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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사랑의 회복 (느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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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의 회복 (느 1:1~11)

  
멕시코의 골프선수 중에 ‘로레나 오초아’라는 여자선수가 있습니다. 그 여선수의 별명은 ‘멕시코의 박세리’라고 불립니다. 혹은 세계최고의 여자골퍼인 ‘소렌스탐’을 따서 ‘제2의 소렌스탐’이라고도 불립니다. 세계랭킹이 3~4위이지만 곧 1~2위로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 선수는 우승을 하고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빼놓지 않고 꼭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멕시코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이 모든 승리의 영광을 우리 멕시코 국민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늘 그렇게 인사를 하는 선수로 유명합니다. 나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내 생명을 바쳐서 희생을 할 수도 있고, 나라를 위해 큰 공헌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초아’ 선수처럼 이처럼 마음과 생각으로, 말 한마디라도 자기의 조국을 사랑하는 애정 섞인 말을 통해서 나라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멕시코인 이라는 말은 그리 자랑스러운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 멕시코인 들인 까닭입니다. 그들은 미국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미국과 세계 앞에서 멕시코인임을 자랑할 수 있다면 그는 진정 애국자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내가 대한민국 백성으로 태어나고, 또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3.1절을 맞이하면서 한 인물을 회상해 보려 합니다. 그녀는 바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신의 젊음과 생명과 신앙까지 바쳐서 나라를 사랑했던 여인입니다. 바로 유관순 열사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3월 15일 충남 천안시 동면 용두리, 현재의 병천면 용두리 지령부락에서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 유준권씨는 일찍이 감리교인 이 되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그는 민족운동에도 관심이 있어서 자신의 가산을 털어서 민족학교를 세울 정도로 애국심이 강했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유관순 열사는 성장하게 됩니다. 유관순 열사는 어릴 때부터 매봉교회 주일학교에 열심히 출석합니다. 아주 성실한 주일학교 학생이었습니다. 그가 너무나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고 예배드리니까 선교사님이 그를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총명하고 믿음이 좋은 이 소녀를 여기에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장학생으로 이화학교 보통과에 입학을 시켜주었습니다.

이화학교 보통과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바로 기미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만 17세의 어린소녀의 몸으로 만세운동에 동참을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휴교령이 내려지니까 그녀는 자기의 고향인 병천면에 돌아갑니다. 그리고 아우내 장날, 그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1919년 4월 1일 주도하게 됩니다. 수천 명이 거기에 참여해서 만세운동을 벌이게 되고, 이 일로 인해서 유관순은 체포되고 그녀의 부모와 온 가족들까지 체포를 당하게 됩니다. 유관순 열사는 옥중에서도 계속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그렇게 투쟁하다가 1920년 10월 12일 만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 당하게 됩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죽일 수 있어도 우리나라 독립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일본인 판사에게 재판받을 수 없다고 거부하기도 했던 민족을 사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를 생각해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당시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신앙과 애국이 따로 분리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곧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앙 따로 애국 따로 이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곧 애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 마음속에 뜨겁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넘쳤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3.1운동 당시 대한민국 남북한 다 합쳐서 2천만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기독교인의 숫자는 약 1.2%인 25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타종교인 들의 숫자를 알아보면 그 당시 천도교인의 숫자는 200만, 불교와 유교는 합쳐서 3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25만 명의 기독교인의 숫자는 아주 미약하고 작은 숫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웠고 컸다는 것입니다.

