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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의 진보와 하나님 나라 (요 18: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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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보와 하나님 나라 (요 18:33~38)
      
  
오늘 드리는 말씀은 저의 일련의 신학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을 주가의 등락 때문에 고민하고 또 어떤 분들은 자녀의 성적 때문에 고민하지만 저는 신학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합니다. 천상 저는 목사가 될 팔자인 모양입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목사님, 저도 고민이 많은데 목사님의 고민까지 들어야 됩니까? 저에게 고민을 말씀하시지 말고 해답을 주세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려고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무신론자들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인구의 70% 이상이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저는 높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을 사실로 믿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인구의 90% 이상이 진화론을 믿습니다. 그것은 인구의 60%가 믿는 미국과 비교가 되고 인구의 30%가 믿는 터키와 비교가 됩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아마 가장 손쉬운 방법은 스칸디나비아를 찾아가서 물어보는 것일 것입니다. 왜 당신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 그러나 차비도 없고 뭐 그런 걸 물으려고 거기까지 찾아가겠습니까. 그래서 멀리서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놀랍지가 않다는 사실입니다. 

스칸디나비아에 무신론자가 많다는 사실이 별로 놀랍지가 않아요. 충분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만한 조건을 갖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진보를 이룬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일단 경제적으로 안정됐고, 사회복지제도가 제일 잘 발달했고 사회 자체가 평화스럽고 인권이 가장 발달했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습니다. 아주 합리적입니다. 그리고 준법정신이 강합니다. 범죄율이 낮습니다. 그리고 남에 대해서 별로 간섭을 하지 않아요.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일본 같은 나라는 야심이 많고 세계 각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간섭하기를 좋아하지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일절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합니다. 그 말은 스스로 만족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여건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충분히 진보를 이루게 되면 종교가 필요 없는 날이 오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부모를 의지하지만 어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처럼 인류가 아직 미개한 상태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다가 충분히 자라나면 신앙으로부터 졸업을 하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인가? 마치 왕자가 어릴 때에는 가정교사로부터 배우지만 임금이 되면 더 이상 스승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인류도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룬 다음에는 종교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발전한 나라가 어디 스칸디나비아뿐입니까. 우리나라도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나 의식수준이나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은 우리가 더 많이 땁니다. 그들의 콧대를 꺾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살고 발전했지만 신앙이 부흥하는 나라가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이런 나라들,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발전했지만 그럼에도 신앙이 부흥하고 있고 그리고 기독교는 아니지만 일본 같은 나라도 종교가 많고 대만, 대만의 경제적인 발전이 그들을 세속적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바이의 신화, 그것을 누가 흉내 낼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발전과 진보가 그들을 종교 없는 사회로 만들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봤을 때 국가의 발전이나 인간의 진보가 종교를 반드시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는 종교이고 발전은 발전입니다. 종교는 외적인 발전으로 채워줄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전깃불을 환하게 밝힌다고 해서 사람 마음속의 두려움까지 쫓아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또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산다고 해서 가족들이 더 화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준법정신이 발달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까지 이루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스칸디나비아 국가에는 무신론자들이 많으냐? 어떻게 보면 그들의 문제라고 그냥 내버려둘 수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뭔가 현대사회의 하나의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남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고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내재하는 위험을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왜 스칸디나비아에 무신론자들이 많으냐? 

