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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즐거움 (잠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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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즐거움 (잠 15:13)

(잠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 요즈음 우리 사회는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기쁨, 즐거움보다 우울케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방송 3사에서 방영하는 오락프로그램을 봐도 공허한 웃음, 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세대 차이로 인해 소위 ‘웃음 코드’가 맞지 않아 도무지 웃음이 터지지 않는 코너가 대부분입니다. 신세대에 흥미로운 노래, 광고, 영화 등의 콘텐츠와 그 흐름에 익숙하지 못하면 과감하게 비약하고 생략된 어투로 웃음을 유도하는 여러 오락,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서도 멍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아이들과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예능, 오락 TV를 시청해도 함께 웃고 즐거워하지 못하여 세대간 갈등만 증폭되고 노출되는 것입니다. 

역사가이자 저명한 사회사상가인 <막스 러너>는 “지금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행동의 제재를 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충격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생각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도 기쁨이 없다는 사실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자유를 보장받을 때 과연 기쁨도 함께 보장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한마디로 표현해서 모든 면에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진실한 기쁨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으시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잔치집에 포도주가 모자라 잔치집의 즐거움이 깨어질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빈항아리에 물을 채워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처음 나왔던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베푸신 여러 기적들 중에 첫 번째 기적입니다. 예수께서 베푸신 첫 번째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입니다. 포도주는 ‘기쁨’, ‘즐거움’의 상징입니다. 이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무런 맛이 없는 물,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인생을 포도주 맛이 나는 인생, 즐거움의 인생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을 없는 인생의 참되고 영원한 기쁨,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러한 말씀들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인생의 참된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빈항아리에 채워진 물을 처음 나온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로 변화시켰다는 것은, 공허한 인간의 삶을 세상에서 맛보는 즐거움보다 질적으로 더 좋고 영원하며 즐거운 삶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삶에 들어오실 때는 언제든지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새로운 질적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예수없는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진부하며, 그가 무엇을 가졌든, 어느 위치에 있든 결국 빈항아리처럼 공허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으로 성도 여러분의 삶이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참되고 영원한 기쁨의 삶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주 예수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좋아지고 즐거운 은혜가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세계적인 백화점 왕이라고 불리는 ‘존 워너메이커’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으며, 서점 점원으로 출발하여 세계적인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믿음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역경을 극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가 83세 때에 사업가로 60주년을 맞았습니다. 한 기자가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성공할 수 있게 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을 믿으며 즐겁게 그리고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는 성도 여러분이 ‘마음이 즐거운 삶’으로 ‘빛나는 얼굴’, 그리고 즐겁고 행복한 성공적인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인간의 ‘마음’은 전(全) 인격의 중심을 말하고, ‘얼굴’은 그 인격이 표현되는 곳을 말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에서 ‘빛나게 하여도’의 히브리어 ‘야타브’는 ‘선한’ 이란 뜻과 ‘기쁘고 행복한’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즐거움’이 영적, 육적인 삶에 생기와 평안을 주어 삶을 선하게 이끌어주며, 기쁘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는 잠언 12: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는 말씀에서 ‘번뇌케 한다.’는 말, 잠언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는 말씀에서 ‘뼈로 마르게 한다.’ 말 등과 같은 것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생기와 원기를 빼앗아 가며 그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비록 육체가 상했을지라도 심령이 건강하고 즐거우면 회복되기 쉽지만, 마음, 심령이 상하면 육체가 건강할지라도 회복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잠언 18:14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8:14)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현대역 : 사람이 병들면 정신력으로 지탱할 수 있으나 그 정신력마저 잃으면 아무 희망이 없어진다.) 

여기 “심령”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루아흐’인데 이는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과 같이 쓰입니다. 이는 인간의 심령이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교통하는 기관이라는 뜻입니다. ‘심령’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상하면 오직 하나님의 영, 성령을 통해서만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얼굴이 상하고 우울하고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3200년 전, 유다 베들레헴에 나오미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자 그녀의 남편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흉년을 피해 모압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즐거움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로 불리는 신앙의 고향을 의미합니다. 이곳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곳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전, 교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나오미는 이러한 베들레헴에서 살기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우상숭배의 땅 모압으로 이주했던 것입니다. 결국 오래지 않아서 가정에 큰 재난이 닥쳤습니다. 그 동안 멀쩡했던 남편이 원인모를 병에 걸려 죽고 만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하게 되었지만 두 아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고난이 임할 때 즉시 회개하고 돌아오면 되는데 더디 깨닫는 인생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들을 장가보냈습니다. 두 며느리를 보고 이제는 죽은 남편을 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아들마저도 죽고 말았습니다. 나오미는 결국 모압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그녀는 두 아들을 잃고 나서야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베들레헴 여인들이 나오미를 반갑게 맞으며 “이게 누구냐 나오미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 때에 나오미가 하는 말이 “(룻1:20-21)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라고 말합니다. 

‘나오미’라는 뜻은 ‘즐거움’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라’는 ‘쓰다’. ‘괴로움, 고통’이라는 의미입니다. 잠시 흉년을 피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이 나를 치셨음으로 나는 결코 즐겁지 않으며 나는 지금 인생의 고통스러운 쓴 맛을 삼키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하나님을 떠났다 빈항아리로 돌아왔지만, 베들레헴,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보아스를 통해 손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손자의 이름을 ‘오벳’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라’같이 쓴 맛을 본 나오미를 그 이름대로 다시 즐겁고 복된 삶으로 회복하여 축복하신 것입니다. ‘오벳’이 누구냐 하면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 불렀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이 ‘오벳’을 얻은 후 이렇게 그 노년을 즐거워합니다. 

