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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나무의 비유에 담긴 비밀 (요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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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의 비유에 담긴 비밀 (요 15:1~8)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성구는 예수님의 목적에 대하여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영국의 청교도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이 세상을 ‘장망성’이라 했다. 장차 멸망당할 이 세상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목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로 하여금 더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풍성한 삶을 살고 있는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미국의 전도자 빌리 그레함 목사는 미국의 그리스도인 중에 95%가 실패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바로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바로 나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증하고 계신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고 여러분들의 귀에 익숙한 말씀이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의 말씀이 나의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는 있으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포도나무의 비유’는 ‘비밀’로 잠겨져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그 비밀을 캐내어 나의 삶 속에서도 풍성한 열매가 맺혀지는 복된 생애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먼저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이 비유의 말씀을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기 위하여 예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배경과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적으로 보자면 예수님의 생애 가장 마지막 시기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란 사실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위해 어느 다락방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받으실 고난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도리어 그들 가운데 다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다툼의 원인은 제자들 중에 누가 가장 큰 자냐 라는 것이었다. 3년 간의 제자훈련이 수포로 돌아가는 허탈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다. 이때 예수께서는 조용히 일어나셔서 밖으로 나가 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들어오셨다. 말로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실물 교육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대접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다. 그런 자가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난 후 주신 말씀이 새 계명이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물질적으로 풍요한 것, 지위가 높아져서 다른 사람을 호령하는 것이 풍성한 삶이 아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셔서 구원을 이루신 것 처럼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요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마치신 후에, 제자들이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칠 것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강력히 부인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살길을 좇아 도망쳤다. 그리고 14장에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15장에서 포도나무의 비유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시간적으로 볼 때 이 다락방에서의 강설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유언적 메시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핵심은 더 많은 열매를 맺고 누리라는 것이다.

이 비유는 말씀은 당시에 듣고 있던 제자들 뿐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주님의 간곡한 소망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통해 열매 맺게 하시는가? 


1. 제해 버리시고..(2절 상)

(요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제해 버린다’는 말은 ‘잘라 버린다’는 뜻이다. 거의 대부분의 성경이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야베스의 기도’란 책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브루스 윌킨슨씨가 ‘포도나무의 비밀’이란 책을 내놓았다. 바로 오늘 본문을 근거로 쓴 책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포도나무 가지를 네 종류로 분류했다. 첫째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 둘째는 열매 맺는 가지, 셋째는 더 과실을 맺는 가지, 넷째는 더 많은 과실을 맺는 가지. 

그런데 그는 2절의 ‘제해 버리시고’에 대한 번역을 성경 원문의 의미를 따라 ‘들어올리시고’라는 의미를 수용하였다. 윌리암 핸드릭슨이나 박윤선 박사나 대다수의 성경주석가들도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거짓된 신자로 분류하여 제거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잘라내는 것을 통해 열매를 많이 맺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목적 - 과실을 맺게 하는 것 - 과 하나님의 성품을 고려할 때 제해 버리는 쪽보다는 들어올려 열매를 맺도록 손질해 주는 것이 더 적합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 주장은 전통적인 해석 방법에서 벗어난 것이긴 하지만 상당한 설득력과 함께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브루스 윌킨슨의 해석을 채용할 때 열매 없는 신자들에게는 열매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는 차원에서 소망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가지가 늘어져 땅바닥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면 흙 먼지등으로 인해 오염되었을 것이고 적당한 햇빛을 받을 수도 없는 환경이기에 열매를 맺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농부는 사정 없이 가지를 잘라내 버리겠는가? 일반적으로 포도나무를 아끼는 대다수의 농부들은 쉽게 가지를 잘라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늘어진 가지를 들어 올려 지지대에 붙여 묶어 놓는다면 충분히 과실을 맺을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2절 앞 부분을 이렇게 번역할 수가 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들어 올리시고..’

