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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복 있는 사람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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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시 1:1~6)


전통적인 설 명절의 의미는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 머리가 되는 첫 날입니다. 
그리하여 한자어로 세수(歲首), 세시(歲時), 세초(歲初)라 하고 년두(年頭), 년수(年首), 년시(年始), 라고 하며, 새로운 해의 첫 날이 열리는 아침이라는 뜻으로 원단(元旦), 원조(元朝), 정조(正朝),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래 풍습에 의하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한 살을 먹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첫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씩을 더 먹는 다고 합니다. 이를 기리고 기념하는 뜻에서 새날 새벽에 쌀로 떡을 빚고 고기를 익혀 떡국을 끊여 먹습니다. 

조선조의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나이도 설을 단위로 헤아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시 농경생활의 문화에서부터 우리의 선인들은 한 해의 농사가 풍작을 이루고 가정에 평안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천신과 조상신에게 비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한 해를 맞이하는 설은 이런 의미에서 하늘의 축복을 받기 위해 곱고 깨끗한 새 옷으로 설빔을 지어 입고, 매사를 삼가며, 경건하게 지내야 하는 날로 여러 가지 다양한 민속과 함께 아름답게 지켜왔습니다. 
매사에 시작을 그 일의 전 과정이 잘 되도록 복을 비는 덕스러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우리 선인들의 지혜롭고 아름다움의 마음가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 명절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는 다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조상이 물려준 이 강토에 살고 있으면서 영원한 천국을 물려받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의 피와 정신을 이어받고 살아온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도 더 불어 살아야 합니다. 
세상 풍속은 무조건 나쁘다고 버려야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전통적인 것이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이 될 수 없습니다. 
고쳐서 이로우면 고쳐야 합니다. 
고치되 그 정신은 성경과 그 신앙의 전통에 입각하여 고치고 이어가야 합니다. 

설 명절 때는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는 풍습이 있으니 이 모임을 통하여 진정한 제사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하나님께 예배하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전도의 기회로 삼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예배는 세상에 남아있는 자손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믿음의 약속 안에서 진실하게 살 것을 다짐하고 앞서 가신 조상들의 생명을 이어 받은 후손들의 삶을 통해 복된 삶을 이어 가겠다는 신앙적 다짐의 행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복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는, 시편은
'최선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 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편을 묵상하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시 1편은 전 시편의 서론과 제목이 되는 시편으로써 복 받고 못 받고는 1편에서 갈라진다고 합니다.  오늘 설 명절을 맞이하여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왜 복 있는 사람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1. 시편 기자는 왜 복 있는 사람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까?(1절)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 축복은 이런 사람에게 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이 어떤 사람에게 있습니까?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런데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아니하고, 아니하고, 아니하고" 부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는 이미 복 받은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라는 말 <헤시드> - 은혜 입은 자, 복 받은 자, 중요한 것은 복을 누릴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안하기만 하면 우리는 복 받은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것을 안해야 하는가?

1)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 경건치 않은 자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 즉 세상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말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행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 삶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란 목표에 빗나간 사람이다.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의 만(慢) 자를 쓰는 단어가 성경에 세 가지로 나오는데 
            즉 교만 거만 오만으로서 대단히 무서운 

 * 성도는 이 세 가지 「만」자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죄입니다.

교만은 남보다 뛰어난 것이 있어서 뽐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거만은 남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부족하고 없는 데도 끄떡 거리면서 혼자 잘난 척하는 것입니다. 
오만은 무엇입니까! 사람만 업신여기는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까지 업신여기는 것인데, 이것은 거만보다 더 나쁩니다. 남다른 것 있다고 교만해도 복이 끊어지는데, 아무 것도 없으면서 꺼떡거리는 거만은 꼴불견이고, 하나님을 대신해 보겠다고 하는 오만은, 미안한 말로 미치광이입니다. 

   오만한 자 - 하나님 자리에 자기가 않아 있는 자
   우리는 항상 내 마음의 왕좌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독일의 위대한 작가인 괴테의 집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거렸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직업도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남의 험담이나 음담패설로 대화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괴테는 그 사람들이 갈 때 정중하게 타일렀습니다.
“휴지나 음식 부스러기를 우리 집에 흘리는 것은 괜찮습니다만 더러운 말을 흘리는 것만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들을 모두 주워 가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저희 집에 가지고 오지 마십시오.”

복된 사람은 복된 말과 행동이 어울립니다. 

그럼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2.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2절)

복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는 사람의 마음 상태는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즐겁지 아니하느냐?
1) 신앙이 건강치 못해서 그렇습니다.
2) 눈이 뜨여지지 아니해서 그렇습니다. 

시119:18절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에 눈이 뜨여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묵상 - 하카 - 밤중에 어린 새끼가 어미를 찾는 신음 소리, 그리고 되새김질이란 뜻으로 하나님 말씀만이 해결의 열쇠인 줄 알고 말씀을 되새김질 한다는 것입니다

