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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 (시 6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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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만 바라라 (시 62:5~12)


TV를 보는 중에 삼성그룹이 협찬하는 SBS방송의 한 캠페인을 보면서 아주 감동적인 장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캠페인이 나올 때마다 자세히 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캠페인은 보고 또 보아도 감동적이었고, 마음 깊은 곳에서 희망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한번 보고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정확한 문구를 알고 싶었습니다.   우선 캠페인에서 하는 말을 적어보았습니다. 

“너는 나보다 높이 날 것이다.  너는 나보다 큰 꿈을 이룰 것이다. 너는 나보다 더 넓은 무대에 설 것이다.  너는 나보다 당당할 것이다.  너는 나보다 사랑받을 것이다. 너의 코리아는 나의 코리아보다 빛 날 것이다.  대한민국의 내일을 확신합니다.”  

저는 이렇게, 긍정적이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늘은 이곳저곳에서 암울한 소식만 들릴지라도 우리는 밝은 내일을 노래하고 장래의 희망을 말하고 꿈을 꾸고, 신념을 가질 때에 오늘의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가질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강한 에너지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거센 장벽도 뛰어넘고 돌파할 수 있는 강인한 의지가 솟아오르게 됩니다.  희망은 곧 우리의 힘이요, 가능성이요,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가진 미덕중의 하나는 희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롬12:12에 보면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1:3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6:19에서 “이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흔들리고 어디로 떠내려갈지 모릅니다. 

그러면 진정한 희망은 무엇이며, 무엇에다 희망을 둘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 시편62:5에 보면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소망이라는 말들을 좀 더 알아듣기 쉽게 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5) 이 말씀을 새번역에서는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희망을 눈에 보이는 세상물질에다 두려고 하기에 희망이 있느니, 없느니, 보이느니, 안 보이느니 합니다. 우리의 희망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뜬구름에다 두기 때문에 희망이 있었는데 사라졌다고 합니다.  세상의 물질이나, 세상의 인기는 뜬구름이요,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 시편의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만이 나의 희망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하나님이 모든 어려움을 맡아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의 보이는 희망이 진정한 희망이 아니며, 우리가 바랄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서 사도바울은 롬8:24에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이는 소망은 진정한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소망은 하나님에게 두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시146:5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시인 다윗은 자기 자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내 영혼이라고 하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아를 부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의 실존을 향하여 외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자기의 이름을 불러보아야 합니다.  “내 영혼아...  성홍모야...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성목사,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라”고 일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유일한 해답이 되십니다. 

‘잠잠히’라는 말은 침묵, 고요를 말합니다.  차분하게 끝까지 묵묵히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장소,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인 다윗은 하나님만이 희망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은 다윗에게 힘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한 사람이 힘이 되는 줄 알고 사람을 바라보았고, 사람이 도움이 되는 줄 알고, 사람을 의지해보았지만,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좋게 말하던 사람이 또 저녁이 되면 전혀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정말 친절하게 대하던 사람이었는데, 오늘 만나보니 달라졌습니다.  내일이 되면 원수로 대할 것만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 되셨고, 구원이셨고, 요새가 되셨고, 피난처가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소망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나님만 바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만을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내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한 편이 되고, 나 혼자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만 내 편이 되시면, 세상을 당해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가야만 만나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찾아오시고 따라오시는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 영원히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 혼자 걸어가는 것만 같은 순간에도 사실은 주님이 나를 업고 가신 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보니,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이 나의 삶을 책임져주시고, 하나님이 해결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감당한 몫보다는 아버지가 감당하시는 몫이 크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한 것보다도, 아버지 하나님이 해결하시고 간섭하신 것이 더 많고, 확실하였습니다.  이것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2.  흔들리지 마십시오. 

