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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대와 사마리아 (행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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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와 사마리아 (행 8:1~8)


지난 2003년 봄에 이리 신광 교회 부흥회를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부흥회중에 담임 목사님의 안내로 그 교회 안수 집사이신 김 홍국 회장이 이끄시는 국내 최대 축산업 공장인 하림 익산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의 소개와 본인 자신의 소개로 대충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미성년자인 고등학교 3학년의 신분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시시로 변하는 닭 값이 시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기업이 되려면 생산 원가를 낮추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사료를 직접 만드는 통합 경영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1986년 하림 식품을 출발시켜 하림은 농장과 공장 유통을 통합하게 됩니다. 1997년 코스닥에 등록하고 뒤이어 일일 생산 능력 200톤 규모의 육가공 신축 공장을 건립하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매우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기업가요 사업가라는 인상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 온지 두어 달이 안 되어 어느 날 신문을 펴보니까 ‘하림 익산 공장에 대형화재’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고 거의 모든 방송매체가 이 소식을 전하며 국내 닭고기 수급에 큰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기누전으로 연 건평 3만 m2의 내부와 시설과 건물 9,171평이 전소했고 직간접의 손실 피해액은 무려 1,000억원에 달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너무 안 되었다는 마음이 들어 그 회사를 위해 기도한 후 기도 카드를 성경 말씀 롬8:28과 함께 김 회장에게 보내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인생의 고난은 점진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지만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모양으로 찾아 올수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오순절 이후 큰 부흥을 경험하던 예루살렘 교회에 어느 날 갑자기 큰 박해 사건이 일어납니다. 1절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 지니라” 

이어지는 3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문자 그대로 초대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고난의 시간이 찾아 온 것입니다. 자,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예외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이런 고난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적인 고난의 의미-무엇일까요?

1. 고난은 섭리를 실현하는 무대입니다. 

사도행전의 열쇠가 되는 구절은 우리가 잘 아시는 행전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 말씀이 실현되려면 주의 증인이 된 주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행전 7장에 이르기까지 아직 예루살렘에만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행전 7장에서 스테반의 순교 사건이 일어납니다. 8:1은 “사울이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8:3에서는 스테반이 장사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다시 교회 전반으로 박해 사건이 확산되는 것입니다. 8:2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무슨 말입니까? 박해가 터지니까 비로소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기 위한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주의 백성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져 간 것입니다. 박해 사건으로 오히려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실현하게 된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를 실현하는 역설적 무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날 갑자기 고난이 우리의 삶의 마당을 찾을 때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에도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은 섭리를 실현하는 무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벧전4:12-13같은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고난을 기뻐하십시오. 감정적으로 힘들거든 의지적으로라도 그렇게 하십시오. 고난은 하늘의 섭리를 실현하는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2. 고난은 새 시대의 영웅의 모태입니다. 

고난은 언제나 영웅을 출현시킵니다. 고난 속에서 미래의 리더가 준비되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자, 이 시점에서 태어나는 영웅이 누구입니까? 예, 맞습니다. 사울입니다. 스테반의 순교를 마땅하다고 미소 짓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바로 이 핍박 자를 하나님은 주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 장인 9장에서 그를 회심시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생을 향하신 엄청난 은혜와 긍휼을 보이신 것입니다. 박해자를 오히려 증인으로 삼으시는 은혜와 긍휼 말입니다. 

이제 바울 자신의 고백을 딤전1:13-14에서 읽어 보십시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그러나 이 고난의 무대는 바울이라는 한 사람만의 증인만을 영웅으로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초대 교회 모든 성도들이 함께 영웅적 증인으로 준비되는 모습을 보십시오. 

다시 본문 4절을 보십시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박해를 피해 흩어졌던 그들이 모두 이제 비로소 복음의 증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인생이 성공의 가도를 달릴 때 전도를 외면했던 성도들이 고난의 계절에 복음의 증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여기 ‘흩어졌다’는 말은 본래 ‘씨를 뿌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흩어져 복음의 씨를 뿌린 것입니다. 박해가 오히려 복음의 확산을 도운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연단이었던 것입니다. 

