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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 (고전 16: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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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기로 작정한 사람 (고전 16:13~18)


철학자 <베이컨>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거미 같은 인생, 개미 같은 인생, 꿀벌 같은 인생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고전16: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재 편지의 마지막 결론 부분으로 
권면과 인사로 끝맺는 부분입니다. 이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에게 
꿀벌 같은 인생을 산 신앙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데바나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의 마지막 권면이 무엇입니까?(13-14절)

바울이 고린도서를 기록한 목적은 
고린도 교회가 많은 문제를 안고 교회 안에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들이 어떤 것들입니까?  그 문제들이 게바파 아볼로파 바울파 하는 파당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음행의 문제, 우상제물의 문제, 세상의 법정에 소송하는 문제,              
결혼과 이혼의 문제,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의심, 성찬의 문제, 은사들의 문제,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 등의 문제들이 산적하였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문제아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문제아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3절을 봅시다.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 고 합니다.  
깨어라는 말은 정신차리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당하고 보면 특히 사람과의 갈등에 빠지게 되면
자기 감정 중심이 판단이 흐리게 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이럴 때 일수록 침착하자.-제 삶의 원칙입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그저 믿습니다! 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무엇이 믿음인지 분별을 하고 바른 믿음 위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위에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합니다. 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합니까? 흔들리지 말하는 말이지요. 고린도 교회가 왜 시끄럽습니까? 쉽게 애기하면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쫀쫀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믿음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을 넓히라.
고후6:13절 [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

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고린도전서의 결론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들이 사실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깨어서 믿음으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지 않기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파당이 생기는 문제를 예로 들어봅시다. 왜 파당이 생기는 것입니까? 자기가 옳다고 하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옳고 그름만 분별하여 시비만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파당이 생기에 되면 사생결단으로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습2: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하며 심중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 어찌 이같이 황폐하여 들짐승의 엎드릴 곳이 되었는고 지나가는 자마다 비웃으며 손을 흔들리로다 ]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자기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여도 자기 사랑입니다. 은사를 사용하여도 자기를 위하여, 지식을 사용하여도 
자기를 사랑하여 나오는 것들이기에 다 덕을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고 합니다. 

그런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바로 스데바나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 해결을 한 인물의 실례를 들어 해결점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스데바나는 어떤 신앙의 인물입니까?

2. 스데바나는 어떤 신앙의 인물이며 우리에게 주는 섬김의 교훈은 무엇입니까?(15절)

1) 15절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아가야는 큰 주(州)입니다. 
그 안에 아덴, 고린도를 비롯한 도시들이 많은데, 그 큰 아가야 주에서 제일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이 스데바나였습니다. 그가 바로 아가야 주에서 하나님 앞에 첫 열매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믿자마자 그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윤치영 씨가 미국 유학 중에 말로만 듣고 귓등으로만 듣던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알고는 감격하여 그의 온 집안에 복음을 전해서 
윤보선 대통령 집안이 몽땅 예수님을 믿게 되었듯이, 
스데바나도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에 가족들을 다 믿게 했습니다. 
그의 집안이 왜 다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그가 가족들에게 신뢰받고 존경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먼저 자기 가정에서부터 존경을 받아야 됩니다. 
자기 가족에게 신뢰를 받아야 됩니다. 아내에게 존경받고, 남편에게 신뢰받고, 아이들에게 존경받고, 
형제에게 인정받는 크리스천이 참 아름다운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2) 스데바나는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할 때도 작정을 하고 했습니다. 
무슨 작정을 했습니까? 
15절에 보면,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은 하인이고 종입니다.
스데바나는  부자이고 귀족이었습니다. 
천한 사람이 섬기는 일이야 당연한 모습이지만
귀족이고 부자가 섬기는 일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한 때는 이 명박 대통령 소망 교회 장로로서 주차장 봉사를 10년이나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 보시고 대통령 세워 주신 것 같아요.
요12:26절 [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귀히 여기시리라 ] 
예수님도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고 하나님도 섬기는 자를 귀히 여기신다고 합니다.