3.1운동으로 체포된 사람의 숫자를 조사해 보면 기독교인의 숫자가 2039명, 천도교인이 1063명, 유교인 이 55명, 불교인이 41명. 체포된 사람의 60%이상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가장 종교인의 숫자는 적지만 그들이 가장 많이 만세운동에 동참했고, 가장 많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1운동을 주도한 민족 대표 33명이 있는데 그 33명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남강 이승훈 장로님, 또 길선주 목사님 이런 분들이 그 대표 가운데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천도교인이 15명, 불교인이 2명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얼마만큼 적은 숫자를 가지고도 나라사랑에 앞장섰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신앙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읽었던 성서가 바로 출애굽기와 에스더서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서 400년 동안 살아가다가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이끌어 내시는데, 모세를 통해서 그 억압의 땅, 고통의 땅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그리고 고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 자유의 땅으로 데려가십니다. 그 출애굽기서를 읽으면서 그들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도 일제의 억압 가운데 있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것처럼 우리들을 해방시켜 주시지 않겠느냐’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에스더서를 많이 읽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참으로 에스더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때에 저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에스더는 그 나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이라는 아주 악한 신하가 유대인을 미워해서 유대인을 하루아침에 다 죽이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그 때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지만, 그녀는 3일 동안 금식하며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구명운동을 벌이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전하게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출애굽기와 에스더서를 더 열심히 읽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애국심을 읽을 때마다 그들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40년을 건너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애굽 공주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호위호식하고 잘 지낼 수 있지만, 그는 자기 동족과 고난 받는 길을 택했던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가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실 때 그는 뭐라고 말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방민족이 하나님을 뭐라고 비웃겠습니까? 오히려 이 민족을 정말 죽이시려거든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십시오.” 자기 생명과 이스라엘 민족의 생명을 맞바꾸려고 작정한 인물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그 만큼 자기 동족을 사랑했던 애국자였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멸망해가는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로 예언했던 그런 눈물의 예언자입니다. 로마서 9장에 보면 사도바울 또한 애국자였습니다. “내가 내 골육친척, 내 민족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가 원하는 바로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면서 저 멸망당할 성읍의 비참함을 미리 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그 새끼를 품듯이 내가 너희를 품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더냐?” 하면서 안타까워하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유명한 월남 이상재 선생님도 3.1만세운동에 동참했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때 그가 묻습니다. “누가 도대체 3.1만세운동을 하라고 명령했느냐?” 그 때 이상재장로님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럼 3.1운동본부는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만세운동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갔기 때문에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당 조만식 장로님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묘 앞에 혹 비석을 세우거든, 비문은 쓰지 말라. 비문대신 큰 문을 두 개 그려 넣어라. 내가 그러면 죽어서라도, 내가 한 눈으로는 일본이 망하는 것을 볼 것이고, 한 눈으로는 대한민국이 자주 독립하는 것을 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교회 장로님들이, 이렇게 믿음 좋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3.1운동과 조국 독립을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은 바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고 애국하는 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한국 교회 전통이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한국의 기독교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천만의 기독교인이 있지만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부패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저의 책임이고 여러분의 책임인 것입니다. 천만의 기독교인이, 25만 명의 기독교인이 했던 일들을 흉내 내기조차 못한다는 데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느헤미야 1장의 말씀은 정말 누구 보다 더 자기 동족을 사랑하고 자기 고국을 사랑하는 한 애국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그의 할아버지 시대에 남왕국 유대민족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심판을 받고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정복을 당합니다. 적은 숫자를 남겨놓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끌려온 사람의 후손이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총명하고 삶이 훌륭했기 때문에 이 바벨론 나라, 후에 파사제국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고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해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는 애국자였습니다.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바로 이 느헤미야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에게서 애국자의 모습을, 나라사랑의 마음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로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그는 수산궁에 있습니다. 수산궁은 파사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이었습니다. 왕이 있는 궁입니다. 그는 왕과 함께 그 왕국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직함은 마지막 11절에 보면 술 관원이었습니다. 술 관원이라면 요즘 말로 쉽게 표현하면 비서실장입니다. 경호실장 아니면 비서실장. 그는 왕의 신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벨론이 유대를 정복했는데, 유대인들은 바벨론 사람들에 대해서 원한을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원한 가진 사람의 후손을 자기의 비서실장으로 채용했다니 이건 보통일이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만큼 느헤미야는 신실했고, 정직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왕도 신임할 정도의 정직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는 비록 이방 땅에 와 있었지만 유대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정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의 신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요셉이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있다가 모함을 받아서 지하 감옥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니까 요셉이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 요셉의 해석대로 떡 맡은 관원장은 며칠 후에 죽습니다. 그리고 술 맡은 관원장은 다시 복직이 되어서 왕 앞에 가서 바로를 섬기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바로가 어려운 꿈을 꾸고 해석하지 못할 때 요셉을 추천해서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게 하는 인물이 바로 이 술 맡은 관원장입니다. 술 관원이라는 직위는 막강한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왕을 모시는 사람입니다. 왕의 음식과 왕이 먹는 모든 음료를 미리 먹어보는 사람이 바로 술 맡은 관원입니다. 이토록 왕의 신임을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왕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느헤미야의 신실함과 정직입니다.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정직에 대명사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직한 사람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말만 많지 뭐, 그 사람들도 거짓말 잘 해. 믿을 수 없어, 기독교인들.” 여러분! 정말 오늘 이 땅에서 정직의 대명사가 되고 있으십니까? 