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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시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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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시 23편)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의 현실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성경 렘 6:19에서는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고 말씀합니다. 

잠 23:7에서는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표준 새번역에서는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복과 저주가 찾아오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인격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2009년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고 좋은 생각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미국의 제임스 소령은 베트남 전쟁 중 포로가 되어 한 사람만 겨우 누울 수 있는 독방에 7년간 갇혀 살았습니다.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대화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7년간을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도 ‘나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 하며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그는 매일 4시간 반씩 상상 속에서 골프를 했습니다. ‘이제 첫 홀이다. 티를 꽂고, 자, 때린다. 공이 잘 날아가는구나. 아! 뭉게구름이 아름답다. 아! 푸른 하늘에 나부끼는 바람이 참 멋지다. 골프 옷의 감촉이 좋구나.’ ‘이제 둘째 홀이다. 어디로 칠까?’ 그렇게 18홀을 다 도는 것입니다. 

4시간 반씩 7년 동안 그렇게 골프를 하다가 자유의 몸이 되자 그는 바로 골프장에 갔습니다. 그전에는 90타를 쳤던 그가 놀랍게도 그때 70타를 쳐 골프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시험 성적은 70점보다 90점이 더 좋지만 골프는 점수가 낮을수록 좋습니다. 7년간 작은 독방에서도 좋은 상상, 좋은 생각을 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2009년도에는 하나님이 나에게 복 주셔서 사역이 더 풍성해지고, 사업도 일어나고, 가정도 평안해지고, 육체도 건강해지고, 자녀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고 그런 생각을 하셔서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좋은 일들을 생각하고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2009년도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뉴질랜드는 양의 수가 인구 수 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또 그곳에는 목자가 필요 없습니다. 전 국토가 목초지이고 사나운 짐승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양을 방목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메마르고 험해서 물이 귀하고 목초지가 많지 않으며 사나운 짐승도 많습니다. 그곳에는 목자의 도움이 없이 결코 양이 살아 날수가 없습니다. 목초와 샘물은 목자가 찾아내어야만 하고 밤낮으로 목자가 양무리와 함께 해야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인생은 이스라엘의 양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목자라고요? ‘나의 목자’입니다. 여호와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양에게 중요한 것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목자가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 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곳만 지나면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가 있으니 할 수 없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시킬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목자를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다른 길이 좋은 것 같다고 양 무리를 떠나서 다른 길로 가면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목자를 따르지 않고 다른 길로 가는 양이 있으면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다른 길로 가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길로 가면 결국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그럼 목자가 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가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풍성하게 됩니다.

1절에 보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고, 5절에 보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의 목자로 오셨는데 오신 목적을 요 10:10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풍성함을 주십니다. 첫째는 내적인 풍성함입니다. 둘째는 외적인 풍성함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 두 가지가 다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내면에 주님이 주시는 좋은 것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보통 사람은 항아리에 물이 가득하듯이 내면에 무엇인가를 가득 담아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것으로 충만합니다. 절망과 미움과 분노와 시기를 담고 살아갑니다. 그 속에 악한 것이 가득하니 나오는 것이 악한 것이고, 그 속에 부정적인 것이 가득하니 나오는 것이 부정적입니다. 그 속에 불신앙적인 것이 가득하니 나오는 것마다 다 불신앙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빈 항아리처럼 내면이 텅 빈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적인 공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좋은 물건이 생겨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돈은 많아서 쇼핑을 즐기며 원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사지만 내적인 공허함 때문에 인생이 하나도 재미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목자가 되시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미음과 분노가 사랑과 평화로 바뀌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내면을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공허함이 주님이 주시는 좋은 것들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예수 제대로 믿으면 행복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내적인 만족, 내적인 풍성함은 외적조건과 상관없이 옵니다. 클레이 폴이라는 철학 교수가 친구 집에 가서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어서 몸뚱이만 갖고 사는 그 여동생이 너무나 쾌활하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클레이 폴 교수가 그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네 처지라면 나는 못 견딜 것 같다. 그런데 너는 그 몸으로 어찌 그리 기쁘게 사니?” “아저씨, 내게 팔 다리는 없어도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입이 있고 좋은 명작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고 가족의 사랑이 있고 친구의 사랑이 있습니다. 더더구나 내게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계신데 내가 기뻐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을 목자로 모시면 내적인 풍성함만이 아니라 외적인 풍성함으로 인도하십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5천명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모였는데 점심때가 지났습니다. 저녁도 지났습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모두가 허기져서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면 제자들이 믿음으로 반응한다면 충분히 무리를 먹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하겠지만 주님이 말씀하셨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보다 할 수 없다는 핑계거리를 찾았습니다. 제자들이 세 가지 핑계거리를 말했습니다. 첫째, 빈 들입니다. 장소의 핑계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둘째, 날이 저물었습니다. 시기의 핑계입니다. 먹을 것을 파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200 데나리온도 부족하겠습니다. 자본금 핑계입니다. 먹을 것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5병 2어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풍성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간혹 벳세다 광야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을 명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능력과 우리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지금도 풍성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무능력과 환경의 어려움을 핑계하지 말고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벳세다 광야에서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 풍성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새로운 일을 명하신다는 영감이 있습니다. 교회 명의 변경과 땅을 확보하는 문제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벳세다 광야의 제자들처럼 몇 가지 핑계거리를 찾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장소의 핑계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시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고, 그린벨트고... 둘째, 시기의 핑계입니다. 지금 세계경제가 어렵고, 2009년에는 경제성장률이 어떻고, 이런 시기에 일을 벌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고... 셋째, 자본금 핑계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돈을 충당하고, 이자가 얼마인데... 사랑하는 여러분! 벳세다 광야에서 5병2어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지금도 기적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로써, 우리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2. 인도하여 주십니다.