스데바나가 아가야의 첫열매가 된 것을 소개하는 이유는
단순히 아가야 지방에서 제일 먼저 예수 믿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어 신앙의 열매를 맺은 교인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가야의 첫열매가 될 수 있었는가? 예수 믿고 마음을 잘 먹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바나는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나는 섬기며 살겠다.󰡓라고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일군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작정했다는 말은 자발적인 헌신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직분을 맡아 해야하니깐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섬기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성도의 마음이요 작정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 후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좀 더 베풀걸, 좀 더 줄걸, 하고 후회를 합니다. 그래서 베풀지 못하고 못 준 것을 후회합니다. 
두 번째는 좀 더 참을 걸, 조금만 참았더라면 내 삶이 달라졌을 건데 참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삽시다.
여호수아는 수24:15절에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결심을 이스라엘 앞에 공포합니다.
오늘 우리도 스데바나 집처럼, 여호수아 집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바울이 스데바나를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권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16절)

16절 [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 
1) 섬기는 자는 함께 일할 줄 아는 자입니다.
빌2:25절 이하에 나오는 빌립보 교회 일군 에바브로디도
[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를 돕는 자라 ] 
섬기는 자는 함께 노 젓는 자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교회 안에서 앞장서 섬기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고 합니다.
스데바나는 섬김의 리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장서 섬기는 자들에게 순종하는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뜻에 맞지 않더라도 섬김의 리더의 뜻에 따라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소아시아의 중심 에베소에 머물고 있을 때에 고린도에서 스데바나와 함게 세사람이 찾아왔습니다.

4. 사도 바울이 스데바나의 일행이 온것을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17절)

이들이 온 것에 대해 바울은 17절에
[ 내가 스데바나와 보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였노니 ] 
영어 성경에는 영어 성경에는 󰡐그것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또 어떤 성경에는 󰡐내게 행복이었다󰡑 
또 어떤 성경에는 󰡐나는 너무 기뻤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스데바나 일행이 온 것이 얼마나 기뻤던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기뻐할까요?
에베소와 고린도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는 중요한 도시입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먼거리에 있는 에베소까지 와서 바울을 방문하여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형편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 수고가 바울에게는 감사한 일이요 기뻐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 보다 기뻐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17절 [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 즉 스데바나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부족함을 채우는 일군이라는 말입니다.
이 부족함은 꼭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신앙적 영적인 것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어떤 교회 목사님이 설교만 했다하면 󰡒여러분!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아니한 그런 미지근한 믿음은  지옥행이요`라고 야단을 쳤답니다.                  
얼마후, 목사님은 교인들의 냉대에 교회를 떠났고, 다른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헌데 이상하게 새로오신 목사님도 전임 목사님과 똑 같은 설교를 계속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교회에 새 목사님을 파송한 감독이 궁금하여 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똑같은 설교에 전임 목사님은 배척을 했으면서 후임 목사님은 존경하더랍니다.
까닭은 전의 목사님은 성도만 그런 것 같이, 그래서 지옥감이 당연한 것처럼 설교하셨는데 
지금의 목사님은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함을 말하며 성도들을 이해하고 고통을 나누는 설교를 하셨고, 그러니 성도들의 부족을 들추어내는 설교가 아니라
성도들의 부족을 함께 나누며 채우는 설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남의 부족을 흉보며 들추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데바나와 같이 남의 부족을 채우는 일군이 있습니다. 