정말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우리가 세상 속에 보여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문제인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정직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듯이 우린 이웃 앞에서도 정직해야 합니다. 때로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때에 정직한 삶을 살 때 그것이 바로 나라사랑이요, 신앙인으로서의 삶인 것을 깊이 새기셔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느헤미야의 삶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교훈은 그는 고국의 참상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2절과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이 느헤미야에게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니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니는 제 1차 포로귀환 때 먼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떠났던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니가 어느 날 느헤미야를 찾아왔습니다. 느헤미야는 고국의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그가 말하기 전에 먼저 물어봤습니다. 고국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니가 대답해 주었는데 사로잡힘을 면한 사람은 지금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침공해 올 때 그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을 불탔는데, 성을 쌓지 못하니까 이방민족들이 틈만 나면 공격해 와서 재산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삶은 너무 비참해지고 절망적인 가운데 우리 민족이 버려져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마치 그 동족의 참상을 자기의 비극인양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곤 울고 슬퍼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대단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나라를 사랑한다기로서니 우리 민족의 어려운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눈물 흘려보신 적 있으십니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얼마든지 호위 호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부모의 고국인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제가 언젠가 책을 읽다가 보니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 우리 대한민국은 참 어려웠습니다. 간첩들도 많이 넘어오고, 청와대 앞까지 간첩들이 무장하고 오고 참 어려울 때였습니다. 그 때 한국에 살던 한 장로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전쟁이 날 것도 같고, 살기도 어렵고 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분이 교회에 가서 대예배 대표기도를 하는데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지옥 같은 서울을 벗어나서 천국 같은 미국에 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합당한 기도입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자기 고통 받는 고국에, 자기 민족과 함께, 그 민족을 일으키기 위해야 할 텐데, 그는 도망가면서 “지옥 같은 서울을 벗어나서 감사하다”고 기도했다면 이건 나라를 사랑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영국의 한 유명한 대학에 아랍학생과 유대인학생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교수가 두 학생을 불러서 “여보게! 아랍과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났네. 자네들 동요하지 말고 공부나 하게나.” 하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숙사 사감을 불러서 학생들이 어디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감이 이야기를 하는데 전쟁의 소식을 전해 듣고 유태인 학생은 자기는 돌아가서 전쟁에 참여해야한다고, 군에 입대해야 한다고 하면서 짐을 싸서 이스라엘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럼 아랍학생은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혹 고국에서 징집영장이 날아올까 봐 주소를 옮겨야겠다며 하숙집을 구하러 나갔다는 것입니다. 정신력의 차이이고, 애국심의 차이인 것입니다. 결국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조국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쁨도 함께 나누고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늘 한국의 경제위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영세민들, 또 우리보다 더 어려운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손을 펴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사는 길이고, 우리 민족이 잘 되고, 고국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될 수 있고, 내 후손도 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국을 떠나서 나 하나만 잘 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저수지가 다 오염되어 있는데 우리 집만 맑은 수돗물을 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다 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도 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우리 교회에서 우리 이웃의 독거노인들을 위해서 봉사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힘이 있을 때, 아직도 능력이 있을 때, 우리 신길4동에만 해도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이 200분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분들에게 3명에서 5명이서 조를 짜서 찾아가서 목욕도 시켜드리고, 빨래도 해드리고, 청소도 해 드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봉사가 바로 애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하는 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우들이 이 일에 기쁨으로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 신청서를 보니까 원로장로님, 원로권사님들은 여러분 신청하셨는데 젊은 집사님들은 아무도 신청하지 않으셨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힘이 있을 때, 젊음이 있을 때 시간을 쪼개어 일주일에 한 시간 우리 주위에 어르신을 모시는 것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이 일에 우리가 함께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느헤미야는 고국의 참상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느헤이야는 고국을 위해서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를 자기의 죄인 양 자복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기 조국을 위해서 자기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사람들 앞에서 내가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은혜를 입고 내가 예루살렘 총독으로 돌아가서 그 허물어진 성전을 재건하고 그 민족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제게 은혜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동족의 죄악을 자기의 죄로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얼마나 혼란스럽습니까? 정말 이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나 때문입니다. 기도해야할 기독교인들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이 민족에게 이런 어려움이 온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대통령이 어떻고, 위정자들이 어떻고, 저런 대통령은 나도 하겠다. 대통령을 비판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세우신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1절 이하에 보니까 사도바울은 “우리가 높은 자들을 위해서, 위에 있는 자들을 위해서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고요한 중에 우리의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애국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고백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무엘은 애국자였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도 고국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따지고 보면 얼마나 복된 민족입니까? 정말 일제의 억압 가운데 있었지만, 오늘 이 해방과 아울러서 이렇게 경제적인 부를 이룬 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세계 어느 역사를 봐도 IMF를 3년 만에 졸업한 민족은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월드컵 16강에 한 번도 못 올라가다가 갑자기 4강까지 들어간 민족도 우리 민족밖에 없습니다. 대단한 민족입니다. 저력이 있습니다. 축구를 잘 하느니 못 하느니 해도 월드컵 본선에 9번 이상 나간 나라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연속 9번 월드컵에 출전한 그런 나라입니다. 대단한 나라입니다. 부끄러움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3.1만세운동을 불렀던 그 선열들의 피 위에 우리 민족이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6.25때 흘린 우리 선배들의 그 피 흘림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이런 부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3.1절을 기념하면서 우리들이 정말 나라사랑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느헤미야처럼 조국의 아픔을 듣고 함께 고통당하며 함께 기도하며 함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이웃을 향한 봉사에도 우리의 손을 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가장 자랑스러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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