스펄전은, "말씀을 읽는 것은 밀을 거둬들이는 것이고 묵상하는 것은 타작하여 방아를 찧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19:7,8절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죄악으로 지치고 피곤한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어줍니다. 
세상을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심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적이고 육신적이고 감각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신령한 영혼의 기쁨이요 참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보다 우리의 눈을 밝게 합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하고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써서 아주 유명해진 작가 조창인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다른 일을 하다가 `이제는 소설만 써야 되겠다.`고 결단하고는 96년도에 전업한 작가입니다. 
처음에 한 두 권 소설을 썼을 때는 그런대로 잘 팔려서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세 네 권 정도 책을 썼을 때 이상하게 책이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점점 부수가 떨어지고 나중에는 제로 상태까지 미끄러졌습니다. 
작가로서의 길을 걸게 되었는데 자기가 쓴 책이 안 팔리자 한동안 좌절과 번민을 거듭하면서 복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치의 병을 안고 있는 아들과 씨름하면서 고생스럽게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그 친구의 형편을 옆에서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병든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을 소설로 한번 그려보자'
이렇게 해서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아버지가 급기야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데까지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어떻게 이 소설을 마무리해야 될 지 도무지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기도도 하고 부르짖기도 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생각은 허공을 헤매고 있는데, 출판사와 약속한 날짜는 자꾸 다가와 피를 말리는 진통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조용히 펴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날 읽은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수난의 장면이 담긴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짊어지고 말없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희생하는 모습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번쩍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영감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것처럼 소설 마무리를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완전히 죽어서 희생하는 것으로 끝맺어라' 는 착상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설을 마무리를 했습니다. 

다 쓴 원고를 출판사에 들고 가면서 한 만 권만 팔렸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진 어려운 때에 생각 이상으로 140만 권이나 팔리게 된 것입니다.
 IMF 이후에 실직을 당한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마음을 태우고 고생을 하는 사회적 상황과 맞아 떨어져 많은 아버지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한 소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면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이라도 당장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의 형편을 돌려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놓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과 깊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지혜를 주십니다. 성경은 지혜의 보고입니다. 

수1:8절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면 네 길이 평탄하고 네가 형통하리라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그들 중 약 52% 이상이 다음 예배 시간에 나올 때까지 성경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배 시간에만 성경을 펴보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 시간에 안 나오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지만, 한 주간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 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주야로 묵상할 수 있을 지 고민해야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고민하면서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생활을 실천하면 복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 - 신앙의 체질이 바뀌어진 사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이 즐겁고  찬송하는 것이 즐겁고, 예배하는 것이 즐겁고,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면서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축복 체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3. 복 있는 사람의 상태는 어떠합니까?(3절)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다
팔레스틴 지방에 가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 실감납니다.

렘2:13절에 `하나님은 생수(시냇가)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누리는 성도를 '물 댄 동산'(렘31:12)과 '마르지 않는 샘물'(사58:11)로 표현하셨습니다.  이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복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신앙의 열매는 내적인 열매와 외적인 열매가 있습니다. 

내적인 열매는 말씀 앞에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의 내면에 성령을 통해 맺어지는 인격의 열매입니다. 
이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입니다(갈5:22,23). 

- 성품의 변화
외적인 열매는 생명구원과 제자양육, 선교 및 사역의 열매입니다. .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를 하나 소개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무역의 날에 500만 달러 수출 탑, 100만 달러 수출 탑을 휩쓴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대명무역상사를 경영하는 김용순 사장이라는 분인데, 참 믿음이 좋은 집사님입니다. 섬유 원단을 수출하는 회사인데, 섬유 제조업은 사양길에 있는 사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사업을 잘했는지 수출 탑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사업을 성공시킨 비결에 대해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너무나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씁니다. 성경 필사를 하면서 샘솟는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 힘으로 사업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는 40대 나이에 지난 7년 동안 매일 새벽 1시에 일어나서 5시까지 4시간 동안 성경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벌써 8권이나 썼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을 쓰는 동안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았던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교만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성경을 쓰다 보면 천지가 내 것 같아 집니다. 하나님 말씀 필사를 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 주십니다."

반대로 악인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4. 반대로 악인의 상태는 어떠합니까?(4-5절)

그러나 악인의 상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4절,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절,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입니다. 바람에 나는 겨란 쭉정이란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할 때 키로 바람에 날려 구별합니다. 
바람이 불 때 공중에 알곡과 쭉정이를 던지면 알곡은 무거워서 땅에 떨어지고 쭉정이는 가벼워서 날아갑니다. 날아간 쭉정이는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에 주인이 모아서 불에 태웁니다. 

이 말씀은 악인은 비록 이 땅에서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쭉정이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여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의 결국은 6절 하반 절에서 말합니다.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결국 의인과 악인의 삶에 있어서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5. 의인과 악인의 삶에 있어서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6절)

6절,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옛 격언에 “챔피언은 링 안에서 챔피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기서 인정될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 안에서 진실 된 삶을 통해 인정받는 일입니다. 
우리의 빛을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일입니다.

영광이란 말은 헬라어로 ‘독사’(doxa)입니다. 이 말은 ‘인정한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즉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하여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특히 신자는 교회 안에서는 교역자와 성도로부터 세상에서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라고 합니다. 
지옥 에피소드 한 가지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었습니다. 
천국에 갔더니 베드로가 "너 지옥 갈래? 천당 갈래?" 하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어디 있습니까? 자신보고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이왕 선택하게 할 바에는 자비를 베풀어서 한 번씩 구경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천국에 갔더니 천사들이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찬송을 부르는데, 한참 앉아있었는데 따분해서 못 있겠더랍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보았더니 카지노도 있고, 술집도 있고 예쁜 아가씨도 많고 쿵작, 쿵작 하는데 괜찮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저는 아무래도 지옥체질인 것 같아서 지옥에 가겠습니다"고 했더니, 
베드로가 그러면 지옥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다 보니 갔던 곳이 아니고, 깊은 굴 속에 들어가서 뜨거운 곳에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왔던 곳과 다르다고 했더니, 천사가 설명하기를 그 때에는 관광비자로 왔고, 이번엔 영주권으로 왔기 때문에 다르다고 했습니다. 관광비자 갖고 너무 싸다니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지옥행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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