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0.07.03 11:18

성숙하고 소박한 삶 (룻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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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하고 소박한 삶 (룻 2:1~7) 
 
 
룻기 2장에는 자기 백성의 삶을 인도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과 그 분 백성의 성숙한 삶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이루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삶은 이제 텅 비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절에는 그녀의 의식 바깥에 있는 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 … 보아스”입니다. 여기서 ‘유력한 자’로 번역된 ‘깁보르 하일’(lyIj rwOBGI)은 사사기에서 ‘큰 용사’로 번역되었습니다(삿 6:12, 11:1). 

기드온과 입다가 그 백성들을 이 민족의 침략으로부터 구원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명맥을 유지시킨 큰 용사였던 것처럼, 보아스도 몰락한 엘리멜렉 가문을 구원하고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줄 큰 용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텅 빈 나오미를 채워주시기 위해 유력한 자를 준비해두셨고 그와 연결시키기 위해 룻을 사용하셨습니다.

“모압 여인” 룻은 나오미에게 청합니다.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2). 밀레의 걸작 ‘이삭줍기’는 이삭 줍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침묵속의 평안과 노동의 신성함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당시 중동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이삭을 줍는 일은 육체적으로 대단히 고된 일이었겠지요. 게다가 악덕 지주나 일군들을 만나면 냉대와 괴롭힘과 모욕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룻은 이방 여인이요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모압 출신이었으므로 곱지 않은 시선과 대우를 각오해야만 했지요. 하지만 배려심이 많던 나오미가 “내 딸아 갈지어다”라고 허락한 것을 보면 당장 먹을 끼니조차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살기 위해 베들레헴에 돌아왔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은혜를 입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구차한 상황이었습니다. 룻으로서는 대단한 신앙적 결단을 했었지만, 하나님께서 당장 그녀에게 기적적으로 역사하셔서 풍족하게 보상해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룻도 그런 기적을 기대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현실적인 고난을 각오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배려하신 하나님의 율법(레 19:9-10)을 따라 묵묵히 이삭줍기를 할 뿐이었습니다.

룻기에서 부각되고 있는 신앙은 일상의 생활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사사기와는 달리 룻기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는 일도 없고,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임했다는 표현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대의명분을 품고 원수들에 대항해서 싸우는 거창한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대단한 영웅이나 기적이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평범하다 싶을 정도로 소박합니다. 사사기에서 보았던 세상과는 전혀 딴판의 세상 같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소박한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위대한 메시아의 계보가 이어지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현대의 기독교는 이러한 ‘소박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뜻은 거창하고 화려하고 굉장한 이벤트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처럼, 꿈과 비전을 외치며 거창한 표어를 내걸고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진취적인 정신으로 도전하여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내는데 집중적인 관심을 둡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이 모두 머리가 되려는 방향으로 심하게 치우친 기형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하루 먹을 양식을 위해 이삭을 줍는 일상의 일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룻기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평범한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룻기를 보면서 영적으로 크게 한탕 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소박성을 회복하는 교회, 하나님 백성다운 일상의 삶에 가치를 두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룻은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습니다(3). 성경은 ‘우연’이란 없으며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필연적인 하나님 뜻대로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분은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헤아리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10:29). 

잠언 16장 33절도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3절의 “우연히”라는 단어는 대단히 거슬리는 표현입니다. 룻기 기자는 룻이 ‘계획적’으로 보아스의 밭에 간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의식에서조차 망각되어 있었던 인물이었으므로, 이방인인 룻이 친족임을 알고 고의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은 전혀 없지요. 즉, 여기서의 우연은 하나님조차 뜻하지 않으셨다는 절대적인 의미의 ‘우연’이 아니라, 사람이 계획하지 않았다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우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이 전혀 계획하지 않고 우연히 행한 일을 통해서도 섭리하셨습니다. 룻의 입장에서는 우연히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른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룻이 보아스를 만날 수 있도록 그 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우연히 만난 보아스가 실제로는 그녀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는 인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람이었습니다. 룻기의 하나님은 사람이 의식할 수 없는 역사의 이면에서 섬세하게 당신님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하셔서 구속역사의 큰 그림을 완성시켜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아직은 룻에게 감추어져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그녀에게 두신 당신님의 뜻을 진행시키고 계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룻이 밭에서 열심히 이삭을 줍고 있을 그때, “마침” 보아스가 왔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그리고 보라! 보아스, 그가 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감탄사를 통해 보아스가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도착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절과 11절을 보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한 후에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고 했습니다. 모든 일의 가장 적절한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그 때를 측량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보라!’하고 감탄할 때가 되기까지는 인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분의 백성답게 주어진 작은 일에 충실한 것이 지혜롭습니다.

“보라!”는 감탄사는 독자들의 관심을 보아스에게로 옮기는 역할도 합니다. 보아스는 추수꾼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했습니다. ‘살롬’이라는 히브리인들의 일반적인 인사에 비해서 보아스의 인사는 상당히 자상합니다. 일꾼들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로 화답했습니다. 이 인사들 속에서 보아스가 일상생활 속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일군들을 사랑하고 일군들로부터는 존경을 받는 성품의 소유자임이 드러납니다.

보아스는 일군들 사이에 낯선 소녀를 발견하고 추수꾼들의 감독인 사환에게 묻습니다. “이는 뉘 소녀냐”(5). 사환은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라고 답합니다(6). “돌아온 모압 소녀”라는 표현이 참 정겨운데요, 좁게 보면 돌아온 사람은 나오미 뿐 입니다. 룻은 베들레헴 출신이 아니니 돌아왔다고 말할 수 없지요.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 보면 룻은 그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출신이었는데, 이제 그분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환은 룻의 출신을 말한 후 그녀의 됨됨이를 덧붙입니다.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7). 사환은 이방 여인 룻의 성실성에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룻은 하나님 백성이라는 타이틀만 원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어떤 뜻을 두셨는지 아직 감추어져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루 벌어먹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진실하고 성실한 자세로 살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잠시 쉰 외에는 계속해서 성실하게 이삭을 주웠습니다. 신약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녀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눅 16:10)된 삶은 살았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삶이 행위를 배제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참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어떤 모양으로든 행실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룻의 모습 속에서 그녀가 참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신앙을 가졌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안다고 해도 그분의 뜻대로 사는 일이 쉽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내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을 때조차 계속해서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일입니다. 내 인생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기적적으로 삶의 형편이 변하는 것 없이 여전히 괴로운 삶의 짐을 지고가야 하는 삶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 백성답게 충성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의 눈에 어리석은 삶을 선택한 것처럼만 비춰질 때, 하나님을 믿고서도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을 때, 신앙은 도전을 받습니다. 과연 이러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 지 회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야금야금 하나님 백성다움을 포기하기 쉽지요. 종교적인 영역에서는 아직 신앙을 유지할지라도 지극히 작은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그분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씩 흐려지는 경향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룻과는 달리 주일에 하나님께 잠간 얼굴 비춘 후에 나머지 6일은 계속해서 쉬는 생활을 하게 되지요.

룻은 이 땅에 태어난 여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을 누린 사람입니다. 메시아의 혈통을 이어가는 일에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룻의 결과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다수이지만, 룻이 보여준 일상에서의 소박한 믿음 생활을 지속적으로 해 가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라 생각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 백성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변함없이 성실하고 진실한 삶의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복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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