주의 백성들을 전도자로 증인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연단 말입니다. 쇠붙이는 불 속에 들어가 연단되지 않고는 농부의 도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너희를 연단하는 불 시험’이라고 한 것이고, 그래서 고난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찾아 왔습니까? 이제 우리가 강해질 시간입니다. 영웅 탄생의 시간이 된 것입니다. 스페인 격언에 “노래를 만드는 것은 계곡의 거친 물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용히 흘러가는 물에서는 열정과 리듬이 담긴 노래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계곡의 거친 물살 그리고 바다의 태풍이 위대한 심포니를 만드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영웅으로 데뷔하실 시간입니다.


3. 고난은 새 시대의 부흥의 마당입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진 백성들의 증거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5절에 보면 초대 교회 또 한 사람의 영웅 빌립이 등장합니다. 그는 본래 예루살렘 교회 7집사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사마리아 복음화의 중심에 있었던 영웅이었습니다. 그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복음을 증거 했다고 했습니다. 

6절에 보면 그를 통해 여러 표적이 일어납니다. 7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들이 나가고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습니다. 8절을 읽어 보십시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무슨 말입니까? 복음이 큰 기쁨의 메시지, 
소망의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부흥이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8:12을 읽어 보십시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침례(세례)를 받으니.” 

이것이 바로 부흥이 아닙니까? 드디어 하나님의 나라가 유대와 사마리아에 임한 것입니다. 고난의 무대가 새 시대의 부흥의 마당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언제나 고난 건너편에서 놀라운 부흥의 마당을 준비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오늘 이 설교의 화두를 하림 김 홍국 회장의 이야기와 그 회사 공장의 화재 사건으로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난 두 주전에 약 5년 만에 다시 이리 신광 교회의 초청을 받아 그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김 홍국 회장의 초청으로 불이 났었던 익산 공장 현장을 방문하고 공장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5년 만에 다시 만난 김 홍국 회장의 인상은 처음과는 매우 달라 보였습니다. 우선 5년 전에 그분은 안수 집사이셨는데 지금은 교회 장로님이 되어 계셨습니다. 5년 전의 그분은 자신만만한 사업가로만 제 눈에 비취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겸손한 주의 청지기로 보였습니다. 작년 말 국민일보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화재 사건을 회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재산이 날아간 것 보다는 과거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생각이 스치면서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전에는 웬 만한 일을 당해도 눈물이 없었는데 회개의 눈물이라고 할까요. 대책회의를 마치고 직원들 안 보는데서 실컷 울었지요” 

국민일보는 계속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모태 신앙이지만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던 그에게 공장 화재는 영적인 눈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게 불이 난후 화학적인 변화가 생겼다. 성경을 읽다보면 다음 장이 궁금해지고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설교가 기다려졌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고난이 축복의 통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그는 공장 화재 3개월 후 자신이 섬기던 이리 신광 교회 건물을 다시 짓는 사역에 건축 위원장으로 헌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회사 사태 수습에 아직도 여념이 없었겠지만 어쩐지 하나님 나라의 일에 헌신해야 하겠다는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문화적으로 탁월해야 안 믿는 이들을 전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땅 값을 빼고 5년 동안 450억의 예산을 투입하여 아마 한국 땅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효율적인 예배당 건물을 완성하여 주께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가 새 예배당 건물을 짓는 동안 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닭, 오리, 돼지고기 사료 부문에서 국내 점유율 제1위로 떠올랐고 모기업 하림은 지난해 3618억의 매출을 올리게 됩니다. 25개 계열사중 양돈 업체인 선진은 2108억원, 농수산 홈 쇼핑은 2108억원, 제일 사료, 
제일 곡산, 천하제일 사료는 3063억원, 역시 양돈 업체인 대상 팜스코는 3537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과 야곱, 이삭 모두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면 고난도 축복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고생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자 계속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던 익산 하림 공장 식당 벽에는 찬송가 가사의 일부를 서예 글자로 쓴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 풍랑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찬송가 503장 ‘고요한 바다로’중의 한 대목이지요.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2)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3)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하소서 (4)이 세상 고락 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김 홍국 회장은 화재 사건이 일어난 그 을씨년스러운 현장에서 이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헌신하면서 재기했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이 그의 인생의 새 시대를 열었고 오히려 그는 고난으로 더 큰 인생의 부흥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새 시대의 부흥의 마당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우리도 김 홍국 회장처럼 오늘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생의 주요 역사의 주이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을 결심해 보시겠습니까? 그러면 오늘의 고난은 내일의 부흥의 마당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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