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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시 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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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시 37:1~9)

  
오늘 말씀의 제목을 ‘I have a dream' 이라고 정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미국의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목사의 유명한 연설의 제목입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링컨 메모리얼 센터 앞에 수십만 명이 모인 곳에서 그는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 노예후손들과 노예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나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지금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되며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당시 그의 연설은 모든 사람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지 감동으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꿈을 말하고, 노래하고, 기도한대로 실현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 1월 20일 미국은 제44대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합니다.  그날은 바로 킹 목사의 꿈이 실현되는 날입니다.  킹 목사가 꿈을 꾼 지 46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특히 내일 1월 19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일로 지킵니다.  그리고 취임식으로 이어집니다.  감동의 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꿈을 꾸게 하고, 꿈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을 기록한 다윗도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4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다윗의 꿈, 요셉의 꿈, 킹 목사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이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꿈을 꾸고, 꿈의 실현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다윗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할 일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4절에 분명히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할 때, 그 분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고 말합니다.  소원을 이루는 첫 번째 길은 먼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번역하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기쁘게 해도 소원을 이루어주는데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못 이룰 소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 기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곧 소원을 이루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또한 상주시는 분임을 믿는 믿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또한 그분이 우리의 삶을 평가하시는 분임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이 말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말고, 적당하게 믿지 말고, 미지근하게 믿지 말고, 확실하게 한번 하나님을 믿어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나의 소원을 이루는 비결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결국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자와 불신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다시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잘 믿는 사람과 적당하게 믿는 사람입니다.  이름이 바뀌고 신분이 달라진 신자가 있고, 신분과 함께 수준이 높은 신자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있고, 성숙한 신자가 있습니다.  권리만 주장하는 성도가 있고, 의무까지 감당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늘 축복만 기대하고 바라는 그리스도인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희생도 감수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감추고 사는 사람이 있고, 십자가를 자랑하고, 또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다윗은 어떤 믿음의 사람일까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제대로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임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 날마다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기도와 간구를 올리면서 그의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상달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듣고 보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평가하시는 분으로 구데 믿었습니다.  그는 몸부림치면서 자기를 다스렸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고난과 역경을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적당하게 믿지 않고 제대로 믿었다는 말입니다.  확실하게 붙잡았습니다.  결국 이런 다윗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그의 꿈과 소원을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기는 이미 틀린 사람들입니다.  지옥으로 가긴 힘든 사람들입니다.  어차피 믿고, 결국 천국으로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기왕 이렇게 되었다면 좀 확실하게 믿어보자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적당하게 말고 확실하게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신자’는 많은데 ‘제자’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믿는 사람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로서의 길을 가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것이 삶에 편리와 요령으로 지배하는 시대이기에 우리의 믿음도 그렇게 변해갑니다.  믿음생활은 제대로 하려면 한도 끝도 없고,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별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옛날처럼 신앙이 곧 죽음이던 시대와는 다릅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안일과 타성과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한번 이런 것을 탈피해서 제대로 한번 하나님을 믿어보자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꿈을 이루는 길입니다.  새해에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을 다짐하며 소원의 항구로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7절에도 “악한 꾀를 이루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여 말지어다”  8절에도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이것이 본문에서 유독 다윗이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시 이 말도 다윗의 경험을 통해 고백하는 말입니다.  다윗은 순탄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당대와 후대에 업적을 남기고, 위대한 인물로 서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의 인생의 고비마다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다면 결코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아도 그가 불평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가 잘못해서 범죄한 기록은 있어도 불평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에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악한 사람의 악한 행동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반란으로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을 때에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건강의 이상이 생겨 위험한 지경까지 갈 때에도 받아드렸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입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런 사람을 모두가 존경받는 인물로 되게 하신 것입니다.

