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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능력을 받자!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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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능력을 받자! (행 2:1~4)

 
미국의 영화 배우요, 한 때 세기의 미인으로 불렸지만 36살의 꽃다운 나이에 인생을 마감했던 마를린 먼로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권력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남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를린 먼로가 매일 매일 쓴 일기장의 마지막에 그녀는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somewhere, somebody, please love me."
"어딘가, 누군가, 제발 나 좀 사랑해 주세요."
그렇게 많은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알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삶이라는 것이 참으로 외롭습니다.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와 근심, 괴롭고 힘든 삶, 권태롭고 지루한 밤을 보내면서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somewhere, somebody, please love me.  please help me."
"어딘가에, 누군가가, 제발 나 좀 사랑해 주세요.  제발 나 좀 도와주세요."

군중 속에 고독이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살아가면서도 오늘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 더 외로워합니다.  더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이 외로움과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과 지루한 밤을 벗어나기 위해서 불나방처럼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어딘가에 내가 사랑 받을 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딘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도와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는 한없는 기대와 그리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찾고 또 찾았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더 깊은 외로움과 방황이라는 것입니다.  매일 물을 길러 나왔지만 영혼 깊은 곳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갈증으로 괴로워했던 수가성의 여인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도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 영혼의 방황으로 사회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영혼을 살리는 길이 없습니까?  이 땅의 가정을 세우고, 사회를 세우는 길이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모든 삶의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모든 따분한 삶으로부터 생기 있게 사는 길이 있습니다.  이곳,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곳, 하나님의 성전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어디가 길이냐?"고 울부짖는 영혼들을 향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셔야 합니다.  내 이웃과 형제 자매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셔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안에는 모든 것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때로 실패도 합니다.  남다른 슬픔과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처절한 배신을 당해보기도 합니다.  새가 날아가듯 그렇게 생명같이 귀하게 모았던 명예도, 재산도, 건강도 하루아침에 다 날려보낼 수도 있습니다.  욥처럼 어느 날 눈을 뜨고 나니까 하나님과 나만을 한편으로 하고, 모두가 다 적이 되어 있는 기가 막힌 그런 경험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하는 일마다 꼬이고 엉키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긴장과 아픔으로 아침도 아프고, 저녁도 아프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 그런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하나님의 급한 소식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안에는 어떤 생명도 살아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은 발걸음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살 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내가 사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내 가족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말씀을 믿는 자는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는 가족은 반드시 일어나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시위하게 될 것입니다.

"주여! 나에게도, 내 가정에도 그런 날을 보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신약성경 288 쪽을 한번 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을 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크게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주는 영이시니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