(룻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그래서 나오미의 고손자 다윗은 시편16:1-10을 통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6:1-11)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여도,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음’을 고백하며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 나의 성전, 교회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을 깨닫고 항상 성전을 가까이 하여 기쁨이 충만한 주의 앞에서,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주의 우편에서 사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즉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양약(良藥, good medicine), 몸에 좋은 약이 됩니다. 잠언 17:22을 보겠습니다.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이 즐겁고 몸에 좋은 양약을 얻으려면 ‘지혜로운 혀’를 가져야만 합니다. 

잠언 12:18을 보겠습니다.
(잠12:18)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칼로 사람을 찌르는 것이 생명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처럼 분별없이 충동적으로 내밷는 말을 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의 말은 자신과 이웃의 상처를 진정시키고 치료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또한 마음이 즐겁고 뼈에 양약이 되기 위해서는 ‘선한 말’을 가져야 합니다. 

잠언16:24을 보겠습니다.
(잠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지혜서인 잠언에 나오는 지혜롭고 선한 말은 이렇습니다. 

1) 상대방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고, 소망을 불어넣고 은혜를 끼치는 말입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과 죽음을 맞아 슬픔에 잠긴 엄마에게 한 소녀가 할머니의 죽음을 이렇게 멋지게 설명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할머니가 하나님과 늘 함께 걷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죠?” “그렇지”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 하면 말이에요. 어느 날 하나님과 할머니가 아주 산책을 나가셨어요. 계속해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하나님이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더니 피곤해보이는구나. 그냥 나와 함께 내 집으로 가서 거기서 편안히 지내렴.’ 그래서 할머니가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 집으로 가신 거예요.” 

2) 항상 진실하고 정직한 말이 선하고 지혜로운 말입니다. 

3) 이웃의 약점을 담당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말이 선하고 지혜로운 말입니다. 

4) 온유하고 겸손하며 유순한 대답이 선하고 지혜로운 것입니다. 어떤 친구가 생선가게에서 조기를 사려고 싱싱한 것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조기 한 마리를 손에 들고 냄새를 맡자, 생선가게 주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멀쩡한 고기를 가지고 냄새를 맡고 야단이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라 귓속말로 바다 소식을 좀 물어봤소.” 주인도 호기심이 생겨서 “그래 조기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이 친구는 대답하기를 “바다를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어서 최근 소식은 알 수 없답니다.” 이것이 지혜롭고 즐겁게 하는 말입니다. “생선이 썩었다.”라고 정면에서 쏘아붙이지 않고, 지혜롭고 유순한 대답으로 서로의 마음이 즐거운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5) 긍정적이고 서로 화목하게 말이 선하고 지혜로운 말입니다. 옛날 황희 정승이 은퇴해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오늘이 저희 아버님 제삿날인데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러면 제사를 지낼 수가 없지요?” 라고 묻자 그는 “그야 지낼 수 없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조금 후에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내일이 아버님 제사인데 저희 집 돼지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래도 아버님 제사는 모시는 것이 당연하지요?” 라고 물으니 이번에는 “그야 물론 당연이 모셔야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부인이 “한 사람은 안 된다 하시고 한 사람은 된다 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황희는 “소가 새끼를 낳든 돼지가 새끼를 낳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요는 제사인데 지내고 싶은 사람은 지내게 하고 지내기 싫은 놈에게는 하지 말도록 하였을 뿐이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습니까? 문제는 말의 긍정성입니다. “그러면 안 되겠지요?”라는 부정적인 말씨와 “그래야 되겠지요?” 라는 긍정적인 말씨는 천양지차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말로 백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소망을 가지도록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악평하며 스스로를 메뚜기같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백성들을 절망으로 몰아갔던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일어나 

“(민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던 것처럼 성도 여러분의 언어가 선하고 지혜우시기 바랍니다. 

6) 남을 높이며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는 말이 지혜로운 말입니다. 

7) 감사하는 말, 깨끗하고 경건하며 품위 있는 말이 지혜로운 말입니다. 

8) 덕을 세우며 남을 축복하는 말이 지혜로운 말입니다. 지혜로운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양약으로 축복하시지만 칼로 찌르듯 함부로 내밷는 말은 사탄이 좋아하는 말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버스에 탔는데 시간이 지나도 출발하지 않자 운전기사에게 말했습니다. “기사 아저씨, 이 똥차 왜 빨리 출발 안하는 거예요?” 운전기사가 젊은 사람을 바라보고 빙긋이 웃으며 말합니다. “손님, 똥이 차야 똥차가 출발하죠.” 

우스개로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세치 혀를 잘못 놀리면 사람이 똥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 말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가는 말도 고울 뿐 아니라, 오는 말이 아무리 곱지 않다 해도 가는 말을 곱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구박을 당하고 욕을 먹어도 말로 복수하지 마시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는 자의 선하고 지혜로운 언어생활입니다. 선하고 지혜로운 말로 자신과 이웃을 치유하는 양약과 같이 쓰임받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한 해 동안을 “마음의 즐거움”으로 살면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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