다. 
  
⑴언제나 충성해야 합니다. 잠시 동안 충성하는 것은 쉽습니다. 며칠 동안 충성하는 것도 쉽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 시작할 때는 충성심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쯤이면 흐지부지 식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오랫동안 변함 없이 충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오랫동안 변함 없이 충성하는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가롯유다는 끝까지 충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스승을 배반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제자 중 데마로 끝까지 충성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충성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백이 간단합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더욱 힘써 하겠습니다.' 그러나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실도 많고 변명도 많습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래서, 저래서'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구실도, 변명도, 모조리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그때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과 '악하고 게으른 종아'로 판결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자가 됩시다.

⑵어느 환경에서라도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따스한 봄날! 녹음방초가 우거진 여름 날, 그때에는 대나무와 소나무의 절개를 모릅니다. 그러나 눈보라가 휘날리는 엄동설한이 올 때, 비로소 송죽의 절개가 나타납니다. '옛날부터 집이 가난할 때에 어진 아내를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닥쳐와도 굳건히 참고 견딜 줄 아는 신앙, 이런 신앙이 승리합니다. 
  
욥이 그랬고, 다니엘이 그랬고, 그의 친구들이 어려운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옛날부터 나라가 어지러울 때, 충신이 난다고 합니다. 조선 조 때, 일본 오랑캐가 침노해서 팔도강산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이순신과 같은 충신이 나타났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자신의 환경이 좀 어렵다고 낙심에 빠지고 충성하지 못하면 그 믿음은 실패한 믿음입니다. 

  ▶교회 안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 네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달아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있다가는 나마저 손해 보겠다 하여 도망가는 사람들입니다. 언뜻 보면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평생 도망자는 될 수 있으나 충성스러운 일군은 될 수 없습니다. 
  
㉡구경꾼이 있습니다. 도망가지는 않지만 멀리 서서 떠들어댑니다. 자기는 손 하나 까닥하지 아니하고 별별 소리를 다합니다. 교회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일해야 할 곳입니다.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구경꾼들은 뒷전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또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아니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입니다. 
  
㉢적당히 봉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봉사는 하지만 조금만 고난이 오고 자신이 손해를 볼 것 같으면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십자가는 지지 않겠다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손해 되는 일에는 관계하지 않고 그저 내게 손해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당하게 봉사하자는 식입니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봉사에 대한 보람이나 희열이나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몸을 던져 교회가 넘어지지 않도록 충성하는 기둥 같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이런 일꾼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기둥과 같은 일꾼은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죽으려는 헌신적인 일군입니다. 이러한 일군들은 하나님의 일의 귀중 성을 압니다. 교회를 자기의 몸처럼 생각합니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요 나는 그의 지체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서라면 즐거움으로 헌신합니다. 
  
이러한 일군이야말로 충성된 일군입니다. 충성스러운 일군은 떠들어대고 원망하고 불평하여 말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충성스러운 일군을 말이 없습니다. 묵묵히 봉사하는 일군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군은 네 번째 사람과 같이 말없이 기둥처럼 헌신적으로 끝까지 충성하는 일군입니다. 

⑶어떤 일이나 충성해야 합니다. 성경 속에 보면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적다고 시시하다고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단 공무원은 시시해서 못하겠다고 합니다. 국장이나 장관이면 몰라도, 이것은 잘못된 계산입니다. 
  
말단에서부터 일하는 법을 배워서 올라가야만 국장자리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평신도니까 '그저 대충 해야지, 집사 받고, 장로 받고, 권사 받아 충성해야지' 이렇게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평신도부터 십일조 생활, 감사생활, 기도생활 잘하는 사람이 집사, 권사, 장로 되어서도 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주는 교훈은 '적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은 일부터 맡기십니다. 그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경건을 쌓기 위함이요, 둘째는 그 사람의 충성심을 보고 나서 다음 더 큰 일을 맡기기 위함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충성하였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애굽의 국무총리자리를 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베들레헴 초원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충성했더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충성심을 보십니다. 여러분, 관청이나 회사나 공장에서도 사원을 뽑을 때, 두 가지를 봅니다. 
▶저 사람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의 재능, 전문성을 봅니다. 
▶그가 믿을 만한가? 바로 충성심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좋고, 전문성이 인정된다 할지라도 이 충성심(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채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일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시고, 그 사명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주십니다. 
 

