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소서 (대하 7:11~18)

  • 잡초 잡초
  • 325
  • 0

첨부 1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소서 (대하 7:11~18)

  
사하라 사막 서쪽에 사하라의 중심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매년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레빈’이라는 사람이 이곳을 발견하기 전까지 마을은 전혀 개방되지 않은 낙후된 곳이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한 번도 사막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레빈은 믿을 수가 없어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대답은 모두 똑같았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결국은 처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말이 사실인지를 실험하기 위해 직접 북쪽을 향해 걸었고, 3일 만에 사막을 빠져 나왔습니다.  

레빈은 답답한 마음에 이번에는 마을 청년 한 명을 앞세우고 그가 가는 대로 뒤따라갔습니다.  밤낮 없이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11일째 되는 날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청년과 함께 했던 레빈은 마침내 그들이 사막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북극성의 존재를 몰랐던 것입니다.  

레빈은 청년을 데리고 다시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아꼈다가 밤에 북극성을 따라 걷게 했습니다.  그러면 사막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청년은 레빈의 말대로 했고, 사흘 만에 사막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큰 깨달음을 가진 그 청년은 훗날 사막의 개척자가 되었고, 그가 죽은 뒤에 마을 중심에 그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 동상 아래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생은 방향을 찾음으로써 시작된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람은 나이나 신분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삶의 목표를 정한 그날부터 진정한 인생의 향해가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인생 여정의 길잡이가 될 '북극성'과 같은 것이 꼭 필요합니다.  목표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합니다.  방향을 따라 가는 것이 중요하고, 결국 목적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도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목표를 세우는 것만큼 귀한 일이 없습니다.

2009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우리교회도 목표를 세웠습니다.  금년 표어는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자’입니다.  올해 우리교회는 새성전입당과 함께 배가부흥의 해를 목표로 삼고 이런 표어를 정했습니다.  금년 우리의 목표가 은혜가운데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알려줍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는 역대하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역대서는 열왕기서와 같이 이스라엘 왕정시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같은 시대의 말씀을 반복하는데 열왕기서는 왕들을 중심으로, 역대서는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을 포함한 역대하의 초반부는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다루고 있습니다.  부친 다윗의 소원이었던 성전을 아들 솔로몬이 비로소 완공하고 이제 성전봉헌식이 성대하게 거행됩니다.  봉헌식이 진행되는 동안 솔로몬은 장시간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그의 기도는 당대는 물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성전은 어떤 곳이어야 함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가 마치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번제물과 제물을 사르고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가득하게 됩니다.  백성들은 감동의 순간을 맞이하고, 기쁨으로 환호하고 감사로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불로서 응답하셨고, 위로하셨고,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런 과정이 지나간 뒤에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중심내용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부흥을 선포합니다.  그것이 특히 14절에 나옵니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그 땅을 고칠지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부흥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사는 땅에 축복
과 은혜와 평안과 번영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흥을 위해 먼저 요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 말씀 앞에 바로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15절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평안과 번영과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은 눈을 들고 보시고, 귀를 기울여 듣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선포한 부흥으로 가는 길입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부흥을 목표로 삼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우선적인 목적은 바로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하도록 도움을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성경은 한마디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보여주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는 단어가 도움, 돕는자라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지칭하여 사용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에제르(ezer)’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를 조합하면 열정, 격렬, 남성적인 힘, 능력, 빛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도움은 강하고, 능력 있고, 역동적인 힘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 하나님의 힘이 나를 구하기 위하여 빛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에제르’입니다.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환난 날에 도우시고, 어려울 때 도우시고, 쓰러질 때 일으켜 세우십니다.  특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때 더욱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임한 부흥은 바로 이렇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모이기를 힘썼고, 또 모이면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고, 뜨겁게 기도했고,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로 성령이 임했고, 기도로 변화가 임했고, 기도로 부흥을 경험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음을 알았기에, 그들은 모이면 기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해 부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이런 결단이 필요합니다.  모이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모여야 합니다.  부흥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역사를 일으킵니다.  부흥의 불길이 여기에 임하도록 이제 다시 기도하기를 다짐하고, 기도의 자리에 빠지지 말고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스스로 낮추는 것입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낮추라고 강조합니다.  부흥을 위해 기도도 중요하지만, 아울러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것은 당시 높은 위치에 있는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즉, 교만할 수 있고, 또 교만해 지기 쉬운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향한 말씀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은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만 보이는 것입니다.  지독한 자기중심주의, 철저한 이기주의가 바로 교만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거나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부흥에 큰 장애이고,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도 보지만 하나님을 가장 크게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무도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합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이런 사람이 모인 곳에 위로가 있고, 분명 부흥이 있습니다.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배려와 이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도 그렇지만 교회공동체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작년 초 베스트셀러 중에 ‘배려’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출간 25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한 화제의 책이었습니다.  대기업의 CEO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책이고, 취업준비생들의 필독서로 선정이 되기도 했던 책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수석으로 입사하여 회사 내에서 고속 승진을 계속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리대상으로 지목받는 프로젝트 1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혼란에 빠집니다.  게다가 가출한 아내로부터 이혼서류를 받고 더 절망하게 됩니다.  낙심 중에 시작한 1팀에서의 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부서는 대부분 정리대상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뭔가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고, 늘 긍정적이었습니다.  회사를 원망하기보다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던 주인공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초래하게 된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으며, 해결책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방식을 반성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의 가치들을 얻게 됩니다.  혼자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그것은 경쟁만이 전부가 아니라, 서로 나누며 배려하는 삶이야말로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스퍼거 신드롬(Asperger Syndrome)’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출신의 의사인 한스 아스퍼거(Hans Aperger)가 실험을 통한 논문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서 따온 말로 널리 통용됩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신경정신과적 장애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만 있고 남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빛내기 위한 조역일 뿐입니다.  이야기를 해도 늘 자신에 관한 얘기만 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타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주제에서 자기가 빠지면 섭섭하고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이것이 아스퍼거 증후군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배려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남을 돌아보고 관심을 갖고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교만을 가장 싫어하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좋아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결국 겸손한 곳에 진정한 부흥이 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좀더 서로를 이해하고, 더 넓게 남을 배려함으로 교회를 섬겨 배가부흥의 역사를 이루는데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것은 공동체를 향한 말씀이고, 솔로몬 개인에게는 17절에서 동일하게 이렇게 강조합니다.  “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과 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 내가 네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하리라”  