♬"오 자유 / 오 자유 / 나는 자유하리라
비록 얽매였으나 나는 이제 돌아가리
자유 주시는 내 주님께"♬

오늘 진정한 자유를 사모하며 주님의 전을 찾아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이든, 여러분 속에 어떤 일이 있든, 여러분의 심령이 어떻든, 어떤 권태와 외로움을 가지고 나왔든, 어떤 낙심과 실패를 가지고 나왔든,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마십시오.  여기는 하나님의 영이 물같이 불같이 바람같이 구름같이 운행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와 낙심과 외로움과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이 혼돈과 어두움의 세상을 향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음의 메시지를 강하게 외쳐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복음의 메시지를 골목마다 거리마다 집안마다, 흔들리는 자녀들의 품속에, 방황하는 자녀들의 가슴속에, 그 영혼 속에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의 메시지를 예언해야 합니다.  우리가 또 한번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구약성경 748 쪽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 13장 31절을 다같이 찾아서 읽겠습니다.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지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 부모님을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 어머니를 기억하사 힘을 주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 아버지를 기억하사 그 기업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나라를 기억하사 복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사랑하는 여러분, 비록 뼈가 문질러지고, 비록 우리의 힘줄이 다 말라 가는 것 같고, 소망이 끊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고 믿음의 입을 크게 여십시오.  믿음의 입을 크게 열어 선언하십시오.  예언이란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바른 신앙은 "주시옵소서!"가 아닙니다.  바른 신앙은 예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기도 속에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은 아주 지극히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이다!"  "주 여호와의 능력으로 이루어질지어다!"  "하나님의 성령 안에 이루어질지어다!"  예언을 하라고 했지, 어린아이처럼 보채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꾸 선언을 하십시오.  선포를 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의 신앙이 성숙의 단계에 이르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언제나 특별한 것을 요청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돈을 가지고 나오라고 그러더라"  놀랍게도 교회에 왜 안 나가느냐 하면 헌금하라고 해서 안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내가 바쁘고 내가 힘들다고 해서 선한 일, 귀한 일, 바른 일에 돈을 쓰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밥 한끼 안 먹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굿을 하는 무당이나 절에 바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보다 저들이 죽은 우상 앞에 바치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그 인생의 삶을 인색하게 굴지 말고 시각을 바꾸십시오.  바빠서 내가 못하는 것, 내가 성전에 드려서 여기서 고아나 과부와 어려운 것과 세상을 돌보는 일에 쓰는 것,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교회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에 적극적인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 교회에 나가니까 돈 달라고 그러더라 그러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일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일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일에 인색한 사람은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불쌍하고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돈을 따라간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부터 돈을 따라가 보리라!"  한 번 따라가 보십시오.  부자가 되는지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해서 돈을 모은다고 해도 욥처럼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이 불면 그 모은 재산이 바람처럼 다 날아가고 맙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기를 쓰고 아둥바둥 재산을 모아도 어느 한 곳에 구멍이 나면 그 모든 재산은 한 순간에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돈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돈이 나를 따라와 줘야 합니다.  만물의 주인이시며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돈을 붙여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재물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러자면 하나님 앞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내가 인색한 만큼 하나님도 나에게 인색하실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그 마음만큼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매 시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재단에 감사의 예물을 올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바른 신앙은 모든 예배에 감사의 예물이 올려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감사한 일이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감사해서 감사를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감사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지금은 비록 감사할 것이 없어도 앞으로 감사할 것이 더 넘치고 풍성할 것으로 믿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였던 스펼전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의 마음에는 햇빛보다 더 밝은 하늘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 주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사하면 달빛도 주실 것입니다.  감사하면 햇빛도 주실 것입니다.  감사하면 그 햇빛도 소용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햇빛을 주신 은혜는 잊어버리고 별빛이 없음을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분명히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감사는 하늘의 축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돈을 가지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격이니 도덕률이니 하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인격이라고 하는 것이 믿을만한 것이 못 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어떤 능력에 붙잡혔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바른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훈련된 지성이나 훈련된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 권능에 생포된 결과입니다.  24시간 365일 생포 당하고 가면 그런 삶과 그런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끝없이 요청 받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입니다.  산을 옮길 믿음, 큰 믿음, 영웅적인 믿음을 가져라!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실개천 같은 믿음이라도 이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더 큰 믿음, 더 강한 믿음을 얻기 위해 주 앞에 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약해진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능력을 믿는 우리들의 믿음이 약해진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나약해지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일을 할 때에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이 일을 못합니다.  네 믿음대로 되느니라.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  네 믿음을 내놔라.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네 믿음을 내놔라!"고 했지, "네 도덕률을 내놔라."  "네 윤리를 내놔라." 그런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시간 귀 있는 자는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삶의 모든 기적은 믿음이라는 터널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막아야 할 것은 믿음의 부패를 막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음식이 부패하면 썩습니다.  음식이 썩으면 거기에는 악취가 나고, 파리 떼들이 모여듭니다.  아무리 깨끗한 곳에도 썩은 음식을 갖다 놓으면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파리 떼들이 벌떼처럼 몰려듭니다.  하나도 없던 파리 떼들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지 모여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심령의 썩음을 막아야 됩니다. 심령이 부패하면 이상한 것이 몰려듭니다.  이상한 세력들이 몰려옵니다.  어두운 세력들이 몰려옵니다. 귀찮은 것들이 내 영혼을 뜯어먹으려고 달려듭니다.  온갖 추하고 더러운 냄새가 납니다.

