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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시작보다 끝이 더 나은 새해 (전 7: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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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보다 창대한 끝 (전 7:8~10)


우리가 잘 아는 말 중에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 차원 더 나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잃은 셈이지만 하나님을 잃으면 현세는 물론 영원한 내세까지 송두리째 잃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전도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그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금년 2009년 한해 동안 매일 매 순간마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을 본받아 사는 복된 나날이 되기 바랍니다. 

금년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 교우들에게 전도서를 기록한 지혜자가 주는 교훈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는 이 중요한 지혜를 우리 모두의 마음에 담아 2009년, 12달, 52주, 365일의 긴 항해를 소망 가운데 시작하기로 합시다. 시작보다 끝이 더 좋은 사람은 지혜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무엇인가 시작할 때 많은 좋은 계획들을 세우곤 합니다.   물론 시작도 멋지고 일에 앞서 알찬 계획이 있어야 좋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아무리 거창하고 의욕이 하늘을 찌를 듯 충만할지라도 일을 진행하는 지혜가 부족하여 끝이 흐지부지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하는 도중에 불미스러운 문제가 발생하여 끝이 좋지 못하거나 아름답지 않은 결과를 낳은 거창한 계획들은 보통 작심삼일로 그치고 말거나, 용두사미가 되고 맙니다.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는 사람, 첫 인상은 좀 부족해 보였지만 보면 볼수록 믿음이 가는 사람, 장독에서 잘 익은 장맛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더 구수한 인간미가 풍기고, 알면 알수록 더 은은하고 깊은 맛을 드러내는 사람, 이처럼 시작보다 끝이 더 나아지는 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중국 고사성어에도 ‘일신우일신’이라 하였습니다.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롭다는 것이 희망적인 말입니다.  교우 가정이나 사업체를 방문하면 집안에 은혜로운 성경구절을 액자에 넣거나 혹은 나무판에 새겨 걸어둔 것을 봅니다. 그 중에 인기 좋은 구절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인가요?  교우 가정이 사업을 시작할 때 개업예배 선물로 가져가는 말씀 중에 인기 제 1위에 오르는 구절입니다. 비록 작은 규모로 시작을 하지만 날마다 번창하여 나중에는 심히 크게 확장이 되라는 뜻이니 흐뭇한 축복의 말씀 아닐까요?  

그런데 원래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즐거운 일, 용기를 북돋는 뜻에서 받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욥이 사단에게 시험을 당하여 너무 힘든 고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열 자녀들을 한 날에 잃고 재산을 탈취당하며 몸에는 지독한 피부병이 들어 온 몸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을 맛보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험악한 꼴을 보다 못해 저주하고 도망을 가버린 기막힌 처지에 있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이 욥의 소식을 듣고 위로하러 찾아왔다가 너무나도 처절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친구를 보고 할 말을 잃고 일 주일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불쌍한 친구에게 위로 대신 충고와 책망의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시련에 빠진 것은 욥이 하나님께 무엇인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최소한 욥이 당하는 이런 고난은 없으니 욥보다는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빌닷이라는 친구는 ‘어찌 전능하신 하나님이 실수로 이런 심판을 하셨겠는가? 네 자녀들이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네가 벌 받은 일을 했으니 이렇게 된 것이니 이제라도 네가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구하고 정직하고 청결하게 살면 너를 불쌍히 여기고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이다.  너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너의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될 것이다.’  이런 뜻에서 말한 친구의 책망과 충고에서 나온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미천한 존재들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청결하고 정직하게 살면 나중에는 놀랄 만큼 번창하는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축복의 말입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한 채 어려움 당하는 친구의 현재 모습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하여 위로라고 하는 말이 더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다 주는 어리석은 충고가 될 수도 있으니 참 조심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가리켜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말에도 이런 지혜가 있기 바랍니다.   고난 당하는 형제의 아픔을 이해하고 말 없이 기도하는 것이 수 만 마디 위로의 말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가 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지혜를 늘 사모하기 바랍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삶이야말로 진정 복된 삶입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은 지나간 과거를 들먹이기 좋아합니다.  ‘그때가 좋았어’ ‘아, 옛날이여’ 하고 소시적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지나간 일을 들먹이며 오늘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며 시간만 허비합니다.  과거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며 오늘을 감사하며 내일을 바라보고 사는 삶은 희망적입니다.  그러나 과거만 추억하는 과거지향적인 자세는 우리 인생을 좀 먹고 후퇴하게 만드는 해악이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는 장애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를 여행하던 히브리 백성들은 광야 생활에 지치고 힘든 일이 생길 때 ‘우리가 이집트에서 종살이 할 때가 훨씬 좋았다 차라리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하며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종살이 하던 시절이 좋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내일에 대한 소망이 약해지고 오늘의 삶이 힘들면 약한 마음을 먹고 옛날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전도서를 쓴 지혜자는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10절) 하였습니다.  

