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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아만의 나병치료 (왕하 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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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의 나병치료 (왕하 5:1~14)


 여러분 강호순이라는 이름을 아시지요? 부녀자 8명을 성폭행하고 암매장 한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 가정에는 그런 흉악범만이 아니라 경범죄도 범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이 강호순의 얼굴을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본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봐서는 그럴 일 할 사람이 아니게 보였습니다. 잘생겼고 착하게 생겼습니다.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겉은 화려하지만 속에는 온갖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은 그의 바깥을 꾸미고 있는 화려한 수식어와는 달리 엄청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전 900년 경 아람나라, 즉 시리아는 벤하닷1세라는 사람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는 구국공신으로 나아만이란 군대장관이 있었습니다. 나아만이란 이름의 뜻은 ‘즐거움’입니다. 1절에 보니 나아만은 아람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크다는 말은 위대하고, 크게 보이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존귀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사’라고 하는데 ‘들어 올리다’라는 말로 백성들 위에 높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1절 후반부를 보면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아람나라를 구원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여 나라를 구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간섭하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나라를 간섭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전세계에 선교사를 2만 명이나 파송한 선교대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선교하는 이 나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자원이 없는 이 나라,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나 되는 나라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백성들을 보시고 복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크고 존귀한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습니다. 히브리어의 나병이란 말은 ‘차라아트’라고 하는데 이 말은 ‘매, 징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에게 매를 맞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무조건 마을을 떠나서 외딴 동굴에서 살아야 하였고, 옷을 찢어 나병환자인 것을 표시하고, 사람들과 마주치면 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나아만이 자기 집 여종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있는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종을 찾아가면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의술로 고칠 수 있는 병이 20%로 밖에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고칠 수 있는 병이 20%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에게는 모든 병의 치료가 가능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공생에 기간 동안 많은 환자들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 중에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마 8:16절에 보면 주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많은 환자들이 주님을 찾아 왔습니다. 주님은 그 많은 환자들을 다 고치셨습니다. 한 사람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나병의 치료를 경험한 나아만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우리에게 문제가 있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공중에 들림 받게 될 것이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 때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면이나 환경적인 면에서 완전한 상태로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 까지는 다 문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도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문제를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완전한 만족은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갤럽연구소가 “당신은 당신의 외모에 만족하십니까?” 하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남자들 가운데 만족한다는 사람은 28%였고, 여자들은 13%에 불과했습니다. 만일 바꿀 수만 있다면 자신의 외모를 바꾸겠다고 한 사람이 남자가 94%, 여자는 무려 99%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조사보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비롯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맥스웰 맬츠(Maxwell Maltz)는 현대인의 95% 정도가 이런 저런 모양의 열등감을 느끼며 산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만큼 불만족스럽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의 인생에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는 여종을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되었으니 감사한 것입니다. 엘리사를 찾아가는데 왕이 편지까지 써주었으니 감사하고, 엘리사를 찾아가는데 큰 재물을 준비하여 갈 수 있으니 감사하고, 엘리사를 만나서 문둥병을 치료 받았으니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문제가 있으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진 문제보다 더 많은 좋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몸에 병이 들었어도 약한 지체 보다는 건강한 지체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약한 지체에 집중해서 그렇지 사실은 건강한 지체가 훨씬 많은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육체가 병이 들었어도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도 보통의 경우는 건강한 가족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재정적인 문제가 있어도 일용할 양식은 주시니 감사합니다. 쌓아놓지는 못했지만 굶지 않으니 감사하고, 빚은 있어도 살 집이 있으니 감사하고, 자녀가 말을 잘 안 들어도 압살롬처럼 죽이려고 하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제 큰 아들 모세가 얼마 전에 “아빠 감사하세요. 제가 압살롬은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좋은 부분을 보면서 감사하시고,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감사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점점 강성해지니 반드시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을 믿으시고 감사하십시오. 
저와 우리교회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을 점점 강성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교회를 축복하셔서 점점 좋아지고 점점 발전할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2. 하나님은 권력이나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는 아람의 군대장관, 즉 국방부장관입니다. 그 당시에 국방부장관은 엄청난 권세를 가진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권세로 나병을 고칠 수는 없었습니다. 