요한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아주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야! 네가 차지도 덥지도 않으니 내가 너를 토해내리라!"  이 '라오디게아'라는 말은 '냄새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말입니다.  '냄새나는 도성의 인간들' 그런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냄새가 나면 안됩니다.  돈 냄새가 나면 안됩니다.  명예 냄새가 나면 안됩니다.  탐욕의 냄새가 나면 안됩니다.  세속적인 냄새가 나면 안됩니다.  내 생명의 영혼에 추하고 더러운 냄새가 나면 안됩니다.
 
언제 냄새가 납니까?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면 냄새가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썩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끓이면 됩니다.  펄펄 끓이는 곳에는 절대 썩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짝 얼려서 얼음을 만들어 보십시오.  수 천년을 내려온 빙하는 절대로 썩지 않습니다.  반대로 미지근하면 큰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땅이 자꾸 정신병자의 병동처럼 사람들이 미지근해 가고 있습니다.  사랑도 미지근합니다.  삶도 미지근합니다.  기왕 사랑을 하려면 끝까지 좀 화끈하게 사랑하십시오.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우리의 신앙 생활도 기왕에 믿을 바에야 화끈하게 믿으십시오.  뜨겁게 믿으십시오.  그렇게 믿고 난 이후에 하나님께 당신의 전부를 맡기십시오.
 
가만히 보면, 나는 절대적으로 믿지 못하면서 하나님 더러 절대적으로 책임을 지라고 합니다.  나는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더러 뜨겁게 자신만을 사랑해 달라고 합니다.  이것만큼 잘못된 신앙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어거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생떼를 부리는 것입니다.  생떼를 부리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이것이 세 번 네 번 자꾸 늘어가면 하나님도 역정을 내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 이미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역사해서 우리의 심령의 물줄기들이 이미 방향 전환이 온 것을 믿습니다.  요즘 썩어서 오염된 강을 되살리는 운동이 한창입니다.  그래서 많은 강들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울산의 태화강도 과거 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심하게 오염되어서 악취가 심하게 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화되어서 그곳에서 매년마다 수영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강도 살리는데 왜 내 심령을 내가 못 살립니까?  살릴 수 있습니다.  살릴 수 있습니다.  다 살릴 수 있습니다.  오염된 강, 다 오염된 것 같아도 어떻게 삽니까?  인간이 아무리 정화해도 인간이 하는 것은 부분적인 것입니다.
 