오늘이 좀 힘들고 어두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순간을 탄식하고 있기보다는 일어서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에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작년이 좀 힘들고 벅찼지만 금년에는 새 마음으로 시작해보겠다고 결심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되기 바랍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하였습니다.   어차피 시작이 좀 허술하고 미약하다면 앞으로 그보다 더 좋아질 기회가 더 많다는 긍정적인 마음도 가지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보석을 깎는 세공업자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기계 위에 올려놓고 다듬어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거칠고 볼품이 없어 보이던 원석은 깎이어 가는 중에 많은 것을 잃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불평할 정도로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깎인 다이아몬드가 어느 날 왕관에 박힙니다. 왕의 대관식에서 웅장한 나팔소리와 함께 왕이 그 왕관을 머리에 쓸 때 다이아몬드에서 광채가 납니다. 그 광채는 다름아닌 보석 세공인의 손에 의해 그렇게 고통스럽게 깎이며 몹시 불평하던 그 다이아몬드에서 나오는 빛입니다.    

우리 자신을 바로 이런 다이아몬드에 비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깎이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불순물이 많이 섞인 투박하고 거친 원석입니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그 깎이는 과정을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영광스런 왕께서 그 머리에 왕관을 쓰실 때 그 왕관에서 비치는 광채 중에 하나는 바로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빛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작보다 더 나은 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모든 성도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성경의 몇 가지 예들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사랑으로 기르시는 백성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영광의 자리로 나아가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이사할 때 단 한 명의 후손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그 땅을 향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 경우에는 가나안 땅에서 누가 집을 마련해놓고 초청하여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고 일자리를 준비하고 오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 하나만 의지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조카 롯의 식솔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와보니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도 없는 말 그대로 낯선 타향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처지를 하나님께서 뭐라고 표현하셨는지 아십니까?  

이사야 51장을 보면,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해 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사51:1-2).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처음 시작은 말 그대로 혈혈단신이었습니다.  나이 많은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가 평생을 정 붙이며 살았던 고향을 등지고 외국 땅으로 나와야 할 때 그들에게는 대를 이어줄 아들이나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에게 아들을 주셨고 그 땅에서 그 자손들이 번창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도 시작은 이렇게 외로운 나그네였고 발붙일 곳 하나 없는 사람이었지만 오늘날 한 민족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위로하여 지금 황폐하여 광야와 같이 된 너희를 하나님의 동산처럼 아름답게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 복된 음성은 지금도 우리를 향한 위로의 말씀입니다.   

낯선 타향에서 처음 시작하는 모든 일들이 너무 힘들고 외로울 때가 많지요?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잘 안 통하는데다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상당히 어긋난 일들이 많아 실망스럽기도 할 겁니다.  그래도 시작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비록 시작은 서툴고 미약할지라도 보석을 깎는 심정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또 격려하면서 하나님을 구하는 금년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선하신 손길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걱정스럽고 낙심되었던 시작이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삶이 되도록 이끄실 줄로 믿습니다.   

또 한 사람의 예를 들면,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의 양들을 지키던 목동에서 한 민족을 다스리는 왕이 된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시를 잘 쓰고 악기를 타며 노래를 잘 부르던 목동 소년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을 계기로 단숨에 사울 왕에게 인정을 받아 장래가 촉망된 군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오히려 왕의 미움과 질투를 받기 시작한 다윗은 사울 왕이 죽는 날까지 십 수년을 도망자처럼 늘 긴장하며 살아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험한 시련과 훈련의 자리에서 깎이고 또 깎이도록 하심으로 비로소 제대로 된 이스라엘 왕국을 만들게 하셨고 이스라엘 전 역사 가운데 백성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가장 사랑 받고 인정 받는 왕의 모델이 되게 하셨으며 그의 후손으로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도록 허락하셨습니다.

2009년을 시작하는 첫 주일 아침에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는 지혜자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이 자리를 떠나가기 바랍니다. 시작부터 좋은 계획, 알찬 계획을 세우십시오. 하지만 계획으로만 그치지 않고 일의 시작보다 끝이 더 좋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계획 속에 우리의 걸음을 지도하시는 창조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도록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나를 의지하고 그분을 날마다 찾는 친근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회의 일군으로 세움을 받고 섬기시는 모든 분들은 나를 부르시고 주의 큰 집 교회에서 크고 작은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 전심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처음 시작은 좀 부족하고 서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년 내내 우리를 다듬어가시고 깎아주실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감사함으로 충성합시다. ‘끝이 시작보다 더 나았다’고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금년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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