단순히 설명하면 첫 번째 이유는 교회가 부흥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부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국민들의 믿음을 지켜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를 들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신본주의 국가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국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이 나라의 법이에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수시로 선지자들이 나오고 주의 종들이 나와서 백성들을 권면하고 독려하고 꾸짖고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우상과 죄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수시로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주시고 그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늘 권면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가 지금 교회가 많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교회가 기도의 열심이 식어버리고 말씀 전하는 자들이 잠잠해 지고 전도의 열정이 식어버리면 한 세대 안에 우리나라도 영적으로 쇠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영적으로 냉담해지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한 세대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부지런히 서로 권면하고 기도하고 기도에 힘쓰고 모이기에 힘쓰고 말씀을 전하고 말씀의 검을 휘두르지 아니하면 어느 나라든, 어느 사회든 불신자들과 의심하는 자들과 이단과 세속주의와 탐욕과 음란과 거짓이 뿌리를 내리고 잡초처럼 자랄 수 있는 위험은 어디든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지만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에 교회의 부흥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나라는 신앙이 부흥합니다. 교회가 쇠한 나라치고 기독교 신앙이 부흥하는 나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교회가 진보적인 신학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진보신학이 무엇이냐? 몇 가지 기준을 놓고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성경관입니다. 성경을 보는 관점, 성경말씀을 정말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흠이 없고 실수가 없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고 믿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관입니다. 여기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대해 확신이 없는 나라가 많아요.

성경에 확신이 없다면 무슨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는데 전할 메시지가 없으면 무슨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사람들이 어디에서 믿음을 얻겠습니까. 들을 것이 없으니까 믿음이 생기지 못하고 믿음이 생기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편 말씀에 ‘어리석은 자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지라’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하지 않고 똑똑하다고 하지 않고 미련하다- the pool say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하나님이 없다고 마음에 생각하는 자는 미련한 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존재하는 것은 많습니다. 공기, 산소, 전기, 전자파, 사랑, 행복, 평강, 지혜 이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로 만드는 법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기를 사용해서 불을 키고 발전기를 돌리고 자동차를 만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지혜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고, 이런 모든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기초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가 우리 눈에 보이고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에요. 국가의 지적인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서 신앙이 반비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파스칼 같은 사람은 당시 최고의 수학자였지만 또한 최고의 신앙이었습니다. 아이작 뉴튼, 갈릴레오 다 최고의 학자이지만 그들은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인간의 지식이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진보신학의 기준이 되는 것은 구원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느냐?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만일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뭣 하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겠습니까. 만일 예수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뭣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십니까. 예수님 안 믿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뭣 하러 예수님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예수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뭣 하러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사람들이 뭣 하러 교회에 오겠습니까. 당연한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의 기준은 종말론입니다. 인간의 진보와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것이냐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이 살기 좋아지고 범죄율이 낮아지고 또 병을 정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또 민주주의 사회가 되고 사람들이 살만한 그런 사회를 이루면 그 자체가 천국이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 이것이 진보적인 생각이요 진보적인 신학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천국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이 같은 생각을 극단적으로 한 사람들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유물론자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천국을 믿지 않고 이 땅에 낙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칠십년을 실험을 통하여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인간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인간이 바뀌지 않더라, 환경을 바꿔도 인간이 바뀌지 않더라. 인간은 여전히 인간이더라, 그들이 내린 결론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데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해서 이 세상이 낙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여전히 죄인이고 여전히 탐욕스럽고 거짓스럽고 인간은 여전히 구원받아야 될 존재에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 오늘 본문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서 하나님에게 그것을 바치기 때문에.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예수님은 정치를 하든가 독립운동을 하든가 무장봉기를 하든가 로마인과 맞서 싸우든가 임금이 되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에 의료상태를 개선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지만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권고하셨지만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가 발전하고 경제가 발전하고 정치가 발전한다고 그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일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인간은 죄인이고 거듭나야 되고 구원받아야 되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게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라가 발전할 필요가 없고 발전을 위해 일할 필요도 없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노라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셔서 경제도 발전할 수 있고 더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되고 그 모든 것은 덤으로 주시는 것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고 어떻게 임하고 우리가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이것은 또 다른 주제입니다마는 여기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 두 가지만 인용하면 첫째는 ‘이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되고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되고 그제야 끝이 오리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또 다른 말씀, ‘내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는 것이고 어둠의 권세를 내쫓음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 수준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의료혜택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귀신이 쫓겨 가고 어둠이 물러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백성으로 삼으시면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삼아주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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