꿈과 소원을 이룬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성경가운데 시편 37편을 많이 묵상했다고 합니다.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링컨의 성경책을 보면 가장 많이 펴 있는 곳이 여기이고, 이곳에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것을 보았고, 심지어는 눈물자국도 선명했다고 합니다.  링컨은 힘들고 어려운 고비마다 이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링컨도 만만치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많은 실패가 있었고,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경우에도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늘 수용하고 감사를 찾았습니다.  결국 그런 그의 자세가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이번에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오바마도 역시 그런 면에서 꿈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가 만약 태어남을 불평하여 정체성의 혼란 속에 자기를 내던져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만약 결손가정을 핑계로 부모와 어른을 원망하며 막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만약 그의 앞에 빈번히 가로막는 대적과 문제 앞에 불평하며 주저앉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최초의 흑인대통령,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불평하는 자, 불평하는 곳에 잘 되는 일은 없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증명하고, 역사가 증거하고, 우리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발견합니다.  불평은 탓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탓하고, 운명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사람을 탓하는 것이 불평입니다.  불평은 결국 불행한 인생으로 끝납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종일관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한사람도 가나안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여러분, 이제 꿈을 이루기 위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합니다.  불평하지 말고, 탓하지 말고 살아보십시오.  감사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드리면서 지내보십시오.  그런 자를 하나님이 돌아보시고, 그런 자를 사람들은 인정하여 꿈을 이루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는 맡기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5-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이 말은 다윗의 깊은 마음의 심정에서 터져 나온 의미 있는 말입니다.  맡기라, 잠잠하라, 참아라, 기다리라, 이것이 결국 꿈과 소원을 이루는 길임을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다윗의 인생과 그의 지나온 삶을 생각하면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사무치게 하고, 각인시키는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은 인생의 모든 일은 맡기고, 기다릴 때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깊은 밤을 보내면서 아무리 뜬눈으로 지낸 다해도 결국 기다려야 아침이 옵니다.  매서운 추위로 몸과 마음이 움츠려져 겨울이 빨리 지나가게 하려고해도 봄을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놓고 초조해도 결국 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빨리 건너가고 싶어도 기다려야 도착합니다.  심지어 쌀을 솥에 얹혀놓고 기다려야 밥이 됩니다.  줄을 서서 잠시라도 기다려야 내 차례가 됩니다.  모든 것은 기다림 속에서 됩니다.  무르익고, 숙성되고, 잘 여물어져야 완성이 됩니다.  급하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치고, 안달복달해도 다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하늘의 이치는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맡기고, 기다린다는 것은 그냥 하늘만 쳐다보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윗은 역시 경험을 바탕으로 여기에서 기다리면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것을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여기에서 다윗은 2가지를 강조합니다.  먼저 성실하라는 것입니다.  성실을 마치 먹을거리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먼저 나의 수고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고, 눈물을 쏟으며 성실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의 인생은 늘 성실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을 붓기 위해 이새의 집에 왔을 때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모든 전쟁과 싸움의 현장에 그는 선봉에 섰습니다.  죽을 각오로 대적과 싸우는 일에 피를 흘리며 수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바로 그런 곳이 임합니다.  그냥 무조건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인생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눈물로 씨를 뿌려야 기쁨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둘 수는 없는 법입니다.

또 하나 맡기고, 기다리면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실해도 만약 그것이 악을 행하는 일이라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입니다.  결국 다윗도 그런 실패를 경험합니다.  우리의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위한 성실이고, 무엇을 위한 열정이냐고 중요합니다.  우리의 머리를 열심히 뭔가에 골몰하면서 만약 악한 꾀를 낸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손이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악을 행하는 일에 분주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발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움직이는데 가서는 안 될 곳만 내 발이 움직인다면 성실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을 생각하고, 선을 말하고, 선을 추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성실로 뒷받침 될 때 탄력이 붙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부족하고, 잘 눈에 띄지도 않아도 새롭게 시작하는 헌신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중요하게 보십니다.

미국의 역대대통령들은 후대에 재임기간동안의 업적이나 대통령의 성품과 인격과 삶에 따라 별명과 애칭이 붙여집니다.  예를 들어 워싱턴은 건국의 아버지라든지, 링컨은 위대한 대통령, 정직한 대통령으로 부릅니다.  빌 클린턴의 ‘빌’이나 지미카터의 ‘지미’도 모두 애칭입니다.  부시대통령의 별명도 ‘더브야’입니다.  이 말은 부시의 중간 이름 더블유(W)의 텍사스식 발음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처럼 모두 별명이 있는데 19대 대통령인 러더퍼드 헤이스(Rutherford B.  Hayes)는 ‘다크호스 대통령(Dark-Horse President)’으로 부릅니다.  다크호스는 '역량은 잘 알 수 없지만 의외의 성과를 낸다'는 뜻입니다.  경마경주에서 어떤 말은 눈에 띠지 않고 그늘과 어둠속 뒤에 쳐진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이 달리다가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와 승리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배경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헤이스 대통령에게 왜 이런 별명이 생겼는지는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는 당시 좋은 대통령으로는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은 그를 가리켜 ‘날이 갈수록 점점 탁월해지는 위대함을 보인 인물이다’는 평가에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면에서 ‘다크호스’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잠재한 능력이 있고, 충분한 역량이 있습니다.  이제 치고 나오면 됩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탁월해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소원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 모두 꿈을 이루도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고,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올해 모두 다크호스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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