오염된 강이 근본적으로 살릴 수 있는 것은 그 오염된 강의 상류를 따라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 보십시오.  깊은 곳에서 태산 준령 저 태백 간두의 거기 깊은 곳에 올라가면 맑고 깨끗한 물줄기들을 만나게 됩니다.  거기는 절대로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깨끗합니다.  깊은 곳에 올라가면 삽니다.  올라가면 살 길이 있습니다.  올라가면 생명의 줄기를 만나는 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 물고기를 보십시오.  물 속에서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반면에 죽은 물고기를 보십시오.  물위를 둥둥 떠내려갑니다.  떠다니지 말아라!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속에서 그렇게 떠다니지 마십시오.  깊게 스며들며 사십시오.  지금이 아무리 감각 문화라고 할지라도 인생에는 그보다 깊은 곳이 있습니다.  그보다 냄새가 안 나는 살아있는 신선한 곳이 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생명의 강줄기가 있어서 그 잔 줄기, 가느다란 바위 속에서 나오는, 그 나무 속에서 나오는 그런 잔 줄기가 있어서 그 강이 정화되고 삽니다.  한 나무에도 저 깊은 곳에 내려가면 연약하고 깜깜한 어두운 그곳에 잔뿌리들이 있어서 이 큰 나무가 삽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살기를 원하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닌 내 영혼의 깊은 실핏줄, 내 영혼의 깊은 잔뿌리가 하나님의 생기와 접촉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살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약 600년 전, 주전 597년으로 학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 민족이 짐승처럼 석 달 동안을 줄줄이 끌려 다니며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썩어 넘어지는 토막들처럼 그저 강가에 제멋대로 던져져서 슬프디 슬픈 삶을 산 적이 있습니다.  울고 울어도, 밤을 새워 울어도 만족이 당한 치욕과 분통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이미 손을 다 놓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모든 민족의 뼈들까지 말라가고 모든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삶의 생기도 삶의 의욕도 다 떠난 지 오래입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의 권능이 에스겔이라는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절망의 나락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령이 내리더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땅이 바로 그 때가 아닙니까?  지금 세계적인 경제난 속에서 이 땅의 백성들은 극심한 혼란과 혼돈과 깊음과 낙심과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혼란과 혼돈과 깊음과 낙심이라고 하는 것은 정지표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이 운행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면 또 다른 축복의 비상구가 열립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신이 혼란과 혼돈과 깊음이 가득했던 땅 위의 수면 위에 충만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잊지 마십시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어렵고 힘든 역사적인 시대 속에서 '그루터기'라고 하는 소위 남긴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숨겨 놓은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한때를 위하여 선별하며 깊이 깊이 다루는 생명도 있고 제단도 있고 기업도 있습니다.
 
원래 '거룩'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역사의 한 때를 위해서, 하나님의 충족한 한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 성별해 놓았다는 말입니다.  "거룩하시군요" 하는 말은 그런 하나님의 역사의 충족을 위해서 하나님이 한 때를 위하여 성별해 놓은 기업, 성별해 놓은 자손, 성별해 놓은 나라, 성별해 놓은 민족입니다.

보십시오.  이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렸습니다.  이 남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렸습니다.  저는 오늘 이런 믿음이 옵니다.  이 성별된 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리고 있습니다.  입을 크고 넓게 열어서 예언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생기가 너희에게 들어가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가족이 살리라!  너희 기업이 살리라!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너희 나라와 민족이 살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미래란 하나님의 생기의 영에 취하여서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 해, 내 남은 인생을 그렇게 그냥 보내지 마십시오.  오늘 이곳에서 하나님의 영에 취하여 내 마음속에 성령의 그림을 그리십시오.
 
미래란 그 마음의 그림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냥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 마시고 아들을 향하여 딸을 향하여 자신을 향하여 기업을 향하여 다시 그림들을 그리십시오.  생기가 없이 사는 것,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죄악입니다.  당신의 미래에 당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여러분의 미래에 여러분의 운명을 통제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생령으로 다시 놀라운 변화를 시도해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문제나 고난들은 그런고로 위장한 하나님이 준 기회일 뿐입니다.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한 사람의 노고에 대한 하나님이 가장 큰 보상은 그 일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했기 때문에 얼마를 달라'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내가 이 일을 했으니 이만큼 주시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보상은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내가 이렇게 된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인물들이 된다.  실패든 성공이든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일로 우리를 몰고 갈 뿐이지,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는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썩은 돈에 대해 관심 없습니다.  돈 받은 것은 하나님께 보상받은 것이고, 사람의 됨됨이는 보상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세상에 그런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네가 그 돈과 함께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크고 작은 실패를 했다고 할지라도 잠시잠깐의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또 우리가 돈을 벌고 뭔가 보상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상급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이 일을 통해서 이런 사람이 됐다고 하는 감격, 감사, 고마움이 여러분 속에 철철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는 인생 길은 울퉁불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아스팔트를 깔아주리라!  하나님을 믿으면 꽃길을 깔아주리라.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생을 사는 것은 다 울퉁불퉁한 길을 삽니다.  인생은 어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올라갈 때도 감사하고 떨어질 때도 감사하고, 올라가는 길이 있기에 떨어지는 길이 있지만 다시 올라간다고 하는, 그래서 생명의 하나님의 생수를 찾아 올라가는 작업, 이것이 감격이 아닙니까?  이것이 고마움이 아닙니까?  그러니 믿음을 붙드십시오.  다시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내 놓을 수 있는 믿음을 붙드십시오.  믿음의 돌비들을 여러분의 심령에 세우십시오.
 