3. 예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3-4). 

저는 어릴 때, 군인하면 헌병이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하얀 헬멧을 깨끗하게 딱 쓰고, 또 금 빛나는 빠클을 반짝반짝하게 달고, 또 구두도 아주 반짝반짝하게 닦아서 신고 다니고, 바지는 어떻게 그렇게 날카롭게 잘 다리는지, 손대면 베일 듯 그렇게 반듯하게 차려입고 다닙니다. 바지 밑에다가는 링을 달아 가지고 한번 걸어갈 때마다 착착 소리가 나고 참 멋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반짝이는 구두와 날이 선 바지를 입고 있다고 해서 좋은 군인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자체는 좋은 군인의 모습은 보이지만 군인의 임무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군인의 임무는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군인은 충성되고 강인한 사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있느냐, 날 선 바지를 입고 있느냐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충성된 사람이냐, 누가 더 용감하고 강인한 군인이냐?' 거기에 좋은 군인이라는 특색이 나타나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라고 부탁했습니다. 철학자 '세네카'는 '산다는 것은 군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고, '웨렌 위어스비'는 '기독교인의 인생은 놀이터가 아니고 싸움터다'고 했고 '후안 까를로스'도 '신앙생활은 화려한 여객선을 타고 휴가를 즐기는 생활이 아니라 전투함을 탄 해군 생활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 싸움터의 한 가운데 서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부탁했습니다(딤전1:18). ▶좋은 군사의 조건은 무엇인가?

①군사는 고난을 견디는 것입니다. 
  
누구의 군사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입니다. 우리 모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을 대적하기 위하여 주님의 군사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⑴군사는 고된 훈련으로 시작됩니다. 그 훈련은 군복을 벗는 날까지 계속됩니다. 군대는 훈련이 얼마나 많습니까? 전투를 위한 모든 훈련, 극기 훈련, 유격 훈련, 사격, 정신훈련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훈련들을 잘 견디어 내야 합니다. 
  
이유는 국민의 의무이며 국가와 민족을 지키고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는 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견디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영광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견디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군인은 강해야 합니다. 강한 군인을 만들기 위하여 훈련합니다. 강하지 않은 군인은 적에게 먹히고 맙니다. 십자가의 강한 군인이 되기 위해서도 신앙의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강한 성도는 더 많은 고난의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편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게으르고 나태해집니다. 나약해집니다. 문제가 없으면 감사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역경을 통해서 감사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 고통 어려움을 격을 때 우리는 더욱 강해집니다. 감사도 할 줄도 알고 겸손할 줄도 알고 기도도 하게 되고 강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그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배구 코치들 보면 볼을 아무렇게나 줍니다. 어떤 방향에서 오더라도 받아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⑵우리 모두는 예수의 좋은 군사입니다. 예수님이 대장입니다. 이 분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군사는 대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대장을 지키고 대장의 말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어야 좋은 군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라면 결코 '아니오' 할 수 없습니다. 항명죄는 곧 총살형에 해당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⑶좋은 군사는 싸움의 대상이 누군지 알아야 합니다. 엡6:12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성도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히12:4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아니하였도다" ㈁육체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벧전2:1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원수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벧전5:18,19절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여러분.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 영적인 프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⑷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나이가 나보다 어려도 계급이 높으면 복종해야 합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해도 계급이 높으면 아무리 대학 아니라 대학원을 나왔다 해도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이 군인입니다. 사사롭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⑸군인은 군인다워야 합니다. 군인이 군인답지 못하면 고문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사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긴 것처럼 강한 용사가 되어야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항상 이기는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고문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사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말씀대로 늘 순종하고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강하고 좋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승리 원인은 '유일신 신앙'에서 이겼습니다. 전쟁 초기에 이스라엘은 '우리는 공개할 수 없는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장담을 하자, 이에 전 세계 군사 전문가들과 미국의 정보당국은 극비리에 그 최신무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나섰지만 그 최신 무기의 실체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 밝힌 최신 무기는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신앙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②군사는 자신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군대의 영장을 받으면 먼저 지금까지 생활습관에서 떠나야 합니다. 집을 떠나야 하고, 가족을 떠나야 하고, 집안 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또 훈련소에 들어가면 멋대로 길렀던 머리를 깎아야 하고 옷도 벗고, 군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며,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생활이 시작됩니다. 
  