나아만은 엄청난 재산가였습니다. 그가 엘리사를 찾아갈 때 가지고 간 재물이 어느 정도였습니까? 5절에 보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이었습니다. 은 십 달란트는 60,000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까 은 십달란트는 약 48억 원입니다. 금 육천 개는 6천 세겔이고 데나리온으로는 12,000데나리온입니다. 12,000데나리온은 약 9억 6천만 원입니다. 의복을 제외하고 금과 은만 계산하면 거의 60억 원입니다. 노동자 한 사람이 75,000일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엘리사에게 줄 선물이 그렇게 컸으니 그가 가진 돈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나아만은 그렇게 많은 재산으로도 자신의 나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자기가 가진 재산으로도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여종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니 그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한 집사님이 파출부로 나가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일하는 주인집은 어마어마하게 큰 집입니다. 엄청난 부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심령은 썩어서 부부가 날마다 술 취하고 방탕해서 만나면 싸우고 가정은 완전히 황폐해졌습니다. 어느 날 파출부하는 집사님이 술에 잔뜩 취한 주인에게 한마디 합니다. “주인아주머니, 예수를 믿으시지요.” 그는 비록 남의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는 사람이었지만 찬송을 부르면서 기쁘게 일하고 얼굴은 천사같이 빛났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루는 주인이 묻습니다. “아주머니는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삽니까? 나는 이렇게 부자 집인데도 마음에 평안이 없는데 아주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면서도 얼굴에 기쁨이 넘치네요.”, 집사님이 대답합니다. “나는 천지의 주재이신 예수를 믿으니 세상에 아무 근심이 없습니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생기를 얻으며 삽니다. 내 인생 이대로 살다가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 주인은 이 파출부 집사님에게서 새로운 삶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파출부 집사님을 통해 감동을 받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집 주인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가 변화되니까 가정이 변화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쪽에 작은 섬 하나가 있습니다. 일찍이 이 섬은 중형수들을 수감하는 교도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섬에서 육지까지의 거리는 육안으로도 빤히 보일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죄수들이 감사의 눈을 피해 교도소를 탈출하고 바다로 뛰어 들어 헤엄쳐 도망치곤 했습니다. 그러나 도망자마다 섬을 굽이도는 급류 때문에 단 한명도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교도소 문과 해변가에 이런 푯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당신이 이 섬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고통당하고 있는 문제로부터 여러분이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에게는 없습니다. 그 문제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여러분이 변화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변화되는 길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 언제나 변함없는 계시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부르짖는 자들을 위경에서 건져주시는 분입니다. 

 3.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나아만의 집에서 종살이 하던 여종이 나아만의 나병이 고침 받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를 만나면 나병이 고침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나병에 걸린 나아만에게는 권력도 재산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에게 더 큰 권력을 주는 것도, 더 많은 재산을 주는 것도 사랑은 아닙니다. 나아만에게 진정한 사랑은 나병이 고침 받을 수 있다는 구원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나병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소식을 듣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나병이 치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가족들이 신앙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안타까움이 없다면, 그 사람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족이 교회를 안 나와도 교회로 인도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가족들이야 지옥 불에 떨어지든 말든 자기만 천국가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어느 예수님을 믿는 자매가 결혼을 해서 시댁에 들어갔는데 시어머니가 절을 다니는 보살입니다. 이 시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갑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얘야, 나하고 불공드리러 절에 같이 가자” 하는 것입니다. 이 자매가 시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서 자동차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갑니다. 가면서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는 가겠지만 저에게 불공을 드리도록 강요하지는 마세요. 제가 감동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시어머니는 불당에 들어가서 불공을 하고 며느리는 마당에 서서 시어머니가 끝날 때까지 “주여, 이 여종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는 도저히 불당에 들어가서 절할 수 없는 주님을 모신 몸이오니 이 종의 가는 길을 순탄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이후로 자매는 시어머니가 보살이지만 하나님 심기듯 정성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충분해지자 어느 어버이날 자매님이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어머니, 제가 어머니 모시고 늘 불당에 갔으니까 오늘은 저와 같이 교회에 가시죠”라고 말했습니다. 시어머니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충분한 기도가 있어서인지 의외로 “그러자, 오늘은 어버이 날이니 교회에 한번 가보자”라고 대답하고는 며느리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그날 목사님은 “부모님을 섬기되 주께 하듯 하라 부모님에게 효도해야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불당에 오래 다녀봤지만 절에서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며느리에게 “목사님이 항상 저렇게 말씀하시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이보다 더 좋은 말씀도 하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시어머니가 “예수가 부처보다 좋구나. 나 오늘부터 불당 안갈란다." 하고는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데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가족과 친지, 친구와 이웃들입니다. 조사를 해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은 전체 신자 중에 14% 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다수인 86%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모두 가깝게 아는 사람들의 전도에 의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주 접촉하는 사람들, 가족, 친지, 동료, 이웃들이야말로 내가 책임져야 할 태신자들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분들을 주님 섬기듯 하시고 기회가 될 때마다 복음을 전해서 풍성한 전도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고 하더라도 복음을 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많이 부족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은 좀 못 준다하더라도 복음을 준다면 정말 좋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4. 모든 일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가니, 엘리사가 사람을 보내서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나아만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노발대발합니다. 
