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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마 7: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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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마 7:15~27)
 
 
예수님 당시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은 저희들의 율법과 전통을 내세우며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잎만 무성한 나무처럼 남을 가르칠 때는 그럴듯하게 하면서도 막상 자기들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마 23:3). 

오늘날도 믿음의 근본이 잘못된 사람들이 겉으로만 믿음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과 나타나는 행위를 통해서 말의 실상을 알게 됩니다. 이는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 생활의 열매가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1. 주님께서 외면하는 사람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는 두 가지 식물이 같이 자랐으나 일정기간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좋은 것과 좋지 못한 것이 섞여 있어도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1) 거짓된 믿음입니다.

본문 말씀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교회에 나오면 입으로 주님을 부르지만, 그 속에도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서 오히려 믿음이 더 좋은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거기에 현혹되어 넘어가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제할 때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선전하는 경우나, 또 기도를 하면서 많은 말을 하고, 얼굴에 금식한 것을 나타내려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하였습니다(마 6:2-7).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고 하십니다(마 25:12).

2) 거짓된 사명자입니다.

본문 말씀 22절에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라는 직분을 받아 많은 일을 하였고 또한 신비로운 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다 충성된 일꾼이 아닙니다. 

교회는 어떤 직분이든지 주님의 말씀에 따라 겸손히 섬기며 충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받은 직분을 빙자하여 자기의 이름을 내고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행세를 하려 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없이 적은 일에 충성한 사람은 칭찬하시지만, 주인의 뜻을 거스르고 직분을 남용하는 자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하여 준엄한 책망을 하십니다(마 24:45-51).

3) 은사를 잘못 사용하는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12:4-5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주어진 은사가 있습니다. 똑같은 성령이지만 각 사람에게 나타나는 은사는 다양합니다. 

고린도전서 12:7에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성령으로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자기가 주님의 행세를 하며 그것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는 사람도 막상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23절).


2. 주님께서 인정하는 사람

바른 믿음과 건전한 생활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지혜로운 사람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1) 믿음의 기초가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6:47-48절에는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건물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그 건물을 지탱하게 하는 기초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주추라고 합니다. 

주춧돌을 모래 위에 세우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반석 위에 주추를 놓은 집은 안전합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주추를 놓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를 막론하고 그 기반이 든든해야 안정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는 바른 믿음을 뜻합니다. 말씀에 뿌리를 두지 않은 믿음은 모래위에 세운 집과 같이 무너지기 쉽습니다. 디모데처럼 진실한 믿음의 전통 위에 서 있어야 됩니다(딤후 1:5).

2) 말없이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나무의 열매가 맺기 전까지 울창한 가지나 무성한 잎사귀만 보고는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그 삶을 통하여 열매가 맺혀지기까지는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신 것도 그들이 말만 무성하게 늘어놓고 그것이 실제적인 삶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4절에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을 반석 위에 집 짓는 자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삶은 그 마음 깊이 말씀의 조명을 받으면서 성실하게 이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시 1:1-3).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신앙의 인격이 그의 삶을 통하여 빛의 열매로 이어지는 것입니다(엡 5:9).

3) 신령한 복과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은 대부분이 육신적이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성도의 소망은 신령한 것이며 내세 지향적이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였습니다. 

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6:20-21). 로마서 8:24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의 눈이 밝아진 사람은 부름의 소망과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은 기업의 풍성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엡 1:18). 이와 같은 고상한 소망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평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시 126:5-6).


3. 확연하게 구분되는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며 불의가 정의를 능가하고, 교회 안에서도 거짓 신앙이 참 신앙으로 행세하며, 악령이 성령으로 둔갑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 모든 것이 정확하게 구분되고 맙니다.

1) 열매가 드러날 때입니다.

밭에서 좋은 씨와 가라지가 다같이 싹이 나고 자라는 동안 사람들은 그것들을 구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제 각기 이삭이 올라왔을 때는 그 종자를 드러냈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자연법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갈 6:7). 

본문 16-17절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양의 가죽을 입고 나오는 이리처럼 거짓 선지자들이 온갖 거짓과 술수로 사람을 속이며 미혹하지만 결국 그 실체가 다 드러나고 만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행함으로 증명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기준에 따라 정확하게 판명되는 것입니다(마 25:40).

2) 환난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본문 말씀 24-27절은 산상보훈의 결론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와 지키지 않는 자를 두고 반석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모래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들의 행위가 지혜로운 것과 어리석은 것으로 판명되는 것은 결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칠 때입니다. 평소와 같으면 주추를 반석위에 놓기 위해서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땅을 깊이 파는 사람이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손쉽고 힘들이지 않게 하는 것이 훨씬 지혜롭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재난이 몰아치는 환난의 날에 여과 없이 다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진위도 시련을 통하여 판명되는 법입니다(욥 1:20-21).

3) 심판의 날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누가복음 16:1-13에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를 불러서 그동안 했던 일을 결산하게 하였고 그 결과에 따라 직분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 주권자 하나님 앞에서 행한 대로 심판 받게 된다는 사실을 일러줍니다.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하였습니다(히 9:27).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나오는 밭의 주인은 종들에게 둘 다 그냥 놔두라고 하였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추수꾼에게 명해서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르게 하고 곡식은 모아 곳간에 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13:30). 

고린도후서 5:10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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