멋대로 늦잠 자고, 쉬는 것도 통제되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것도, 멋대로 드나들고 아무 것이나 걸치고 다니는 것도 완전 통제됩니다. 철저하게 군기를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됩니다. 
  
본문이 말한 '자기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생활이나 이전 생활 때문에 군대생활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에는 사회의 법이 있고, 교회에는 교회법, 즉 신령한 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신령한 법에 순종해야 하고, 교회에 복종해야 합니다.  롬14: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③군사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좋은 군사는 뽑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마음에 합한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군인을 뽑습니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병역의무가 있는 신체 건강한 사람을 뽑습니다. 예수의 군사는 누가 뽑습니까? 우리 주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모집하신 분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군사는 '복종의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군대에 처음 들어가면 가장먼저 지휘관의 명령에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복종하는 훈련을 계속 받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본능적인 복종을 해야만 자기의 생명과 다른 전우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전투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첫째 의무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소리'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까지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기독교인들은 군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주장대로 한다면, '투사'는 될지언정 '좋은 군사'는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군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맥아더 장군의 일화입니다. 6,25 때 전선을 시찰하기 위해 끊어진 한강교에 왔는데 군인 한사람이 총을 메고 끊어진 다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죽을 지도 모르고 이미 다 끊어진 다리를 하염없이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장군이 물었습니다. 왜 여기 서 있는가? 명령입니다. 언제까지 서 있을 것인가? 다음 명령이 떨어지기까지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장군은 이렇게 충성하는 군인이 있는 군대와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충성을 다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프로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여기 '경기하는 자'는 '헬' 원어의 뜻의 의미는 '아마추어 선수가 아니라 직업 선수 곧 프로 선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마추어 선수와 프로 선수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고대 헬라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는 4년마다 모인 올림피아 경기였고, 고린도에서 3년마다 모인 이스무스 경기도 유명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께로부터 부름을 받은 경기자들입니다. 경기자들도 면류관을 얻기 위해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이 없이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면류관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왕들이 쓰는 왕관을 의미하고(계12:3), 또 하나는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면류관은 '스테파노스'입니다.
  
고전9:24-27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①운동선수는 무엇보다 법대로 경기해야 합니다. 오래 전에 LA 올림픽 경기에서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스케이팅 경기에서 미국의 오노 선수의 반칙으로 우리나라의 김동성 선수가 금메달을 놓쳤을 때 우리나라 전 국민들이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경기는 규칙이 있습니다. 덮어놓고 이겼다고 승리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규칙대로 경기하면서 점수를 따야 합니다. 
  
인간 사회 모든 분야에는 법이 있어서 그 법을 따라 통제되고 발전됩니다. 적당히 반칙을 이용하여 경기해야 하는 것은 프로 레슬링 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리 경기를 잘했다 해도, 아무리 성적이 좋다 해도,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혹, 얻었다가도 빼앗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해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마7:23). 
  
국가에는 헌법이 있고, 그 헌법을 모체로 하여 모든 법이 정해졌습니다. 도로에는 도로 교통법이 있고, 항공에는 항공선이 있다고 합니다. 법의 가치는 존재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데 있습니다. 
  
