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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우시는 하나님 (히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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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시는 하나님  (히 2:18)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833년의 일이었습니다. 영국의 다윈은 자기의 이론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상태를 찾아 나섰습니다. 남양군도에 간 다윈은 아주 미개한 식인종의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거의 짐승에 가까울 정도로 원시적이었습니다. 다윈은 이러한 인종은 결코 개화되거나 발전될 수 없는 부류의 인종이라고 확신하며, 이들이야말로 자기의 진화론의 이론을 뒷받침 할 수 있다고 믿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34년이 지난 후, 다윈은 다시 예전의 그 남양군도의 섬을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다윈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리둥절한 다윈의 눈에, 섬 여기저기에 교회들이 서 있고, 학교가 있고, 짐승 같았던 야만의 식인종들이 이제는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30여 년 전의 식인종들이 이제는 옷을 입고 다니며 모여서 함께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윈에게는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패톤이라는 선교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그 섬에서 일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큰 감명을 받은 다윈은 패톤 선교사를 보낸 영국의 런던 선교회에 거액의 헌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 곳에는 반드시 새 생명, 새 인생, 새 날과 새 행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가리켜 복음(福音)이라고 합니다. 복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이 소망하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현실은 뒤로하고 내세만 강조하는 염세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육신적인 일은 뒤로하고 정신적인 것만 중요시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는 내세의 문제, 정신적인 문제, 육신적인 문제까지 관계하여 삶의 승리와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곳에는 진정한 만족은 어디에도 무엇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말하기를“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워줄 수 있는 공허함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관여하신다는 약속입니다.“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브리서 2:18)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기쁜 소식입니까?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은 복음입니다. 우리를 도우시리라고 약속하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주님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고 위로하십니다.

본문에“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브리서 2:18)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은 세상에서 고난을 친히 경험하신 분이시므로 고난당하는 자들을 위로하시며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5에“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방면의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태어나실 때부터 거처할 방 한 칸 정하지 못해 말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집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아십니다. 헤롯의 칼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피난민의 심정을 아십니다.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가난한 노동자의 심정을 아십니다. 

가는 곳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핍박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핍박 받는 자들의 심정을 아십니다. 친히 가르친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배신당한 사람들의 쓰라린 심정을 아십니다. 유대인들의 고함소리에 못 이겨 빌라도가 내린 억울한 재판으로 흠과 티가 없는 주님이 흉악한 죄수가 되어 십자가의 극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심정과 그 고통을 아십니다. 이러하신 예수님은 어떤 형편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처지를 아시고 위로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위로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나,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라야 나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병든 자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병자나 나보다 더 심한 병고를 앓고 있는 사람이라야 내게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나보다 더 딱한 처지의 병든 사람은 처다만 보아도 위로가 됩니다. 
아무 걱정 없이 넉넉히 살아가는 사람은 궁핍한자의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나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나의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대학 진학에 실패한 자식을 두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에게 명문대학을 다니는 자식을 둔 부모의 말은 어떠한 말이라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2년째 재수하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그 사람의 말은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월남 전쟁이 치열할 때의 일입니다.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하는 야전병원에는 수많은 전상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중상을 당한 병사들은 불구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언사가 몹시 거칠어졌습니다. 치료하려는 의사나 간호사들에게 심한 폭언으로 반항하며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그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도 전장에서 부상을 당해 양다리와 양팔이 모두 절단되어 마치 나무토막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간호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거칠게 야단치는 부상병 가까이 가서“자네 왜 이리 시끄러운가? 어디를 다쳤어? 아, 한쪽 팔이 없구먼, 그러나 나를 보게,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웃고 있잖아! 힘을 내게, 나도 자네처럼 그렇게 아우성을 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야! 이제는 내안에서 나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이 계서! 자네도 내가 믿는 주님을 믿어보게!”라고 말합니다. 이 부상자의 말을 들은 상이용사들은 위로를 받고 즉시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형편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능히 위로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모든 방면에서 가장 극한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단순한 언어의 위로만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하실 능력이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브리서 2:18) 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우리들의 사정을 낱낱이 살펴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사정을 살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편 139:1-4)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앉고 일어서는 동작과 그 밖의 모든 행위까지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말씀하시기를“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태복음 10:29-31)하셨습니다. 참새들의 생사까지 주관하시며 우리 인간들에 대해서는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아시되 이론적으로 알고 계시는 것만이 아니라 친히 우리와 똑같은 육체로 계셔서 우리와 같은 고난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브리서 2:18)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어려움을, 우리들의 힘든 삶을, 세상의 사악함을 실제 겪으신 경험을 통하여 아시고, 어려움 당하는 그의 자녀들을 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41:10절에도 약속하시기를“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는데 누가 나를 해하며 어찌 세상에서 실패하겠습니까? 