1920년 대 평양에 백선행이라는 이름의 과수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찍 시집을 가서 아들을 하나 낳고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그녀를 모두 측은히 여겼고 특별히 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은혜를 받아 일평생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반드시 선한 일을 하며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밤낮으로 삯바느질을 하며 시댁을 돕고 아들을 양육했습니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 성경말씀을 외우고 즐겁게 찬송을 부르며 바느질을 맡기는 사람에게도 감사하고 정성을 다해 일을 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들은 장성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가내공장을 차릴 수 있을 만큼 돈도 남부럽지 않게 모았습니다. 
어느 날 남의 산자락에 묻혀있던 시어머니와 남편의 묘를 이장할 생각으로       
땅을 수소문한 끝에 거간꾼으로부터 명당이라는 다짐을 받고 200냥을 주고 야산 하나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장을 하려고 땅을 파보니 온통 돌투성이었습니다. 
이리저리 아무리 파보아도 좀처럼 흙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겨우 묘를 이장하고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내가 손해 보길 다행이지,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땅을 샀다면 마음이 상해서 어쩔뻔했노. 그저 나 하나 마음 상했으니 그것으로 됐구먼.” 라고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좁은 동네에 “백 과부네 망했네! 돈 2백냥으로 돌산을 샀으니 이제 망했다네!”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러나 백 집사는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사람들이 도청 직원을 앞세워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시멘트 공장을 차리려는 사람들로 지질조사를 하던 중에 백 집사네 산이 온통 석회석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백 집사를 찾아와서 1천냥을 줄테니 그 산을 팔라고 했습니다. 
백 집사는 깜짝 놀라거절했습니다. 
자기가 2백냥 주고 산 것도 잘못된 거래였는데 세상에! 1천냥을 주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청 관리와 광산업자는 돈이 적어서 그러는 줄 알고 얼마 만에 다시 찾아와 
2천냥을 줄테니 제발 팔으라고 졸랐습니다. 
백 집사는 더 놀라서 절대로 안되겠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우리가 처음부터 너무 싸게 불러서 이렇게 되었다. 
아무리 조선 사람, 그것도 과부의 땅이지만 돈을 제대로 쳐주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뒤에 그들은 다시 백 집사를 찾아와 그 산의 돌은 모두가 석회석이며 그 석회석으로 시멘트를 만들면   조선 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상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백 집사는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2만 냥에 땅을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동네를 위해 다리도 놓고 학교를 짓도록 땅도 내놓고 선교사도 도왔으며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과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재단법인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런 선한 일로 인해 총독부에서 표창을 하려 했으나 끝까지 거절했으며, 
후에 그의 장례를 조선의 첫 사회장으로 지냈으며 지금도 평양에 백선행 기념관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많은 사람을 구출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이팅게일 간호사를 아실 것입니다. 그녀가 영국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상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물질로 남을 도울 수 있다. 물질이 없을 때는 말로도 도울 수 있다
물질도 말도 없을 대 눈물로 도울 수 있다.”
그래요 물질요 말로 기도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 교회생활 가운데 우리는 어떤 교인이 되어야 합니까?(18절)

18절 [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 
스데바나와 그의 일행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했다고 하면서
그들을 알아주라고 합니다. 스데바나가 그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는 말은 ‘힘이 나게 했다’는 말입니다.
스데바나는 교역자에게 뿐만이 아니라 교인들에게 힘이 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탈 일이 생겨 공항서점에서 읽을 책을 한 권 소개해 달라하니
한 상복씨의 <배려> 라는 책을 소개해줘요. 이 책에서 배려가 인생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경쟁심에 매여 사는 동안은 삶이 힘이 듭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 바로 남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소외시 했던 죄인 세리 창기들까지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한 때 냉장고 광고에서 나온 말 “산소 같은 여자” 란 말이 유행했죠?
근간에는 맨유의 박지성 선수를 산소탱크라고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남을 시원케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반면 탄소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전화 받으면 답답해 오는 사람, 
전화만 했다 하면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 탄소같은 사람입니다. 
온 교회를 답답하게 만드는 교인, 탄소같은 교인입니다.
잠25:3절 [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 

이런 사람을 알아주라고 합니다. 귀하게 여기라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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