16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이 모두는 한마디로 악한 길에서 떠나 선한 길, 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기에 세상과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진정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보는 것은 전쟁, 싸움, 다툼, 미움, 분쟁, 분파입니다.  그것을 보며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는데 교회는 그런 것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악해도 교회는 선해야 하고,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교회는 깨끗하고, 거룩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교회에 가고 싶고, 그런 교회가 부흥하는 법입니다.

미주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내고 있는 정숙희라는 사람이 쓴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을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칼럼에 연재한 지난 10년 동안 한인교회의 이야기들을 엮어서 만든 책입니다.  읽기는 쉽지만 소화하기는 매우 힘든 책입니다.  물론 이 책은 반기독교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저자도 신실한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진리를 다시 점검하고, 교회다운 교회를 회복하자는 취지로 쓴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믿는 자들에게 한번쯤은 생각해 볼 소중한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칼럼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 이것이 한인교회의 역사라고 한다면 제가 너무 심한가요? 저 보기에 교회와 교인들이 교회를 비방하며 보내온 투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또 험담으로 가득한 전화를 받은 것은 얼만지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교회의 문제는 주도권 싸움에서 시작돼 돈 싸움으로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 교회의 분쟁을 예로 들어 볼까요?  

어느 쪽이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양쪽 다 상대를 결사적으로 증오하며 쫓아내려 한다는 사실만이 분명하지요.  분열된 양측이 예배 중 헌금주머니를 쟁탈하기 위해 육탄전을 벌이다가 몇 사람이 다치고 깁스까지 했습니다.  싸움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3주 동안은 주일예배마다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결국 한쪽이 교회자물쇠를 모두 바꾸고 주차장을 봉쇄한 후 입구에서 얼굴을 확인하고 자기편만을 교회로 들여보내 예배를 가졌으며, 다른 쪽은 인근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곳이 교회일까요?  이것이 예배입니까?  이 사람들이 성도 맞습니까?’

참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태평양 건너 저편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도 아침 일찍 산에 올라 바라보면 많은 십자가가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도 정작 교회를 찾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교회를 추천해 달라 하면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느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이런 의미 있는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 중요한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든 당신이 다님으로써 좋아지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성도로 부름 받고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이 교회에 내가 소속됨으로서 좋아지는 교회,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가고 싶은 교회요,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그런 교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9년 한해 이제 우리는 부흥을 꿈꾸며 출발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모이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스스로 낮추고, 남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 다님으로써 그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이제 모두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한해의 꿈을 이루는데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