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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회복 (빌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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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회복 (빌 4:1~7)


목사님들의 모임에 갔더니 한 분이 재밌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미국의 한 시골에 사는 부부가 결혼 50주년이 되어서 잔치를 열었는데 그 부부는 결혼해서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경험으로는 불가능한 일 아니십니까? 어떻게 부부가 50년 동안 한 번도 안 싸우고 살 수가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소문을 듣고 기자가 와서 비결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50년 동안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시골에서 결혼했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바로 갔는데 노새를 타고 갔습니다. 아내도 노새 한 마리에 따고, 남편도 노새 한 마리에 타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탄 노새가 자꾸 속을 썩입니다. 가다 멈추고, 안 가고 속을 썩이니까 그럴 때마다 이 아내가 화가 난 것입니다. 자꾸 속을 썩이니까 아내가 노새에서 내리더니 노새 두 눈을 쳐다보고는 “이게 첫 번째다.” 

또 노새를 타고 가는데 또 노새가 안 가고 자꾸 저항을 합니다. 그래서 또 노새에서 내려서 노새를 보고 “이게 두 번째다.”라고 했습니다. 

또 가다보니까 노새가 또 안 가고 버팁니다. 이번에도 노새에서 내려서 권총을 내리더니 노새를 쏴서 죽여 버렸습니다. 

남편은 기가 찼습니다. ‘무슨 신혼여행에서 세상에 말 못하는 짐승을 총으로 쏴 죽이는 신부가 있는가?’ 그래서 막 따졌습니다. “이게 말이 되느냐? 말도 못하는 짐승을 죽이면 어떡하냐?” 