이것은 열매 없는 황폐한 신자에게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것은 영적으로 회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죄는 포도 잎사귀를 뒤덮는 흙먼지와 같다. 농부가 땅바닥으로 늘어진 가지를 들어 올릴 때 물로 흙 먼지를 닦아서 올려 묶어 놓을 때 열매 맺을 가능성이 있는 가지로 바뀌는 것처럼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씼는 회개를 통해서 열매 맺는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죄에 묶여 절망감 속에 헤매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들의 삶 속에는 자유함과 기쁨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거짓된 신자일까요? 잘라내야 할 대상인가요? 

나는 종종 절망적인 상황에 헤매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하게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가지와 같은 신자라 할지라도 회개를 통해서 열매 맺는 가지로 회복될 수 있다. 그것은 농부되신 하나님의 들어올리심 곧 회개라 할 수 있다. 


2. 가지치기

2절 하반부,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가지치기는 징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의 자리에 머무르거나 나태할 때 가해진다. 우리는 이 사실을 히브리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우리는 여기서 징계에 대한 3가지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징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 두 번째는 그는 모든 신자들을 징계하신다는 사실, 세 번째는 그분은 항상 사랑으로 행하신다는 것이다.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그리고 징계의 단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책망의 단계, 둘째는 벌주는 단계, 셋째는 채찍질의 단계이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다.

(잠 10: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징계를 좋아하는 자녀는 없다. 그러나 만약 징계가 없다면 우리는 자녀가 아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이고,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를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징계의 목적은 무엇인가?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더 많은 열매를 얻도록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 나의 삶에 영적 열매들이 맺혀지도록 버려야할 것들을 버려야 한다. 
(요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엡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 주 안에 거하는 것이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더 많이 함께 있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본문 안에 ‘거하라’는 말이 10번이나 쓰였다. 주님의 간절한 요청은 최고 수준의 열매를 맺기 위한 우리의 태도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만약 우리가 주 안에 거하기를 거부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렇다면 ‘거한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것은 보통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 간의 우정을 쌓는 것 이상의 수고와 노력을 요하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의 형성은 잦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이뤄진다. 찾고, 바라고, 목말라 하고, 기다리고, 보고, 알고, 사랑하고, 듣고, 반응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거함의 원리(부루스 윌킨슨)

1) 거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을 깊게 해야 한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간을 떼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음미해야 한다. 마음 속 깊이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영국의 강해설교가, 존 라일목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것은 그와 끊임없이 밀접한 교제의 습관을 유지하고, 언제나 그에게 기대며,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우리의 마음을 쏟아 놓으며, 우리의 생명과 힘의 원천, 그리고 우리의 우두머리 동료이며 최고의 친구로 그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2) 거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경건의 시간을 확장시켜야 한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어떻게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가능한가? 약속된 시간으로만 제한하지 말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하루 종일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17세기 한 수도원의 주방에서 일했던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로렌스 형제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그분의 거룩한 임재 안에 거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사랑의 눈길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단순한 주의력과 몸에 배인 습성으로 그분 안에 거하게 된다. 이런 삶으 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끝없이 이루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밀스런 대화라고 부른다.’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는 의식하려고 할 때 가능하다. 이렇게 했을 때 두 가지 놀라운 결과가 따라 오게 된다.

첫째는 기도의 응답이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둘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요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예)190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가는 어느 가정 이야기.

이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무지와 게으름이라 할 수 있다. 모르면 알도록 배워야 할 것이고, 알면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연초 두 번째 주일에 이 말씀을 증거하는 이유는 어려운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난을 이기고 풍성한 삶, 성공적인 삶을 살자는 목적이 아니다. 

올해 우리 교회가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함이다. 건강하지 않고는 직장 생활도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교회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교회 구성원인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적당히 열매를 맺는 정도가 아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을 알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자는 것이다. 

나의 영적인 삶이 풍성하고 열매 맺을 때 비로서 우리는 건강한 신앙공동체로서 사명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새해에 나름대로 여러 가지 많은 계획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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