 11,12절에 보니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라고 말합니다. 
 나아만이 노하였던 이유는 자기 생각과 엘리사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아만의 생각대로 그가 자기나라에 있는 강에 가서 몸을 씻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나병은 고쳐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경험이나 자기의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할 때도 자기 생각이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생각 때문에 시험에 들고, 자기 생각 때문에 불평하고, 자기 생각 때문에 복음과 원수가 되는 행동까지 하는 것입니다. 
 류영모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미국 LA 근교에 있는 조그마한 한인교회의 김집사님 이야기를 했는데 소개하겠습니다. 김 집사님 내외분은 서울에 있는 큰 교회를 출석하다가 그 곳으로 이민을 가서 그 교회를 출석합니다. 교회에 많은 충성과 헌신을 아끼지 않는 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분이 바로 교회 부흥의 걸림돌이 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교회하면 서울에서 신앙생활 하던 그 교회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분이 섬기던 강목사님이 모든 목사의 판단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강 목사님은 심방 오시면 밥 한 그릇 뚝딱 잡수시고 한 그릇 더 달라고 해서 잡수시기 때문에 밥 해주는 보람이 있었는데, 이곳 젊은 목사님은 한 그릇 밖에 안 드신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전에 계신 목사님은 설교를 하실 때 가운을 입고 설교를 하시는데 지금 젊은 목사님은 양복을 입고 설교를 하기 때문에 목사 같지 않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카펫을 깔게 되면 서울에서 신앙생활 할 때는 색깔이 붉은 색이었는데 이 교회는 녹색이기 때문에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데 강 목사님은 찬송을 느릿느릿하게 불러서 은혜가 되었는데 젊은 목사님은 찬송을 너무 빨리 불러서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김집사님이 그 교회에서 은혜를 받으려면 과거에 다니던 교회의 신앙스타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려면 나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고후 10:4,5에 보면 영적인 싸움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습니다. 시 119:105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6절에서는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고 말씀하고, 9절에서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165절에서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일에 있어서 참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의 기준대로 살므로 하나님의 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5.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끝까지 순종한 자가 받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서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에 화가 나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때 나아만이 엘리사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으면 그의 나병은 영영 고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하라고 했다면 행하지 아니하겠습니까 히물며 이 작은 일이겠습니까”라고 말하니 나아만이 요단강에 내려가서 씻습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들을 말은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 들어가서 몸을 한번 씻고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자기 몸을 살펴봤을 것입니다. 일곱 번 씻으면 살이 회복된다고 했으니 다 낫지는 않아도 조금의 차도는 있어야 할 것인데 몸을 보니 그대로입니다. 두 번을 씻어도 세 번을 씻어도 그대로입니다. 나아만은 씻으면서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아니, 일곱 번 씻으면 살이 회복될 것이라고 했으니 이정도 씻었으면 기미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 이거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나아만이 중간에 마귀가 주는 생각을 따라서 씻는 것을 포기했다면 나병에서 고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아만은 여러 가지 생각과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일곱 번을 씻었고, 그 결과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말씀이나 설교말씀 혹은 성령의 감동이나 환경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하기 까지는 많은 생각과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환경과 사람으로 방해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일어나는 갈등과 더러운 귀신들이 주는 방해를 극복하고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밤을 까서 먹으려면 찌르는 가시 껍질을 벗기고 딱딱한 껍질도 벗겨야 하지만 텁텁한 비늘 껍질까지 벗겨야 합니다. 알밤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벗겨내야만 맛있는 알밤을 먹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많은 방해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이겨내고 끝까지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순종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나아만은 일국의 국방장관입니다. 그런 그가 도랑물과 같은 요단강에서 옷을 벗고  썩은 살을 드러내고 목욕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목회를 잘하시는 목사님한 분이, 과거에 바둑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매일 서너 시간씩 친구와 함께 바둑을 두었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하는데 눈앞에 바둑판이 왔다 갔다 하더니 “성경을 하루에 한 시간도 못 읽는 네가 바둑은 어떻게 몇 시간씩 하느냐? 이제 그만 두어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바둑판을 도끼로 패서 불 태워버린 후 바둑 하던 그 시간에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만약 그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바둑과 함께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제가 늘 붙잡고 기도하는 신 28:1의 말씀을 보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은 말씀을 아는 자에게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나아만의 나병은 나아만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엘리사를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에게 기적이 일어나서 나병으로부터 치료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가보면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나아만처럼 하나님을 만나기를 힘씁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인생의 산 같은 문제를 제거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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