그러자 아내가 아무 말도 안 합니다. 그러더니 남편의 눈을 딱 쳐다보고 “이게 첫 번째입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니 남편은 더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 더 했다가는 죽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살았답니다. 싸울 일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평화입니까? 이것이 행복입니까? 억압 가운데에서, 억누름 가운데서 사는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이 땅에서 한 번 사는데, 물론 천국의 영원한 삶이 있지만 이왕 살면 기쁘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웃으며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가능하면 웃을 수 있는 거리만 있으면 웃으시기 바랍니다. 기뻐할 수 있는 일만 있으면 기뻐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럽니다. “아이고, 목사님. 우리 집안 꼴,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웃을 일이 있어야 웃죠.” 여러분!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닙니다. 웃으면 행복해지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웃으면 행복이 옵니다. 모든 만사가 만족스러워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면 모든 만사의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웃을 수 있는 기회만 되면 웃으십시오. 그것이 유익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나이가 들어서 갔기 때문에 영어가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었습니다. 마침 그 동리에는 한인교회가 없었습니다. 미국인들 교회를 할 수 없이 나갔는데 미국교인들은 예배시간에 많이 웃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잘 안 웃지만 미국인들은 조금 이야기만 해도 깔깔대고 웃습니다. 그들의 문화가 그렇거든요. 목사님이 한 마디 하면 “와~” 하고 웃고. 자기는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못 웃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 한국인이 한 명 있는데 이 사람은 영어를 잘 하는지 막 웃는 것입니다. 영어를 웬만큼 잘해도 웃는 것을 이해하고 따라 웃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잘 웃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웃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사실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고 웃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 자기도 우스워서 같이 웃었다고 합니다. 이래 웃으나 저래 웃으나 웃기만 하면 그것은 내게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많이 웃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비결도 많이 웃으면 됩니다. 교회들이 기쁨이 있고, 웃고, 미소가 있으면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변호사가 세인트루이스라는 도시로 출장을 갔답니다. 주일이 되어서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까 호텔 주변의 교회를 찾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마침 사거리에 교통순경이 있어서 “여보시오. 교회를 하나 소개해 주시오.” 했더니 “저 100M를 똑바로 가서 우회전을 하고 좌회전을 하면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정말 아담한 교회인데 너무 좋아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안내위원이 얼마나 친절한지 감동을 받았습니다. 교인들 얼굴이 환했습니다.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행복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사님 말씀도 얼마나 좋은지, 웃음도 있고, 감동도 있고, 축복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돌아오는데 보니까, 골목마다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는데 왜 이리 멀리까지 가라고 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사거리에는 교통순경이 아직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여보시오. 가까운 데에도 교회가 많은데 왜 그 먼 교회까지 가라고 했습니까?” 그랬더니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를 안 나가기 때문에 어느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잘 모르지만 내가 보니까 이 가까운 데 있는 교회 교인들은 예배드리고 나오면 얼굴이 찡그려 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있는 교회는 늘 예배드리고 나오는 이들의 얼굴은 늘 환하게 펴 나온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교회가 진짜 같아서 거기를 안내해 줬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배 가운데 기쁨이 있을 때 거기에 더 큰 감동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기쁨이 있을 때, 그리고 자주 웃을 수 있을 때 또 건강의 축복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이 웃으면 건강해 집니다. 그것이 우리 신체의 각 영역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웃음을 강력한 치료제라고도 합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보니까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양약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분은 한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약은 한약의 반대말이 아니라 좋은 약입니다. 아주 좋은 약, 효과가 좋은 약. 마음이 즐거우면 병이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이 오다가도 그냥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키스를 많이 하는 부부는 감기도 덜 온다고 합니다. 감기가 와도 빨리 끊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뻐하는 심령 속에는 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성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근심.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골다공증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질병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우울하기 때문입니다. 걱정, 근심은 질병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요즘 웃음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고 웃음전도사라고 자처하는 그런 직업을 가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모임에 와서 사람들을 웃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웃음은 혈류량을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웃음은 혈압을 낮춘다고 합니다. 혈압이 높은 분들은 많이 웃으셔야 합니다. 늘 낙천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웃음은 근육을 강화시킵니다. 우리 몸에는 650개의 근육이 있는데 운동을 해도 그 근육이 다 자극받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번 깔깔대고 웃으면 231개의 근육이 자극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 번 웃는 것이 보통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체의 건강에 너무나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또 1분 정도 박장대소해서 웃으면 30분 정도 아주 힘들게 땀 흘리며 노를 젓는 정도의 운동량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 스탠포드의대의 ‘윌리엄 프라이’라는 교수가 있는데, 이 분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웃음은 베타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한다.” 베타 엔돌핀은 우리 몸의 유익한 엔돌핀의 몇 배로 강력한 호르몬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 몸속에서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타 엔돌핀이 나오면 치료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심장마비를 예방하고, 중풍을 예방하고, 암을 예방하고, 암을 치료하는 능력이 그 베타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웃는 사람에게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노먼 커즌스’라는 분을 우리가 기억을 합니다. 이분이 쓴 책이 <질병의 해부학>이라는 책입니다. 이분이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아주 희귀한 병을 앓았습니다. 척추 속에 염증이 생기는 것인데 이 염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고, 뼈마디가 굳어지고 죽는 병이 이 ‘강직성 척추염’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이 병을 고칠 방도가 없습니다. 이 분이 어느 정도 약을 복용하느냐하면 하루에 아스피린을 26알을 먹어야 진통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신경안정제 12알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잡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약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것만 보았습니다. 좋은 것만 생각했습니다. TV를 보아도 재미있는 프로그램만 보았습니다. 우울해하는 것은 안 보았습니다. 많이 웃었습니다. 즐거운 것만 연상했습니다. 기쁘게만 살았습니다. 여러분! 기쁨은 선택이라는 것 아시지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 화를 낼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가능한 기쁘게 살고, 웃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가 10분 동안 웃고 난 뒤에는 2시간 동안 진통이 사라졌습니다. 그가 10분간 웃고 나니 수면제 없이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1년이 지나자 그의 병이 말끔히 나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책을 써서 역사 속에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쁘게 산다는 것, 마음을 편안히 갖는다는 것, 웃는다는 것이 이렇게 유익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돈을 내고서라도 웃으시기 바랍니다. 웃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입니다. 마음의 기쁨과 평안은 너무나 유익한 것입니다.

또 이렇게 마음에 기쁨이 있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웃는 사람이 웃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성공할 확률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언젠가 기사를 보았더니 ‘오프라 윈프리’에 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 분은 미국 방송 쇼의 아주 유명한 진행자입니다. 이 분은 흑인 여성입니다. 그러나 대재벌이 되었고,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존경받는 연예인 중에 한 사람입니다. 

이분이 자기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조건이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흑인여성이다. 나는 뚱뚱해서 100kg가 넘는다. 나는 이혼경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10대에 이미 마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다. 나는 10대에 사생아를 낳았다.” 

이런 흑인여성이 어떻게 미국사회에서 성공합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말합니다.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웃음이라는 선물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녀에게 하루 세 가지씩 감사한 일을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감사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웃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방송을 진행할 때도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그 방송을 보면 너무 좋아서 깔깔대고 웃다가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점점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웃음이라는 선물 때문에 나는 성공자가 될 수 있었다. 많이 웃을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다.” 

