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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메섹 길 (행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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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 길 (행 9:1~9)


모든 시대를 살아간 그리스도인중에 가장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그리스도인을 뽑는 다면 누구를 천거하시겠습니까? 저라면 주저 없이 바울 사도를 천거할 것입니다. 그는 여러 면에서 그리스도인 됨을 보여주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불신자이었다가 신앙인이 되는 장면에서 그의 회심은 가장 대표적인 상징성을 갖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없는 분들이 마음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하는 사건을 가르쳐 기독교 신학에서는 회심(conversion)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회심을 급진적 회심과 점진적 회심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말합니다. 그리고 급진적 회심의 대표로는 바울을, 점진적 회심의 대표 유형으로는 바울의 제자인 디모데를 천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중에도 ‘바울 형 회심’을 한 사람들이 있고 ‘디모데 형 회심’을 한 분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예수 믿는 집안에 태어나 자라면서 점진적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고 받아드린 경우를 우리는 ‘디모데 형’이라 할 수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사건을 계기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믿게 된 경우를 ‘바울 형’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예수를 믿게 된 경우에도 그 체험은 꼭 같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소위 회심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의사 누가가 바울의 회심 사건을 보도하면서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동반된 바울의 체험들을 열거합니다. 예를 들어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인 사건, 그가 땅에 엎드려 지면서 들었던 음성, 그런데 그 소리를 함께 동행 하던 사람들은 전혀 듣지 못한 일, 그리고 그가 땅에서 일어나며 발견한 실명의 경험 등등, 그러나 과연 이런 체험들이 동일하게 있어야 누군가의 회심이 참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런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 예루살렘에서 북으로 240km나 떨어진 현재 시리아의 수도인 다메섹 
길(예루살렘 구성의 다메섹 문을 나와 북상하는 길-옛날에는 5-6일 소요되는 여행 거리)이어서 흔히 이 체험을 다메섹 체험이라 일컫습니다. 지금도 시리아 다메섹을 방문하면 다메섹 교외에 바울이 이 체험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바울 회심 기념 교회가 서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다메섹 체험에서 그의 회심의 본질을 보여주는 요소들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정답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한 여러 초자연적 체험들, 예컨대 빛과 소리, 실명 등은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회심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회심 사건의 본질-과연 무엇일까요?

1.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기독교 회심 사건의 본질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구원받은 사람, 곧 회심한 사람은 없습니다. 니고데모도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했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했습니다. 

본문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예수는 그에게 핍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울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빛을 동반하고 오셨습니다. 그는 빛 가운데 엎드려져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4절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5절의 주님의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실 그가 박해한 것은 주님의 백성들이었지 주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가 주의 백성들을 박해한 것이 곧 주님을 박해한 것으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 순간 그는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둘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던지(바울처럼), 아니면 우리가 예수님께로 와야 합니다.<

성경에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는 초청의 단어가 ‘오라’는 말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와 보라’(come & see) ‘내게로 오라’(Come unto me), ‘오라’(come)고 초청하십니다. <BR>요6:37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주 예수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를 만나 주십시오.”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구하면 주시겠다고, 찾으면 찾게 하시겠다고, 문을 두드리면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분이 만남을 주실 것입니다. 영국 클램팜에 화가요 작가인 샬롯 엘리옷(Charlott Elliot)이란 여인이 있었습니다. 20대부터 촉망을 받던 그녀가 30대가 되어 갑작스런 병을 앓게 되면서 매사에 반항적인 여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너무 걱정이 되어 그의 친구 목사 한분을 집에 초대하였습니다. 말란 목사(Dr.Malan)가 신앙 이야기를 꺼내자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만날 수 있느냐"고 신경질적인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때 이 목사님은 단순한 한 마디 말-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그분에게 오시오(Just as you are)-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화살처럼 가슴에 찔리는 순간 그녀는 주님이 자신의 마음을 만지고 계신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예수님에게 자신의 인생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녀의 회심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붓을 들어 한 찬송가를 작사합니다.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갑니다.”(찬339장) 

이 찬송의 원 제목은 “Just as I am”이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전도 집회마다 이 찬송이 불리워 수많은 사람들을 주께 나아오게 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께 나아올수 있느냐고요? 대답은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십시오.”입니다. 이것이 회심의 첫 단계입니다.