이 고귀한 진리를 깨달은 시편기자는 말하기를“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시편 118:6-9)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2. 주님께서 도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은 농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비와 이슬과 공기와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풍년을 맞는 것은 아닙니다. 이른 봄부터 열심히 땅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며, 김을 매며, 병충해방제를 하며, 끊임없이 연구하므로 과학영농을 하는 사람만이 풍요로움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도움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1)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병든 사람이 병을 고치려면 병원을 찾아 가야합니다. 풍랑 중에 안전하게 대피하려면 항구를 찾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8-29)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무거운 짐을 지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 쉼을 얻으려면 먼저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예수님 앞에 나가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마가복음 5:25-34절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고침을 받은 기사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고치고자 많은 의원을 찾아다니며, 있던 재산은 다 허비했고, 병은 더 중해지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람들이 운집한 곳에는 가서는 안 될 처지의 사람입니다. 당시의 법으로 유혈이 있는 여인은 부정한 사람으로 대중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위급한 이 여인은 그러한 관례에 얽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곁에 운집한 수많은 무리 속으로 담대히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그의 병이 낫겠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 순간 혈루 근원이 곧 마르고 그의 몸은 건강해졌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2:3-12절 말씀에는 예수님 앞에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와서 고침 받은 기사가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왔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 계신 곳까지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포기하여 돌아가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환자의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중풍환자를 향하여“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마가복음2:11) 하셨습니다. 이때에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습니다. 

마태복음 14:13-21에는 그 유명한 오병이어 기적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먼 곳 베세다 광야까지 모여 왔습니다. 이들은 날이 저물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말씀 듣기에 전념했습니다. 
이러한 무리들을 보신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인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습니다. 이때 신비로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났습니다. 나누어 주어도 나누어 주어도 끝이 없었습니다. 오 천 명의 모인 무리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떡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이상 몇 가지 예수님이 나타내신 기적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삶들에게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 앞에 나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집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잠자고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은 우리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태복음 11:28)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5,37)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오는 자는 주리지 않을 것이요, 예수님께 오는 자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는 첫걸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5)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유럽의 유명한 여러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통의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인간에 대한 증오, 경제적 궁핍, 창작활동에 대한 무력감을 느낄 때 어떤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는가?”라는 주제였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독한 술을 마시거나 친구에게 고통을 호소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증오와 고통의 감정을 그대로 분출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음악가 하이든의 고통 퇴치법은 독특했습니다.“우리 집에는 작은 골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은 내가 하나님을 찾는 기도실입니다. 고통이 닥치면 조용히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골방에서 나올 때는 희망의 빛을 발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고난의 날, 고통의 날,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날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은총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자 지붕을 뜯고 예수님 앞에 환자의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모한 나머지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는 데에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모두 간절히 주님을 사모했고, 열심을 다해 주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시편 107:9에 말씀하시기를“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하셨습니다. 
또 잠언 8:17에 말씀하시기를“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역대하 16:9절에는“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리라(나니)”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순례의 길을 걸어온 한 젊은이가 수도자를 만났습니다. 젊은이는 수도자에게 어떻게 하면 인생의 참된 길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수도자는 젊은이를 연못으로 데리고 가더니 갑자기 물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는 물에서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수도자는 계속 이 젊은이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젊은이가 허우적거리다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수도자는 그를 끌어 내놓고 물었습니다.“물속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가?” “숨 쉬는 것이었습니다.” “자네는 진리를 찾기 위해 그렇게 갈급하게 노력해 보았는가? 진리는 그렇게 간절하게 찾는 자만이 얻게 되는 것이라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진리이십니다. 요한복음 14:6에“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8:32에 말씀하시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잠언 2:4~5에도“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라(니).”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비록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분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십니다. 아시되 이론적으로 아시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아십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세상경험을 다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십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브리서 2:18)하셨습니다. 

이귀하신 주 예수님을 의지하시면서 주안에서 소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귀한 주 예수님 앞에 부지런히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승리의 지혜와 능력을 베푸십니다.
이귀한 주 예수님을 간절히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전능하신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험한 세상 이기시고 늘 승리하는 축복된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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