6-7절입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님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자로다”(약1:6-8)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운데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믿음대로 되어갑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습니까?   그러면 긍정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믿음이라고 하면 그는 부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그의 인생을 결정해줄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자신입니다.  그가 성실을 말하며 성실하게 살면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였습니까?   그의 생각이 곧 그의 위인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힘입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도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이 되신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관념적이고, 합리적이고 철학적인 고백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말해도 됩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는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것이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고백하는데 있어 눈에 보이는 어떤 사물이나 경험한 사건이나, 어떤 인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마치 이런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 나의 견고한 바위, 나의 피난처라고 하셨습니다. 시18편에 보면 나의 힘,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이,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 나의 찬송 받으실 분, 시23편에서는 나의 목자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27편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빛, 나의 구원 내 생명의 능력이라고 고백합니다.   

시인 다윗은 전쟁을 많이 해본 사람이기에 전쟁에 관한 말을 가지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 나의 견고한 바위, 나의 피난처, 나의 방패, 나의 산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고백은 전쟁을 치러본 사람의 고백입니다.  전쟁은 살고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기고 보아야 합니다. 

또 시인 다윗은 목축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목자라고 고백한 것도 정말 경험적인 사건을 통하여 고백한 전형적인 히브리적인 사고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오늘의 시편을 자세히 읽어보니, 나의 영혼, 나의 소망,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 나의 구원, 내 힘의 반석, 내 피난처를 말합니다.   모두  나, 나의. 내 나라는 말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피난처라고 하면서, 나 중심에서 우리에게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신앙은 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신앙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나에게서 우리들의 신앙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리더십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리더십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긍정적인 삶은 일만 명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합니다. 


3.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8) 

하나님만이 희망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으로는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토하는 것은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다윗이었기에 그는 적진을 달릴 수 있었습니다.  가로막힌 담을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시18:29)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스펄젼목사님은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간 기도하는 것이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염려라는 것은 또 다른 염려만 불러옵니다.  그러나 기도는 염려를 가지고 기도하지만, 언제나 감사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기도는 모든 헝클어진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가 됩니다. 

우리 주님은 마6:25-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부자라고 하여 하루에 4끼나 5끼 먹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 3끼 먹습니다.  부자라고 하여 양복이 100벌이 있다고 하여 하루에 10벌씩 입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 한 벌 입습니다. 우리도 하루에 세끼 식사하고 한 벌 옷을 입으면 부자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위축되실 것이 아닙니다.  집이 넓다, 좁다 하는 것인데 누워 잘 공간이 있으면 거기서 거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 믿는 것을 부요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어떤 계층의 사람을 시기하고 사람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개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는 남의 것을 가로채서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근검절약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잘 사는 것입니다.  잘사는 것을 부러워해야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시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시시로”라는 말은 ‘언제든지’, ‘항상’, ‘일마다 때마다’ 그런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요, 하나님 안에서 안전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내 삶을 주관하시도록 나를 비워놓고 나를 온전히 사용하시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위임이요, 위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는 내가 하고 나머지 조금만 도움 받는 것이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경험과 힘과 모든 역량까지도 주님의 손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주님을 초청하고 주님을 모셔 들이면 됩니다.  

계시록3:20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위탁하는 것이요, 위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것은 주님을 왕으로 초청하고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주님, 저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저의 구원자요, 주님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초청해야 합니다. “주님, 저의 마음이 주님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의 생각이 온전히 주님의 생각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의 행동이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해야만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요,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 사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14:23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을 모시는 살아있는 성전이요, 성령의 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머리 속에서만 계시지 않습니다.  

내 마음 한 구석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나의 전 삶 속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저는 순간순간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에게 저의 모든 삶을 위탁합니다.  위임합니다. 모든 짐을 맡겨드리고 저는 내려놓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놀라운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붙들어주시는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어느 책을 읽는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벨기에의 앤트워프 대학의 요한 테놀레트 박사가 미국 심장학회의 학술지에 실험결과를 발표한 것이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보다 4배가 높다는 하였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우리 육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리 인생에게도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의 신학”을 쓰신 몰트만은 “부활 신앙이 아닌 그리스도교 신앙은 정말 기독교적인 것도 아니요 신앙도 아니라고 본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에게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이요, 하나님만이 희망임을 노래합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희망의 사람이었습니다.   희망을 잃으면 인생은 없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사랑하시는 여러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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