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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식]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요 1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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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요 13:3~11)


지난 주간 새벽기온이 차가왔는데 한 주간동안, 신년특별새벽기도회로 모여 말씀과 기도로 새벽을 깨우신 성도님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하는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인 예일 대학과 하버드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고 예수회 사제였던 헨리 나우웬(H. Nouwen)이란 분이 있습니다. 64세가 되던 1996년 9월에 심장마비로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0여 년 전인 1985년도에 53세의 한창 나이에 突然, 재직하고 있던 하버드 대학교수직을 내려놓고, 대학을 떠났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정신 박약장애자 공동체 L' Arche의 캐나다 토론토 공동체인 Daybreak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10여년 동안 그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용변을 치워주고, 목욕을 시켜주면서 살다가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가 말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오직 정상을 향해 오르막길만 걸어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늘 일등으로 달려 하버드 대학 교수직에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신지체아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은, 인간이란 내리막길을 갈 때 더욱 성숙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오르막길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었는데,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평화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섬김은,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하는 제자들]

본문에서 우리는 대단히 충격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3, 8 하반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때는, 유대인의 유월절 하루 전 입니다. 다른 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언급되지 않는 요한복음서만 전해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잡숫던 자리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저녁 먹는 중에 예수님께서 갑자기 식탁에서 일어나시더니, 겉옷을 벗으시고는,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씻겨 주십니다. 수건으로 닦아 주십니다.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어느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하던 말을 하며 예수님의 그 행동을 막아섭니다.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못 하십니다. 제 발만은 절대로(영원히) 씻지 못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 시몬 베드로가 간청합니다. “주님 그러시면,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으니라. 온 몸이 깨끗하다”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집중하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는 말씀입니다(요 13, 8하).

이 말씀에 유념하십시오. 여기, '상관없다'는 말씀은, ‘메로스’(헬, me,roj)라는 말인데, 이 말은 ‘너는 나와 몫을 나누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분깃’이 없다, ‘유산’이 없다, ‘基業’이 없다, 돌아갈 ‘몫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이것을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랫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의 전리품이나 재물, 영광 등을 함께 나눌 때 쓰는 말이 ‘메로스’입니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20, 1에 보면 불량배였던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가(사람을 모아놓고) 나팔을 붑니다(큰 소리로 선동하였다는 뜻).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합니다. ‘세바’가 누구이기에 이런 말을 합니까? 다윗 왕에게 반역을 일으켰던 인물입니다. 반역자이니까, 우리와 다윗은 서로 나눌 분깃이 없고, 받을 유산이 없다(상관이 없다) 한 것 아닙니까? 말하자면, 절교선언을 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을 분깃, 몫, 배당, 유산, 基業이 아무 것도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본문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예수님과 우리와 상관이 없어지게 됩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발 씻김의 섬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여러분,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섬김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섬김은, 예수님과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영적인 연결고리’입니다. 우리에게 대한 예수님의 섬김이, 예수님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영적연합의 원리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 그 누구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발 씻기심의 섬김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 여기에, 놀라운 복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섬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二重的(2가지)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 씻겨주심은, 예수님의 겸손한 섬김을 말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 주신 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랍비)이라 또는 主님이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本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친히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만찬 상에서 하셨던 행위가 당시, 유대사회에서 누가 행하던 행위인지 유념해 보아야 합니다. 음식 잡수시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는,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먼지와 땀으로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어주시고는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행위는,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유대인 종들에게조차도 요구하지 않던 행동입니다. 발 씻어주는 일은, 가장 비천한 자가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만 그런 것 아닙니다. 이방인들도 그들 중에서 가장 비천한 종이 하던 일이, 발 씻어 주는 일입니다. 그런 비천한 자들이 하는 일을, 主와 先生이 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어찌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너무 어이가 없는 일 아닙니까? 이는, 예수님의 지극하신 겸손, 섬김을 말합니다.

(2) 겸손 못지않게 더 중요한 의미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 섬기심은, 십자가에서 찢어주신 몸과 흘리신 피 값으로 주어지는 구원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섬김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섬김 없이는 우리에게는 구원도 없습니다. 구원은, 십자가 위에서 찢어주신 몸과 흘리신 예수님의 피, 섬김 속에서만 주어집니다. 이것이 시몬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하신 예수님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섬김을 통해서 주신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섬김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하신 것 아니겠습니까?(7) 

그러므로 자격 없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체면조차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의 이 성찬의 섬김을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섬김을 거부하면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말씀하실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받으십시다. 믿음으로 받으십시다. 주님의 섬기심을 감히, 기꺼이, 받아들이십시다. 추호라도 거부하는 마음 갖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성찬은, 죄인 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시는 주님의 몸과 피]

만찬 상에서, 굴종적인 자세로(가장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예수님은, 그 밤 이후 온 인류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하여,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로 나아가셨습니다.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상처투성이로 鮮血을 흘리시면서 말입니다. 온갖 조롱과 수모에도 침묵하시면서 말입니다. 100kg이 넘는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을 오르시면서 말입니다. 그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쓰러지시고, 십자가 밑에 깔려, 버둥거리시면서 말입니다. 넘어지실 때마다 가시관에 찔린 이마에선 鮮血이 낭자하면서 말입니다. 그 고우신 얼굴에 피범벅이 되시면서 말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고, 섬기시려고 말입니다.

이 시간 주님의 떡과 잔 성찬을 받으실 때, 2000년 전 갈보리 언덕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 십자가 상에서 찢어 주시는 주님의 그 상하신 몸, 그 주님의 보혈의 피를 먹고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떡과 잔은,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베푸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섬기심입니다. 이 섬김의 떡과 잔을 감히, 두 손 모아 받아 드시기를 바랍니다. 

성 프란치스꼬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 프란치스꼬는 라베르나 산에 들어가 40일 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두 가지 목적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1) 주여, 당신의 가슴에 우리를 위하여 불타시던 그 사랑, 나도 알게 하옵소서. 
(2) 주여, 당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고통을, 나도 내 몸에 느끼게 하옵소서. 

그 기도에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두 손과 발등과 옆구리에 예수님과 같은 다섯 개의 상처, 聖痕(스티그마)이 새겨졌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을 향한 프란치스꼬의 사랑이 불길 같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그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라 베르나 산 예배당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밑에 매달려 있는 프란치스꼬 자신의 모습이 보였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목을 구푸려 프란치스꼬와 입 맞추고 계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이 떡과 잔을 받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붙잡으십시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목을 구푸려 입 맞추고 계시는 주님을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떡과 잔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시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섬김입니다. 이제 결단하십시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 26). 우리도 주님을 섬기는 자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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