2.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회심의 또 하나의 절대적 요소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나누어 고백합니다만 초대 교회, 사도행전에서는 예수의 구주와 주님되심이 구별되지 않고 그냥 주(Kyrios)로 불리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또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치 않고는 아무도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전12:3의 
말씀입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본문에 바울이 거룩한 빛에 둘러싸여 땅에 엎드려 지며 5절의 말씀처럼 “주여, 누구시니이까”하는 순간 이미 성령은 그의 마음을 만지시고 계셨던 것입니다.지금 그가 만나고 있는 분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실 것을 직감한 것입니다. 

그후 바울의 전도에서 예수를 주로 부른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 됩니다. 
롬10:13을 읽어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고백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제가 자주 설명해 드렸습니다만, 다시 반복하겠습니다. 초대 교회 시절 로마가 통치하는 모든 곳에서는 길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면 인사가 “가이사가 주님이십니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이렇게 인사를 받습니다. “맞습니다. 나의 주님은 가이사이십니다.” 

그런데 신실한 그리스도인중에는 다르게 이런 인사에 반응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자, 상대가 이렇게 인사를 먼저 해 옵니다. “가이사가 주님이십니다.” 이때 종종 어떤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인사를 받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주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맞습니다. 나의 주님은 가이사이십니다 하는 대신으로) 그리고 이 인사, 이 고백 때문에 그들은 자주 고발되고 체포되었고 원형 경기장 같은 곳으로 끌려 간 것입니다. 왜냐구요? 예수가 주인되신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어떨까요? 예수가 참으로 당신의 주가 되셨나요? 이것이 바로 회심의 두 번째 요소인 것입니다.


3.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된 바울이 다음으로 보인 반응이 무엇이었을까요? 
바울 사도가 자신의 회심 사건을 행22장에서 다시 증언하게 될 때의 고백을 읽어 보시겠습니다. 
행22:9-10입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10)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저는 진실하게 예수를 주로 받아드린 모든 이에게서 반드시 있어야 할 질문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이제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바꾸어 말하면 이것입니다. 

 ‘주님, 이제부터 변화된 삶을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 저는 이 질문이 없는 사람의 회심을 믿지 않습니다. 정말 우리 인생의 주인이 달라졌다면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 그를 주로 고백하게 된 바울의 변화를 한 성경학자는 3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러 왔다가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2)그는 예수가 메시아(그리스도)라는 메시지를 제거하러 왔다가 예수가 메시아(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메신저가 되었습니다. 
3)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자이었다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박해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Application Bible Commentary) 이것이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 변화입니까? 이 한사람 바울을 통해 이제 복음은 시리아로 소아시아(터키)로 로마로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과연 바울 사도는 고후5:17의 고백을 하기에 합당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것이 바로 회심의 마지막 요소입니다. 예수를 참으로 만나고 예수를 참으로 주로 고백하는 자가 되었다면 이제 변화의 흔적, 변화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삶의 주인이 바꾸어졌는데 어떻게 인생이 바꾸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회심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회심은 우리의 인생관과 세계관의 변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옛날 방법, 옛날 모습 그대로 삶의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회심이 한 순간 사람을 성자로 만드는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전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앙의 의미를 붙잡지 못하고 명문 브라운 대학에 다니면서 무신론자 친구의 영향으로 이신론자(사실상 무신론자)가 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4년 과정 대학을 3년에 졸업하고 졸업 여행을 떠났다가 시골 여인숙에서 옆방에서 밤새도록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 이튿날 그 옆방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바로 대학 시절 자기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바로 자기 친구였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고 인생의 실존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에 찬양하던 예수님 앞에 돌아오기로 결심합니다. 회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바울처럼 즉각 기도를 시작합니다. “주님,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어제처럼 지금까지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복음밖에 없고 이 복음을 한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신학을  공부한 후 방금 결혼한 신부와 데리고 아시아를 향해 떠납니다. 그가 바로 미국이 버마로 파송한 최초의 침례교회 선교사 아도니럼 저드슨(Adoniram Judson)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단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도 없었던 버마에는 21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습니다. 한 사람의 회심이 가져온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변하면 한 가족이 그리고 한 공동체가 한 민족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그러면 이제 여러분과 저도 다메섹 길로 나아가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아직도 진지한 회심을 경험 못한 분들은 먼저 이 날 이 예배의 장이 다메섹 길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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