훗날 여러분의 자손들이, 여러분의 후대들이 "아버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자녀들에게 그 믿음의 돌비를 설명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 앞에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우리 심령 어딘가에 아직도 조그마한 기적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 심령 깊은 곳에는 아직도 하나님의 기적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만 들어가면 아무리 부정적인 경험도 새로운 각도로 해석을 할 수 있는 인생의 여유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동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있다고 하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진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축복의 말을 건네시기 바랍니다.
"집사님만 보면 정말 기분이 솟아납니다."

지금 이 땅에 존재한다고 하는 그 사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얼마나 고맙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교인들을 보면 서로 안아주고 싶고, 축복해 주고 싶은 그런 삶의 기쁨이 내 가슴 깊은 곳에 충만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기쁨은 하나님의 약속의 아름다움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내가 외로운 너희를 힘든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횃불과 촛불은 다릅니다.  촛불은 혼자 늑대처럼 그냥 혼자 애쓰고 타다가 순간적으로 바람이 불면 맥없이 죽고 맙니다.  그런데 횃불은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더니 가서 태우고 태우고 또 태웁니다.
 
여러분, 촛불로 살지 말고 횃불로 사시기 바랍니다. 자꾸 움직여서 불을 붙이십시오.  성도들 가운데 참으로 어렵게 사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촛불로 삽니다. 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아둥바둥 거립니다.  혼자 들어앉아 가지고 저 혼자만 깨끗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잘못된 겁니다.  "주여! 나는 깨끗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 공기가 더러운데 문 열면 금방 더러워집니다.  별거 아닙니다.  아무리 밝게 빛나는 촛불도 문을 열면 맥없이 꺼집니다.  그냥 꺼지는 것이 아니라 시꺼멓게 연기를 피우면서 꺼집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 가운데 시꺼멓게 꺼져온 사람들이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의 심령에는 갑자기 일어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심령에 혼미하고 강한 아주 강력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능력을 받아서 예루살렘 온 도성을 복음화 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곳 하나님이 전에 하나님의 생기의 바람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물같이, 불같이, 바람같이, 기름같이, 비둘기 같이 하나님이 생령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늘의 능력이 여러분의 심령 위에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마른 뼈들에게 생기야 들어가라!  생령아 들어가라!  에스겔 골짜기를 살렸던 이 생령의 바람이 2천년 전 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려 저들을 통하여 역사를 변화시켰던 그 생명의 역사가 오늘 이곳에서도 강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2천년 전에 예루살렘의 작은 다락방에 일어났던 그 생기의 바람이 지금 우리들 속에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이 급하고 강한 하늘의 바람 앞에 모든 미움적인 삶이 불타고 있습니다.  진부하고 어설픈 생활이 불살라지고 있습니다.  권태롭고 무의미한 맥빠진 신앙이 생활의 생기와 감격과 기쁨과 감동과 환희와 증거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당신의 집안을 든든하게 하기 위하여 하늘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형제와 자매를 주님 앞에 증거하기 위하여, 이 땅의 도성을 복음화 하기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능력을 받으십시오.  사람을 강권하여 이 전에, 주님 앞에 데려오기 위하여 능력을 받으십시오. 내 가정을 살리기 위하여 살리는 영이신 성령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분열되고 갈라진 불쌍한 내 나라와 내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능력을 받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성령의 사람들이 구름같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힘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강력한 능력, 다이너마이트 같은 성령의 강한 능력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영혼을 구원하는 주역이 되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받아 이 땅을 복음화 하는 주님의 강한 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이여! 나에게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우리들에게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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