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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이 오신 목적 (막 1: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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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신 목적 (막 1:29~39)

 
부끄럽게도 참으로 오랫동안 저는 뚜렷한 목적 없이 살았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저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때문에 공부도 제가 좋아하는 것만 했습니다. 재미없는 과목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야단도 참 많이 맞았습니다. 물론 부모님 속도 꽤 많이 썩여 드렸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상급 학교 진학도 제게는 별로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남들은 못 들어가서 난리인 대학도 등 떼밀리듯이 들어갔기 때문에 얼마 후 훌훌 털고 나오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무슨 일이든지 눈앞의 상황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고 무엇 하나 꾸준히 한 것이 없었습니다. 왜 제가 그랬을까요? 간단히 말해서 삶의 목적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방황하고 있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참으로 비상한 방법으로 삶의 목적을 제게 알려 주셨습니다. 마치 어둔 밤이 지나고 밝은 새 아침이 찾아온 것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눈앞에 펼쳐진 어려운 상황 때문에 허둥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변화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분명히 알 때에 우리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며 참 소망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의 삶이 그렇게 변화된 삶이었습니다. 모세의 삶이 그렇게 변화된 삶이었고 또한 다윗의 삶이 그랬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예수님의 삶이 그렇게 의미 있는 삶이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짧다면 꽤나 짧은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도 삶의 분명한 목적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뭇 사람이 놀랐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님에게 데려왔습니다. 온 동네가 시몬의 집 문 앞에 모였습니다. 안식일이 지나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시기를 바라고 모였던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피곤해서 쉬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잠시 후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막 1:37)
정말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찾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
그리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그 마을을 과감하게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정확히 알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리 인기가 있고 자신을 찾는 사람이 많이 있을지라도 거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온 땅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전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사실을 예수님이 언제 확인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면서 그 사실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왜 왔는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 이 사실을 확인하셨듯이 우리도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의 목적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아는 사람은 환경과 처지가 어떠하든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현상을 뛰어넘어 다른 차원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나와 시몬의 집에 가셨습니다. 그 때 시몬의 장모는 누워 있었습니다. 본문 30절, 31절 말씀입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병자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서 생명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 여인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누워 있는 병자에게서 그의 아픔이나 죽음의 그림자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서 다른 차원을 보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만 눈에 보이는 현상에 머무는 실수를 범하기 쉽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현상을 넘어가셨습니다. 지극히 부정적이고 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미래를 보셨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를 향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 숫자를 들이대면서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에 불과합니다. 과연 믿음이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현상에 매여서 교회의 성장을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결코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 있는 여인에게서 생명을 보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현실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차원까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처럼 다른 차원의 삶을 보고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계속해서 전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회당에서 나와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가까운 사람들부터 보살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의 삶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힘을 얻고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넘어서 가셨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도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가까운 마을을 향해서 또 나아가셨습니다. 마침내 온 갈릴리로 다니시며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계속해서 전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전진하고 있습니까? 혹시 현실에 만족하여 머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경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이 정도면 됐다고 현실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전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교회에서 섬기는 일이 많아서 피곤하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 발전을 위해서 다함께 전도하자고 해도 마음에 별 감동이 없습니까? 만약 별 감동이 없다면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계속해서 전진시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려는 예수님의 의지는 끝이 없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사역은 계속해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그 사역을 계속해서 감당할 것을 부탁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가족이라는 안락하고 친밀한 울타리를 넘어가야 합니다. 이제 가족, 친지, 친구, 성도들의 교제가 주는 친밀하고 익숙한 관계의 경계선도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경계를 넘어가셨듯이 우리도 모든 경계를 허물고 울타리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전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삶의 목적이 희미하기만 합니까? 만약 그렇다면 기도하는 가운데 먼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목적을 찾았으면 이제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 때문에 더 이상 흔들리지 말고 긍정적인 눈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성령께서 끝까지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생명을 살리는 구원 역사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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