2절에 보면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3절에서는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다양한 방법을 말할 수 있겠으나 저는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롬 8:14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과거에 예화를 들었던 이야기인데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가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부인과 가족을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존 번연은 고마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가다가 되돌아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옥사장에게 “호의는 고맙지만 성령이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 후에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이 갇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후 간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제가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셔도 좋습니다.” 만약 존 번연 목사님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다면 옥사장과 목사님은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순간순간 어려움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인디안 한 부족에는 이런 성년식이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칼쓰기, 창던지기, 활쏘기 같은 강도 높은 무술을 가르친 다음, 남자아이가 13세가 되면 깊은 산 속에 데리고 가서 혼자 남겨두고 옵니다. 깊은 산 속에는 무서운 짐승도 있고, 위험한 일도 많은데, 거기에서 살아 돌아와야 성인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그 부족의 한 소년이 13세가 되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어른들이 눈가리개로 소년의 눈을 가리고 소년을 말에 태워 깊은 산 속으로 데리고 가서 그 소년만 그곳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산 속에 혼자 남은 소년은 무서워 떱니다. 사방이 무섭습니다. 낙엽 소리가 들려도 호랑이가 접근하는 것처럼 무섭게 느껴집니다. 정말 무서워 떨며 밤을 보내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맹수가 공격해 오는 꿈을 꿉니다. 놀라 잠에서 깨어나 보니 동이 트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펴보는데 저편 바위 옆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자기 아버지입니다. 창과 칼과 활로 무장한 아버지가 짐승이 아들을 해칠까 봐 살피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그 아들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러다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어려움, 캄캄함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반석이신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거기에도 서 계셔서 우리를 살피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공동체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인도하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신약시대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마다 각각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12지파가 함께 움직이도록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움직이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백성들 전체가 움직이게 하셨던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다 한 방향으로 인도하지 몇 마리는 동쪽으로 몇 마리는 서쪽으로 몇 마리는 남쪽과 북쪽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리에서 이탈하는 것은 양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잠 18:1에 보면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에 보면 하나님을 목자로 섬기는 사람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목자인 주님과 관계가 좋은 사람은 주님의 집인 교회를 가까이 하게 되고 교회 오는 것이 좋습니다. 희한하게 은혜가 떨어지면 교회 오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이상하게 교회 오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를 가려고 하면 설레고, 교회 오면 기분이 좋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태백산 기슭에 있는 한 교회에 가서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곳은 공기도 좋고, 식사 때마다 태백산 나물이 여덟 가지나 아홉 가지가 나와서 참 좋았습니다. 그때 안수 집사님 한 분이 점심을 대접하면서 울먹이시며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어떤 일로 교회가 싫어지고 목사님이 싫어져 교회를 나가지 않았답니다. 육개월 간이나 교회를 나가지 않았는데, 그분의 집에 어느 날 도둑이 들어 많은 돼지를 다 싣고 가버렸답니다. 그때 그분이 ‘아, 하나님께서 나를 치시는구나.’라고 깨달았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가 싫어서 교회를 나가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큰 인삼밭에 있는 인삼을 다 도둑맞았답니다. 도둑이 차를 대놓고 인삼을 다 뽑아간 것입니다. ‘내가 주일을 범하니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시는구나.’라고 깨달았지만 여전히 교회에는 나가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집회 전 날 캄캄한 밤에 하늘에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자는 교회당으로 모여라.”하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그분도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러 쏜살같이 교회로 달려갔답니다. 밖에는 시커먼 지옥의 불길이 막 타올라 아우성 소리로 야단인데, 교회만 밝은 빛이 비취고 있더랍니다. 