②성도는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교회 법이 있고, 교단에는 교단 법이 있고, 사회에는 사회통념과 규범이 있고 국가에는 국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저촉되지 않는 법은 다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③좋은 경주자는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본 경마계에 '하루우라라'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1998년 경마에 데뷔하여 한번도 우승해 본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무려 106번이나 패했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기록은 11마리 중 2등이 4회, 3등이 6회를 제외하곤 거의 매 경기에 꼴찌입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말을 보기 위해 무려 1만 3천명의 관중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일본총리도 회의 중 경주의 결과를 보고 받고 '또 졌느냐'고 탄식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사가 높다고 합니다. 이 만년 꼴찌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팬들의 대부분이 일본사회의 낙오자이기 때문입니다. 조기 퇴직 당한 회사원,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 도산한 중소기업가 등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 말을 보면서 다른 말보다 몸집도 작고 만년 꼴찌를 기록하면서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이 낙오자 신세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자신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 줄 알면서도 포지하지 않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하루우라라'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④좋은 선수는 목표를 분명히 바라볼 줄 압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면류관입니다.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뛰어야 합니다. 빌3:13-14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법대로 경기해서 이기는 자는 승리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하나님의 법칙대로 해 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면류관을 주십니다. 
  
⑤어떤 면류관을 주십니까? 
고전9:25절에 '썩지 않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살전2:19절의 '자랑의 면류관'이 있고, 딤후4:8절의 '의의 면류관'과 약1:12절의 '생명의 면류관'과 벧전5:4절의 '영광의 면류관'과 계4:4절 '금 면류관' 등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면류관이 상급이라는 점입니다.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나 하나씩 던져 주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명예를 받은 자만 얻는 한 사람에게 주는 상입니다. 
  
▶한 기자가 올림픽 때, 금메달을 받았던 사람에게 "그때 그 느낌이 어떠했습니까?" "한마디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 흥분, 감격, 그 황홀함은 표현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2년이 지난 후 다시 '그때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 위에 우뚝 올라선 채,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연주되었을 때의 감격이 지금도 계속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그는 '매달 연금 나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군 생활 38년 동안 더 이상 붙일 곳이 없을 만큼 많은 훈장을 받은 예비역 장교가 어느 사석에서 농담처럼 한 말이 있습니다. "훈장이 밥 먹여 줍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받은 영광이나 영예는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만 계속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일하고 받게 되는 면류관은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다가 저 천국의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5.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열매를 거두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6). 

①좋은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입니다. 좋은 농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농부입니다. 농사처럼 수고해야 하는 직업도 흔치 않습니다. 기회를 놓치면 농사는 망칩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은 아예 농사지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때를 놓치지 않고 수고하는 농부에게는 곡식을 먼저 받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기 '수고'는 '힘들여 고생하다'의 뜻입니다. ▶훌륭한 농부는 부지런합니다. 새벽 별을 보고 들녘에 나가서 저녁 늦게 별을 보면서 돌아오는 농부야말로 좋은 농부입니다. 
  
②심어야 거둡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듯이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를 붓 통에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당시 중국은 목화씨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금하고 있었습니다. 걸리면 바로 사형입니다. 문익점은 목숨 걸고 씨앗을 가지고 와서 씨를 심었습니다. 
  
학설에 문익점이 심은 목화는 진땅에 심어 죽었고 장인이 심은 목화는 울타리 밑에 심어 잘 자라서 이 땅에 옷을 지어 입게 했다고 합니다. 씨를 뿌리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심고 거두는 것이 자연법칙이듯이 믿음 안에서도 심고 거두는 법칙이 있습니다. 
  
갈6:7-9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③농부는 애타는 마음으로 곡식이 잘 자라기만을 바랍니다. 가뭄이 심한 해에 고추 농사를 짓는 아주머니에게 "요즘 고추가 잘 자라냐?"고 묻자 그 분의 대답은 "들에 나가 보면 가슴이 타는 것 같아요. 가뭄에 고추가 빼빼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어요" 이것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가뭄에 메마른 것은 땅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농부의 가슴도 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예수 밖에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바라보며 이 농부에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은 내 이웃들의 영혼이 죄로 타들어 가는 것을 보고 우리의 가슴도 타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④농부는 인내하고 기다립니다. 약5:7-8절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영적 농부인 우리는 결실 할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⑤결론적인 성구 하나를 읽습니다. 딤후4:6-8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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