여러분! 성공하고 싶으시면 직장에서 많이 웃으시기 바랍니다. 실패하고 싶으시면 웃지 마십시오. 한 달만 인상 쓰고 앉아있어 보십시오. 그다음에 출근하면 책상이 어디 가고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냥 집에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직장 분위기를 망친다고. 그렇습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사장님이 아침에 출근하다가 직원을 만났는데 밝게 인사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사장님! 오늘도 행복하세요. 오늘 넥타이가 참 멋져 보입니다.” 늘 김 계장은 언제 봐도 웃습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행복할까? 아내가 저렇게 만족스러울까? 무슨 가정에 즐거운 일이 있는가보지.’ 믿음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나면 인상쓰는 사람. 인사를 해도 퉁명스럽습니다. 웃음이 없습니다. ‘오늘도 부부싸움을 했는가보다.’ 직장에 나가서 동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투정을 부리고, 남의 약점이나 잡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절대로 어디 가도 환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성공자가 되고 싶으시다면 먼저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바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밝은 얼굴을 가지십시오. 밝은 미소를 가지십시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펴지 않으면 못 쓰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낙하산은 펴지 않으면 못 쓴다. 얼굴을 펴지 않으면 못 쓴다.’ 그래서 얼굴을 펴지 않으면 장사할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굴에 밝은 미소가 있을 때 그 가게에 한 번 더 가지 인상 쓰는 주인한테 누가 갑니까? 그렇습니다. 웃음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두상달 장로님이라는 분이 쓴 책 중에 <아침키스가 연봉을 높인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남편이 출근할 때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오늘도 파이팅!”하고 볼에다 키스를 해 주었는데 남편은 너무 설레고 기분이 좋아서 그냥 죽자 사자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행복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아침 키스를 받는 사람은 키스를 받지 못하는 남편들보다 20% 연봉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내들! 생활이 어렵습니까? 아침에 키스 한 번씩 꼭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남편이 활력 있게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출근할 때 아내가 쳐다보면서 “아이고, 쯧쯧쯧. 당신도 이제 끝났다. 머리 보니 이제 다 벗겨져 가지고, 당신 써주는 회사가 고맙지. 쫓겨나지 않게 조심해요.” 이러면 되겠습니까? 힘이 안 납니다. 그러나 남편 뒷모습을 보고 “여보! 파이팅! 당신 너무 멋있다. 뒤에서 보니까 꼭 30대같아.” 얼마나 기분 좋겠습니까? 남편을 격려해서 축복해서 보내십시오. 그러면 남편이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편의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그런 사람은 200%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격려를 받을 때. 아내들이여! 남편을 격려해주십시오, 그리고 미소를 주십시오. 그래서 아침 식사가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아침에 남편을 기분 좋게, 행복하게 아침을 먹고 출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나 아침마다 싸우고 나가면 하루 일들이 어려운 것입니다. 아침키스가 연봉을 높입니다.

많이 웃을수록 성공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했기 때문에 웃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웃으면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바꿔 생각해 보십시오. 웃는 인생을 사셔야 합니다. 웃으십시오. 나로 인해 딴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웃으십시오. 여러분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이고, 축제의 종교입니다. 기쁨의 종교입니다. 웃음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기독교를 마치 장례식 장처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기독교는 우울한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행복한 종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생명과 놀라운 행복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만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항상 슬퍼하라” 이런 말은 없습니다. “항상 우울해 하라. 항상 비관적인 인생을 살아라. 항상 남을 비판하라.” 이런 말은 없습니다. 무슨 말이 있습니까? “항상 기뻐하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우리 빌립보서 4장 4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은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재차 강조하오니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여러분! 

빌립보서 2장을 보겠습니다. 2장 17절부터 18절까지 입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의 오늘 편지는 기쁨의 권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셨습니다. 그 때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다들 우울해졌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니 큰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물을 축복하실 때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 잔치집이 얼마나 흥겨운 잔치집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교회는 날마다 이런 흥겨운 잔치집이 되어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장례식장이 아닙니다. 결혼식장이요, 잔치 집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의 잔칫집, 천국의 잔치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에 보면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속에는 예수님의 기쁨이 담겨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기쁨을 가지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도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체포되어서 매를 맞고 다시는 전도하지 말라고 협박을 당하고 풀려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풀려났는지 아십니까?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세상에! 예수님 이름 때문에 핍박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매를 맞아도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들의 심령 속에 기쁨의 샘이 넘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기쁨의 보화, 예수님이라는 보화가 여러분 속에 간직되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환경을 초월한 기쁨입니다. 좋은 일이 있어 기뻐하고, 뭐가 잘 되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없어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3장에 보니까 뭐라고 합니까?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섯 가지가 없습니다. 아파트도 없고, 자가용도 없고, 건강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그래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나는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 속에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바로 그런 기쁨입니다.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기쁨,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여러분! 100평 아파트 입주하면 평생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기쁨이 한 달은 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달 후면 후회할 것입니다. “아이고, 이 넓은 아파트 내가 청소하다가 죽겠다. 내가 노동자도 아니고” 청소부 사서 일 시키면 돈 주는 것이 너무 아까워 속이 상합니다. “내가 아파트 넓은 곳에 와서 돈 줘서 남에게 청소시키고 이게 무슨 팔자인가.” 행복이 없습니다. 