교회로 들어가니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더랍니다. 그분도 자리에 앉아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얼마 후에 금줄이 내려와서 보니 그 금줄 끝에 금 명찰이 있더랍니다. ‘○○○ 목사’ 목사님이 그 줄을 잡으니 줄이 주르르 올라가더랍니다. ‘○○○ 장로’ 장로님이 그 줄을 잡으니 또 줄이 주르르 올라가더랍니다. 차례차례 금 명찰이 내려와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 줄을 붙잡고 올라갔답니다. 남은 사람은 자기 혼자 뿐이더랍니다. 

그래서 그분이 부르짖었답니다. “하나님, 제 명찰도 내려 주세요. 제 명찰도 내려 주세요. 왜 제 명찰은 내려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래도 명찰은 내려오지 않고 나중에는 지옥의 불길이 교회에까지 들어와 확 에워싸더랍니다. 그분이 너무 무서워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제게도 명찰을 주세요.”하고 기도하다가 깨니 꿈이더랍니다. 그런데 자기의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날 새벽에 교회에 나왔는데, 교회를 보니 그렇게 좋고 목사님 얼굴을 보니 그렇게 반갑더랍니다. 그분이 점심 식사 대접을 하면서 “제가 참으로 바보짓을 했습니다. 참으로 바보짓을 했습니다.”라고 하셨답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와 같습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노아의 방주 안으로 들어간 노아의 8식구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세상이 멸망당할 때 하나님은 믿음으로 교회에 붙어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교회를 인도하시는, 공동체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승리하게 하십니다. 

5절에 보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원수 앞에 부끄럽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원수 앞에서 높여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누구든지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이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되어도 아들이 얻어맞고 다닐 바에야 차라리 때리고 오는 것이 낫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미술학원에 다닐 때 간간이 친구들에게 얻어맞고 다녔나 봅니다.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있고 아주 풀이 죽은 모습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하루는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목사님에게 “아빠, 오늘은 아이들 네 명이 나를 둘러서서 때리는데, 내 간이 떨어지는 것 같았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합니까? 그래서 목사님이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남자로 태어나서 그렇게 맞고 다니면 안 된다. 너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권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쯤 가르친 후에 전략까지 세워 주었습니다. “아들아, 한 아이가 덤비든 열 아이가 덤비든 상관없다. 아이들은 똑같다. 한 놈만 집중해서 공격하여 코피를 내면 다른 아이들은 다 도망을 간다. 한 놈만 집중해서 공격해라.” 

그 후 어느 날, 미술학원의 아이 네 명이 또 목사님 아들을 때리려고 에워쌌답니다. 목사님 아들이 목사님에게 배운 대로 가장 큰 아이를 집중해서 팍 치니 그 아이의 코피가 터졌답니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다 도망을 갔답니다. 그 날, 목사님 아이가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빠, 코피 냈다!” 그 후로 그 아들이 간간이 친구들을 때리고 왔습니다. 

하루는 모 회사 이사의 아들을 때려 코피를 내고 왔는데, 그 부인이 목사님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의 아들이 사람을 칩니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좋았답니다. 자식이 맞고 오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마귀에게 얻어터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를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면 이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기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이기게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고, 문제를 이길 수 없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을 붙잡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 승리하게 됩니다. 

시 23편을 기록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삼았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그의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삼하 8:6에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삼하 8:14에도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2009년, 우리는 사단과 싸워야 하며, 글로벌경제 침체라는 무서운 환경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적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은 우리의적보다 강합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담대하게 인도하심에 순종해서 승리하는 2009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멍가게를 여시면 실패하시겠습니까? 반드시 성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사를 경영하시면 실패하시겠습니까? 반드시 성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장인으로 들어가시면 직장을 무너뜨리시겠습니까? 직장을 세우고 직장에서 성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학교에 입학하셔서 공부하시면 반드시 우등생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회하시면 승리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2009년에는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하나님과 함께 살므로 승리하고 성공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풍성합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승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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