아들이 대학합격하면 평생 행복할까요? 그 기쁨도 일주일을 넘지 못합니다. 남들이 말하면 “그래. 그렇지.” 그 정도입니다. 그 다음에는 “등록금 내달라.” “책 사게 돈 달라.” “데이트 나가게 차비 달라.” 지겹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기쁨은 오래 못갑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시는 기쁨은 영원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응답의 기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보니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기도의 특권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구하라. 내게 찾으라. 내게 두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응답주실 때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기뻐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세상에는 기쁨 일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슬픈 일도 많습니다. 김연아 같이 예쁜 자매가 만날 그렇게 피겨스케이팅 우승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제 뉴스를 보신 분은 김연아 선수 경기를 보고 얼마나 좋아하셨습니까? 정말 한 바퀴 돌다가 엉덩방아를 찧으니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이고 큰일 났네. 200점은커녕 우승도 놓치겠다.’ 

그러나 웬걸요. 고3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여유가 있습니다.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어나서 웃는 표정으로 경기를 잘 마쳤습니다. 저는 잘 모르는데도 정말 음악과 맞춰서 움직이는 율동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1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온 국민에게 기쁨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그런 소식만 매일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요즘엔 강 아무개 때문에 우리가 우울합니다. 세상에는 우울한 이야기도 많고 어두운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구원의 주님 때문에 기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구원받은 기쁨, 죄 사함 받은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사형수들은 하루하루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합니다. 빨리 죽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도 거기 살아도 편안할 날이 없다고 합니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고, “몇 번 나와” 하면 죽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휴일에는 다리를 쭉 뻗고 잔다고 합니다. 공휴일에는 사형집행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수의 발걸음 소리만 나도 너무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형 당할 때에도 간수가 와서 “몇 번 면회”라고 합니다. 그러면 ‘면회 왔는가’ 하고 가다보면 면회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형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 눈치 채고 안 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그렇게 짐승처럼 끌려가서 사형당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죽음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형수였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이제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제 사형수가 아닙니다. 우리를 오히려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 우리를 찾는 구주 예수 곧 오라 하시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 

죄악 벗은 우리 영혼에는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늘 기뻐 뛰며 주를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기쁨이 제일 큰 기쁨입니다.

또한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성령으로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우리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니까 우리는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살다가 주님 나라에 돌아갈 때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넓은 팔로 우리를 영접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거기에 또 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갔을 때 주님의 넓은 품에 안길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여러분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샘솟는 기쁨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쁨을 빼앗은 것들이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기쁨을 빼앗습니다. 갈등이 우리의 기쁨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니까 사도바울이 이 빌립보교회를 향해서 권면합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이 유오디아와 순두개는 빌립보교회의 양 지도자입니다. 두 여성인데 아주 능력 있는 여성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마음이 안 맞았습니다. 늘 싸우니까 교회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한마음을 품으라.” 마음이 나눠질 때, 분열될 때 우리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 안에서 한 마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때 행복이 오고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의 근심과 염려가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너무 걱정 많이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기쁨이 사라져버립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근심과 걱정이 가득 차 있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대신 기도하실 때 기쁨을 회복하실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기쁨이 우리가 회복해야 합니다. 다윗이 참 훌륭한 점이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 새 장막으로 옮길 때 그가 얼마나 좋아합니까? 그는 너무 좋아서 춤을 추다가 바지가 벗겨질 정도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주님을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런 기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빌립보서에는 기뻐하라는 권면이 9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어디에 있으면서 이렇게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는 지금 로마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로마감옥에서 수년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지순례를 한번 가보시면 로마에 들리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마에 가면 바울이 갇혀 있던 지하 감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지하입니다. 햇빛도 안 들어오고 깜깜합니다. 거기에서 수년을 보낸 것입니다. 거기에 있다가 사형을 당한 것입니다. 밤이면 빈대가 얼마나 달려들었을까요? 그런데 바울은 그 지하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서 “여러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십시오.” 그는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기쁨이 능력입니다. 기쁨이 축복입니다. 기뻐하는 일이 인생의 행복이요, 성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이 구원의 기쁨, 죄 사함의 기쁨, 자녀 됨의 기쁨,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 이 기쁨이 여러분 속에 늘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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